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여자들의 세상>

2013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2013.3)





  대체로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영화를 본다. 가끔 비슷한 공연을 보고 또 비슷한 유머를 나눈다. 아사히 맥주와 신세계백화점 지하 베이커리로 이루어진 공동체, 도시생활자의 삶은 균일하게 개성적이게 되기 마련이다. 클래식 공연 시작 전, 어두워지기 전인 무대를 묵묵히 응시하는 사람들의 옆얼굴을 보며 이들을 이 공연장까지 이끈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게 될 때가 있다. 손보미의 소설 <여자들의 세상>은 그 어두워지기 전 무대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게 한다.


  그들은 결혼한 지 5년 정도 된 부부로 번화가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외국계 금융회사에 근무중이고 그의 아내는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짧고 명확한 문장을 읽다보면 이 부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게 유일한 고민이던 부부. 그는 아내를 위해 ‘문화 콘텐츠를 다루는 전문 기관’에 근무중인 옛 애인을 만나게 된다. 검정 트위드 원피스, 체코식 맥줏집, 플란넬 잠옷, 장 자크 밀레노 감독의 영화, 그들이 선택한 것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게 한다. 구체적인 취향이 나열되고, 스타일이 직조된다.


  지난 해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폭우>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무엇이 불길한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짙게 드리워진 파국의 그림자를 감지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세련된 남자는 갈등하고 의심한다. 선량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고 있는 아름다운 옛 애인,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조금 피곤한 아내. 시온산의 영원한 사랑을 말하던 남자는 어느새 “그는 신성한 사랑의 맹세와 서약이 점점 사라져가고 탐욕과 추악함으로 점철된 음란함만이 이 세계에 남아있다고 느꼈다.”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내의 공연장을 방문한 피로한 사내들의 얼굴을 보며 “도대체 저들은 세상의 어떤 끔찍한 면을 보았을까......?”라고 생각하는 남자. 부족할 것 없는 이 세계에서, 남자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독자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진 족속에 불과하니까”라고 대상 수상작 <소설작법>은 말한다. 그러나 소설 읽기가 곧 나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 되는 이런 소설을 만나면 절로 매혹되고 만다. 등단 7년차 이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2012년 3월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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