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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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감상문을 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주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에는 반전이 많고 이글에는 스포일러가 아주 많을테니,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패스해주세요.
아무것도 모르고 볼때 더 재밌는 소설입니다.


나는 이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다.
단지 서점사이트에 써있는 몇줄의 줄거리 요약을 보고, 형사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했고,
책을 반정도 읽으면서까지도 그렇게 생각했고,
형사 스릴러물이 왜 이렇게 전개가 느린지 의아해 하면서 봤다.
그러나 끝까지 다 보고 난 다음에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 소설은 사이코 드라마였던 것이다.

보완관 두명이 정신병원이 있는 섬으로 간다.
이곳은 정신병으로 인해 사람들을 해친 살인자들을 모아놓는 정신 병원.
그중에 자신의 세 아이를 죽인 여자가 행방불명된다.
보완관 둘이서 그 여자를 찾으러 가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엉뚱하게도 수사들어간지 몇일 안되서 여자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고,
주인공 테디는 몇일간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비인간적인 뇌 수술과 치료법에 의아해하며
임무가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에 대한 얘기이다.

요즘은 이런 류의 반전이 많아서 반전 자체가 깜짝 놀랐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보았으니,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정신병 중에 가장 많은 이야기거리가 나오는 분야가 정신분열일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슬프다.
자기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또다른 사람을 만들어내고,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싶어한다.
그들은, 자기자신을 견딜수가 없어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막바지에는 이런 슬픈 감정에 도취되었다.

미친 아내와 그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던 자신에 대한 용서못할 감정.
아내가 죽인 아이들에 대한 사랑보다 더 컸던 아내에 대한 사랑.
그는 그걸로 미쳐버렸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죽인 아내를 또 죽인 자기자신을 용서할수가 없었다.
그의 환상은 과대망상적으로 부풀려져서,
그는 이 섬에 갖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만의 섬에 갖혀버린 것이다.
갖힌 기억, 받아들일수 없는 진실.
이 소설에서 가장 슬펐던 부분은, 의사가 그에게 그 자신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그제서야 자기자신을 인정한다.
차라리 미쳐있는 것보다 더 한 슬픔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

<다음날>로 이어지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
차분하게 얘기를 끌고 나가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반전, 반전들 외쳐대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충격적인 반전이 들어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반전에 어떤 사연이 있느냐가 아닐까.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고,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슬프기까지 했다.

영화로 제작된다는데, 왠지 영화로 제작되면 좀 뻔해지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소설로써의 재미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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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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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왼손잡이뿐인 나라에 가면 오른손잡이가 비정상이 되듯이,
모두가 좀비가 된 세상에서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그냥 인간이 비정상이 된다.
이 소설을 읽기전에, 제목만으로 보았을때
"나는 전설이다"라는 문장은 나에게는 매우 독보적이고 전사와도 같은 강한 이미지였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문장에서 내가 얻은 느낌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시간은 결국 과거가 된다.
지나간 과거도 과거이고, 현재도 곧 과거가 될 것이고, 미래 역시 더 먼 미래의 과거가 될것이다.
그 지나간 순간 순간은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순간인 "전설"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현재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그저 지나간 사건으로 존재하는 "전설".
소설의 마지막 네빌이 "나는 전설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내게 그런 뜻으로 다가왔다.
더이상 인간인 그는 현재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이제는 사라져버려야 마땅한 과거이고,
지나간 유물이고, 퇴색된 유행같은, "전설"이 되어버린 거라고.
그래서 마지막 그 문장이 참 슬펐다.
더이상 내가 없고, 내가 존재할수 없는 세상에서 과거가 되어버려야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체모를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시작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아내의 장례를 치루고 몇일 후에 아내가 피를 달라고 남편을 찾아오기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이 흡혈귀가 되어버린다.
드라큘라나 앤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서와도 같은 귀족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저 피를 찾아헤매는 좀비에 가까운 흡혈귀들.
여기서 살아남은 한명의 남자 네빌은 매일 밤이면 집을 둘러싸고 아우성을 치며 그를 잡아먹으려 안달난 좀비들도,
대화할 상대, 심지어는 애완동물도 없는 외롭고 갑갑한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몇번씩이나 죽어보려고도 해봤고, 그들과 같은 좀비가 되버릴까도 생각해봤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다 못해 거의 알콜중독자가 되버렸지만,
결국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가 알아낸 것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설득력있었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찾아가서 책도 찾아보고, 연구도 해보고, 백신도 만들어보려고 해봤지만,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그가 좀비에게 당해서도 아니고 결국 자살을 해서도 아닌,
결국은 또 인간의 짓이라는 것이 참 어이없게도 와닿는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이 다수일 경우에는 집단 이기주의와 소수의 권리 박탈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이 소설은 다분히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실적이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멸감.
이런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마도 99%정도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너무 싫다.
다수가 모여야 위력을 발휘하는 군중심리에는 옳고 그름이나 정당함이나
인간다운 양심이나 심지어는 인간으로써 당연한 수치심 따위도 없다.
혼자서는 절대로 남에게 위협을 주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도,
한번 잘못된 판단으로 뭉치기 시작하면 대책없이 잔인하고 비열해진다.
현실에서도, 소설속에서도,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싫다.


