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사, 근대편 5
ㅡ식민지의 젊은이들, 오늘의 젊은이들ㅡ

이번 글은 청년의 과거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보고자 한다.

1. 청년이란 단어의 유래
청년은 근대 이후 서구와 일본에서 도입된 말이다. 전통시대에는 소년, 자제라고 칭했다. 청년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오늘날처럼 ‘젊은 사람‘,‘젊은 세대‘가 아니라 ‘젊은 시기‘,형용사적으로는 ‘젊은‘정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8세기 이후에 유럽에서 아동과 성인 사이 과도기를 두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생겨 ‘청년‘이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1880년 일본의 초기 기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 YMCA를 기독청년회로 번역한 이래 세이넨(청년)이 젊은이 세대를 일컫는 일반말로 정착했다.

2. 1910년대
ᆞ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결과적으로 애국계몽도 실패했다. 그 대신 근대 학교 교육을 받은 새로운 지식층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청년의 등장으로 정치적 조직화와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ᆞ1910년대 ‘청년‘은 일상적인 용어로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청년과 소년이 분리되었다.
ᆞ사람들 사이에서 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사회운동의 주역이 되었던 사람들이 근대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었다.
ᆞ청년들이 3ᆞ1운동에서 민중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민중은 운동 속에서 학생들의 활약을 보면서 근대 교육을 받은 청년들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청년 지식인들이 새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3. 1920년대
ᆞ1920년대는 청년운동의 시대였다.
ᆞ먼저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청년을 근대화ᆞ문명화를 선도하는 주체, 민족을 통합하는 상징적 주체로 생각했다.
이들이 이상으로 제시한 청년은 ‘수양‘을 통해 근대적 합리성을 내면화하고 문화운동의 계몽적 주체였다.
ᆞ민주주의적 가치와 적극적 실천활동을 중시하는 급진적 청년상들이 제기되었다.
ᆞ청년에게 혁명적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부여했다.
이 들의 청년은 ‘자각‘이라는 계몽적 주체화를 통해 청년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청년상이 일치한다.

ᆞ1920년대 청년운동의 몇 가지 문제점
☆민족주의자들이 내세운 청년론은 지극히 엘리트주의적
:점차 청년 대중들의 마음이 멀어지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엘리트 중심의 운동은 점점 대중적 기반을 잃어갔다.
☆사회주의 청년론은 초기의 상상력을 잃고 도식적인 계급혁명론 속으로 빠져들었다.
☆‘청년‘이 여성을 완전히 배제한 용어였다.

4.1930년대
ᆞ1930년대 제국주의 권력층은 청년층에 대한 현실적, 이대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했다.
ᆞ청년이 문제해결의 주체에서 문제 그 자체로, 사회를 이끌어갈 존재에서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로 전락했다. 사회 문제가 된 청년은, 사회의 ‘선구, 지도자, 명의‘들의 해결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상은, 권력이 제시하는 청년의 심리학적 특성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상당히 유사한 면을 지닌다. 이는 총독부의 이데올로기 통제가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ᆞ1930년대 지식인들 중 파시즘적 청년담론이 확산
ᆞ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총독부 권력의 청년 담론만이 지배했다.

5. 해방 이후
ᆞ해방은 청년에게 새로운 국가 건설의 역군, 건국의 초석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ᆞ해방 후 청년은 좌우의 대결이 가장 격렬하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ᆞ1950년대 이후는 교육의 확산으로 청년학생들이 증가했고 혁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4ᆞ19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한 ‘젊은 사자‘들은 ‘순수‘와 ‘정의‘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ᆞ1960년대 이후 대학의 성장으로 학생운동은 민주주의를 한 투사로서 청년을 형성했다.

6. 청년의 의미
청년의 사회적 의미는 계속 변화해왔다.
청년이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주체들이다. 연령마저도 일정하지 않다. 기성사회와 새로운 세대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변화하는 젊은이들이다. 어떤 면에서 비어 있는 주체들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한마디로 오늘의 청년을 정의할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나간 듯하다.
(166쪽)


청년인 나는 기성사회와 새로운 사회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그 다리 역할을 잘 하고 있나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아이에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지 반성해봐야겠다.

