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름답고 고귀하게 지켜주고 싶소. 그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일도 감내할 작정이오."           -p. 28 고종황제

 

 분명히 이 땅에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사람이라는 일반어로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죄스런 마음이 드는 그런 어여쁘고 지체 높은 한 여인이 역사 속에 분명 존재했음에도 왜 모르고 살았는가. 어찌 모르고도 잘 살았는가- 누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모르고도 아무 탈 없이 잘 살았음에 무엇이 그리 문제이냐고, 그저 몰랐던 것처럼 살면 되지 않겠냐고-

 

 그런 이들이 많아져간다. 모르고 살다가 알게 된 순간 모르고 지낸 시간들이 죄스러워지는, 살아가는 동안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 당신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차 한 순간 혹은 그 보다 오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뜨겁게 느끼도록 해주는 가슴 시리도록 눈이 부신 분들의 이름 밑에 덕혜옹주가 이름을 새겨놓는다. 나비떨잠이 파르르르 떨리는 순간처럼 내 가슴에 파동이 인다. 어찌 모르고 이리도 잘 살았을까.

 

 

"저는 왜 이름이 없나요? 아바마마께서도 저를 그냥 '아지' 라고만 부르시니......" 

                                                                                                  -p. 40 덕혜옹주

 

"......나는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다. 그것도 얼마 전에야. 그런데 이름을 얻은 대가로 일본에 가야 하는 것 같구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구나. 이름을 얻으면서 정식으로 황족이 됐는데 이름이 없던 때가 더 나았던 모양이다. 이름을 얻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

                                                                                                -p. 124 덕혜옹주

 

 

 덕혜옹주를 아시나요?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하면 아실런지요? 영특하고 귀여운 얼굴로 비운의 고종황제를 유일하게 미소짓게 만들 수 있었던, 이름이 없어 옹주라고만 불리다가 고종황제를 여의고 찬 바람부는 가슴으로 언제나 겨울인 것만 같은 사계절을 보내면서도 나이가 더해져 자라날 수 밖에 없었던, 그리 자라나  '덕혜' 라는 이름을 얻자마자 일본으로 보내져야 했던 덕혜옹주를, 일본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조선만을 그리고 그리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를 당신도 모르고 살지는 않았나요?

 

 책을 읽는동안 내내 바라고 또 바란다. 결말을 다 알면서도 내내 바란다. 부디 행복하기를, 옹주로 태어났던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다 알면서도 그런 헛된 바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그녀의 삶을 나는 이토록 쉽게 읽어내려간다. 400쪽 안팍 되는 책을, 책이 가진 무게에 비해 너무도 쉬이 읽어내려가는 건 아닐까란 마음에 뜨거워진 가슴과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찬 바람을 마주한다. 아무리 따사로운 햇살 앞에서도, 맑고 맑은 파란 하늘 아래서도 내내 추웠을 그녀를 생각하며. 뜨거워진 가슴은 식히고자 했음에도 식을줄 모르고 책에 손을 뻗치게 한다. 

 

 덕혜옹주, 이 책 속에는 덕혜옹주만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아니라 1910년대의 조선, 대한제국부터 해방 그 속에서 대한제국 내 나라를 찾고자 했던 이들과 덕헤옹주를 사랑한 그림자 같은 한 남자 그리고 덕혜옹주가 조선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복순이를 통해 절실히 보여준다. 어찌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세상에 순응하고 삶에 적응하며 살면 한 번쯤은 털털 웃으며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응하며 살 수 없는 것은 "나라" 때문이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조국 때문이었다. 조국을 지키는 것은 무엇이며 조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주는지 책을 손에 놓고 그 생각만을 한다. 그 뜨거움을 가슴에 담는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책에 대해 말을하면 할수록 답답함이 스며든다.

알아주세요, 덕혜옹주를!! 그녀의 삶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세요!! 이 말만하면 되는 것일까? 그럼 나는 무엇인가, 책을 다 읽은 나는? 저자는 덕혜옹주의 자료를 일본인이 쓴 책에서, 우리말로 번역조차 되지 않은 책을 통해 얻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쓴 덕혜옹주는 작가가 이 책을 쓰는 도중에 나온 듯하다. 검색을 통해 그 책을 찾고서 안도한다. 그 책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라고 덕혜옹주를 소개한다. 이 책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덕혜옹주를 말한다. 그 두 단어의 차이에 난 안도한다.

 

 저자의 노력을 통해 덕혜옹주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덕혜옹주,그녀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다가온다. 덕혜옹주, 그녀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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