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금주 아내 생일과 둘째 생일이 있고 차주엔 휴가다. 이번엔 워터파크 말고 해양박물관 들러 해수욕장엘 가보자는 약속, 그리고 여의도 광장에서 실컷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2009년 7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리 좀 해 두자.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인두껍 괴물 여러 마리가 뒤엉켜 물고 뜯는 세상의 단층도를 블랙코믹 엽기극으로 그린 황인호 감독의 2014년작 [몬스터], 두 초인의 대결 양상에 인간 존재의 모순을 겹쳐 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2014년작 [몬스터즈], 과연 개인이 괴물인가 세상이 괴물인가를 처연하고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던 2004년작 [몬스터]와 한중일 다국적 옴니버스 호러 [쓰리, 몬스터]까지 21세기 들어 도대체 '몬스터'를 제목 삼아 인간 이면과 시스템 치부를 드러낸다는 전략의 극영화가 몇 편이나 쏟아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허나 더 이상 찾아 볼 필요도 없이 단언컨대, 금번에 보게 된 2013년 일본 영화 [몬스터]가 그중 최악이다. 흉한 외모에 대한 편견과 멸시로 점철된 각박한 세상을 헤쳐 온 한 여성의 기구한 삶, 철부지 어릴 적 극진했으나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자신을 못 알아보고 야멸차게 거부했던 첫사랑을 향한 애증 - 복수심과 순정 사이의 갈등 - 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인잔혹사'의 서사를 따르지만 그녀의 생애와 주변 시선을 통해서 그 어떤 의미있는 담론도 끌어내지 못한 채 안팎으로 빈약하고 진부한 치정 멜로에 그치고 말았다. 편견과 냉대가 빚은 괴물이라는 콘셉트만 앞세울 뿐, 가뜩이나 조악한 만듦새에다 남성주의에 편중된 시각까지 내게 있어선 재론의 여지없이 졸작이다. (IPTV. 별 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바나 초원,
죽은 어미 옆에
송아지가 누워 있다


송아지는 죽어 석양을 보고 있다
어미 혓바닥은 엉덩이 쪽을 가리키고 있다
암소의 자궁이 쩍 벌어져 있다
몸의 동쪽은 언제나 생식기다


초원은 너무 넓어요
엄마 발과 제 발을 잇대어 방을 만드세요
여기 작은 방에 들어와 젖을 짜세요
제 부드러운 가죽도 드릴게요


눈이 커다란 사내가
죽은 암소의 젖을 짠다
몸의 북쪽은 등짝이다
아기가 업힌 곳이다
마른 젖 보채던 아이가 울음을 멈춘다


사람의 몸이 성전인 까닭은
기도의 시간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눈물 젖은 두 손을 맞잡기 때문이다
몸의 남쪽은 손바닥이다

울음소리가 없다
송아지도 어미 소도 눈물 짜지 않는다
붉은 눈망울만이 몸의 서쪽이다

 


-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몸의 서쪽' -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6년 12월 04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남을 잔, 더러울 예, 잔예(殘穢). 더러움이 남다, 부정을 타거나 원념(怨念)이 서린 장소에서 연쇄적으로 재앙이 벌어지는 현상. 원작자 오노 후유미가 지어낸 신조어라 한다. 화자 겸 주인공 '나'(다케우치 유코)는 독자들이 제보한 체험이나 지역 전설을 토대로 잡지에 괴담 칼럼을 연재중인 소설가. 어느 날  새로 이사간 아파트 다다미방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음에 의문을 품고 사연을 보내온 건축디자인 전공 대학생 쿠보(하시모토 아이)와 함께 미스터리를 파헤치다가 결국 그녀도 저주에 말려들게 된다는 줄거리다.

 

 

본작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이다.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 가옥에서 살던 코이도 영감의 저장강박증이 실은 환영과 환청의 공포에 질려 원혼이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빈 공간은 모두 쓰레기로 채워 넣으려는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정.

