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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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책을 한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그녀의 신간  앞에서 쉬이 발걸음을 떼지못하고 책으로 손을 뻗게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애달프다. 덤덤하게 삶을 살아가는 듯 하지만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는 일이 많으며 스치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 어느 곳 어느 시간 앞에서 문득 주저앉고야 마는...... 그런 등장인물에서 나를 보게 된다. 사람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것, 사람에게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날카롭고 아프다는 것을 그녀는 소설을 통해 알려주지만 그녀의 소설을 또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향해,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슬플 땐 슬퍼해도 된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가슴 속에서 차가운 얼음이 얼 것 같은 시림을 느끼게 하고, 따뜻한 햇살 한 줌 선물 받은 기분이 들게도 하고, 아무 일 없는 일상 속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를 알면 알수록 그녀의 삶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그녀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좋아하는 작가라는 말로는 나에게 부족한 그녀,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에세이 앞에서 내가 순간 멈칫 한 건은 당연한 일!!

 

 

# 어른이라고 완벽할리 없다

 

 복잡한 전철을 탔을 때면 간혹 생각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어른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 어린애였다. 거짓말을 하고 투정을 부리고 울고 떼를 쓰고 목욕을 싫어하고 잠자다 오줌을 싸고 이를 닦지 않는 어린애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하면서도 끔찍하다. 말이 통하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가 성장했을 뿐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다.     -p. 190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인물들은 불안해 보인다. 어린시절 어른들은 삶에 있어 고민도 흔들림도 없이 삶을 살거라 생각했고 믿었지만 어른이기에 더 흔들리며 걷고 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서야 알았다. 위의 구절을 읽었을 때 그녀의 생각에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 그토록 불안전한 어린애였던 우리들이 어른이 된 것이니 흔들려도, 넘어져도, 다쳐도, 울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 에쿠니 가오리는 양서류?!

 

 어느 2월의 아침, 나는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 그 화창하고 아름다운 아침에 엄마가 현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아침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러 욕실에 가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정말 양서류를 키우는 것 같았어."   -p. 46 

 

 욕조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생각의 결과인 ‘결심’은 모두 욕조에서 이루어졌다. 소설의 제목과 결말, 나 자신의 행동까지? 여행을 떠날까, 결혼을 해야겠어, 이혼할까 봐, 아니 역시 이혼은 하지 말자?모두 욕조에서 결정했다.  -p.47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박장대소를 한 곳이 위의 내용이다. 양서류를 키우는 것 같았다는 엄마의 말에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에쿠니 가오리가 욕조를 참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소설 속 그녀들이 왜 그리 목욕 장면에서 마음을 놓으며 욕조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아오이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며 했던 반짝이는 대사들이 떠 올라 다시금 책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 에쿠니 가오리는 귀여워 귀여워~~

 

그런데 바로 얼마 전, 중대한 발견을 했다. 핑크색을 보면 왠지 무턱대고 기뻐진다는 것이다.

(중략)

핑크색은 기습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복병 같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색 앞에서, 나는 늘 무기력하게 움쩍달싹 못한다.   - p.108-110

 

 

노란색은 어른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선명한 밝음이 좋다. 맑은 노란색.

쉰 살이 되었을 때, 맑은 노란색 블라우스를 멋지게 차려입는 것이 내 소박한 목표다.

                                                 - p.55

 

 핑크와 노랑을 좋아하는 그녀, 케이크가 상기시키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그녀, 폼클렌저로 씻는 것과 설거지용 스펀지(왠지 수세미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될 것 같은;;;;)를 좋아하는 그녀, 리본을 좋아하며 추리소설을 참으로 좋아하는  그녀, 하얗고 사락사락한 설탕을 좋아하는 그녀.

