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교과서의 단 한 줄로 지나치지만, 이 한 줄에 기록될 지식을 발견하기까지 몇 십 년 혹은 일생을 바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내 말을 듣는 학생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문명과 식량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식량을 얻고자하는 인류의 지난한 노력의 역사를 접하면서 교과서의 문장들이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암모니아의 합성을 가르치면서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교과서에서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사회 문제였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중학교 3학년 과학, 천재교육, p90) 몇 년을 가르쳐왔어도 무심코 지나치던 부분이었다. 여기에서 주안점은 질소와 수소가 반응하여 암모니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화학 반응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기에. 하지만 암모니아를 이용한 인공 비료의 합성으로 식량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알게 된 이상 교과서의 건조한 한 줄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이었다. 학생들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마도 그들 중 몇몇은 무언가를 위한 인류의 노력에 대하여 한 번 쯤은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리라.

 

중학교 3학년 과학 생식과 발생단원에는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 한 페이지로 등장한다. 교과서에는 제시되어있지 않지만, 교사용 교과서에는 탈리도마이드에 대한 설명이 있다. 입덧을 막는 용도로 임산부들이 복용했다가 많은 기형아가 나와서 사용이 금지되었다는 내용이다. 살짝만 언급하고 지나갔다. 그런 약이 있었다더라. 무척 위험했다더라. 그래서 금지되었다더라 하고.

이 책에서 탈리도마이드를 보니, ! 나 이거 알아! 라는 생각에 반갑고 우쭐했다. 하지만 관련 이야기를 읽고 보니 내가 결정적으로 빠뜨렸던 부분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 심사관의 반대로 미국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았기에 46개국에서 1만 명의 기형아를 발생시킨 약의 위험을 피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신한 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이야기의 초점은 위험한 약이 나왔다더라가 아니라 약 시판을 앞두고 임상시험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있다. 그 점을 학생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거다. , 역시 다방면으로 많이 알아야 수업이 풍성해진다. 토론의 주제로도 얼마나 바람직한가! 나의 학생들은 무식한 교사를 만나 결정적인 생각꺼리를 놓쳐버렸구나, . 서민 교수님! 이 책이 1년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140명의 학생들이 제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작가가 쓴 책의 장점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건, 정치에 대한 책이건, 기생충에 대한 책이건 장르를 불문하고 일관성이 있다. 때문에 두꺼운 책을 앞에 두고도 작가가 서민이라면 망설임 없이 첫 장을 펼치게 한다. 이러한 장점은 그의 성향에서 온다고 판단된다. 유머를 즐겨하고, 지루하고 난해한 글을 못견뎌하는. 나와 코드가 맞는 부분이다. 작가의 책을 만나면 부담이 없고 편하다. 이 책은 의학의 세계사라는 방대한 지식까지 담겨있으니 나의 세계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풍성해진 느낌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하는 직업군 중 하나는 교사라 생각한다. 과학 교사라고 과학에 대한 책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문학이나 철학, 음악, 미술, 심리학 관련 책도 어떤 식으로든 수업 시간에 언급이 된다. 이 대목을 설명하는 데 이 내용을 써먹네? 수업하다 불쑥 생각이 나서 비유할 때 스스로의 순발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 책을 읽기 잘했다며 저자에게 고마워했다. 이 책도 두고두고 고마워하며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새삼 깨닫는다. ! 의과대학 교수님이시지! 의과대학 교수님이라 해서 무조건 의학의 역사에 해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교사라고 해서 과학의 모든 분야를 잘 안다든가 과학적인 발견과 발명의 역사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점은 내용의 취사선택과 서술 방식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색한 부분이 없이 이어지는 의학의 역사는 이 분야에 문외한인 독자가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중간 중간 유머 섞인 서술은 깊이 있는 지식과 지식을 이어주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아이스 맨 외치를 이렇게 써 먹다니! 수업 시간에 과학 뉴스로 소개하는 데 그친 이 인류가 의학의 역사를 소개하는 앵커로 등장하다니. 신선한 발상이 감탄스럽다. ‘사람들이 의학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재미있게 서술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p13) 의학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재미있게 서술된 이 책을 보니 관심이 생겼다. 나에게는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역사는 관점이다. 서술의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을 띤다. 따라서 어떤 분야의 역사이든 상대적일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기자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보도되듯이. 의학적인 기술의 발달사에만 중점을 두었으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서술이 되었으리라. 이 책에는 의학의 발달사보다 더 큰 내용이 담겨있다. 그건 작가의 관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서민'적 관점이랄까. 그 관점이 나는 가장 좋았다. 이는 책의 마지막 부분, 외치의 말에 고스란히 담기는데, 순간적으로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한 방이 있다. ‘제가 만난 의사들은 말입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뇌했고, 자신의 능력으론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을 미안해했어요. 시대와 지역은 달랐지만, 그 마음만은 똑같았습니다. 이 강좌를 열면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의사들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p410) 중심에 사람을 두고 서술된 의학의 역사, 이 책을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이다.

 

 

p68, 밑에서 7째 줄 : ‘, , , , , 비장, 신장, , 심장의 순서를 이왕이면 맞췄어도 좋았겠다는 나만의 생각^^;

방법 1 : , , , , ....라면, 심장, 신장, , , 비장

방법 2 : 보통의 음양오행 서술 방식으로 목, , , , ....라면, , 심장, 비장, , 신장

p162, 7째 줄 : 스노우 스노

p191, 두 번째 단락 5째 줄 : 갖기 않기에 갖지 ~

p204 마지막 단락 1째 줄, p205 4번째 단락 2째 줄 : 초음파의 발명 ~ 발견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요 2019-01-2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꼼꼼한 읽기와 오기 지적까지! 대단하십니다

나비종 2019-01-22 19:11   좋아요 0 | URL
^^; 독서 속도가 느리다보니 눈에 띄었을 뿐입니다.

마태우스 2019-01-26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리뷰 감사드립니다. 오타 지적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교정을 잘 못봐서 그랬습니다. 혹시 2쇄를 찍는다면, 말씀하신 대목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꾸벅

나비종 2019-01-27 17:27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면서 내내 유쾌했구요.
오타는 시험지 원안을 매의 눈으로 검토하던 습성이 있어 그저 눈에 띄었을 뿐입니다. 2쇄를 찍을 만한 책이니 기필코 반영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