책의 반은 "나는 전설이다"이고, 나머지 반은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들이 실려있는데,
왠만하면 책이 두꺼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단편까지 끼어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단편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무서운 이야기"필 나는 것들도 있었고, 이해력 부족탓인지 어떤 단편들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할수도 없었다.
단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신경질적인 남자가 결국 집에 의해서 심판당하는 "매드하우스"였는데,
아마도 그 단편이 기억에 남는 것은 매드하우스의 주인공 "크리스"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부류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죽을 마음도 없으면서 하루하루를 짜증나게 사는 사람.
정말 싫다.
리처드 매드슨의 글에 대해서 감히 평가를 내리자면, 글을 참 신경질적으로 쓰는 사람 같다.
그의 문체는 조급하고, 신경질적이고, 강박관념에 가득차 있는 사람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매드하우스"에 그의 이런 문장력이 잘 어울려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나는 전설이다"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지만,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는 좀비가 소재인 영화들에도 모티브를 참 많이 던져준 듯 싶다.
새벽의 저주. 28일후. 레지던트 이블. 등등등 모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었다.
콘스탄틴 감독이 "나는 전설이다"를 세번째로 영화화한다던데,
기대는 되지만, 제발 주인공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아니길 바란다.-_-;
(캐스팅할까 말까 중이라고 하길래... 일단, 너무 안어울린다.
네빌역으로 숀펜 같은 사람은 어떨까.
왠지 지쳐보이거나 인생이 짜증스러운 인상을 가진 쪽이 훨씬 나을 것 같은데...
물론 블록버스터 급으로 만들 생각인 듯 싶으니, 숀펜을 섭외할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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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는 죽어야 한다 밀리언셀러 클럽 10
니콜라스 블레이크 지음, 이순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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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야수는 죽어야할 운명에 있고, 인간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야수도 사람도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니콜러스 블레이크 <야수는 죽어야한다>


소설을 시작하면서부터 한 남자가 살해를 결심한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얼마 전에 유일한 혈육인 아들도 뺑소니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는 누가 아들을 죽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죽인 뺑소니범을 찾아내서 죽이기로 결심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가 현재 추리 소설가로,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찾아나서고,
결국은 범인을 찾아내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게 소설의 서두부분이다.
서두라고 하기엔 너무 빠른 전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게 하지 않는 소설이었다.
소설의 중반정도까지 읽을때만해도, 어쩐지 주인공 펠릭스의 살해 계획이 너무 허술하다 싶을 정도로
추리소설 답지 않은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게 표현하자면 인간적이고, 굳이 나쁘게 표현하자면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중반부부터 내 예상이 전혀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면서부터 쉬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아들을 뺑소니로 죽이고 달아난 범인을 찾아내 복수를 하려는 것.
이게 끝이 아니었다.
펠릭스의 계획이 너무나 어이없게도 살인범에게 들켜버리고 복수를 접고 돌아서는 순간,
그날 저녁에 뺑소니친 조지가 독살된다.
이제부터가 진짜 소설이었다.
쉬지않고 빨리 읽어내려갈수 있을 정도로 전개도 빠르고, 경감과 탐정의 수사도 수려하며,
쉽고 재밌는 소설이었다.

