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을 오랜만에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떠신지요. 지금의 근황과 지금의 기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세요!

 

이현수: (나흘)은 저에게 작가로서 한 분기점 같은 소설이에요. 매 작품이 그렇지만 특별히 (나흘)은 제  한계를 좀 뛰어넘고 싶었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넉넉히 투입해 쓴 소설이라 더욱 애착이 커요. 지금은 (나흘)을 막 떠나 보낸 터라 안에서 뭔가 쑥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돌아앉아 연쇄살인에 관한 또다른 장편을 쓰는 중입니다. 떠나간 애인을 빨리 잊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새 연애니까요.   

 

 

 

 

소설 <나흘>은 제목은 처음 들었을 때 독특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나흘이 상징하는 바를 언뜻 알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현수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나흘'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더불어 제목을 어떤 방식으로 정하시는지 궁금해요.

 

 이현수: 단적으로 말하면 (나흘)은 한국판 홀로코스트!  


그래서 첫 제목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두번 째 나온 것이 "붉은 매미". 이 책은 기존의 전쟁소설과는 달리 웃기는 부분도 많아서 두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여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나흘". 

 

아니, 까놓고 말하면 동료들이 위의 두 제목을 듣고는  우-  하고 일동 합창하는 바람에 급히 (나흘)로 바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보다 제목 정하기와  인터뷰나 독자들과의 만남 같은 행사가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거 누가 대신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     

 

 

 

이 소설은 조선 말에서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까지 내려온 역사적 사실을 짚어가는 요소가 많습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소설의 접목을 많이 시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특별히 그런 작업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이유가 있다면 그 동기가 되었던 부분이 궁금합니다!

 

이현수: 우리 모두가 역사의 물길에 발 담그고 있는데 어찌 근원을 외면할 수가 있겠는지요? 더구나 전  노근리 쌍굴을 오면가면 지나다녔는데  어찌 (나흘)을 안 쓰고 견디겠습니까.

 

십수 년 글을 쓰다 보면 작가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쓸 수 있는 전문 분야가 하나씩은 생기게 마련인데, 저 같은 경우는 기생이나 내시가 그래요. 나흘에 나오는 조선의 마지막 상선 반종학을 쓸 때는 이상하게  파지가 한 장도 안 나왔어요. 꼭 내가 그 시절을 살아본 것 같은, 하여 내 전생이 몹시 궁금했던 게 기억납니다ㅋㅋ   

 


 

이 소설의 인물 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괴롭히고 매력을 느끼고 애착이 된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이현수 : 당연히 뻐들네.  (나흘)의 키포인트인 셈이죠.  비밀 속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는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는 진경에겐 최고의 훼방꾼이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죠. 내면에 천사와 악마의 영혼이 동시에 깃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사람.  일명 개눈깔이라고 불리는 의안과 산발한 머리, 육중한 몸 등 기괴한 모습의 뻐들네를 내가 이토록 사랑할 줄이야... 


 

 

선생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중에는 소설을 공부하고 소설을 쓰고자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분 들에게 소설쓰기의 괴로움과 소설쓰기의 즐거움을 공개해주세요.

 

이현수 : 소설 쓰기의 괴로움이라면 영감이 안 떠올라도 써야 하고, 안 써져도 책상에 앉아서 무조건 써야하는 것. (마치 줄 돈도 없는데 악질 채권자가 대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 대부분 이런 날들의 연속임)

 

소설 쓰기의 즐거움이라면 안 써져도 무조건 쓰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빨려들어가서  정신줄 놓고 쓸 때(이럴 때면 원고료가 적다는 생각도 안 나고 무한대의 자기 긍정,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임. 아쉽게도 요런 날은 가뭄에 콩 나듯 함)    

 

 

 

6) 이현수에게 '나흘'이란?

 

이현수 : 날 알뜰히 파먹은,  아주 나쁜 애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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