 

 에쿠니 가오리를 취하게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참으로 아이같다는 생각을 한다. 심플하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참으로 좋아하는 에쿠니 가오리는 이 책을 통해 내게 참으로 귀여운 소녀로 다가온다. 그녀는 분명 핑크와 노랑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여인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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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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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답고 고귀하게 지켜주고 싶소. 그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일도 감내할 작정이오."           -p. 28 고종황제

 

 분명히 이 땅에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사람이라는 일반어로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죄스런 마음이 드는 그런 어여쁘고 지체 높은 한 여인이 역사 속에 분명 존재했음에도 왜 모르고 살았는가. 어찌 모르고도 잘 살았는가- 누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모르고도 아무 탈 없이 잘 살았음에 무엇이 그리 문제이냐고, 그저 몰랐던 것처럼 살면 되지 않겠냐고-

 

 그런 이들이 많아져간다. 모르고 살다가 알게 된 순간 모르고 지낸 시간들이 죄스러워지는, 살아가는 동안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 당신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차 한 순간 혹은 그 보다 오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뜨겁게 느끼도록 해주는 가슴 시리도록 눈이 부신 분들의 이름 밑에 덕혜옹주가 이름을 새겨놓는다. 나비떨잠이 파르르르 떨리는 순간처럼 내 가슴에 파동이 인다. 어찌 모르고 이리도 잘 살았을까.

 

 

"저는 왜 이름이 없나요? 아바마마께서도 저를 그냥 '아지' 라고만 부르시니......" 

                                                                                                  -p. 40 덕혜옹주

 

"......나는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다. 그것도 얼마 전에야. 그런데 이름을 얻은 대가로 일본에 가야 하는 것 같구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구나. 이름을 얻으면서 정식으로 황족이 됐는데 이름이 없던 때가 더 나았던 모양이다. 이름을 얻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

                                                                                                -p. 124 덕혜옹주

 

 

 덕혜옹주를 아시나요?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하면 아실런지요? 영특하고 귀여운 얼굴로 비운의 고종황제를 유일하게 미소짓게 만들 수 있었던, 이름이 없어 옹주라고만 불리다가 고종황제를 여의고 찬 바람부는 가슴으로 언제나 겨울인 것만 같은 사계절을 보내면서도 나이가 더해져 자라날 수 밖에 없었던, 그리 자라나  '덕혜' 라는 이름을 얻자마자 일본으로 보내져야 했던 덕혜옹주를, 일본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조선만을 그리고 그리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를 당신도 모르고 살지는 않았나요?

 

 책을 읽는동안 내내 바라고 또 바란다. 결말을 다 알면서도 내내 바란다. 부디 행복하기를, 옹주로 태어났던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다 알면서도 그런 헛된 바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그녀의 삶을 나는 이토록 쉽게 읽어내려간다. 400쪽 안팍 되는 책을, 책이 가진 무게에 비해 너무도 쉬이 읽어내려가는 건 아닐까란 마음에 뜨거워진 가슴과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찬 바람을 마주한다. 아무리 따사로운 햇살 앞에서도, 맑고 맑은 파란 하늘 아래서도 내내 추웠을 그녀를 생각하며. 뜨거워진 가슴은 식히고자 했음에도 식을줄 모르고 책에 손을 뻗치게 한다. 

 

 덕혜옹주, 이 책 속에는 덕혜옹주만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아니라 1910년대의 조선, 대한제국부터 해방 그 속에서 대한제국 내 나라를 찾고자 했던 이들과 덕헤옹주를 사랑한 그림자 같은 한 남자 그리고 덕혜옹주가 조선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복순이를 통해 절실히 보여준다. 어찌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세상에 순응하고 삶에 적응하며 살면 한 번쯤은 털털 웃으며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응하며 살 수 없는 것은 "나라" 때문이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조국 때문이었다. 조국을 지키는 것은 무엇이며 조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주는지 책을 손에 놓고 그 생각만을 한다. 그 뜨거움을 가슴에 담는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책에 대해 말을하면 할수록 답답함이 스며든다.

알아주세요, 덕혜옹주를!! 그녀의 삶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세요!! 이 말만하면 되는 것일까? 그럼 나는 무엇인가, 책을 다 읽은 나는? 저자는 덕혜옹주의 자료를 일본인이 쓴 책에서, 우리말로 번역조차 되지 않은 책을 통해 얻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쓴 덕혜옹주는 작가가 이 책을 쓰는 도중에 나온 듯하다. 검색을 통해 그 책을 찾고서 안도한다. 그 책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라고 덕혜옹주를 소개한다. 이 책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덕혜옹주를 말한다. 그 두 단어의 차이에 난 안도한다.

