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292
박하익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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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폰하고 노는 게 재미있어서 책 읽기 싫어ㅠㅠ

B : ㅋㅋ처음이라 그럴 거야... 그래도 스마트폰 중독되면 안 돼...알지?

A : 알았어염ㅋㅋ 대화하고.. 사진 찍어서 글 올리고..그게 다야..

B : ㅋㅋ그게 다인데도 그것만 하면 시간 훅 간다?

5년 전, 큰 딸과 주고받은 대화이다. A, B 중 누가 엄마일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 북을 메뚜기처럼 왕복하면서 글과 사진이 담긴 일상을 올렸다. 밴드와 카카오 톡도 매력적이었다. 짬만 나면 동물을 줄 세워서 팡팡 터뜨렸다. 간혹 지루하다싶으면 과일로 대상을 갈아탔다. 놀라운 세상이었다. 하루라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숙제를 안 한 듯 찜찜했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피곤해도 피곤하다는 글로 나의 상태를 어필해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시선은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공간에 수시로 빨려들어갔다. 핸드폰의 주인은 분명 나인데 노예처럼 스마트폰에 끌려 다녔다. 수시로 들여다보았고 곁에 없으면 허전했다.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내 가장 가까이에 머물렀다. ‘마음을 지키는 건…… 절대로 쉬운 게 아니야.(p186)’ 책속에 나온 문장을 보고 당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1년 남짓 스마트폰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다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 북 앱을 지웠다. 밴드도 필요한 공지를 올릴 때에만 들어갔다. 카카오 톡은 주로 업무의 목적으로 이용했다. 중간 중간 금단 증상이 오면서 앱이 깔리다 지워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극복했다. ‘사람의 영혼은 본디 고요하다. 그 고요함 속에 깊이 잠기면 마음이 회복되고 새로워진단다.(p185)’ 스마트폰의 주인이 되자 어수선하고 조바심 일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훤칠하신 공배우, 바닷가에서 간지나게 목화 꽃다발 쓱 내밀 때 TV를 뚫고 설레는 바람이 불었다. 배경음악까지 뷰티풀 했던 드라마 <도깨비>. 도깨비 캐릭터에 대한 호감은 201612월 이후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본질적으로 귀신과 별반 다르지 않건만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날 것 같고 익살스런 이미지를 가진다. <혹부리 영감>에 출연했을 때에도 우스꽝스러웠고 방망이조차 아몬드 빼빼로를 뻥튀기한 듯 친근하다.

 

도깨비와 스마트폰의 콜라보?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무지 상상되지 않던 이야기 안에서 현실의 스마트폰과 가상의 도깨비가, 과거의 놀이 문화와 현대의 그것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기발한 앱들, 도깨비를 세는 단위, 방향 표시법, 스마트폰 번호, 내비게이션 멘트의 응용, 대화창, 다양한 모드, 날대야 택배, 기의 9단계, 스마트폰 중독을 경고하는 방법이 신선하다. 기획이 놀라웠다. 새로운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하며 흐르는 이야기에 나태하게 졸던 의식이 확 깨는 듯했다.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제를 드러내는 표현 방법이다. 이야기는 복합현실기술처럼 제공된다. 작품을 구상하는 작가의 관점을 따라 독자는 가상현실을 진짜처럼 경험한다.

인간의 영혼에 담겨 있다는 세 가지 생명의 기운에 대한 서술이 마음에 남는다.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 깊게 몰입할 때 맛보는 행복감,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의 기쁨.(p184)’ 이 세 가지 기운을 관통하는 일이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 지침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팁이 떠오른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듯 마지막 장을 탁 덮는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툭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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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달걀을 낳은

어미 닭인 양

버리지도 못하고 내내

알을 품는 일

 