소설 막바지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소설이 끝날 때에는,
이성적으로는 끝은 약간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동시에 감정적으로는 씁쓸했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역시 숨막히게 옭아매는 완전 범죄에 있지만,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할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한번도 살인을 꿈꿔본적도 없는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짠다고 생각해보자.
남들보다 약간 잔머리가 잘 돌아가고 생각도 독창적이라고도 생각해보자.
살인에 아무 감정을 가지지 않고 계획대로 완벽하게 잘 해 낼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죽여도 마땅한 인간이라지만, 마음깊은 곳에서 솟구쳐오는 양심과 살인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번 기회를 놓치게 할 것이다.
이 소설이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런 장면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죽여도 시원치 않을 인간을 두고도 끊임없이 망설이는 살인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사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점은 그런 점이었다.
물론 중반부부터는 추리소설답게 완전범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에 대한 끈 역시 놓치 않고 있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소설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반부 살인을 결심할 때의 절박한 증오심이 좀더 적나라했더라면,
좀더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동기는 분명 완전히 제공되었기 때문에 불만은 갖지 않겠다.
이 소설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이고 피해자는 가해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p.s 1. 작가 프로필을 읽으면서 놀란 점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버지라는 사실이었다.
띠용~ㅇ.,ㅇ
얼핏 생각하기에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 소설에 등장한다고 해도
꽤 어울릴듯한 느낌을 받았다.
p.s 2. 사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지만,
소설속의 블라운트 경감과 탐정 나이절 스트레인지웨이스의 서로의 정보를 떠보는 대화 방식이
너무 우아하고 신사적이어서 멋있게 느껴졌다.후후..
영국소설이어서인지, 미국 추리소설(베스트셀러라고 할수 있을..)에 등장하는
비교적 직설적이고 통속적인 대화방식과는 많이 다른데,
좀더 귀족적이면서 상대를 깔보지 않고도 무시할수 있는 이런 대화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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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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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거야.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中



누구에게나 청춘은 왔다가 가지만,
유난히도 혹독한 청춘을 보낸자가 있었으니, 이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 알렉스이다.


알렉스는 길거리의 청소년 깡패.
유난히 사악하며, 유난히 영리하고, 유난히 민첩하고 유난히 음악을 사랑하는 깡패이다.
독재자적인 알렉스는 마약탄 우유를 마시며 친구들을 종부리듯 부리고, 낳아준 부모도 패고 협박하며,
그저 특별한 이유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고,
예쁜 여자는 예쁘다는 이유만으로도 강간하고,
남의 집에 처들어가서 부수고, 돈을 훔치고, 찌른다.
이 사악한 청소년은 이미 15살의 나이에 소년원도 한번 갔다온 못말리는 비행 청소년이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부모에게 학대당하면서 크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면서 크지도 않았다.
단지, 이런 폭력적인 삶이 재밌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날, 뭔가 훔쳐볼까하고 들어간 집에서 할머니를 죽인다.
친구라고 믿었던,(정확히는 꼬봉-) 3명의 친구들이 자기를 배신하고,
그는 이번에는 소년원이 아니라 진짜 감방으로 직행한다.
워낙 사악하고 비겁한 성격이어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다른 애들이 시켰다고,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
그리고는, 좀더 일찍 출소하기위해 루도비코 연구 실험대상으로 자원하게 된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그동안 저질러온 초강력 폭력과 강간을 매일같이 영화로 보면서,
알렉스는 고통을 느낀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해본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게 괴로워졌다.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붓는 생각만해도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다.
알렉스가 진짜 착한 아이가 된것은 아니다.
단지 이에는 이, 폭력에는 폭력이라는 루도비코 실험에 희생되서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 뿐.
진정한 의미의 교화도 아닌, 그저 육체적인 교화가 된 것 뿐이다.


이런 실험을 마치고 세상밖으로 나온 알렉스는 더이상 어떠한 폭력도 저지를수 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심지어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항의도 못할 지경이다.
그래도 믿었던 부모에게 배신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떠돌다가 예전에 자기가 강간해서 죽어버린 여자의 남편집에서 보살핌을 받다가도,
자기가 저지른 죄가 들켜버리자 쫓기듯이 도망쳤고,
어떤 사람들에게 도구로써 이용될 뻔했으며,
이런 지겨운 삶,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도, 기어코 살아버렸다.

