바리공주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35
김승희 지음, 최정인 그림 / 비룡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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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동화책을 좋아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입밖으로 글을 내뱉을 때 어색하지 않게 읽히고, 이야기를 지나치게 설명하는 그림이 아니어야 한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막 그린 듯한 그림이 있는 동화책은 별로고, 교훈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저자의 의도가 너무 직설적인 것도 별로. 바리 공주는 무조건 짧은 글을 원하는 옥찌에게 이모가 죄다 읽어주겠다며, 내가 그림에 홀딱 반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우선 장정이 아름답고, 그림이 예뻤으며 입에 감도는 듯한 글이 맘에 들었다. 입에 달싹 붙어 읽기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두고두고 여운이 남도록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옛날 옛날 오구대왕이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난 얼마나 오랫동안 환장해왔는지.

여섯 공주를 낳고 일곱번째 낳은 여자 아이를 버린 후 왕비가 우는 장면

쓱쓱 그린 대나무도 뱀도 아니다. 바리 표정마저 어찌나 생생한지.

바다에 띄워진 바리가 자라, 만물이 다 어미 아비가 있는데 자기는 없다며 할미에게 묻는다. 할미 할아비가 하는 말이 "하늘이 아버지요 땅이 어머니라." 하지만 아기 바리는 믿지 않는다.

일곱째 공주를 버린 슬픔과 죄로 병이 든 왕. 약을 써도 낫질 않으니, 하늘이 아는 아기를 버린 죄로 병이 들었다는 말이 파다하다. 왕은 저승에 있는 약물을 길으러 가겠냐고 딸들을 불러 말하니 아무도 가겠다는자가 없더라. 바리공주를 찾아 약물을 구해오겠냐고 하자, 바리공주는 한참을 운다. 그리고는 이 세상 태어나게 한 은혜를 입었으니 다녀오겠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약수 지키는 무장승을 만나는 바리. 꽃밭에 물 긷기를 삼년, 불 때는데 삼년, 일곱 아기를 낳아주니 석삼 년 아홉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바리공주 좋지 않은 꿈을 꾸고 어서 약수를 주사이다 하니,
무장승 하는 말이
"너 먹는 물이 바로 약수로다."

뒷동산 꽃밭에 갖가지 피어있는 숨살이, 피살이, 살살이 꽃을 꺾어 들고 궁으로 돌아가려하는데 무장승과 일곱 아들도 함께 가겠다고 길을 나섰다.

곡성이 가득한걸 듣고 깜짝 놀란 바리공주는 비녀 빼서 땅에 놓고 댕기 풀어 나무에 걸고 머리 풀어 크게 운다.

바리는 가져온 꽃으로 어미 아비를 살살 문지르니 숨을 쉬고, 피가 돌고, 살이 돋아나더라. 약수를 입에 흘려 넣으니

왕과 왕비가 아주 성한 사람으로 일어나더라. 버리데기, 버린 자신이 날 살렸구나.

무장승에게는 큰 벼슬을 내리고, 초롱초롱 일곱 아들은 후에 하늘로 올라가 북두칠성이 된다. 바리공주는 저승길 가는 혼령길 잡아 주고 죄 많이 지어 저승길로 못 가는 혼령 씻겨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는 무조신이 되었다.

잘 쓰고 잘 그리고 잘 만든 동화책 한권, 새벽까지 리뷰 쓰고 앉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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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07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공주~ 여러 버전이지만 이 책은 그림이 정말 예쁘죠.
임시저장기능 안돼서 날라간 적 여러번 있어요.ㅜㅜ

Arch 2009-09-07 11:1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잠와서 혼났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저장도 안 되고 드득드득. 으~

무해한모리군 2009-09-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쁘다.
사가지고 맨날봐야지.

Arch 2009-09-07 11:16   좋아요 0 | URL
그래요, 휘모리님. 또 예쁜거 보이면 시간 여유를 두고 올릴게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내용도 참 예쁘고 좋아요.

머큐리 2009-09-0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림이...그림이....