고통과 전율

아쉬움 속에 낳은

부끄러운 글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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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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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등장하는 접속사가 과속방지턱처럼 걸렸다. 겉도는 묘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직전에 읽은쓰기의 말들의 후유증이 컸나. 깔끔한 일식의 맛이 나던 은유 작가의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맴돌았나보다. 1아프게 짝사랑하라가 끝날 때까지 이 책의 문장들은 설 끓인 김치찌개 맛처럼 마음 언저리를 겉돌았다. 2막다른 골목에 접어들면서 고민했다. 그냥 여기서 멈출까. 첫 번째 에피소드만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어느 거지의 변>은 신의 한 수였다.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담겨 있다. 은행나무를노란 화관으로 표현한 문구가 두 번 나오면서 나의 눈은 다시 날카로워졌지만, 경험담이 많아지면서 눈 끝은 뭉툭해진다. 사고의 폭이 넓어질 기회를 놓칠 뻔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2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놓은 장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 아닌가. 그 마음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북극의 에스키모족도- 알아듣는 만국 공통어이다.(p68)’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느껴진다. 마음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이니.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내 짝꿍은 손이 뭉툭했다. 굉장히 친절하고 마음씨가 고왔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은했던 친구의 미소는 맑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도 인상적이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p104)’순수한 이성적 판단이 담긴 대학생의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무심코 지나치던 사회의 모퉁이를 돌아본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에서는노인과 바다가 등장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나 일상적인 산문에서 공통으로 권장하는 도서가 고전이다. 참 신기하다. 몇 백 년 전에 쓴 글이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종의 어딘가에는 공통된 감성의 스위치가 존재하는 걸까. 고전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풍성해질 것만 같다.

 

3더 큰 세상으로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가, 4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작가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수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기억 상자 속을 여행했다.

<엄마의 눈물>에서는 연탄재를 배경으로 한 어린 시절로 후다닥 타임 슬립을 하였다. 추운 새벽 연탄을 갈던 어머니, 일하러 나가신 사이 연탄을 간답시고 번개탄을 거꾸로 놓고 불이 안 피워진다며 땀 흘리던 기억, 온 집안에 배경음악처럼 자욱하던 연탄가스냄새가 훅 끼얹어졌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 돈이 모아지는 대로 쌀을 한 말씩 사던 날들이 빈번했다. 눈뜰 때마다 선명했을 일상, 그 막막한 무게를 껴안던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셨다.

 

나의 어렸을 때 꿈은 주로어디에 가고 싶다가 많았다.(p124)’<>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던 참이다. ‘엄마는 세계 여행 한군데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디 가고 싶어?’중국에 있는 딸이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 묻는다. 딸에게 답문을 보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이라고. 한동안 잊고 있던 30대의 꿈이 생각났다. 겨울 새벽 2시쯤이었던가. 광해를 피한답시고 아파트 옥상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에 옥상 문을 개방했던 시기였다. 오리온자리 옆에 있던 토끼자리를 맨눈으로 관측해다. 벅차게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때의 열정을 떠올리자 가슴이 뛰었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p135)’작가의 문장 앞에서 오만했던 나를 반성한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 정답을 정해놓고 감히 작가의 글을 채점하려 덤빈 꼴이 아닌가. 글은 곧 삶이고, 모든 삶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을. 표현이 다소 투박하면 어떤가. 삶에서 우러난 진심이 담겨있다면 지금처럼 마음을 출렁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 생애 단 한번이란 책의 제목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목을 다시 음미하며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일렁이는 마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책이다. 뚝배기 같은 글이랄까. 작가만의 삶이 글 안에 담겨 서서히 온도를 높이다 불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 끓게 되는. 그녀만의 삶이 전해주는 맛을 느끼며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덩달아 따스해지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p51, 1째줄, 북극성은 1100광년이래. 너무 멀어서 기록마다 편차가 있지만, 북극성까지의 거리는 약 400광년으로 알려져 있다.(참고: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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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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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자, 모나!리자, 모나리!, 모나리자!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말장난이다. 단지 네 글자 발음하는 데에도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지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 책에 담긴 104편의 짤막한 글들이 그랬다. ‘글쓰기라는 일관된 과녁을 향했지만 조금씩 다른 에피소드를 담고 전개되는 글들은 매번 달랐다. 1쪽 안에 새겨진 디테일과 완결성이란! 은유의 글을 보며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쌀 알 하나에 다보탑을 새긴다는 사람을. 고급 일식집에서 새우튀김 한 개를 맛본 기분이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절로 깨달아졌다. 그녀는 훌륭한 요리사였다. 내가 계란 프라이만 할 줄 아는 원 푸드 초보 주부라면 그녀는 달걀 한 개를 놓고도 계란찜, 계란말이, 스크럼블 에그, 계란탕을 구현했다. 계란 프라이만 하라고 해도 채친 당근과 쪽파 등으로 색다른 데커레이션을 구현할 것 같았다.

