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계속 노래했다. 1980년 5월 광주, 소녀들은 그 시간의 피를 기억한다. 공선옥의 이 소설을 읽어내기까지 여간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 마을에 모여 살던 여자들이 5월 광주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전하는 소설 속 목소리엔 귀기가 실려있어 절로 등이 서늘해진다. 순애도, 정애도, 묘자도 용순도.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부모가 없었고, 한 남자를 사랑했고, 왈가닥이었고 이런 사소한 소녀들의 개성은 모두 흐려진다.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그네들은 말을 잃을 뿐이다. 말을 잃은 자에게는 노래만 주어진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노래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건 사람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이 죽었다. 그 끔찍한 일 이후,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감히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박대한 것 역시 꼭 우리처럼 순하고 평범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었다. 지금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 역시, 꼭 우리같은 사람들이다.


계엄군에게 짓밟힌 후 제 아내인 묘자를 학대하는 박용재의 가여움과, 그 박용재를 감싸는 묘자의 위대한 사랑. 평범하고 도덕적인 이들은 묘자를 미친년이라 비난하지만, 묘자의 삶의 신산스러움은 알지 못한다. 제 아내를 보지라고 부르는 사내의 광기와, 그런 사내안의 짐승을 밤새 안고 있다 끝내 사내를 잃고 만 여자의 비극을 어떻게 용기 없이 읽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이 노래하는 여자들의 삶을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정도 용기도 없이 삶의 진실을 알 수 있게 될 수 있다면 그게 더 부조리한 일이다. 정말 그들이 썼을 법한 ‘진짜’ 그들의 말로, ‘진짜’ 소설이 말해야 할 가치를 말하는 힘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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