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는가 - 이나모리 가즈오가 성공을 꿈꾸는 당신에게 묻는다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 서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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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하는가.” 이 질문, 당연한 것이다. 물론, 삼신할머니의 랜덤으로 부모(의 재산)를 갉아먹으며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다르겠으나. 일하는 모든 이라면, 꼭 필요한 질문이다. 그 '왜'는 삶의 이유와도 같은 맥락에서 답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한 답을 내놓기가 민망해진 시절이다. '왜 일하는가'에 대한 답이 증발한 시절이다. 이른바 백수 100만 시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해야 하는 이 엄혹한 시절, 그런 질문은 개똥 처바른 사치처럼 느껴질 법하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차라리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다그칠 사람도 있겠다. 계절의 순환과 상관없이 취업한파라는 말이 1년 내내 휘몰아치는 풍경 앞에 배부른 소리라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겠다.

지금? 그래, 알다시피 일에서 소외되고, 자본에 종속됐다. 그런 사유야 어떻든, 어떤 일이든 해야만 존재를 지탱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왜 일하는지’ 더 고민하고 사유해야 하지 않을까. 일을 한다는 것이, 이전과 다른 의미를 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한다는 것, 단순화해보자. 먹고 살기 위해서? 맞다. 자아실현을 위해서? 역시 맞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일을 함으로써 갖게 되는 자아존중감(자존감)? 그것도 맞다. 그렇다면, ‘어떤’ 일인가 이전에, ‘왜’ 일을 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남들에게 증명하기 위한, 남들 보기에 버젓하거나 번듯한 일이 아닌,  ‘왜 일하는가’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 이 사람,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가로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이자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왜 일하는가.” 풀자면, 이렇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뿐인 삶인데, 지금까지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아왔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나아가 내가 깨달은 ‘일하는 이유’와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왜 일해야 하는지, 일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지 알려주고, 열심히 일함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려주고 싶다.”

저자인 이나모리상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원래 책 제목은 ‘일하는 방법’이며, 부제가, 왜 일하는가, 어떻게 일할 것이냐, 라는데, 국내 번역본에선 ‘왜’를 강조한 것도, 어쩌면 지금-여기의 엄혹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방법 이전에, ‘왜’를 고민해보자는 의도가 아닐까.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답변. 그 말에 담긴 무게감을 나는 일하면서 절실히 느낀다. 세계에서,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를 채우는 것, 혹은 배를 곪지 않는 것이다. 한 예술가의 작품에서 본적이 있는 이 문구. "Most important thing in the universe is -> Full Stomach." 그럼에도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단지 그 때문일까. 이나모리상은 내면을 키우기 위해 일한다는 말을 한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서, 라는 명분을 들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뜯고뜯기는 것이 일상화된 자본주의가 아니냐, 라는 것으로 자신의 일에 면죄부를 씌운다. 나만 먹고살 수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남을 착취하고,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라도 나만 혼자 잘살면 끝인가.  

이나모리상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資本主義)와 다르다. 그의 자본주의는 ‘慈本主義’이다. 자비로울 자, 사랑할 자. 나는 그것을,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민교”로 해석했다. 남에게 둔감해지지 않는 것. 삶의 미각에 묻은 씁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가능한 한 내가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닌 사회가 필요로 하고 해가 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했기에, 그는 세습에 반대했고, 은퇴한 뒤 그가 성공으로 이끈 회사에서 60억원 가량의 전별금을 준다니, 턱하니 대학에 기부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은 장삼이사가 쉬이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 역시 낙망과 좌절의 때를 겪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미 말해보자. 행복해지기 위해 일한다. 그 행복.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누구나 사회 속에서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고 관계를 맺는다. 일은 결국 그러한 것이다. 혼자서 일할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일은 이뤄진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땀 흘려 번 돈 만이 진짜 이익이다.” 그건, 머리보다 몸으로 밀어붙여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금융공학, 즉 잔머리 굴려서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을 싫어한 이유다. 금융공학을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금융공학이라는 말 뒤에 똬리를 튼 탐욕을 빗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일은 생활수단이기도 하지만, 이나모리상에겐 영혼을 닦기 위한 수양의 장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경영자로서 더 많은 세월을 산 그는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기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동기를 부여하고 인격이 중요하다고 봤다. 지금-여기의 많은 경영자들의 행태와 다른 포인트다. 그래서 성과급보다 작은 명예로 일하는 이들의 자존감과 일하는 이유를 부여했다. 사람이 늘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성과를 내지 못할 때 대우해주지 않으면 가라앉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함께, 꾸준히, 그렇게 가야한다는 것. 그는 그런 경영자였고, 일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그가 경영했던 교세라의 경영이념은 이랬다. ‘전 직원의 정신적, 물질적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류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공헌하는 것.’ 즉, 경천애인(敬天愛人). 요즘 같은 엄혹한 시대에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읊어댈지 몰라도, 결국 그것이 근본이고, 그가 존경받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가로서 사회와의 접점, 혹은 사회적 책임을 놓치지 않았기에, 그는 오래 성공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힘들고 신산한 시절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가 견고하고 숙련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나모리상도 그런 시절을 겪으며 자신의 철학을 다져갔다. 시련을 참고 견디는 힘이 커졌고, 일을 왜 하는지, 고민하면서 인격을 수양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찾았다. 그의 일하는 철학은 '유의(有意)주의'라는 말로 대변된다. 의식하고 집중하는 것, 즉 뜻을 가지고 뜻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것.