 

글을 요약하는 게 힘들어요. 대학에 다니던 제자는 말했다. 20~30장 리포트를 쓰는 건 일도 아닌데 그걸 A4 한 장으로 제출하라는 과제가 너무 어렵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줄줄이 꿰어지는 이야기는 방앗간 가래떡처럼 언제 끊길지 몰랐다. 중간에 칼을 댈라치면 어정쩡한 거지 컷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시 쓰기에 도전한 이유 중 하나다. 시에 담으면서 흰 색으로 시작했던 마음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하였다. 입금 전후 배우의 모습처럼 최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침표가 찍히는 장소가 생경했다. 짐작할 수 없는 내 글의 마지막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단어를 잘라내고 이리저리 배치를 바꾸다가도 누에고치처럼 구구절절 뽑아내던 문장을 송두리째 버렸다.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깜지가 될 즈음 알라딘 서재에 업로드 했다. 찜찜한 마음을 꼬리표처럼 매단 채였다.

 

아름다운 표현에 자주 현혹되었다. 햇살, 바람, 나무를 이용하여 글에 색칠을 했다. 하늘하늘한 수채화이기를 바라며 붓을 들었다. , 내가 생각해도 기특한 표현이야.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를 썼다. 그렇게 몇 십번을 반복하니 입에 물렸다. 뻔한 표현, 남들도 다 하는 비유라는 생각이 점점 진해졌다. 제대로 된 화장법도 모르고 입술만 시뻘겋게 두드러진 갸루상이었다. 나의 글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전력질주 하던 커서는 점점 발걸음이 둔해졌다. 짧은 구간을 왕복달리기만 하던 날들이 지나갔다. 우측 깜빡이만 넣고 출발도 못하는 초보 운전자가 되었다. 감성은 종종 새싹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햇살과 바람과 나무가 예민하게 살갗을 건드리는 건 사실이었다. 재료는 같았지만 질감과 양과 투명도는 달랐을. 감성은 발끝을 보이는데 허리를 숙여도 닿지 않은 손끝으로 초라한 글이 매달렸다. 미묘한 채도의 차이를 글로 그려내는 데 한계를 느꼈다.

 