다락방 2009-09-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포토리뷰 당선 축하축하!! :)

Arch 2009-09-14 16:47   좋아요 0 | URL
감사, 감사~ 고마워요. 다락방님.
 
몸의 이해 편 EBS 지식채널 건강 1
지식채널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바늘 같은게 속을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파서 집 근처 병원에 간적이 있다. 일전에 갔던 내과였다. 무신경한 간호사에 무뚝뚝한 의사를 겪은 뒤라 웬만하면 다시는 안 가고 싶었는데 다른 병원도 없고, 이번에 또 그전처럼 막 대하면 따질거란 다짐까지 하고선 찾아간거였다. 증세에 대해서 말을 하자, 간단하게 위염이라고 진단을 했다. 그리고선 누우라고 하고선 배를 몇군데 누르더니 처방전을 써주겠다고 하는거였다. 평소때라면 군말않고 처방전을 받아들고 의사가 시키는대로 몸 관리하면서 약사가 조제한대로 약 먹으면서 상태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는 묻고 말았다.  
- 위염이면 속이 쓰리거나 신트림이 나와야하는건 아닌가요? 그런데 전 뭔가 쑤시는 것처럼 아픈데요. 
- 그럼 장염인가?(잉?) 
 이때부터 이 의사뿐 아니라 이전부터 갖고 있던 뿌리깊은 불신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처방을 하신거예요? (지금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위장이 아프면 증세가 그다지 다르지 않는걸로 알고 있다.) 
- ......
- 장이 문제인게 확실한가요?
- 그럼, X-Ray 찍어볼래요?
- 네? 그걸 환자가 결정하나요?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찍어서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는게 아닌가요?
- ......

 나는 처음으로 침묵하는 의사를 봤고, 진료실의 시계 초침이 그토록 큰소리를 낼 수 있는지 새삼스레 느꼈다. 옆에서 지켜보는 간호사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의사는 나보고 다른 병원 가보라며 진료비는 안 받겠다고 했고, 나도 당신같은 사람한테 진료비 낼 생각 없다고 소리 지르려다가 눈물이 삐져나와 그냥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의 진단이 그렇게 틀린건 아닐 수도 있다. 대개의 위장병은 제때 밥 먹고, 조금 신경쓰면 금세 낫는거니까. 인간의 몸은 자연적으로 치유되니까. 하지만 환자가 아프다고 하든 죽겠다고 하든 정석대로 하는 짓거리에 짜증이 났고, 그동안 겪어온 일들에 분노가 치밀었다. 

 항생제를 굳이 써야하는게 아니라면 넣지 말라고 했을 때 정색하면서 뭘 안다고 그러냐는 의사에서부터 예전에 자기가 치료한 이를 다시 치료하려고 애쓰는 의사(X-ray까지 다 봐놓고), 보험 안 되는 것만 쏙쏙 골라서 검사 받아보라고 하는 의사, 동생이 아이를 낳을 때 제대혈에 대해서 묻자 '그런건 어디서 보고 온거냐'며 대놓고 무시한 의사까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은 경험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감기를 취재하며 약물 오.남용과 지나치게 병원 의존적인 내용을 보며 유독 나만 특이한 상황을 겪은게 아니란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잠깐, 그렇다고 의료혁명이라도 원하는건가? 예전 같았으면 이런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해가며 다음엔 이렇게 따져야겠다는 메뉴얼까지 마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의학이 가져다준 일정 부분의 성과를 인정하고, 의사들 나름의 고충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의 편견만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은데다 생각이 한쪽으로 굳어져 유연하지 못하면 나 역시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들처럼 행동할게 분명하니까.
 
