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처럼

몸뚱어리 때리는 빛줄기 아래

우산마냥 벌린 내 오른손만한 공간에

눕지도 못하는 암탉의 삶이 놓인다.

 

한껏 펼친 손끝처럼 안간힘 쓰며

밤의 이불은 차마 꿈꾸지 못한 채

충혈 된 눈 부릅뜨고 생명을 뽑아낸다.

후두두둑 눈물방울 허옇게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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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멀다 아득하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뜨거운 원망의 강을 건너
날카로운 오해의 숲을 지나
묵직한 침묵의 바위를 돌아
공백이 앉은 이정표가 시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가는 시간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인 걸까

물끄러미 바라본다
옹달샘에 고인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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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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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괜찮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늘 괜찮았던 나는 하루하루를 안간힘을 쓰며 견뎌내는 중이다. 느릿느릿 흐르기만 하는 시간은 켜켜이 쌓여 나를 짓눌렀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도 있더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는 잿빛 감정. 명확한 명사로 명명하기 애매한 그것. 우울과 상실감과 허무와 슬픔이 뒤엉켜 찐득하게 들러붙은 빌어먹을 감정이다. 잠시 잊는 일은 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마치 처음부터 있던 것처럼, 여기가 제 자리라 말하는 것처럼 거기에 있다. 바탕화면처럼 저변에 깔려있는 마음은 나를 늘 가라앉게 만들었다. 드라마를 마약처럼 취하며 벗어나려 해도, 가까스로 책을 붙들고 시를 쓰고 또 써도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어쩌면 그나마 이 정도로 끌어올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슬펐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사실은 이런 시간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함으로 펼쳐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제목만으로 구매를 결정한 책이다.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실망할 위험이 상당히 높을 것이었다. 구입하고 얼마간은 읽지 않고 꽂아두었다. 작가가 쓴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읽고 나니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정여울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예감은 맞았다. 작가의 문장은 공허한 마음을 자주 토닥였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영향력으로 나를 잠식시키는 감정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했다.

문학작품 속의 캐릭터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방식이 신선했다. 고전이 많이 언급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 정도씩 고전을 읽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기에 얼떨결에 고전 맛보기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 표지를 보고 찡했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오는 환한 공간으로 빈 의자 두 개가 놓여있는 그림. 의자 위에 앉게 될 두 사람을 상상하니 부러워서였다. 두 의자의 방향에 주목한다. 오른쪽에서 창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의자는 아마도 괜찮지 않은 사람일터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를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리라. 반면 왼쪽 의자는 오른쪽 의자를 향한다. 오른쪽 의자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이 의자는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두루두루 모습을 보인다. 당신의 얘기도 들어줄 수 있다며 말을 건다. 왼쪽 의자가 작가의 분신인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행복해보여.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 같아. 안정된 직장 있겠다, 자식들도 알아서 공부하겠다, 연금이 있으니 노후 걱정도 없고, 직장일도 잘 하고, 퇴근 후에 커피숍에 가서 우아하게 책 읽고 글도 쓰는 생활, 너무 부러워.’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은 매번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나를 쿡쿡 찔렀다. 책을 읽고 글이라도 쓰는 안간힘을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껍데기를 보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말을 했다.

막연하게 작가가 될 생각을 한 것도 간절한 매달림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 모든 슬픔과 고통마저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소재로 만드는, 모든 끔찍한 불행에 대한 정당한 복수의 길이었다.(p78)’ 글을 쓰면서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어느새 묵직한 감정의 물이 채워져 자주 길어 올려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내가 쓴 시나 리뷰가 감정의 배설물 내지는 쓰레기 같다는 마음이 들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글을 올린다. 나의 웃음을 갉아먹는 감정들을 언젠가는 모조리 글에 박제하여 봉인해버리리라. 작가가 된다는 것은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민낯을 마주 보는 순간을 견뎌내는 일인 걸까.

 

사랑이 인생 최고의 가치였던 적이 있다. 그게 허물어지는 순간, 상실감은 생각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 사랑만큼 허무한 것이 없었다. 한 때 그토록 가슴 뛰던 대상에게서 증오의 감정을 느꼈을 때, 나를 울적하게 했던 것은 슬픔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버지니아 울프의 유산이 마음 언저리에 확 다가왔다. ‘마음은 서로의 존재를 비추는 영롱한 거울이지만 서로의 가슴을 날카롭게 내리긋는 흉기이기도 하다.(p115)’ ‘사랑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살아 있는 거울에 투영된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일(p136)’이라는데. 내가 마주 보는 거울은 너무 차고 딱딱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의 마음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은 매순간 날카로운 흔적을 남겼다.