새벽 세 시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느낌표로 남은 문장들이 수시로 볼펜 끝에서 복기되었다. 수많은 느낌표를 나무인 양 마음에 심었다. 밑줄 그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리뷰 안으로 어떤 문장도 불러내기 어려웠다. 느낌표가 빽빽한 숲을 이룰 무렵 물음표 하나가 꽃으로 피었다. ?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작가의 책은 이 한 글자를 남긴 채 어젯밤과 오늘 새벽을 주섬주섬 챙겨가지고 달아났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표현의 한계가 아니었다. 그건 둘째 문제였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나의 글의 존재 이유였다. 왜 나는 글을 쓰는 걸까?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대의 따위는 없었다. 내 글의 시작은 나의 눈물을 닦아내는 손수건이었다. 글자로 이루어진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시린 공기가 폐 속을 들락거리는 날이면 따뜻한 숨결을 후 불어넣어 주는, ‘나 너무 외로워라 쓰면, 내게도 나 너무 외로워라 말해주는. 내 마음이 담긴 글자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손난로를 쥐게 된 양 온기가 저릿했다. 글을 쓰는 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자주 외로웠다. 그것이 존재의 원초적인 고독에서 기원한 것인지 관계의 삐걱거림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마음으로 스며드는 냉기였다. 냉랭해진 관계의 원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변인들이 시간과 공간을 품고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에서는 더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이것 때문이었을까, 저것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이 원인이었고 그 무엇도 원인이 아닐 수 있는 아이러니였다. 가로축과 세로축이 만들어낸 드넓은 공간에서 선명한 좌표를 찾아 점을 찍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견딜만할 때에는 책을 읽었다. 한겨울 노숙자가 된 기분으로 드라마를 신문지처럼 덮고 잤다. 그마저 견딜 수 없을 때 하게 된 것이 글쓰기였다. 시집이든 소설이든 동화든 다큐 형식의 글이든 책을 읽을 때마다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렸다. 때때로 일렁이는 마음을 시로 옮겼다. 되도 않는 글을 무작정 끄적거렸다. 글은 자꾸만 초라해지려는 나를 어루만졌다. 내게 있어 글은 온기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아프다며 질척한 넋두리를 하는 글들이 많았다. 음울한 흑백 사진 같다 여겼다. 어떤 이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인데 내 글을 읽고 울었다는 이가 생겼다. 내게서 나온 글이 누군가에게는 거울이 되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이들이 간혹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신기하면서도 신이 났다. 즐거운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글도 그림처럼 해석의 차이가 강하게 작용하는 예술이었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p219)’라는 말처럼 내 글에 조금이나마 좋은 글의 꽃가루가 묻게 된 것일까. 물음표의 포장을 뜯고 보니 화살표가 들어있었다.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왠지 알 것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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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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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변화라 생각했다.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기만 하면 물에서 수증기로, 수증기에서 얼음으로 고체, 액체, 기체의 상태 3종 세트를 종횡 무진하는 물처럼 주변 환경만 변하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관계. 남편와의 관계는 어느 순간 이런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관계의 물리 변화에는 나태한 마음도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변 환경만 변하면이라……. 전제 조건이 붙는 관계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가. 환경은 그리 쉽게 변하는 요인이 아님을.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에너지가 얽힌 세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경직된 거리감으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관계라는 생각을 하며 등속운동의 시간-속력 그래프를 떠올렸다. 세상 참, 재미없다. 희망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래는 아득했다.

 

서민의 책에 주로 손이 가는 상황이 있다. 춥다는 느낌이 묵직한 추가 되어 마음에 매달릴 때이다. 그의 글을 따라가며 간간이 피식거리다보면 삶의 중력이 조금이나마 약해진다. 나의 소박한 기대는 매번 충족되었고 집을 나가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집어든 집 나간 책은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라앉은 마음이 반응의 역치를 높였지만 넘어간 책장이 남아있는 책장보다 두꺼워질 무렵, 마음은 향긋한 빵처럼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그의 글이 내 감성의 주파수와 맞는 걸까. 서민의 글이 좋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극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자극적이고 과격한 시선으로 부담을 주지 않고, 지나치게 현학적인 어휘 끝에 따라오는 재수 없음도 없다. 그렇다고 고지식하지도 않다. 단맛이 살짝 가미된 플레인 요거트 맛이다. 기분 좋게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는 종종 글을 통해 내가 우울할 때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구가 된다.

 

서평과 세상, 저자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3개의 장에 나눠 담았다. 1장은 사회적인 이슈나 현상을, 2장은 일상적인 경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3장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가는 서평이다. 사회, 일상, 학문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무지와 편견과 오해를 부드러운 예리함으로 묘사한다. BGM처럼 깔리는 유머는 덤이다.

책장이 얼마 넘어가지 않았을 때만 해도 책속에 담긴 세상은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었다. 글이 펼치는 그들만의 세상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인간으로서의 양심, 416일의 기록, 강자들을 위한 도구인 법,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아이들 세대, ‘적당히가 우선하는 사회, 사회적 차별에 관한 이야기들이 손끝을 지나가면서 마음의 색채는 조금씩 달라졌다.