 이 책은 최신의 건강 상식을 담은 것도 아니고, 현대 의학에 대해 심층 분석을 하거나 다른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두지도 않는다. 자기 계발서와 비슷한 자기 건강서 정도가 될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평이한 건강 이야기. 중요한 점은 자기 계발서와 마찬가지로 몇주 정도는 유효한 기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난 지금 사진 도배질에 이어, 페이퍼형 리뷰를 써대고 앉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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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체성,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17
이현재 지음 / 책세상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선 여성철학의 정의(여성적인 것에 대한 분석을 통해 타자 배제의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고 방식을 찾는 철학이다.)에서 시작해 1세대에서 3세대까지의 여성운동에 대해 살펴본 후, 앞으로의 여성 운동 여성주의의 방향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제껏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답답했던건 그 어디에도 어떻게 여성주의가 태동하고, 발전하고 다시 문제에 봉착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없었다는거였다. 이건 내가 게으른데다 제대로 책을 안 읽고, 좀 더 의욕해서 알려는 의지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투쟁에서 기득권인 남자처럼 되려는 과정에서 더 이상 절대적으로 옳은건 없는 포스터 모던까지. 이 책은 얇은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체계적으로 여성주의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여성주의, 여성철학은 어떻게 진행되어야할까.
 
 저자는 낯선 자들과의 연대, 소란스러움에 대해 얘기한다. 설의 <집단적 의도와 행위>에 보면 같은 행위를 한다고 연대라고 불릴 수는 없다. '타자를 암묵적으로 협동적 행위자로 생각하는 것'이 설이 말하는 연대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대해야하는걸까.
 
 딘의 <낯선 자들의 연대>에 보면 '기존의 관습적, 정서적 범위에 속하는 연대는 제한되었다고 판단된다. 그 범위 안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딘은 백인 여성주의자의 자매애를 비판한다. 백인 여성주의자는 다른 국가의 클리토리스 할례나 히잡에 대해 비판하지만 정작 그들의 문화나 가치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 이 단언이 할례나 히잡을 옹호하거나 여성주의 내부의 적은 여성들 각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단지 백인 여성들의 특정한 규범으로 타자를 재단한다면 유색인 여성의 욕망과 가치관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둬야한다.  
  딘은 반성적 연대를 제안한다. '자유와 다양성을 위한 연대, 차이와 존중에 기반한 연대'말이다. 반성적 연대는 '서로를 의사소통적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서로의 차이에 대해 묻고 반응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다소 시끄러운 과정을 함께 한다.' 반성적 연대를 통해서 우리는 '질문이 우리를 구성'하는 과정을 체험하며 '인정과 책임이라는 공통의 기대를 야기'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난 알라딘의 몇몇 분들과 비밀 댓글로 서로 다른 입장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좋지 않게 끝났고, 그분들과는 지금도 어색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분들과 정치적, 문화적, 공공적인 부분의 연대를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연대가 꼭 정치적이어야할 이유가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무척 편협했으며 나의 편협함을 보기보다는 상대방이 논리적이지 않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했다.
 낯선 자들의 연대, 반성적 연대를 통해 시끄럽고 고민되는 과정을 거치는건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거창했기에 내 삶과 맞닿을 수 있는 접점도 별로 없다고 생각해봤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틀린 생각이었다. 연대가 아니어도 나는 질문이 우리를 구성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싶으며 인정과 책임을 통해 공통의 기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론에선 적극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각론에선 참담할 정도로 무지했다. 
   
 내 욕심이겠지만 가능하다면 그분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나의 틀로 상대방을 보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보는 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나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데다 우물 안 개구리보다 좁은 시야를 가졌다. 그런 내가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제서야 완벽하게 일치하는게 아니라, 약간 비슷해서 더 유의미한 것들을 볼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는데 이전의 과오로 그 사람이 가진 다른 면모를 잃어버리는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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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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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케스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건 마술적인 상상력이나 모래시계로는 어림도 없는 끊임없는 연대기적 시간 배열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빨갛게 달아오를 것만 같은 관능과 열정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문장 사이에서 팔팔 튀어오르는 인물들. 백년동안의 고독이 좋았던건 그 모든 것이 각자 노는게 아니라 훌륭하게 어울려지는 점이었다.  

 어느 항구를 빗대어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그만큼 아름답다란 의미로 읽힌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굳이 나폴리까지 끌어들여야 할 정도로 퍽퍽한 감상은 별로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나는 후자쪽의 입장이었는데 감상이 단조롭다기보다는 서구주의자의 바득거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싶은 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굳이 고래를 보고선 마르케스의 작품을 떠올렸다고 한국의 뭐뭐라고 운운하기는 싫지만 의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바로 떠오른 생각은 바로 앞서 말한 마르케스의 작품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였다.  

