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게도 자화상이 있다. 그림자 자화상.


성북동 커피하우스 '일상', 벽에 찍힌 나의 그림자 사진이다. 


케냐AA가 짙은 향을 뿜고 있었고, 마사이마라(세렝게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그림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안경은 커피향을 어떻게 흡입했을까. 


삶이 없는 글은 빛이 없다고 했다. 글이 없는 삶은 그림자가 없다고 했다. 


빛과 그림자. 삶에 커피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커피, 삶을 유지하게 만들고, 글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화상에게 묻고 싶어졌다. 넌, 기억하니? 그때 그 커피의 향미...


참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그림자의 존재를 알려준 사진. 


안경은 그림자가 꾸는 꿈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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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인생에도 끼어드는 위험, 

그러나 늘 위험을 무릅 쓸 가치가 있는 것, 

그건 사랑...

- <러브 어페어> 중에서 - 


그리고 5월, 오월愛
(
신청은 위즈돔을 통해 : http://www.wisdo.me/2031)


5월이에요, 오월. 
한층 따뜻한 이 봄날이 오면 생각나는,   


우연과 약속이 빚은 어떤 인연의 영화들이 있습니다.
5월 8일이면 나는 그들의 행로를 좇아 사랑을 다시 생각합니다. 


먼저, 이 영화, <첨밀밀>. 

10년. '만나야 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사랑의 아포리즘을 촘촘하게 형상화했던 이 영화. 홍콩으로 함께 넘어온 친구로부터 시작해 숱한 엇갈림을 거쳐 마침내 뉴욕의 한 전파상에서 우연 같은 필연을 빚었던 두 사람. 

이요(장만옥)과 소군(여명)의 사랑이 그랬죠. 한끗 차이의 미묘한 엇갈림에 어휴~ 한숨 짓게 하고, 마음을 오종종 애타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빚어낸 10년의 돌고도는 운명(론)은 5월에 마무리됐습니다. 그들이 10년의 새침함을 뚫고 만났던 그 순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5월8일은 등려군이 사망한 날(1995년)이자, 
그들(이요와 소군)이 뉴욕에서 다시 만난 날입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을 믿고 싶다면, <첨밀밀>을 봐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것 아세요? 
이요와 소군이 만난 뉴욕의 5월8일. 또 다른 연인들이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러브 어페어>의 테리(아네트 버닝)와 마이크(워렌 비티).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그들. 각기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풍덩 빠집니다. 러브 어페어.


어찌할 수 없는 끌림. 불과 사흘이었지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는 두 사람. 

3개월 후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과 장소가, 

5월8일 오후 5시2분,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그렇게 그때,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두 사람. 
다만 한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서로 찾거나 연락하지 않기. 
진짜 그것이 사랑인지 고민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날. 
그들은 그곳을 향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그들을 기다립니다. 
나는 이 사랑에 쩔쩔맸습니다.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내용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말이죠. 


<러브 어페어>. 
1932년 처음 만들어졌고, 1939년에 첫 리메이크됐으며 데보라 카와 캐리 그랜트 주연으로 만들어진 1957년 리메이크작은 맥 라이언, 탐 행크스 주연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모티브가 됐다. 특히 애니(맥 라이언)은 눈물을 쏟으면서 이 영화를 보는데, 애니가 삭막한 현실에서 잊고 사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꿈을 되살리는 영화가 바로 1957년작 <러브 어페어>입니다.


1994년작은 가장 최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바람둥이 워렌 비티를 잠재운 아네트 버닝의 극강의 아름다움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캐서린 헵번의 깜짝 등장도 작은 선물입니다. 
그래, 뭣보다 영화가 알려주는 이것. 

"누구의 인생에도 끼어드는 위험, 그러나 늘 위험을 무릅 쓸 가치가 있는 것, 그건 사랑이다."

사랑 지상주의자(들)에게 권합니다. ^^
5월 8일(수)의 봄밤(오후 7시43분~9시35분), 

어버이날이라고 누군가는 분주해할 그날. 
당신과 함께, 서교동의 수운잡방에서 5월 8일의 영화를 만납니다. 
<첨밀밀>이 될까요? <러브 어페어>가 될까요? 