 

 저자의 노력을 통해 덕혜옹주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덕혜옹주,그녀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다가온다. 덕혜옹주, 그녀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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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시집 80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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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는 사이 가슴으로 저녁 노을이 스며들고, 그보다 앞서 겨울녁의 찬 바람이 스며든다. 시린 가슴으로 시집을 내려 놓고도 두고 오지 못하고 아니 가겠다는 시집 한 권을 애써 내 가방이 너의 작은 몸 하나 녹일 수 있다는 위로를 하며 버둥거리는 시집을 가방에 넣고 오는 길의 바람은 가슴에 스며든 바람보다 더 차가워진다.
 

 이병률의 첫 시집이라는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는 읽는 이를 아프게 한다. 시집에서 옮겨 적고 싶은 시를 적다가도 가슴이 아리고, 블로그에 옮기기 위해 인테넷에서 시인의 시를 찾다 시인의 시가 너무 많아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의 시에 가슴에 바람을 불게 하고 아파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따뜻한 손길을 원하는 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은 더욱 아파온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법이라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초저녁 갈 곳이 없는 발걸음은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비틀거리고 힘이 없어 결국 넘어져 눈물 대신 피를 흘리는 것이 사람이다. 이병률의 시에는 외로움을 넘어선 고독이 가득하다. 고독하다고 하여 그리운 이가 없는 것이 아니듯, 북적이는 사람 냄새가 그립지 않은 것이 아니듯 윗집 혹은 옆집에 사는 이들의 한밤중 물소리 하나에도 그는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의 고독이 더 내것 같고 더 애달프다.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홈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  -'장도열차' 전문

 

 열차의 짧은 정착시간 15분. 그 시간은 기다리는 이에게는 영원의 한 켠을 나눠 가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오지 않는다고 하여 기다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가 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그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 어쩌면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 사람을 볼 수 없어도 기차는 출발하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마치 알 수 없는 인생처럼.  내가 혹은 당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이가 있던 곳을 얼마나 많이 스쳤을까.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 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내 눈알은 저만한 솜씨도 못 되어서 늘 찔끔하고 마는데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한 몇 달쯤 흠뻑 앉아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는 사내의 집채만한 그림자가
찬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고 있다> - '스미다' 中


 

  어느 날 아침, 알 길 없는 설움이 복받쳐 울진으로 떠난 이가 그 곳에서 본 사내는 더 애닯다. 이 시집에서 내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시였다. 가슴에 옹이 진 곳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서럽고 아픈 세상 살아가다 보면 마음 둘 곳 없는 흔들림에 멀미를 하듯 우리는 떠돌다 주저앉아 울게 되고 그 눈물로 작은 호수를 만들어 놓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울고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울 수 있다는 것, 울고 있다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 온 세상이 설움으로 가득찬 날 어깨 떨며 우는 누군가가 있어 내 울음은 조금 가벼워 지거나 짧아졌음을 받아들여야 함은 아픈 각인이 되기도 혹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만 년쯤 걸어왔다며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이 있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른다면 어쩔테냐 후닥닥 짐 싸들고 큰 산 밑으로 가 아웅다웅 살 테냐 소리소문 없이 만난 빈 손의 인연으로 실개천 가에 뿌연 쌀뜨물 흘리며 남 몰라라 살 테냐 그렇게 살다 그 사람이 걸어왔다는 오만 년이 오만 년 세월을 지켜온 지구의 나무와 무덤과  이파리와 별과 짐승의 꼬리로도 다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라면 그때 문득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갈 수 있겠느냐>  -'인기척' 中

 

 오만 년, 그 시간의 겹은 얼마나 될까? 그 시간을 걸어온 이를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 돌린 순간이 까막득히 잊혀질 무렵 그가 불현듯 내 사람임을 알게 된다면 어쩔것이냐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혹시 그런 사람 가진 적이 있었던가 라는 질문과 함께. 홀연히 날아온 민들레 홀씨처럼 인기척을 인기척인지 모르고 스쳐 보낸 이가 어디 한 명 뿐일까. 그럼 나는 몇 만년의 시간을 홀로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일까? 대체 몇 번의 생을 살면서 우리는 어떠한 인연을 바람처럼 스쳐 보낸 것일까? 그러하기에 '자전거' 라는 시의 한 구절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춥겠다.' ('자전거' 中) -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추울지도 모르겠다.