 노파에서 금복, 춘희에 이르는 세 여인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책장 넘기는 약을 삼킨듯이 거침없이 책을 읽어나가게 만들었다. 약간의 비약과 우연은 별로 문제될게 없었다. 모처럼 소설 읽는 재미, 그러니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이들을 빨리 자게 하려고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고선 내일 들려준다고 약올리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작위적으로 설정된 것 같다거나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노파의 저주 운운으로 발생하고 마무리지어지 것 역시 책을 읽는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래도 읽을거야, 이래도?'란 작가의 어깃장마저 흥분됐다. 작가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위에서 아직도 '고래'를 읽지 않았냐고 쿡쿡 찔러댈 때, 건성으로 넘기고 말았다. 빈수레가 요란하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수레는 가득 차 있고, 먹을건 지천이었다. 책을 집어든 독자는 그저 부지런히 이야기를 '먹으면' 된다. 

 책 중간중간에 작가가 개입해서 이야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읽다가 무언극을 설명하는 변사(士)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변사는 관객을 제대로 알고 있었고, 관객을 들었다 놨다 웃겼다 한숨 짓게 만들줄 알았다. 게다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에는 이미지나 느낌이 제깍 떠오르지 않았다. 변사의 목소리도 처음부터 귀에 쏙 들어온건 아니었다. 금복이 여장부에서 사내로 변해가면서, 노파가 자신의 남자를 물 속으로 밀어넣으면서, 춘희가 점보를 읽고 다시 아이를 잃은 후부터 세 여인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관객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두루 추천할 정도로 재미 있었고, 나 역시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성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작가 인터뷰며 작품 해설, 책 뒷부분의 추천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개지고 말았다. 예상은 했다. 문학동네상을 받았고,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니 이것저것 맛있는 격려사며 축하를 하고 싶은걸 모르는건 아니다. 하지만 창대니, 근대사를 관통한다느니, 역사상 어쩌고, 전대미문까지 나오는걸 보면서 칭찬받는 사람도 참 무안하지 않았을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분명히 재미있고 의미있는 소설이지만 근대 소설 가운데에서도 이에 필적할만한 이야기들이 존재해왔고, 지금이야 '읽는 재미'보다는 분석하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탐탁치않게 만드는 소설 위주라 그렇지 분명히 '고래'만한 작품은 있어왔다. 인터뷰어가 어떤 부분은 근대사를 상징하는 내용이냐고 질문을 던지자 작가가 그렇게 보면 너무 딱딱하지 않냐고 반문을 했다. 내가 느끼는 지점도 딱 그 정도였다.

 백민석의 그로테스크하고 낯선 상황의 작품을 두고 체제 전복적이라며 치켜세워 독자들과 공감할 수 없게 만들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초점을 둬야할 신인들을 갖가지 콩고물을 떼먹는 것으로 재능을 소진시키는 행태. 메타 비평이 일정 정도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괜한 트집잡기'로 몰아세워 건전한 비평의 통로를 막는 태도. 서로 감싸주고, 핥아주고, 서로를 위해 판벌리기에 혈안인 한국 문학. 무게뿐 아니라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그들만의 리그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자장 밖에선 여전히 다른 이야기꾼들이 판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거나 판을 벌리고 있으며 매체에 보도되거나 줄서기에 능숙치 않아 그렇지 조금씩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고래'는 자장 안밖으로 진동하는 멋진 이야기이다. 그러한 점은 부러 치켜세우는 비평이 아니어도 독자들이 능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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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0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잘 읽히죠? 외근 다니면서 길에서도 걸으며 읽을 정도로 흠뻑 빠져 읽었던 책이에요.