 

[잔예 - 살아서는 안되는 방]은 그 제목에서도 연상되는 바, [주온]을 쏙 빼닮은 영화다. 과거 참극에서 빚어진 원한이 '집터'를 진원지 삼아 몇 대를 거쳐 내려오며, 해당 조건에 걸려든 자는 선악 여부 관계없이 변괴를 맞는다. 차별점이 존재한다면 서로 별 연관없어 보이던 환담들이 그 배후의 근원을 역추적, 캐내면 캐낼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결되는 구성 방식에 있다. 다다미방에서 들려오던 빗자루로 뭔가 쓸어담는 듯한 기척은 아파트가 세워지기 훨씬 전 해당 집터에서 살던,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아기들 울음 환청에 목매달아 자살한 여인의 옷자락이 흔들리는 시체를 따라 바닥에 스치는 소리였으며, 그 아이들의 죽음은 사람을 해치고 집을 불태우라 속삭이는 원귀에 홀린 자의 소행이었다. 원귀의 정체는 100년 전 화재 진압을 이유로 입구를 틀어막은 탄광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광부들의 한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광부들의 원혼이 작품의 주된 흐름과 별개로 여겨졌던 프롤로그 '갓파' 미라 에피소드와 이어지면서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저주의 순환고리를 이룬다.

 

 

이 장면 역시 섬뜩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사건에 그닥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던 잡지사 직원에게까지 죽은 광부들의 망령이 찾아온다. 다만, 모든 재앙의 원흉이랄 수 있는 탄광 사건으로부터 그 어떤 맥락의 함의도 이끌어내지 않고 그저 중립적인 공포 소재로만 다룬 점이 아쉽다.

 

'저주의 내막을 들은 자도, 전한 자도 죽는다.' ... [잔예]의 결정적인 구멍이라 여겨진 부분은 원작 소설과 별도로 추가했다고 알려진 에필로그다. 넘치는 의욕을 주체 못하겠다는 듯 온갖 종류의 기담들을 쓸어담은 플롯 와중에 별별 인물들까지 다 난입, 산만하게 이어지는 몸통 전개야 전형적인 호러 양식에서 빗겨난 현장 취재 르포 형식에 가까워 나름 참신하게 볼 수 있었다. 허나 저주의 매듭이 끊기면서 모두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이던 영화가 느닷없이 돌변, 단초 제시도 없이 2년 뒤에 관련 인물들이 하나둘씩 변을 당하면서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억지를 부리는 순간 마치 [주온]에 [링]과 [데스티네이션]까지 우격다짐으로 조잡하게 뒤섞은 카피본처럼 돼버리는 것이다. 인상적인 장면들을 꽤 많이 갖췄음에도 불구, 다 보고나면 별반 잔상이 남지 않는 작품이다. (2016년, IPTV. ★★★)

 

 

 

 

 

 

 

 

 

P.S. 비록 직접 읽진 않았으나 목차를 살펴볼 때 원작소설 상으론 역사·정치·사회적 콘텍스트 위에 장르성이 구현됐을 가능성이 크다 (단서 / 금세기 / 지난 세기 / 고도성장기 / 전쟁 후 I·II / 전쟁 전 / 메이지·다이쇼기 / 잔재). 짐작컨대, 버블경제 부흥과 붕괴 및 그 사회적 여파의 인자들은 이미 먼 과거부터 존재했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며 증식했으리라는. 흡사 작품 속에서 돌고 도는 저주의 순환 구도처럼. 영화에선 그런 은유 내지 맥락이 전혀 짚이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이유 없는 반항, 1955년, 니콜라스 레이

 2. 위험한 질주, 1953년, 라슬로 베네덱

 3. 폭력 교실, 1955년, 리처드 브룩스

 4. 용자들은 외롭다, 1962년, 데이빗 밀러

 5. 군중 속의 얼굴, 1957년, 엘리아 카잔

 6. , 1954년, 페데리코 펠리니

 7. 달콤한 인생,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

 8. 인생유전: 천국의 아이들, 1945년, 마르셀 카르네

 9. 피아니스트를 쏴라, 1960년, 프랑소와 트뤼포

10.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1958년, 리처드 브룩스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 찰리 채플린의 [어깨 총] 역시 중요하게 언급했다고.

 

출처: http://www.daysofthecrazy-wild.com/video-ten-films-that-had-a-big-impact-on-bob-dyla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