그래서, 사유하는 것이 맞다. 일을 하는 이유. 이나모리상의 ‘慈本主義’는 ‘공생주의’와도 통한다. 주변과 성과를 나누는 기쁨을 가지는 것. 그것은 질이 다른 기쁨이자, 아름다운 기쁨이다. 기존의 자본주의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며, 경쟁에서 이길 것만을 강요하지만, 이나모리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일을 하는 회사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월급을 받는 곳이 아니었다. 나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나누는 무대였다.

그는 행복한 삶을 이리 말한다. “돈이 많아도 친구가 없으면 외롭고, 자격증이 많은 것도 아니요,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닌,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그것은 일하면서 사유하지 않으면 곤란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행간에는 그 사유할 것을 권하는 흔적이 묻어있다. 내가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사회와 어떤 접점을 이루고 혼자 아닌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가.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일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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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3.0 - 김광수 소장이 풀어쓰는 새시대 경제학
김광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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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시대다.  마냥 어렵다고만, 현실 정합성이 떨어지는 이론이라고만 치부했던 시절이 아니다. 일상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경제학은, 어느덧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아마 일상적 경제생활의 변화나 의식의 변화가 그 이유일 터인데,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은 현상이다. '일상의 경제학', 그 비슷한 이름으로 각종 경제학 강의가 이뤄지고, 남녀노소 누구 할 것 없이 재테크에 열중한다. 합리성을 띤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길 열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경제학을 사유하고 있을까. 경제학 내에서의 하위 카테고리나 스펙트럼 또한 엄청 넓을 텐데, 현실 속으로 파고든 '경제학'을 고민하는 시선들은 올바른 전제를 갖고 이뤄지고 있을까. 

세간의 널리 퍼진 오해 혹은 오류 중의 하나. 어쩌면 제대로 된 경제학을 사유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그것.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 있다, 혹은 분리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전제다. 잘못된 전제로 인해 일상의 경제학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경제를 논하고 문제를 풀 때, 정치를 대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무식'에 가깝다.  

아마도 잘 알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죽지도 않은 것을 살리겠다는, 엉뚱한 프레임의 구호로 대중들의 마음에 파고든 작자의 논리가 그러한 것이다. '실용'이라는 고갱이 없는 수사로 그는 대중을 현혹하는 주술을 퍼트렸고, 그것이 먹혔다. 3년 여의 시간. 경제가 정치와 외따로 떨어져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경제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MB적 구호는 현실 정합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 경제학. 과문한 나는, 경제학을 이리 이해한다.

“의식주 생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삶과 연관된 기본에 대한 이야기.” (김수행 마르크스경제학자)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먼저 쓰러져가는 빈민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앨프리드 마셜 영국 경제학자)
“경제학의 목표가 많은 사람을 좀 더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면, 먼저 가난한 이들을 보고 마음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 교수)

물론, 학교나 직장, 사회가 그리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나 지금-여기에선, 많은 이들이 경제학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것을 보통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생각해보자. 경제학이 애당초,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탄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건 자명하지 않나.  

그러니, 경제학을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건, 단순히 돈이나 화폐로 계산되는 수치에 매몰됨을 뜻하지 않는다. 경제가 정치나 교육 문제 등과 분리해서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경제(학)를 다룸에 있어서도 우리는 사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 등과 관계맺고 있음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집을 살 때도 교육의 문제가 끼어들고, 물건을 살 때도 우리는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등 윤리나 사회를 생각하는 경험도 한다. 경제는 그만큼 모든 것과 잇닿아 있고, 특히나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나, 경제(학)를 모르오’라고 커밍아웃하는 거나 다름없다.   