열 다섯부터 열여덟. 긴 인생에서 거의 아기같았던 시절에, 알렉스에게 벌어진 일들이다.
작가는 자유의지를 옹호한다.
아무리 사악한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인권이 있으니까.
억지로 교화당하느니 어느 순간 자기자신이 깨닫는게 낫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알렉스는 이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루도비코 실험때문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그게 싫어진 것이다.
누구나 매우 심취해있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시들해지듯이, 알렉스 역시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마약든 우유보다는 우유를 잔뜩 넣은 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밤거리를 쏘다니며 이유없는 폭력에 에너지를 쏟아붇기 보다는
음향시설이 갖춰진 자기방에서 음악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길에서 누군가를 협박해 뺏은 돈보다는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강간 대상으로만 보이던 여자가 아름답게 느껴졌고,
나이에 비해 일찍 결혼을 한 옛친구를 보면서 아련한 부러움도 느낀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뤼우는 불안정하고 어딘가 정신적으로 병약한 청소년기를 지나,
안정과 밝은 미래를 떠올리면서 하루를 이어가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전체 인생을 통틀어서 그렇게나 쓸데없는 고민과 쾌락에 몸을 맞기는 때는 아마도 사춘기 때일지도 모르니까.
작가는 청춘을 태엽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말한다.
완전히 어른이 되지도 못하고, 결국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살수 있으면서
자기가 조종당하고, 억압받고, 보호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세상에 자기 혼자서 태어난 듯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시계태엽 오렌지.
두려움을 모르고, 이성을 완전히 사용할줄 모르기 때문에,
불처럼 타올랐다가 얼음처럼 식어버리는 불완전하고도 아름다운,
성인보다 무서운 존재인 소년과 소녀.


처음부터 재밌고, 뒤로 갈수록 더 재밌는 소설이었다.
명작이란 이런데 두고 하는 말이리라.
고전은 재밌다.
하지만 고전이라는 말에서 고루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은
어떤 고전소설들이 난해한 말과 괴리감 느끼게 만드는 교양을 씨부리면서 독자를 가르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소설은 정 반대이지만 말이다.
독자를 "여러분"이라고 규정하고 친구에게 말하듯이 진행되고,
어려운 단어 섞지 않고 비속어를 말하면서도 충분히 메세지가 확실히 전달된다.
가끔씩 반드시 어려운 단어나 확실히 와닿지 않는 모호한 표현을 즐겨서 쓰는 사람을 가끔 보는데,
그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나는 "당신이 한말이 무슨 뜻인지 당신은 알아?"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는 모호하고 교양적인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본인들은 알까.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예술작품을 고르는데 있어서 그다지 매니악한 취향은 아니기 때문에,
쉬운 말로도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
예술작품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미 가치를 잃어버린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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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고든 핌의 모험 환상문학전집 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성곤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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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년의 모험이라 하면 흔히 톰소여나 허클베리 핀과 같은 호기심과 치기어린 객기와 상상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신기한 세상을 탐험하는 발랄만점 얘기라고 생각 될수 있는데,
그런 소년의 모험이야기를 이토록 잔인하게 써댄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구성부터 참 이상한 소설인데, 그 난데없고 충격적인 결말은
독자가 도대체 무엇을 상상해야할지 모르도록 당황스럽게 만들고 보고나서
한참이나 무슨 얘기였을까 궁금함이 밀려오는 소설이었다.