그런데 뭔가 탁 걸리는게 있었어요.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시 말해, 이 모든 기이한 이야기들이 이미 세상에 존재해왔고, 어디선가 한번 들어봤을 법하고, 어디선가 만들어졌을 그 모든 이야기들이라고 생각이 든다는 거죠. 그런것들을 작가가 한데 뭉뜽그려 놨다는 느낌. 순수한 문학적 창작과 상상력이 아닌 것 같은, 그래서 결코 그 안으로 풍덩 빠질 수는 없는 그런식의 느낌을 저는 받았거든요.

Arch 2009-08-04 14:36   좋아요 0 | URL
으음. 그럴 수 있어요. 독자들을 흠뻑 빠져들게 하는데는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새롭다거나 독창적이기까지 한건 아닌 것 같아요. 아, 예민한 다락방님.

2009-08-04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5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수들
데이비드 로지 지음, 공진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에코가 100년동안 나온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고 평한 책. 권위에의 호소인가? 책을 읽어본다면 그런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일테니. 

 '교수들'은 문예이론가인 킹피셔를 중심으로 학술 대회라는 성배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의 논문을 베껴쓰는건 물론, 일부러 경쟁자의 학술 논문을 폄하하기, 학술 대회에서 외도하거나 난교 파티를 벌일 상대를 물색하기, 학술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 분야가 아닌 것까지 소화하는 교수, 컴퓨터랑 자신이 시기하는 교수를 험담하는 사람, 소설 속에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름 덕분에 교수가 된 퍼스 맥개리글이 안젤리카라를 찾아서 세계 학술대회를 쫓아다니고,  사랑을 하고 출세를 하려고 아등바등 댄다. 그들은 때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교수들이면서 내면에는 누군가 불씨만 당겨주면 화르르 타버릴 수 있을 정도로 욕망에 가득찬 '교수들'이기도 하다.  

 물론 이 얘기가 다라면 어쩌면 그다지 새로울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풍자소설에 퍼스와 안젤리카의 연애를 접목시켜 말미에 자신이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에 대해 살짝 힌트를 준다. 제대로 된 연애소설이라면 섹스처럼 기복이 있어야 한다는 코멘트도 빼놓지 않고. 다양한 문예이론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짤막한 인상 정도는 덤이다. 한국 사람과 한국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유쾌한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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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8-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피셔는 영화 <피셔킹>과 관련있어 보입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영화도 성배를 쫒는 미치광이의 이야기가 서브 플롯으로 있거든요. 영화 참 좋았는데...

서재 소개글이 재밌네요. 버나드 쇼의 글귀에 대한 변주 아닌가요?
전 요즘 버나드 쇼가 말은 참 잘했다 싶어요.^^

Arch 2009-08-03 15:10   좋아요 0 | URL
작가 말로는 여러가지 것에서 모티브를 찾았다고 하더라구요. 영화는 처음 들어봤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도 정말 끝내줬거든요.
맞아요, 맞아^^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죠? 아마도.

스텔라님 반가워요.

머큐리 2009-08-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아니 우리나라 교수 얘기를 왜 외국인이 소설로 썼을까???

Arch 2009-08-03 15:1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교수만 국한된 문제는 아닌가봐요. 물론 작가는 착한 사람이라 결말이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다락방 2009-08-0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거 소설이에요?

Arch 2009-08-03 23:15   좋아요 0 | URL
네! 굳이 장르를 가리자면 풍자소설.

2009-08-03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3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8-0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길고 긴 녀석을 다 읽다니..
헛웃음이 좀 나긴했지만, 난 재미없더라 ㅎㅎ

Arch 2009-08-04 14:34   좋아요 0 | URL
어허, 난 재미있던데^^ 나도 길고 긴 녀석은 잘 못읽었지만 이건 괜찮던데요. 리뷰를 잘 쓴다면 말이죠, 왜 재미있는지 알려줄텐데. 어흑

무해한모리군 2009-08-05 07:54   좋아요 0 | URL
내가 한번 리뷰를 써볼까 ~
왠지 그닥이었던 책은 짧게 코멘트만 하고 넘어가게 되는 거 같아요.

Arch 2009-08-05 10:48   좋아요 0 | URL
몇편 안 되는 리뷰지만 전 별로인 책은 막 욕하고 그랬거든요. 꿈에 나올까 무서^^

2011-08-19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