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 - 조선인 가미카제에서 김형욱 실종 사건까지, 기록과 증언으로 읽는 대한민국사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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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있는 한국 현대사,라는 제목의 묵직한 느낌과는 달리 이 책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은 왠지 조금은 흥미를 유발하는 짧은 스토리처럼 엮여져있어서 좀 당황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에 더 큰 관심을 갖게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접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더 좋았다. - 이야기를 두어꼭지 읽고 난 후에야 저자의 머리말을 읽고 이 책이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 연재물을 엮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구나, 이해하게 된다.

3.1혁명이나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얽힌 이야기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청원운동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다시 한번 정확하게 그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오래전부터 미스터리처럼 전해지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기는 했지만 역시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한 것이고 어렴풋이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옛날 학창시절에 ‘친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없었다고 기억하는 그 시대에 국사선생님의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친일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놀라웠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유한양행은 친일기업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유한양행의 창업주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기업경영마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긴데다 그 후손들 역시 선친의 뜻을 이어 기업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 지금은 그 후손들을 찾지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유한양행에 대한 혼란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명확히 알게 되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유한양행은 독립운동을 한 형 유일한 박사의 위업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친일을 한 동생의 행적은 감춰두고 있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유한양행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새삼스럽게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니 그것을 감추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일제치하 친일을 한 매국노들의 친일행적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리 민족의 얼을 살려내려고 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칭송할 수 있어야하겠다. 그 사람이 일본인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사실 지금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언하고 역사적 자료를 찾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는 일본인들도 많지 않은가.

치욕의 역사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분노가 일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된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는 오랜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이념 이데올로기로 나뉘어 분단이 된 후 독재정권이 길어지고... 그러면서 사회주의자들이나 북쪽으로 넘어간 독립운동가, 예술가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우리가 하나하나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념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여운형의 이야기도 맘에 남는다. 오래전에 여운형에 대한 장편소설을 읽으며 왜 우리의 역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로비만 열심히 했던 이승만을 더 높이 평가했을까... 생각해보면 이념으로 나뉘어 분단된 현실을 실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특히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독립운동가 김시현이 이승만 암살시도를 이유로 훈장을 못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일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고, 5.18 광주민주항쟁의 주범들이 활보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

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는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의의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올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 더 이상 숨기거나 묻혀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이 없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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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선 Oslo 1970 Series 2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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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황무지.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어떤 이들은 공포를 느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 있다는 공포, 극한의 고독. 《미드나잇 선》은 그 지독한 외로움에 관한 책이다.”

이 소설에 대한 요 네스뵈의 한 마디가 나를 놀라게 한다. 응? 지독한 외로움에 관한 책,이라고? 아니, 어쩌지? 나는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이 책에 대한 내 느낌을 딱 네글자로 표현했는데. ‘연애소설’이라고. 이건 요 네스뵈의 흔치않은 연애소설이고, 달콤하고 쫄깃거린다기보다는 두려움이 넘치는, 숨막히게 조여오는 긴장감에 심장이 죄어드는 느낌을 담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을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라서 그의 새로운 시리즈로 느껴지는 이 오슬로 시리즈는 너무 가볍게 읽어버리게 되는 느낌이다. 조금은 예상이 되는 이야기의 전개가 그저 그렇게 느껴질 즈음 왠지 그 힘을 뺀듯한 킬러 울프의 모습이 해리의 모습과 교차되며 그만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아니 굳이 해리 홀레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 오슬로 시리즈의 킬러 올라브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된다. 요 네스뵈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모두 세상의 슬픔과 고독을 품고 있지만 또 그 이상으로 사랑을 품고 있기도 하다.

킬러 울프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킬러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어쩌다보니 킬러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그러니까 자살인 것으로 판명난 친구가 마약상 호프만에 의해 자살로 꾸며진 타살이 되어버리고 그를 죽인 사람이 곧 울프라고 믿게 되어 울프는 호프만의 부하가 된다. 그런데 실상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킬러인 울프.

그의 운명은 이렇게 떠밀리듯 쫓겨가고 있는데 결국 누군가를 죽여본적이 없는 그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길이 그의 목숨을 내놓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는 해가지지 않는 황무지, 저 먼곳 핀마르크로 숨어들게 된다.

