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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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책을 한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그녀의 신간  앞에서 쉬이 발걸음을 떼지못하고 책으로 손을 뻗게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애달프다. 덤덤하게 삶을 살아가는 듯 하지만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는 일이 많으며 스치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 어느 곳 어느 시간 앞에서 문득 주저앉고야 마는...... 그런 등장인물에서 나를 보게 된다. 사람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것, 사람에게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날카롭고 아프다는 것을 그녀는 소설을 통해 알려주지만 그녀의 소설을 또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향해,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슬플 땐 슬퍼해도 된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가슴 속에서 차가운 얼음이 얼 것 같은 시림을 느끼게 하고, 따뜻한 햇살 한 줌 선물 받은 기분이 들게도 하고, 아무 일 없는 일상 속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를 알면 알수록 그녀의 삶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그녀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좋아하는 작가라는 말로는 나에게 부족한 그녀,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에세이 앞에서 내가 순간 멈칫 한 건은 당연한 일!!

 

 

# 어른이라고 완벽할리 없다

 

 복잡한 전철을 탔을 때면 간혹 생각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어른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 어린애였다. 거짓말을 하고 투정을 부리고 울고 떼를 쓰고 목욕을 싫어하고 잠자다 오줌을 싸고 이를 닦지 않는 어린애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하면서도 끔찍하다. 말이 통하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가 성장했을 뿐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다.     -p. 190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인물들은 불안해 보인다. 어린시절 어른들은 삶에 있어 고민도 흔들림도 없이 삶을 살거라 생각했고 믿었지만 어른이기에 더 흔들리며 걷고 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서야 알았다. 위의 구절을 읽었을 때 그녀의 생각에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 그토록 불안전한 어린애였던 우리들이 어른이 된 것이니 흔들려도, 넘어져도, 다쳐도, 울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 에쿠니 가오리는 양서류?!

 

 어느 2월의 아침, 나는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 그 화창하고 아름다운 아침에 엄마가 현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아침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러 욕실에 가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정말 양서류를 키우는 것 같았어."   -p. 46 

 

 욕조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생각의 결과인 ‘결심’은 모두 욕조에서 이루어졌다. 소설의 제목과 결말, 나 자신의 행동까지? 여행을 떠날까, 결혼을 해야겠어, 이혼할까 봐, 아니 역시 이혼은 하지 말자?모두 욕조에서 결정했다.  -p.47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박장대소를 한 곳이 위의 내용이다. 양서류를 키우는 것 같았다는 엄마의 말에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에쿠니 가오리가 욕조를 참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소설 속 그녀들이 왜 그리 목욕 장면에서 마음을 놓으며 욕조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아오이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며 했던 반짝이는 대사들이 떠 올라 다시금 책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 에쿠니 가오리는 귀여워 귀여워~~

 

그런데 바로 얼마 전, 중대한 발견을 했다. 핑크색을 보면 왠지 무턱대고 기뻐진다는 것이다.

(중략)

핑크색은 기습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복병 같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색 앞에서, 나는 늘 무기력하게 움쩍달싹 못한다.   - p.108-110

 

 

노란색은 어른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선명한 밝음이 좋다. 맑은 노란색.

쉰 살이 되었을 때, 맑은 노란색 블라우스를 멋지게 차려입는 것이 내 소박한 목표다.

                                                 - p.55

 

 핑크와 노랑을 좋아하는 그녀, 케이크가 상기시키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그녀, 폼클렌저로 씻는 것과 설거지용 스펀지(왠지 수세미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될 것 같은;;;;)를 좋아하는 그녀, 리본을 좋아하며 추리소설을 참으로 좋아하는  그녀, 하얗고 사락사락한 설탕을 좋아하는 그녀.

 

 에쿠니 가오리를 취하게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참으로 아이같다는 생각을 한다. 심플하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참으로 좋아하는 에쿠니 가오리는 이 책을 통해 내게 참으로 귀여운 소녀로 다가온다. 그녀는 분명 핑크와 노랑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여인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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