같은 식탁에 앉았으면서도 어색한 침묵을 반찬으로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즐겁게 웃음이 구르던 장면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당신과 나, 우리가 담겨있던 시간도 지나왔는데. 이제 우리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의 속내를,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p119)’ 대화를 한다 해도 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서로에 대해 아무런 기대감도 없는 마음이 아팠다. 3도 화상을 입은 건지도, 그래서 무감각해진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슬펐다.

 

정여울의 빈센트 나의 빈센트에는 빈센트의 외로움이 언급된다. 거리를 지나면서 연인을 부러워했다는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울컥했다. 나 역시 가장 부러움을 느끼는 장면이기에 격하게 공감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이 제일 부럽다. 나는 스킨십을 좋아한다. 손의 감촉과 온기를, 사람의 품이 주는 아늑함을 사랑한다. 내게 그것은 19금 영화의 야한 장면보다 더 유혹적이다. 이런 이유로 견디기 어려운 난제가 존재한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내손을 잡아주지 않으니까. 나는 스킨십을 좋아해, 한 번 만져 보자, 으흐흐. 변태 새끼도 아니고 다짜고짜 손을 잡기도 상당히 뻘쭘하지 않은가.

간접 체험이라도 할까 싶어 책을 샀다. 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터치, 보디랭귀지, 몸의 일기등을 사들였다. 정작 구입만 해놓고 겉표지조차 넘기지 못했다. 학문적인 탐구는 개뿔, 백날 읽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스킨십에 환장한 인간처럼 현실의 사람을 만지고 싶었다. 드라마 인간 말고, 책속에 등장하는 멋진 간지 남 말고.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도 하듯 이 사실은 종종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가끔 상상한다. 하루에 한 번씩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킨십 AI라도 있다면 당장이라도 구입할 각이다. 구매의사는 간절하나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은 없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는 나는 불가능한 꿈만 꾼다. 손잡고 다만 10분이라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을 텐데.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저 사람 말이다. 인간이 지닌 36.5도를 느끼고 싶을 때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서도 다시 또 사람의 감촉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몇 년 전부터 꽤나 심각하게 고민한 주제는 성욕이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가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 배웠다. 먹거나 잠을 자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젠장! 이런 욕구와 동급의 레벨이라니! 기본적인 욕구라면 거의 필수 요소라는 의미인데 성욕도 충족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걸까. 한데 수녀님이나 스님, 목사님 등 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도 있지 않은가. 머릿속은 종종 혼란에 빠졌다. 스스로를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성욕은 주기성을 띠며 나를 괴롭혔다. 그 때마다 지독한 외로움도 덩달아 따라왔다. 스킨십의 출발로 일컬어지는 손잡기조차 어려운 척박한 불모지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나로서는 프로이트의 리비도에 대한 이론은 상처에 뿌려지는 왕소금이었다. 성욕을 바탕으로 깔린 그의 이론에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 속에는 프로이트, , 아들러 등 심리학자들의 이론들이 자주 등장했다. 융의 접근 방식에서 위안을 받았다.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은 all1/n 의 차이였다. 성욕이 절대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욕구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다른 욕구들이 상호보완작용을 한다면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제부터 나의 욕구를 더욱더 예술적인 창작열로 불사르리라! 성욕에 대한 견해가 아니더라도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사상은 꽤나 매력적이다. 조만간 그의 책을 읽어보아야겠다.

 

흰 머리가 늘어나면서 몸이 부쩍 피곤해졌다. 늙음은 이렇게 서서히 나를 잠식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점점 쪼그라드는 건가 우울했는데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p170~171)을 보는 순간 뭉클해진다.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내 마음속의 사자 한 마리를 결코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음만은 결코 늙지 않는 최고의 비결이다.(p168~169)’ 몸을 뒤로 쑥 뺀 채 기다란 막대기를 청새치를 향해 휘두르는 노인의 모습에서 삶의 의지가 보인다. 너무 선명한 장면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래,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 가끔은 이런 고전작품에서 위안을 받는다. 읽다보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의 크기가 줄어들고 좀 더 커다란 인생의 그림이 그려진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준다.

