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시간이 지났을 터이니 마음놓고 이 글을 적어본다.
요즘처럼 간장, 된장을 마트에서 사먹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던 오래 전 이야기 한토막.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그만한 크기의 장독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데,
검은 색 , 땅 색깔의 장독은 두 팔로도 다 감지 못해 얼굴을 들이대고 손을 뻗던 그 항아리.
초등학생이 멱을 감아도 충분할 정도로 커다란 장독이 장의 종류별로 자리잡고 있어
장독대의 크기가 그 집 살림살이를 가늠하던 시절이 있었다.
명문가라는게 있다면 집안 대대로 장맛을 잘 이어온 가정이 아닐까 싶은데,
장 담그는 일에 손대중, 눈대중이란게 있고 거의 맛의 일관성이 있게 마련이어서
작년이나 올해나 한 집안의 장맛은 쉬 변하지 않게 되어있고
갑작스레 변할 경우 집안의 우환을 걱정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일년내내 유난히 맛있는 장맛에 집안의 안주인은
당신이 햇볓단속, 비바람단속을 잘 한 것으로 알고 내심 자신도 이제는 완벽한 안주인이 되었다 싶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지냈다.
그러나 맛의 실상이 드러난 것은 장독이 바닥을 보이던 날.
평상시처럼 장을 푸던 안주인은 기겁을 하고 놀라 나자빠지고 말았으니
쥐 한마리가 밑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던 것이었다.
일년내내 맛을 돋구워 주던 실상치고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었다.
우리가 추억의 이름으로 맛을 보며 사는 것도 내내 이런 일이 아닐까 싶다.
맛은 좋았지만 다시 먹으라 하면 극구 피했을 그 맛처럼.
너무나 열악해서 몇장의 음반으로 판돌이를 해야했던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관심있게 듣는 급우들에게 그것밖에 없냐고 비아냥을 들으며 반복해서 틀어주었던 음악이
바로 JOAN SUTHERLAND의 음반이었다.
동창생들은 이 소프라노 가수가 그 유명한 오페라가수인 것도 모르고 들었을게다.
그때는 유행가처럼 들었으니까 흐르는 세월속에서 다시 이 노래들과 만났을 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랜데 하지 않을까 기대고 싶은
여물지 않은 생각을 하며 노래들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