그리고 이 장은 <꼰대, 김철수> 책과 드라마<경성스캔들>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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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사 : 근대편 쟁점 한국사
이기훈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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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한국사, 근대편 3
ㅡ3ᆞ1운동, 서로 다른 세 개의 기억ㅡ

교과서에서 배우는 3ᆞ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전민족항쟁, 민족자결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립등이다. 그것은 국가, 국민의 관점에서 바라본 성격이다.

이 글에서는 3ᆞ1운동의 또 다른 측면을 3ᆞ1운동에 참가했던 세 사람의 삶을 통해 복원해보고자 한다.
주인공 세 사람은 양주흡(일본에서 유학 중인 학생), 장병준(유학을 다녀온 인텔리 청년), 이덕순(경기도 안성의 농민)이다.

1. 양주흡 : 22세, 도쿄 유학생
도쿄 유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일본정부에 조선 독립의 문제를 제기하고 각국 대사관에 가서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으나 모임은 해산되었고 주최 측은 경시청에 소환되었으며, 집회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양주흡이 보기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고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인맥이 넓지 못했다.
고종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도쿄에도 전해져 양주흡은 미국 유학 계획을 취소하고 조선으로 귀국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3월1일 오후 4시 50분 경성역에 도착했던 그는 격렬한 만세 시위 대열이 이미 경성 시내를 떠났다. 3월 내내 만세 시위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녔으나 늘 한 발 늦거나 실패로 끝났다. 더이상 울분을 견딜 수 없던 차에 3월 25일 밤11시나 되어서야 경복궁 부근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1919년 4월 14일 경성. 양주흡이 하숙집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난 후 메이지 대학교에 복학했다. 졸업 후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발기회에 함경남도 이원군 창흥노동친목회 대표로 참가하기도 하고, 향리에 영신서당이라는 강습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2. 장병준 : 27세, 니혼 대학교 유학 포기, 귀국
3월1일에 장병준의 기록은 없지만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투쟁 한가운데 있었을 것이며 3월 5일 무렵까지도 서울에서 투쟁을 준비했을 것이다.
고향에 내려온 장병준은 장산도 주민 수십 명을 대리 마을 사정에 모아놓고 연설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참여자는 수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이라 파급력이 컸다. 이날 오후 2시까지 만세 시위 후 김극태, 고제빈 등과 함께 바로 섬을 떠났다.
이 날이 3월 18일로 광주에서 3월 10에 일어난 것이나 영암, 목포에서 4월에 시위가 일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3ᆞ1운동이 서울과 평양 등 대도시에서 먼저 일어나고 경부선 등 간선 철도를 따라 순차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견해는 수정되어야 한다.
장병준의 수배 인상착위는 실제 모습과 완전히 달랐는데, 장산도 주민들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경찰에게 거짓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3. 이덕순 : 41세,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내가천리
아들 혼사 준비로 경성에 왔다가 3ᆞ1운동 소문을 들었다. 그는 이미 장가갈 아들까지 둔 나이지만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원곡의 3ᆞ1운동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내가 조선 민족이다‘라는 자각이 그를 움직였다.
4월 1일, 이덕순과 원곡면 사람들에게는 운명의 날이었다. 이 날이 음력 3월 1일이라 작심하고 크게 일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이덕순과 최은식, 이근수는 집집마다 다니며 주민들을 모아 1000여 명이 등불과 횃불을 들고 모였다. 이덕순은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면장을 꾸짖고 만세를 부르게 했다. 면장을 앞세워 양성면으로 출발했고 군중은 뜻밖에 원군을 만났다. 삽시간에 2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양성주재소에 불을 질렀다. 주재소를 불태운 이들은 양성우편국으로 가 전신주를 넘어뜨려 전보와 전화통을 불통시켰고, 일장기를 불태웠다. 주변 일본인 잡화상과 대금업자의 집도 습격했다.
다음 날도 사람들이 모여 원곡면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경부선 철도의 침목을 파괴하다 일본 수비대 소식으로 모두 흩어졌다.
4월 2일 이후 아예 이름을 바꾸고 사라진 이덕순은 10년도 더 지난1931년에 체포되었지만 계속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해 1년 만에 특사로 풀려났다.