(☞ 신청은 위즈돔을 통해 : http://www.wisdo.me/2031)

둘 중의 한 영화를 상상할 당신, 
봄날의 맛있는 공정무역 커피 한 잔과 함께 봄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식사는 제공하지 않으오니, 드실 것 챙겨서 오시면 됩니다. ^^ 함께 나눠먹을 무엇도 좋아효~)  


등려군의 노래가 울려퍼질지, 
엔리오 모리코네의 선율이 흘러나올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수운잡방에서 확인하세요! 

그 5월, 오월愛. 
5명과 愛를 만납니다.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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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샘해서가 아닌,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피운다'(화투연花妬姸)는 꽃샘추위의 철이지만,

 

그래도 봄이다. 진짜 봄이 왔도다.
봄비가 살짝 흩날리긴 해도, 오늘부터 봄이 왔다는 사실, 결코 숨길 순 없다.


왜냐고?
야구가 시작됐으니까. 2013년의 야구가 문을 열었으니까.
조진웅(배우)이 시구를 하면서 그것을 알렸다. 프프~프로니까!

 

졸전이었지만,
우리의 자이언츠가 봄을 알린 첫 경기에서 이겼다. 봄의 시작, 좋다!

 

그리고 오랜만에 봰 윤구병 선생님. 선생님은 내게 이리 말씀하셨다.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세상 빚는데 힘 보태세요.
좋은 인연입니다.

아무렴.
나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좋은 세상. 그런 세상을 향한 봄의 시작.
수운잡방에서 커피로, 먹을거리로 할 수 있는 일. 세상을 향한 우리의 울림.

 

내가 아는, 수운잡방이 아는 좋은 세상은,
인간끼리의 관계를 넘어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품은 좋은 삶이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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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살며시 세상을 적시고, 마음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봄의 전령. 


이아립의 노래로 지금 이 순간의 봄은 충만하고 완전하다.


그 어느날의 밤9시, 이아립이 우리 공방에서 노래를 들려주는 시간을 기다리며.

밤9시의 커피를 응원해주는 한 사람에게 지란지교의 향을 담은 커피를 내리면서. 


그날, 내가 내리는 밤9시의 커피는,

이름 없는 커피. 

당신과 함께, 이아립과 함께, 커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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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이야기를 낳는다. 재난의 불가피한 속성이다. 그 속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재난의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다. 지금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인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수잔 손택은《타인의 고통》을 통해 그것을 입증했다. 많은 재난영화가 스펙터클 보여주기에 급급한 이유다. 그리고 실재 사건마저도 그것을 재난처럼 다루는 미디어로 인해 우리는 마음을 뺏기고 있다. 제 마음, 없다. 오로지 수동성만 지배한다. "영화 같다"는 말로 우리는 이미 재난을 스펙터클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 수동성이다.


 

 

<더 임파서블>은 그러나 다르다. 다른 재난영화가 보여주기에 급급해 하는 스펙터클을 무기로 내세우지 않는다. 쓰나미(tsunami)가 소재라고 해서 스펙터클의 전시와 억지 인간애를 끌어내는 구도이겠거니 했다. 뭐, 비슷하다. 그러나 분명하게 다르다. 쓰나미가 덮치지만 카메라는 쓰나미 아닌 쓰나미에 휩쓸린 인물의 육체적 상처에 집중한다. <해운대>에서 엄청난 파고를 과시하던 쓰나미의 것과 다른 태도다. <해운대>는 쓰나미를 스펙터클로만 소비했었다.