이 이야기는 진짜 킬러의 추격을 피해 핀마르크로 숨어들게 된 울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그 결말에 가까워오면서 그가 결국은 해피엔딩을 이끌어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의 전개가 예상이 된다고 말한 것이지 그러한 결론으로 이르기까지의 세세한 플롯이 다 예상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요 네스뵈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묘미를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은 현재에서 계속 미래의 시간으로 흘러가는데 책을 읽는 우리는 미래의 결과에서 과거의 원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요 네스뵈의 글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나 역시 그래서 요 네스뵈의 글이 좋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가끔은 잔혹하게 묘사되는 죽음의 장면은 읽기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러한 죽음의 장면들과는 전혀 다르게 아기의 새 생명을 축복하고 필요없는 죽음을 피하려고 하는 킬러 울프의 본성, 죽음을 피해 도망치고 있지만 그 두려움에 맞서야 할 때는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울프의 모습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어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간혹 전혀 예상치 못한 악행에 놀라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선의의 모습이 나타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기도 하기에.

뭔가 추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만 미드나잇 선을 읽은 독자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미드나잇 선을 집어들어 쓸쓸함이 감도는 핀마르크의 황량한 고독속으로 들어가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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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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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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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이라는 내 입장에서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10인의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들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도 있고, 내 인생을 바꾼다거나 0.5cm정도로 살짝 비껴가게 할 만큼의 책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단지 책에 대한 이야기일뿐이었다면 그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 인터뷰의 주제가 더구나 이라면 더 관심이 가지 않을수가 없다. 탐독은 인간에게 존엄을 선물하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들어주는책에 대한, 그 중에서도 나를 바꾼 책, 내가 바꾼 삶이라는 주제로 작가, 사회학자, 무용가, 영화감독, 음식연구가에 이르기까지 10명과의 인터뷰를 한 권으로 엮어낸 책이다.

사실 이 책에 그리 큰 관심은 없었는데 목록에서 인터뷰이를 보고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고, 그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책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유명한 작가들이 많았기에 반 이상의 인터뷰이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고 단순히 작가로서만 알고 있었던 그 이면의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해서 더 좋았다.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에 대한 이해는 좀 더 깊어진듯한 느낌이 들어 이 책을 읽은 후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 있어서 책은 김중혁 작가가 이야기했듯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삶의 궤도를 변화시켜버린다기보다는 지금의 위치에서 0.5cm정도는 슬그머니 옮겨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움베르토 에코의 종이책의 불멸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종이책과 킨들을 루브르 박물관의 2층 난간에서 집어 던졌을 때 종이책은 조금 구겨졌을 뿐이지만 전자책리더 킨들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겉보기에는 우스꽝스럽지만 실제로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이야기는 정말 의미심장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10명의 유명인들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가볍게 책을 쓱쓱 읽어나갔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간에게 존엄을 주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들어주는책에 대해 나 역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그 시작은 멍때리고 앉아있다가 문득, 이 수많은 책들 중에 딱 한권을 끄집어 내어 읽어야만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해보게 되면서이다. 그 고민이 깊어지면 내 삶의 모습을 변화시킨 책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제 나의 책 이야기를 해볼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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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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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러리스트의 아들입니다... 만약 나라면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잭 이브라힘이 이야기하고 있듯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에 둘러싸여 어린시절부터 모멸과 폭력, 학대를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면 과연 두려움과 분노,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랍비 메이르 카하네를 총으로 살해하고, 수감된 상태에서도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모의한 엘사이드 노사이르의 아들인 잭 이브라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그는 아버지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커져갔다. 테러리스트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미국 사회에서 단지 이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멸당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데 테러리스트의 아들임을 밝히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그리고 그의 선택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얼마전에 읽었던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떠올렸다.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동생인 마이클 길모어의 가족사 이야기는 죄의 근원과 그에 대한 보속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사형수인 게리 길모어의 통제되지 않는 감정분출의 근원에는 폭력과 불행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거쳐 뭔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법제도의 살인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보여지는 것 그대로의 기나긴 이야기와 테러리스트의 아들인 잭 이브라힘의 이야기는 어딘가 닮아있다고 느꼈다.