위 세 사람을 통해 본 3ᆞ1운동
ᆞ이들이 변방과 주변, 전통적 공동체에서 근대적 민족과 민중의 세계로 들어간 계기
ᆞ농민투쟁의 마지막 단계라는 성격 포함
ᆞ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기원
ᆞ3ᆞ1운동이 공동체 단위의 저항
ᆞ‘민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 점차 확고


오늘날과 비교
오늘날의 저항이 다양한 주체들의 저마다 다른 목소리와 희망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양성이 한곳으로 수렴하는 것도 알고 있다.
3ᆞ1운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 깊이와 넓이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는 더 공부할 가치가 있다.


이 장을 마치며
이 책은 2016년을 촛불의 해라고 할만큼 촛불시위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3ᆞ1운동도 촛불시위와 비교가 되는데, 예전의 시위는 학생운동에서 특정집단으로 옮겨졌다면 2016년도 촛불은 시민들의 촛불이었다. 3ᆞ1운동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이유로 모였고, 공동체적 성격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3ᆞ1운동과 닮아있고, 이것이 민족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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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사 : 근대편 쟁점 한국사
이기훈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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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공부한당‘에 참가하게 되어 받은 책 <쟁점한국사, 근대편>이다.
역사책이라 해서 근대부분을(일제강점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사교과서처럼 사실에 기반해 나열해 놓은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생각과 달리 강화도조약을 맺은 즈음하여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국가의 분위기와 해석 그리고 지금의 우리 모습과 비교하여 적었다.

가장 먼저 ‘동학농민전쟁을 다시 생각한다‘가 나온다.
우선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배운 나는 동학농민전쟁이라고 바뀐 사실에 놀랐다.
역사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해석이 달라진다라고 이 책은 앞서 설명한다. 그리고 연구가들의 생각에 따라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므로 10명의 연구가들이 있으면 10가지의 해석이 있기 마련이라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도가 시대착오적이고 반학 문적이다고 했다.

그런 시선에 따라 우리는 5ᆞ18광주민중항쟁에서 5ᆞ18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 변경을 경험한 바 있었고, 이제는 동학농민운동이 아니라 동학농민전쟁이라는 명칭으로 기억해야 하나보다.

동학농민전쟁에서 발표된 포고문인 ‘무장포고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람에게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자애롭고 현명하고 슬기롭다.

그러나 오늘날 신하된 자들은 보국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갓 벼슬자리만 탐내며 (국왕의)총명을 가린 채 아첨을 일삼아 충성스러운 선비의 간언을 요사스러운 말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폭도라 일컫는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보국하는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리들만 득실대어 인민들의 마음은 날로 더욱 어그러져서 들어와서는 즐겁게 살아갈 생업이 없고 나아가서는 제 한 몸 간수할 방책이 없다. 폭정은 날로 더 더해지고 원성이 이어지고,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분별이 드디어 무너져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관자가 말하기를 ˝사유ㅡ예의염치ㅡ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곧 망한다.˝라고 했다. 바야흐로 지금의 형세는 옛날보다 더욱 심하다.]라고 되어있다.

전근대 민중운동에서 민중이 ‘반란‘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생각과 의도를 이토록 명확하게 밝힌 전례는 세계사제으로도 거의 없다.
민중은 지배 엘리트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문화영역이나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민중은 지배이념이나 체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민중의식이나 지향도 민중운동이 발발했던 당시 사회의 지배체제나 이념과 무관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지금의 우리모습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주까지 촛불을 들고 광장에 앉아 한 목소리를 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체제이념을 바탕으로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지배권력의 부당함을 질타했다. 촛불집회뿐만 아니라, 민주공화국과 관련한 다양한 투쟁들도 당시의 감각들과 뗄 수 없는 관련을 가진다.

동학농민전쟁은 보수적이고 유교적이다라는 단순한 해석들이 많지만, 당시 시대 모습들을 보면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것 바탕 위에 민중이 정치체제에 올바르지 않게 일을 하고 있고 원래의 뜻을 헤아려 국정을 살피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 역사를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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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근대편 을 읽는 저~ 제가.읽는 이쪽에도 한나라 무제에 대해 나와요 . 지금은 부여 편을 보다 메모하고 있는 중인데 ㅡ 이렇게 보니 정말 좋네요 . 책 맛도 보고!^^ 저도 미진님 따라 해 볼까봐요!^^

jjinyyeop_n 2017-03-15 19:21   좋아요 1 | URL
저야말로 송희님 따라 해야되는데요.(저 이 글 비공개인줄 알고 있었어요. 수정해야해서;;ㅋ) 일주일 두 번 올려야되서 오늘 적었는데, 송희님 글 보고싶어요. 제가 참고해야할부분이 많으니까요^^

2017-03-15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6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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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국어와 국사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국사와 국어만큼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구나 싶다.

