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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작품 걸작이다. 처음부터 사건을 무작정 들이댄다. 하지만 그건 그냥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시작은 지금부터다. 그러니까 서로 마주 보는 아파트에 동시에 두 남자가 입주를 한다. 입주하면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스토킹한다고 생각하며 적으로 간주한다. 사실 이런 일은 있을 법하다. 마주 보는 창을 통해 한 사람이 망원경으로 뭔가를 본다고 치자. 물론 그는 맞은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망원경의 방향이 자신을 보고 있는 듯이 상대방이 느낀다면 그것처럼 불쾌한 일도 없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흔히 남자들이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뭘 봐? 딱 그 상황인 것이다. 취향도 똑같은 이들은 서로의 흉을 일기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것은 두 사람의 일기와 가끔 등장하는 관리인 여자의 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것만으로도 작가는 심하게 웃기고 있다. 처음 몇 장만 읽어도 낄낄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다 등장인물들이 몽땅 이상한 사람들뿐이다. 영화를 짜깁기해서 촬영을 안 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영화감독이 있는가 하면 야리꾸리한 소설만 쓰는 할아버지 작가도 있다. 동물 괴롭히기와 말썽이 취미이자 특기라 선생님들도 두 손 들고 월반을 시킨 악동이 있는가 하면 한 겨울에도 짧은 조끼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젊은 관리인도 있다. 또한 쥐를 애완동물로 키우는지 생계형으로 키우는지 무지막지하게 키우는 사람까지 있다. 으... 거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살해(?)당한 개를 찾아 협박을 하고 다니는 아줌마까지. 이들이 옆에 있다면 정말 정신 하나도 없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일기를 쓰는 두 주인공은 무얼 하는 사람들이냐 하면 한분은 라디오 작가고 한분은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들의 모임만으로도 충분한 시트콤인데 작가는 이들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다. 처음에는 유머로 시작한 작품이 미스터리로, 호러로 변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데. 하지만 단순한 현대인들의 소통부재를 이야기하기엔 조금 진부하다고 작가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작품은 작가도 이야기했듯이 소설의 진정한 서스펜스는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있다. ‘저자는 과연 제대로인가?’. 저자는 정말 제대로 독자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치고 있다. 추리소설의 공식을 완전히 무시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추리소설의 형식을 찾아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반드시 읽어봐야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줄거리로는 절대 이 작품의 진가를 냄새도 맡을 수 없다. 그러니 재미있고 스릴 있고 독특하고 뒤통수 제대로 맞고 싶은 독자들은 무조건 이 책의 늪 속으로 빠져드시길... 그 길밖에 느낄 수 있는 길은 없는 그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