 

 이병률, 그의 시집이 내게는 두 번째이다. <바람의 사생활>이란 시집이 내게는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하고 차마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범접할 수 없는 성이었다면 이 책은 바닷가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오두막집도 되었다가 대학시절 살았던 다닥다닥 붙은 원룸이 되기도 한다. 그 속에는 언제든 내가 들어가 벽을 만져보고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워볼 수도 있다. 그만큼 내게는 그의 첫 시집이 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을만큼 마음으로 읽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시인의 마음에 있는 그 무수한 방, 몇 개 가보지도 못하였지만.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살면서 시인에게만 들었던 말
나도 따라 시인에게만 묻고 싶은 말
부모도 형제도 아닌 시인에게만 묻고
한사코 답 듣고픈 말>  -'시인들' 中 -
 
 이병률, 그는 시인이다. 그의 시 하나에 시인들의 애달픔과 경제적인 사정마저 느껴질 듯하다. 그가 듣고픈 말 해줄 수 없는 나인지라 그저 그의 시를 한 번 손으로 쓰다듬으며 입으로 혼자 말해본다.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왜, 나는 시인이 아니란 말인가...라며.
 
 시집을 읽는다는 표현은 얼마나 간사한가. 시를 모르면서 시를 이야기 하는 나는 얼마나 볼상사나운가. 그럼에도 시집 앞에서 기웃거리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운가. 시집의 무게는 보기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고 척하며 말하고 마는 내게 입이 무거워야겠다고, 시를 읽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그저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을 밤하늘의 별에게만 나즈막이 고해야겠다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은하수가 시인의 영혼의 집이라면 시집은 그 하나의 별이라고, 하나의 별이 아니라 은하수를 본 후에 말해야 한다고. 달이 밝은 밤이라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 밤은 밝아도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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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즈걸 1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 1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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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밤 약을 먹고 누웠더니 25일 오후가 되서야 일어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아니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할 듯한 핫초코를 아주아주 진하게 타 마셨지만 어쩐지 창문을 꽁꽁 닿아놓았는데도 무언가 가슴 시린 기분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괜시리 심통과 슬픔이 겹쳐 다시 이불을 꽁꽁 싸매고 누웠지만 잠이 올리없다. 이런 날 구제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따뜻한 바람과 진한 커피향이 가득한 커피가게?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 캐롤이 울려퍼지는 거리? 커피가게와 거리는 커플들의 향연일지도 모르니 패스!! 헉, 하지만 도서관은 오늘 공휴일 아닌가!!!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서점은 휴일이 아니라는 것!! 서점으로 고고씽~~~
 

 마치 나를 기다린 듯한 얼굴로 빼꼼히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책들은 얼마나 귀여운가? 도서관이 책을 읽겠다는 사람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곳이라면 서점은 좋은 책을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의 의지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서점에 감금당하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 지냈던 날들도 있었다는 생각이 스치며 서점을 구석구석 둘러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 책을 잘 알 것만 같은 점원들이 함께 인 곳, 서점!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지인이 선물 해 준 책을 바쁘다는 핑계로 펼쳐보지 않고서는 기어코 서점에서 들쳐보고 자리를 잡고 읽어내려 가기 시작한다. 요거, 요거, 재밌네!!를 연발하면서 한 편을 읽고서 (이 책은 연작소설 식으로 책 속에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사고 싶었던 책들의 사냥을 끝내고 우울한 기분을 30% 날려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으로 그대로 잠입한 후,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잠들겠지 했던 마음이었는데  숨은 쉬었는지 모를만큼 책을 덮고 나니 시간이 흘러버렸다. 마치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것처럼. 오랜만에 책을 제대로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그 기분에 취해 이렇게 리뷰를 쓰는 순간도 다리를 까딱까딱하며 서점 안을 상상한다.나도 뭔가 의뢰할 일이 있지 않을까란 두근거림을 안고서~ㅋㅋ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은 번화기에 위치한 세후도 서점이 배경이다. 우리의 홈즈걸 두분은  서점에서 일한지 6년차인 교코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된  다에이다. 서점에서 일하는 분들을 볼 때면 어떠한 책이든 척척 알고 있고 다 읽었을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데 그렇기에 고객들이 가장 먼저 찾고 가장 많이 물어보는 사람도 서점 직원이 된다.