국어는 문법이 어렵다는 이유로 싫어했다. 아무래도 시험을 쳐야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생각이 이해해야 한다 보다 앞 서 있어서 였겠다.
하지만 글을 한 문장이라도 쓰다보면 틀린 곳은 없나? 맞춤법은 맞게 썼나? 라고 고민하는 모습이며, 내 문장들을 읽으며 매끄럽지 않다고 느낄때나, 글이 유난히 쎄다고 느낄때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나, 아~ 나도 글 좀 잘 썼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력이 특이했다. 20년 넘게 교정 일을 본 작가이기 때문에, 보통 글쓰기 책이면 이렇게 쓰세요~~ 하고 글을 쓰게 되는 과정들을 나열하는 책들이라면, 이 책은 다 쓴 글을 잘 다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순간 힘을 빼는 글을 쓸 수 있을까싶었다.
반은 성공한거 같다. 학창시절 배운 문법들을 알려주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부분들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ᆞ‘것‘을 많이 쓰는 버릇.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ᆞ존칭을 잘못 쓰는 예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이런 잘못 쓰인 높임말은 sns에 퍼져서 고쳐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다^^;)
ᆞ과거형에 어미 ‘-던‘을 붙여 관형형 만들어 쓰는 예
:배웠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배운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가장 기본 원칙을 알려준다. 가장 기본 원칙은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는 것이다.(195쪽)

ᆞ195쪽
한글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이 책으로 문장 모양에 도움을 받았다면,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생각을 다듬는 과정을 계속 연습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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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1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딱 제 모습을 ...끄응 ~~ ㅎㅎㅎ
것 , 던, 의 , 등등 의식하고 고치려니 말들이 더 길어지는 ㅋㅋㅋ 기현상 !!

jjinyyeop_n 2017-03-15 11:50   좋아요 1 | URL
저도 똑같아요. 이 책 읽고나니 글 적고 ‘것‘이 몇 번 들어있나 읽어보게 되요. 좋은건지 싫은건지...

[그장소] 2017-03-15 15:10   좋아요 1 | URL
히이힝~ 우린 말들이로군요 . 말에 묶인 말 ..^^ ( 다그닥 다그닥~~!!^^)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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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쪽
저는 처음 임관할 때부터, 실비가 함정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게 한번은 터진다는 생각을 했고. 그건 이제 97년 이후에는 싹 정리가 됐죠. 지금 실비 관리하는 데는 하나도 없으니깐. 그 당시에 실비를 받으면서 마음 편한 판사가 있었겠습니까? 실비 그렇게 돌아가는 거 뻔히 알면서.
그 당시에도 찜찜했을 것이고. 그거만 없었으면 지금 법원이 더 큰소리치겠죠. 그런 약점이 있으니까 지금 사법개혁 말이 나와도 항상 약세고 그렇죠.

ᆞ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문화(인맥문화, 청탁문화)에 나는 얼마나 깊숙히 들어있나 생각했다.

꼭 사법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안부도 잘 묻지 않다가 도움이 필요할때만 주위사람들을 찾는건 아닌지 돌아본다.

ᆞ이 책을 읽은 후로 뉴스기사를 좀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가령 헌법재판소의 판사들 이름 옆에 기수가 나열된 사진들이라던지, 특검팀이 술과 골프를 끊고 일을 했다라던지 말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그냥 흘러보냈을 것들이지만 읽은 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에 눈이가고, 나의 의견을 덧붙이게 된 것 같다.

94쪽
저는 처음 임관할 때부터, 실비가 함정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게 한번은 터진다는 생각을 했고. 그건 이제 97년 이후에는 싹 정리가 됐죠. 지금 실비 관리하는 데는 하나도 없으니깐. 그 당시에 실비를 받으면서 마음 편한 판사가 있었겠습니까? 실비 그렇게 돌아가는 거 뻔히 알면서.
그 당시에도 찜찜했을 것이고. 그거만 없었으면 지금 법원이 더 큰소리치겠죠. 그런 약점이 있으니까 지금 사법개혁 말이 나와도 항상 약세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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