이브라힘은 그의 아버지가 하룻밤 새 미국에서 마음이 돌아선 것이 아니라 우연히 닥쳐오는 추악한 현실과 불운을 겪으면서 천천히 마음이 굳어갔음을”(41) 말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로 인해 가족의 생활환경이 바뀌어버리고 오해를 받으며 두려움과 모멸감에 기도에 전념하던 노사이르는 점차 코란에 빠져들고 근본주의자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이때쯤까지도 나는 그저 그렇게, 그의 이야기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변명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브라힘의 불행한 성장과정을 온통 뒤덮는 증오와 폭력 상황 안에서 그 역시 자신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게 타인에게 폭력을 휘둘러보기도 하지만 약자에 대한 폭력과 타인에 대한 증오가 자신을 해방시켜주지도 않고 기쁨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가 무고한 죄인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테러리스트임을 받아들이고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모든 폭력과 증오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기로 선택을 하고 테러리스트의 아들이지만 자신을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친구를 만나며 이브라힘은 점차 공감, 평화, 비폭력의 길을 가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브라힘의 선택은 마이클 길모어의 고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브라힘의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의지와 그의 선택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 마음을 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책에서 편견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선 취약한 사람을 찾는다. 자신감, 소득, 자부심, 활력을 잃은 사람을, 아니면 삶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을. 그 다음 그를 고립시킨다. 그를 두려움과 분노로 채우면, 그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 캘버턴 사격장의 사람 형상을 한 얼굴없는 표적으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날 때부터 증오를 훈련받은 사람도, 마음이 비뚤어지고 무기처럼 된 사람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선택할 수 있다. ... 나는 공감이 증오보다 힘이 세다고, 공감을 퍼뜨리는 것을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공감, 평화, 비폭력. 이것은 내 아버지가 창조하려 한 끔찍한 세상에서는 기이한 도구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비폭력으로 분쟁을 해결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동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를 방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싸움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을 인간으로 대하고, 나와 그들이 공유하는 욕구와 두려움을 인식하고 복수보다는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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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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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폴 오스터의 글을 읽었다. 우리에게 폴 오스터가 알려지기 전부터 나는 그의 작품들이 번역될때마다 서둘러 읽기 시작했고 전작주의자가 되다시피 그렇게 그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그의 새로운 작품이 번역되어 나올때마다 읽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작품은 꾸준히 읽어왔는데 그것 역시 언젠가부터 뜸하게 되었다. 당치않게도 폴 오스터의 작품에 매너리즘이 생길리도 만무한데, 나 혼자 괜히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잠시 폴 오스터와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말 꽤 오랫만에 읽은 폴 오스터의 [내면 보고서]는 다시 폴 오스터의 글을 마구 읽어보고 싶게 만들고 있다.

내 비루한 기억력은 분명 빵 굽는 타자기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폴 오스터가 그 작품을 언급할때마다 이런 글이 있었나? 하고 있을뿐 그의 작품에 대해 많은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작품을 십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면 보고서]는 폴 오스터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의 이야기를 2인칭 시점으로 설명하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크게 구분하자면 첫장은 유년기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두번째장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영화 이야기, 세번째장은 그의 청년, 아니 갓 성인이 되어가던 시기인 십대의 마지막시기와 이십대초반의 청춘 시절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편지글이 담겨있는 세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책의 뒷부분에는 앨범이 덧붙여져 있는데 그 앨범에는 흑백의 사진이 담겨 있고 그 사진을 넘겨보고 있으면 앞부분에서 읽은 폴 오스터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며 그의 이야기들을 다시 되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 한 부분을 딱히 집어내어 말한다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책을 읽다가 폴 오스터가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부분은 괜히 한번 꺼내어보고 싶어진다.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져.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이후로 어떻게 될지 감조차 잡지 못하겠어... (글쓰기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게 틀림없어) 그냥 굶주리며 글을 쓸까?"(222)

그렇게 고민했던 폴 오스터는 위대한(적어도 내게는)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폴 오스터의 젊은 시절이나 지금 우리의 문학 청년들이나 맘껏 글을 쓰며 살아가겠다는 꿈과 이상을 굶주림에 대한 현실적 불안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날마다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하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조금 서둘러 읽어버렸다. 책의 곳곳에 밑줄을 그어놓고 싶기도 하고 필사 노트에 옮겨놓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적어놓고 싶어지는 책이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그냥 읽어버린 것이 아쉬움을 남기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폴 오스터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고 있어서 마냥 좋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장들 사이에서 머뭇거림을 남기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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