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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이해 편 ㅣ EBS 지식채널 건강 1
지식채널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바늘 같은게 속을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파서 집 근처 병원에 간적이 있다. 일전에 갔던 내과였다. 무신경한 간호사에 무뚝뚝한 의사를 겪은 뒤라 웬만하면 다시는 안 가고 싶었는데 다른 병원도 없고, 이번에 또 그전처럼 막 대하면 따질거란 다짐까지 하고선 찾아간거였다. 증세에 대해서 말을 하자, 간단하게 위염이라고 진단을 했다. 그리고선 누우라고 하고선 배를 몇군데 누르더니 처방전을 써주겠다고 하는거였다. 평소때라면 군말않고 처방전을 받아들고 의사가 시키는대로 몸 관리하면서 약사가 조제한대로 약 먹으면서 상태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는 묻고 말았다.
- 위염이면 속이 쓰리거나 신트림이 나와야하는건 아닌가요? 그런데 전 뭔가 쑤시는 것처럼 아픈데요.
- 그럼 장염인가?(잉?)
이때부터 이 의사뿐 아니라 이전부터 갖고 있던 뿌리깊은 불신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처방을 하신거예요? (지금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위장이 아프면 증세가 그다지 다르지 않는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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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이 문제인게 확실한가요?
- 그럼, X-Ray 찍어볼래요?
- 네? 그걸 환자가 결정하나요?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찍어서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는게 아닌가요?
- ......
나는 처음으로 침묵하는 의사를 봤고, 진료실의 시계 초침이 그토록 큰소리를 낼 수 있는지 새삼스레 느꼈다. 옆에서 지켜보는 간호사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의사는 나보고 다른 병원 가보라며 진료비는 안 받겠다고 했고, 나도 당신같은 사람한테 진료비 낼 생각 없다고 소리 지르려다가 눈물이 삐져나와 그냥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의 진단이 그렇게 틀린건 아닐 수도 있다. 대개의 위장병은 제때 밥 먹고, 조금 신경쓰면 금세 낫는거니까. 인간의 몸은 자연적으로 치유되니까. 하지만 환자가 아프다고 하든 죽겠다고 하든 정석대로 하는 짓거리에 짜증이 났고, 그동안 겪어온 일들에 분노가 치밀었다.
항생제를 굳이 써야하는게 아니라면 넣지 말라고 했을 때 정색하면서 뭘 안다고 그러냐는 의사에서부터 예전에 자기가 치료한 이를 다시 치료하려고 애쓰는 의사(X-ray까지 다 봐놓고), 보험 안 되는 것만 쏙쏙 골라서 검사 받아보라고 하는 의사, 동생이 아이를 낳을 때 제대혈에 대해서 묻자 '그런건 어디서 보고 온거냐'며 대놓고 무시한 의사까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은 경험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감기를 취재하며 약물 오.남용과 지나치게 병원 의존적인 내용을 보며 유독 나만 특이한 상황을 겪은게 아니란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잠깐, 그렇다고 의료혁명이라도 원하는건가? 예전 같았으면 이런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해가며 다음엔 이렇게 따져야겠다는 메뉴얼까지 마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의학이 가져다준 일정 부분의 성과를 인정하고, 의사들 나름의 고충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의 편견만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은데다 생각이 한쪽으로 굳어져 유연하지 못하면 나 역시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들처럼 행동할게 분명하니까.
이 책은 최신의 건강 상식을 담은 것도 아니고, 현대 의학에 대해 심층 분석을 하거나 다른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두지도 않는다. 자기 계발서와 비슷한 자기 건강서 정도가 될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평이한 건강 이야기. 중요한 점은 자기 계발서와 마찬가지로 몇주 정도는 유효한 기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난 지금 사진 도배질에 이어, 페이퍼형 리뷰를 써대고 앉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