만약 그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당신 주변에서 가장 따뜻한 눈빛을 가진 이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p196)’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없지만 조금씩 찾아보기로 한다. ‘오직 몸으로 행동해야만 삶은 바뀔 수 있다.(p313)’했으니. ‘우리 자신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강하다.(p204)’는 작가의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 317페이지에 담긴 작가의 위로에 기대보려고 한다. 내가 느끼는 우울과 상실감과 허무와 슬픔을 비슷하게 안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며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라며말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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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바나나 2019-05-1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비종 2019-05-17 23:40   좋아요 0 | URL
‘좋아요‘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척박한 불모지에 무려 댓글을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춤추는바나나 2019-05-1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와닿는부분이 많터라구요^^ 그리고 생각의 조각들을 멋진 글로 풀어서 쓰신게대단하고 부러웠어요^^ 앞으로 리뷰에서 자주뵈요 우리!!

나비종 2019-05-19 22:35   좋아요 0 | URL
위 댓글의 핵심어는 ‘우.리.‘인 거죠?ㅋㅋ
공감하신 부분이 많으셨다니 위안이 되는군요.^^ 멋진 글이라 여겨주시니 다소 민망하지만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불!끈!ㅎ 글 읽는 속도가 느려서 리뷰를 자주 올리지는 못하지만 자주 들러주시고 의견주세요~^^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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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똑같았단 말이다. 꼬부랑 머리를 한 아그리파 석고상을 사진을 찍은 것처럼 실물과 흡사하게 그렸건만. 미술 선생님께서는 괴팍한 느낌이 끼얹어오던 친구 작품에 점수를 더 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다. 불현듯 기억이 떠오른 것은 미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앙금으로 가라앉았던 억울한 마음이 생각나서일 거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친구의 작품이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사실을. 선생님의 평가가 옳았다. 내게 없던 것은 아그리파를 해석하는 나만의 고유한 시각이었다. 말하자면 모조품과 창작품의 차이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은 예술의 본질과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결국 그 친구는 미술 관련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고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졌다. 괴팍한 모습으로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해바라기가 그려진 정물, 청보라로 채색된 밤하늘. 고갱과 함께 미술교과서에 나오던 화가, 미친 사람의 이미지가 강했던 인물. 딱 여기까지였다. 그의 삶이든, 보다 많은 그림들은 관심 밖이었다.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미술에 대한 책도 역시 글 잘 쓰는 사람이 써야 제격이다 했다. 한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이런 느낌은 단순히 뛰어난 글쓰기 능력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빈센트의 전기를 읽는 듯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그를 해석하며 그림인 듯 그려내는 작가만의 시선이 더욱 좋았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이런 글이 나올 수 없겠구나 싶었다. 화가의 삶 자체가 간절한 데다 그를 향하는 작가의 깊은 시선이 어우러지자 그들을 바라보는 나에게 뭉클함이 전해졌다. 여운으로 이어지는 울림으로 커버 그림의 강렬한 노랑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글과 삶이 일치하는 책은 매번 깊은 감동이다. 빈센트의 그림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림과 삶이 일치하는 느낌이랄까. 꾹꾹 눌러 그려 털실로 짠 옷을 연상시키는 붓 터치는 삶의 묵직함을, 타들어가는 불꽃같은 노랑과 밤하늘의 색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생을 외로움에 흠뻑 젖어 살면서 사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소용돌이 문양은 사람들과 삶을 향해 뻗는 간절한 손길이었다.

 

밤하늘은 검지 않다. 30대의 어느 날 늦은 퇴근길, 땅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걷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혹 야간자습 끝나고 오는 길에 올려다보았던 고등학교 때에는 밤하늘의 색깔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의 시선은 별 자체만을 향했으니까. 힘들다, 참 외롭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싸던 하루였다. 안에서 우러나는 한기를 느끼며 별을 품고 있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것 같다. 새까맣지 않았다. 약간의 보랏빛 같기도, 짙은 남색 같기도 했다. 어두웠지만 분명 검은색은 아니었다.

빈센트의 밤하늘은 짙은 보라색과 남색의 중간쯤에 닿아있다. ‘빈센트가 그린 밤하늘의 별이 감동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검은색이 없기 때문이다.(p39)’, ‘빈센트는 과연 얼마나 오래, 얼마나 하염없이 별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 것일까.(p44)’, ‘그는 알고 있었다. 어두운 밤의 풍경 속에 때로는 낮보다 더 많은 색채가 숨어 있음을. 우중충하고 텁텁해 보이는 어두운 빛깔 속에 생의 눈부신 진실이 도사리고 있음을.(p79)’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던 시인의 말처럼 그에게 밤하늘은 이런 의미였으리라.

색채만큼이나 <별이 빛나는 밤>(p46~47)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별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소용돌이치는 패턴이었다. 노란 밀밭의 소용돌이와는 다른 느낌이다. 하늘을 바라볼 때의 화가의 눈동자를 상상한다. 약간의 물기가 어린 눈이었으리라. 맑은 눈물이 살짝 맺혀있을 때, 별을 바라보면 그림처럼 빛이 번져 보이니까.