전혀 감성적이지 않은 글이 오히려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계속 읽다보면 일렁이는 마음의 파동이 잦아든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마다 이성적인 글을 쓰는 알라딘 서재를 찾게 되는 이유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는 글에 젖어들었다. 바싹 마른 싸리비로 어질러진 내면의 마당을 쓱쓱 청소하는 듯 점점 개운해졌다.

 

책의 3분의 1지점에 이르자 마음이 크게 들썩였다. 정희진처럼 읽기에 있다는 구절 때문이다. ‘상대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끝나는 것이다.(p91~92)’ 같은 문장을 서성이며 몇 번이나 읽었다.

화학 변화였구나. 전혀 다른 물질이 되어버려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관계였어. 이미 깨닫고 있었지만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스스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울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외면하던 상황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오히려 마음은 담담해졌다.

 

덴마크의 과학자 외르스테드는 전류와 관련된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변에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연은 선물 같은 순간을 떨구고 지나갈 때가 있다. 책 속에 소개된 책에서 얼떨결에 의미 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처럼. 곳곳에 숨겨진 작은 보물을 찾는 기쁨,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이다.

인터넷과 책은 이런 점에서 선명한 차이로 갈린다. 적절한 검색어를 입력해 원하는 정보를 얻는 인터넷과 달리 책을 통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많다. 매일 오가는 출근길 풍경도 자동차의 속도에 따라 생경하게 다가올 때가 있듯 나만의 속도로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엉뚱한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배경지식이 제각기 다른 독자들은 저자가 의도한 주제대로 책을 읽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맥락의 주제는 분명 보이겠지만, 같은 사람이라도 책장을 넘기는 순간의 감정 상태에 따라 좁다랗게 이어진 골목길로 들어갈 수 있다. 책이 지닌 강력한 매력이다.

 

글쓰기와 관련된 몇 가지 팁도 얻는다. ‘한국인은 그 세 단어 -있었다, , -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p182~183,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문장이 리뷰를 쓸 때 자꾸 생각났다. 의식적으로 세 단어를 빼가며 글을 쓰니 문장이 담백해졌다. ‘독자에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어라.(p239, 유혹하는 글쓰기)’,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한다.(p239, 마르셀 프루스트)’ 라는 문장은 표현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p186,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지난겨울, 1월과 2월 두 달 동안 매일 수필을 쓰듯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쓰며 하루라는 책꽂이를 정리했다. 이번 여름에도 두 달 동안 시도할 계획이다. 사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는 삶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운동, 다이어트, 공부에서부터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정희진의 문장을 보며 가장 풀기 어려웠던 관계를 냉철하게 판단하였다. 서민의 글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귀 기울이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였다. 유머가 담긴 서민의 발상에 피식피식 웃다보니 낙천적인 마음이 되어갔다. 그래, 이유가 없다는데 어쩌겠어. 물컹하던 계란은 이미 프라이팬 위에서 단백질 변성이 일어나 프라이로 굳어져 되돌아가지 않을 텐데. 삶은 달걀이나 계란찜을 바랜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 이제 나의 선택지는 계란 프라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적당히 간장을 뿌려 밥과 함께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교육자의 마인드로 조금씩, 날마다, 꾸준한 변화를 도모할 밖에. 풀리지 않던 관계의 해법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하며 두텁게 입고 있던 외로움의 외투를 벗어던졌다.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서툴지만,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p58, 밑에서 10째줄 : 신기하기도 신기하게도

p95, 2번째 단락 1째 줄 : 한 장 한장 한 장 한 장

p293, 3째 줄 : 1969716(중략)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한 날이다. 16일은 발사일, 20일이 착륙일

 

관심 가는 책

<정희진처럼 읽기>,<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아주 사적인 독서>,<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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