 

100년도 더 된 쓰나미는 이제 지진해일의 대명사가 됐다. 1896년 일본 산리쿠 연안, 2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쓰나미는 국제 공용어가 됐다. 익숙하지 않던 그 단어, 널리 알려진 것은 2004년 인도네시아를 덮친 쓰나미였다. <더 임파서블>은 그때를 다시 호명한다. 실화에 기반해 이야기를 푼다. 다시 말하지만, 스펙터클은 뒷전이다. 쓰나미가 덮친 폐허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래서 상처에서 피는 계속 나오고 찢긴 살점은 너덜거린다. 그럼에도 약은 물론 병원도 없다. 걷고 또 걷고 쓰나미가 또 닥칠까 나무에 기를 쓰고 올라야 한다. 인간은 이다지도 나약하다. 그것을 보는 것, 일종의 통각(痛覺)다. 내 것이 찢겨 떨어진 양, 피가 철철 흐르는 양, 아프고 아프다. 앞도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지 그야말로 멘붕(멘탈 붕괴). 객석에 앉아서 이런 대리체험을 하게 하다니. 이 영화의 배짱은 한편으로 놀랍다.

 

생각해보라. 여느 재난영화가 스펙터클을 소비하게 만드는 방식은 '쾌감'에서 비롯된다. 즉, 내가 저기(재난)에 없음으로 느끼는 안도감에 맞물려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으로 파국 직전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존재)의 등장으로 게임은 끝. 관객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본은 재난영화를 소비하는 패턴을 그렇게 길들였다. 재난영화가 블록버스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블록버스터가 재난영화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더 임파서블>을 그래서 선뜻 여느 재난영화와 같은 선상에 배열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재난영화라 함은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뜻한다. (물론 재난영화마다도 결이 조금씩 다르다.) 이 영화의 감독 후안 안토니요 바요나도 재난영화라기보다 재난을 당한 가족에 겪은 체험기라고 했단다.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의 공식은 없다. 재난에 저항하는 인류애와 위기 극복의 드라마 같은 건 없다는 얘기다.

 

이 영화는 그래서, 재난으로 모든 것이 망가지고 흩어진 페허 위에서 가족이 고난을 헤쳐 상봉하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이다. 이 가족에게 오로지 집중한다.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다. 가족의 성장을 통해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숱한 인간 군상의 등장으로 헤맬 이유도 없고, 복선이나 암시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 영화는 성장한다. 정확하게는 등장인물들이. 내가 받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감동은 함께 돌봐주기, 서로 챙겨주기.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요, 가족과 헤어진 아픔을 느리고 고통스럽게 전개하면서 그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한다. 나는 그것을 '서로 돌봐주기의 신공' '상호 챙겨주기의 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큰 아들 루카스의 변신(?)이 가장 극적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건 사치라고 여기던 루카스(톰 홀랜드)는, 고통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엄마 마리아(나오미 왓츠)를 간병하던 중, 그는 다른 사람을 돕는 기쁨을 맛본다. 마리아의 권유였지만, 그는 그것에서 기쁨을 맛본다. 뭔가 가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마리아의 말이 허튼 말이 아님을 확인한다.

 

 

마리아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되찾은 아빠 헨리(이완 맥그리거)는 엄마를 잘 돌봐주어서 고맙다고 말한다. 성큼 성장한 루카스는 이리 답한다. "서로 돌본 거예요." 아,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이 저릿한 감정은 무엇인가. 함께 돌보고 챙김으로써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디 삶이요, 세상의 원리다.

 

헨리도 그런 경험을 한다. 아내와 루카스를 잃고 상심에 빠져 있는 그가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오열하면서 남의 전화라며 서둘러 끊은 헨리에게 휴대폰을 빌려준 남자는 말한다. "다시 거세요. 그렇게 끊으면 안 돼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번져야 산다. 혼자여선 안 된다. 서로 챙기고 함께 돌봐줘야 한다. <더 임파서블>이 내게 준 번짐이다. 블록버스터니 재난영화니 따위의 수사에 현혹되지 마시라. 이것은 번짐의 영화요, 함께 돌봐주기의 신공을 보여주는 영화다. 자본의 쓰나미가 모든 것을 삼킨 시대. 그 쓰나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쓰나미는 메타포(은유)인 셈이다. 자본의 쓰나미로 고통이 일상화된 시대, 우리는 서로 함께 돌보고 챙겨야 하는구나. 마을공동체, 공유도시, 사회적경제, 공정무역,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어들이다. 쓰나미에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영화 <더 임파서블>, 재난영화 블록버스터가 아닌 감동 실화 블록버스터다. 감동이 블록버스터급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고맙다.

 

뷰티풀 &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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