 

빈센트의 그림은 밝지 않다. 온통 밝은 노랑인 작품도 가뿐하지 않다. 인물들의 표정 역시 소위 아름답다말하는 세상의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다. 굴곡진 표정, 뭉툭한 손, 여기저기 삶의 더께가 진득하게 눌러 붙어있는 모습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여인의 표정을 명확히 알 것 같은 <슬픔>(p102)도 비슷한 느낌이다. 묘한 점은 이런 그림에서 위안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가 바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p133)’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발>(p191)을 보았을 때 그랬다. 스윗소로우의 노래 <나의 구두>를 이미지로 표현하면 이런 모습일까. ‘고단한 거리를 나선다, 하루의 끝을 달랜다./ 분주했던 발걸음, 꿈을 꾸던 한 걸음,/ 항상 너와 함께였지.// 뭘 위해 걸어왔던 걸까./ 어느 새 낡은 너의 끝/ 너와 함께 달렸던, 너와 함께 울었던,/ 그 시간도 아득해.// 어리석게도 아름다웠었던,/ , 아름답게도 어리석었던/ 그 소중한 맘을 기억하고 있어,/ 고마워, 너의 마음 다 알아.// 쉽게 헤어질 순 없었지./ 꼭 지친 내 삶 같아서./ 그래도 참 애썼다, 그래도 참 고맙다,/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맨 날도,/ 너무 아파 잠 못 들던 밤도/ 여전히 나는 기억하고 있어,/ 미안해, 너의 아픔 다 알아.// 고단한 겨울이야 정말, 너도 내 맘 아는지./ 그래도 또 한 걸음, 괜찮아 또 한걸음,/ 서툰 봄을 기다린다.// 그래도 또 한 걸음, 괜찮아 또 한 걸음,/ 또 하루를 걸어간다./ 너와 함께 걸어간다.(출처: 네이버 뮤직)’

빈센트의 화폭에 담긴 한 켤레의 신발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두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신발의 끈이 풀려있다는 점이다. 이건 신발 주인이 고단한 시간을 지나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신발 주인을 쉬게 해주고 싶던 화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둘째, 신발이 향하는 방향이다. 신발의 앞코는 화가를 향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이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림의 전체적인 색채는 매우 어두운 것도 의도적으로 보인다. 캔버스의 틀 바깥은 그림 속 세상보다 밝을 것이니까. 화가는 신발 주인에게 말한다. 어서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쉬라고. 신발 주인을 한껏 안아주고자 하는 따스함이다.

 

미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눈에 보이는 틀에 담는 행위이다. 사각의 캔버스가 되었든 입체적인 조형물이 되었든 창작자의 해석에 따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빈센트는 모두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는 창조적 시선(p324)’을 지닌 사람이었다. 대성당에는 없는 것을 사람의 눈 속에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빈센트의 노랑은 소유격을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특별한 색채이다. 파도처럼 꿈틀거리는 커버 그림의 노랑이, <수확하는 사람>(p344~345)의 절반을 차지하는 밀밭의 노랑이 마냥 바라만보아도 좋았다. 그가 표현한 노란 빛 하늘이 좋았다.

사각의 틀이 담고 있는 무한한 세계를 상상했다. 감정이입이 된 그림 안에는 고정된 색채나 형태가 없음을 알았다. 캔버스 안에서 듬뿍 펼쳐진 찬란한 자유를 보았다. 빈센트의 색채로 이루어진 싱크 홀에 깊이 빠져버렸다.

 

 

p6, 밑에서 6째줄: 파랑, 노랑, 빨강, 이 세 가지 이 만나면 결국 새하얀 빛이 되는 것처럼 빛의 3원색은 RGB(Red Green Blue)이므로 노랑 대신 초록이 들어가야..

p231, 테오에게 쓴 편지 베르나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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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시간의 손끝은

마음을 덮던 막을 잡고  

마냥 느릿느릿 걸어간다  

 

얇게 펴진 막이 아리다

점점 따끔거리다

작은 바람의 스침에도

조금 뾰족한 소리에도

금세 툭 터져버린다

 

체할 것 같은 울음을

틀어막고 있는 눈동자는

욱신욱신 뜨거워지는데

공기에라도 기대고 싶나

휘청휘청 몸은 흔들흔들

 

아득한 시간을 나,

언제까지 건널 수 있을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사실은 온통 그런 하루들이

느릿느릿 나를 당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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