크게 두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첫번째는 난파선에서의 이야기, 두번째는 남극대륙에서 만난 야만족의 이야기.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밀도높은 쪽으로 따지자면 첫번재 에피소드쪽이 훨씬 밀도가 높으나,
검은 피부에, 치아까지 검은 원주민의 이야기 역시 전혀 모르는 것을 대할 때의
당혹스러움이나 공포심이 나타나 있어 나쁘지 않다.
결말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시하다고 이게 뭐냐고 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은 나처럼 읽고나서 한참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아서고든 핌은 친구 어거스터스의 제안으로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예정되어 있던 사람은 어거스터스뿐이어서, 아서 핌은 처음에는 배에 숨어있다가 3,4일이 지난후
다시 돌아갈수 없을 때쯤에 선원들 앞에 나타난다는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배아래 은밀한 공간에 3,4일 분의 물과 음식을 놓고 어거스터스를 기다리며 감금당한채 있던 아서핌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친구가 자기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지만,
어거스터스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배에서 반란이 일어나 애초에 자기가 믿었던 선장과 선원들이 몰살당한것.
그나마 어린 소년이었던 어거스터스만 겨우 살아남아 아서핌을 구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가운데,
아서핌은 탁한 공기속에서 먹을 것도 마실것도 없이 기다리고 있는새에,
기력이 쇠해져 가며 죽을 위기까지 가게되다가
결국은 구출을 당했는데,
상황은 점점 악화가 될뿐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거스터스를 아들처럼 아끼던 선원 피터스와 한편이 되어 배를 장악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바로 그 순간 폭풍이 불어와 4명을 제외한 선원 전원이 몰살당했고,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거대하기만 한 배에서 단 네명이 살아남아
어떻게든 음식을 구해 구조되기까지를 기다린다.

결국 두명이 죽고 살아남은 아서고든핌과 인디언 혼혈인 피터스가 제인호에 의해 구조가 되고
제인호를 따라 항해를 계속하다가 "클락클락" 마을에 이르고,
역시 죽을 위기를 여러번 넘기며 겨우 살아남은
아서고든핌과 피터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카누를 훔쳐 타고 도망치는데....

미국으로 돌아갈 배를 타고 미국에 도달하는 것까지가 소설의 마지막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소설은 중간에 뚝 끊겨버린다.
하얗고 거대한 무언가를 맞딱드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설명하지도 않은채 거기서 끝이 나는 것이다.
소설 후반에 이르러서 거기까지만 설명되어 있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명이
후기로 나온다.
이 소설은 신문에서 연재되던 소설쯤 되었는데, 작가인 아서고든핌이 갑자기 돌연사 해버려서
얘기가 거기까지 밖에 없다는.
완전 미해결로 남겨놓으려고 작가가 단단히 작정한 느낌마저 주는 결말이었다.

이 얼마나 대담한 터치인지.
에드가 엘런 포가 뒷이야기를 상상을 해놨는데 미스테리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거기서 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소스가 떨어져서 그렇게 대충 마무리 지은 것인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그 끝이 너무 난대없어서 당황스럽고 오싹했다는 느낌밖에.

이런 음침함은 아무나 만들수 없는 것일 것이다.
음침함의 밀도가 무척이나 남다르다.
아마 에드가 엘런포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모험소설인데, 모험의 낭만은 없고, 단지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있다.
오싹한 장면들도 꽤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음침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끝없이 굶주려 있고,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식욕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점이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가장 우선인 것은 역시 식욕뿐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빈속에 술도 마시고, 동물을 잡아 날고기를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까지 잡아먹어야하는 처절하기 짝이 없는 상황자체가 두려움을 주고 있다.

뒤가 너무 미스테리하게 끝나버려서 쥘베른이 연작소설로 쓴 아서고든핌의 결말 단편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타당성도 없을 뿐더러 원작의 미스테리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이 소설을 번역한 역자도 억측이라고 써놓을 정도의 잘못된 추론도 있어서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아서고든핌의 모험 뒷부분을 이어보려고 애썼다고 하던데,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소설과 함께 실어놓은 것이니 다른 연작 단편들은 어땠을지 상상이 가기도 하고...

오랜만에 정말 무서운 소설을 보았다.
음침함.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심. 인간의 이기심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알수없는 미스테리함을 깔고 진행되는 이야기라 개인적으로는 인상깊은 소설이었다.
첫번째 난파선의 에피소드는 어쩐지 이벤트 호라이즌의 정서와 비슷하기도 했다.
책 후반부에 출판사의 리뷰 역시 독자가 놓치고 지나갈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나
함축적인 의미를 풀이해놓아서 마음에 들었다.
단, 오타 좀 줄였으면.
오타가 너무 많더라....-_-;

여름엔 역시, 공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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