 

 서점에서 오래 일한 교코 역시 고객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려 노력하는 인물(성실함이 꽤나 강한듯하다) 로 책임감 그리고 호기심 마저 강한 그녀는 고객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를 똑똑한 머리로 도와주는 다에의 캐릭터는 읽을수록 멍~때리는 얼굴이 떠오르지만 눈빛만큼을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한다.

 

 5개의 사건을 연작소설 형태로 구성한 책은 지루하지 않고 살짝쿵 스릴도 있으며 마치 내가 탐정이 된듯한 기분에 취하게 만들기도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와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잊지 않게 가슴 두근거리는 핑크빛 이야기까지 두루 담고 있어 시계를 볼 틈도 없이 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서점을 좋아하는 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홈즈걸이 된 자신을 꿈꾸지 않을까? 이 책으로 우울했던 크리스마스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탐정이 되고픈 마음에 불을 지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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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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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가 쌓일 때나 에너지 충전이 필요할 때 뭐 하세요?

- 도서관이나 서점 그림책 코너 앞에 철푸덕 앉아 몇 시간이고 그림책을 봐요.

 

그저 읽는게 좋다. 글자를 읽고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가 좋고 단순히 책과 함께 하는 순간이 편안함을 주고 날 웃게 하고 운전을 하다가 운동을 하다가 걷다가 문득 책 구절이 힘을 줄 때가 있다는 것을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늘 신기하다는 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말을 하면 주변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혹은 우와- 로 그치고 만다.

 

 그저 단순히 읽는 행위를 휙휙 넘어가는 즐거운 책을 좋아하는 것 뿐인데도 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면 이야기는 지루한 이야기로 바뀐다고 단정지어지고 만다. 이런 환경 속에서 도서관과 서점에 사람들이 북적일 때면 마냥 행복해진다.그들이 서점 귀퉁이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읽어가는 시간, 설령 그들이 나를 모르고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도 책으로 이어져 있음이 느껴질 때는 앞에 있는 책을 안아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책 카페를 통해 책읽기 초보인 내게 참으로 좋은 책을 알려주는 고맙고도 고마운 분들을 만나게 되고 친구를 사귀게 됨은 책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일이 직업으로 인해 밀려나게 되면서 책을 읽지 못하는 행위가 주는 답답함과 슬픔이 생각보다 커서 시간을 훔치기 위해 애를 쓰는 내게 매력적인 책 제목이 눈에 띈다. <한국의 책쟁이들> 제목만으로 책을 읽는 이라면 한 번쯤 눈길이 멈추고 들쳐보고 싶게 만든다.

 

  책쟁이가 되고 싶다고,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은 이가 어디있을까? 책으로 잘 통하는 친구와 도서관에 몇 달만 감금되면 좋겠다고 우스운 소리를 할 만큼 책이 좋으면서도(책이 좋다는 것과 많이 읽는 것은 다르다, 난 책이 좋은쪽;;;;) 직업을 핑계되고 삶의 무게를 핑계 되고 마는데 책쟁이들은 대체 어떻게 책쟁이로 불릴만큼 책을 모으고 읽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앞선다. 더 많이 더 깊이 책을 읽고 싶다. 죽기 전에 난 얼마나 많은 책을 만날 수 있을지 보다 내가 만나지 못할 책들이 날 슬프게 만드는 것이 사실. 명작이라고 불리는,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의 아름다움을 20대 후반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됨에서 오는 애석함은 얼마나 큰지 책 속에 나오는 한 분, 한 분을 만날 때마다 책에 둘러싸인 그 삶을 부러워라 가슴 떨리게 상상하고 되새기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은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내게 굉장히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책, 책만큼 다양한 세상을 만난 적이 없다. 책 속에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감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내게는 한 권의 책이 된다. 그 세상 속에서 내가 내딛는 발걸음이 한 글자가 되고 내 행동이 한 문장이 된다. 바라게 된다. 나 역시 책에 둘러싸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기를. 나역시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책을 향한 마음을 선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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