《경제학 3.0》은, 그것을 지적한다. 경제는 혼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며, 지금의 경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우리가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지 고민할 것을 권한다.  지금-여기의 우리가, 경제학을 어떻게 현실과 연결시켜야할지 사유해보자고 화두를 던진다.  

가까이, 지난 10년을 돌아보자. 과연, 우리는 어떤 경제학을 토대로 어떤 경제를 구축했는가. 집(주택)문제부터 의료, 노동, 노후, 교육 등 일상의 경제와 관련된 것에서 우리는 나락을 경험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과 나날이 늘고만 있는 가계 부채.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생산적인 경제는 없었다. 거품 경제가 삼켜버린 사회. 실업에 처한 청년의 좌절은 물론, 믿었던 국가로부터도 배신당한 국민적 좌절(용산 사태)도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경제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정치인과 관료에 의해 넝마가 됐고, 오랫동안 쌓아온 경제 구조마저 한순간 허물어졌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비정규직이 생겼고, 청년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사교육은 활개를 쳤고, 집은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야할(buying) 곳이 됐다.   

돌이켜보라. 이것은 정치의 문제였다. 김광수 소장도 그것을 지적한다. “우리의 모든 삶은 정치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사교육비가 급증하는 것도, 대학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모두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이다. 어떤 정당 또는 대통령이 어떤 교육 정책을 시행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p.237)

경제가 정치와 무관한 것이라고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지 말자고 김 소장은 강조한다. 정책을 펼치는 국가 관료들과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 야합이 이뤄낸, 아울러 그에 끌려다닌 우리들의 시행착오. 물론, 장삼이사의 무식이나 무능은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대통령, 정부, 정치권의 집단적 무식(무능)은 나라를 말아먹는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

구조적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일이 필요하다. 공정하고 올바른 경제시스템의 운영을 위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실패와 위기의 주모자들에게 계속 이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관습과 경험을 차단하고, 경제학의 새로운 정립에 나설 수 있는 눈 밝은 사람과 정치를 선택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들이 먹고 산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기업은 기업의 배만 불리고,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실업을 빌미로 일하는 사람을 겁박하고, 윽박지른다.  

그리하여 문제는, 정치다. ‘경제가 정치와 무관하다’는 인식은, 정치권력을 계속 잡기 위해 노회한 자들이 주입한 수사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정치가 필요하다. 경제학의 임무와 고민의 핵심에는 정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물갈이가 있다. “위기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21세기 지식정보화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여야 정치권과 기성세대의 물갈이를 통한 세대교체가 정치 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pp.257~258)  

아울러,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지금 이 시대에 부각되고 있는 '희소성'.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는 경고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임금은 더 오르지 않고, 이윤도 오르지 않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또 모두 죽도록 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 경고(정체상태론)는 이미 현실이 됐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러나 이 순간에서도,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역사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므로, 이 상태가 우울한 상태가 아닌 '조화 상태’(harmonized state)'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학을 단순히 보지 말 지어다. 우리 시대의 경제학은 정치적 상상력은 물론 문학적 상상력까지 동반하면서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과 연관된 기본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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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17 - 소장판-완결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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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말하자면, 나는 야구소년이었다.
야구를 잘했냐고? 선수였냐고? 워워. 일단 내 말부터 찬찬히 듣고 얘기하자. 

내 기억이 닿는 한, 가장 먼저 접한 스포츠는 야구.
글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 소년은, 야구라면 무조건 읽었다.
집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일간스포츠)의 야구부터 챙겨봤을 정도.

오죽하면 그 어린 나이, 소년은 야구를 스크랩했다.
그땐 고교야구가 지금과 달리 대세였는데. 고교야구를 꼼꼼히 챙겨 오려서 스크랩북에 고이 붙이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소년. 물론 프로야구가 대세가 되면서 옮겨탔다. 

그러니까, 조그셔틀로 생의 기억을 최대한 돌려보면,
내 생애 최초의 Addiction은 야구였다, 야구. 

B. 야구를 사랑한다면, 아이러브 Baseball.
방송 프로그램 홍보가 아니라, Baseball은 소년 시절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내 사랑, Baseball. 

학교가 끝나면 매일 같이 야구였다. 비가 오면 하늘이 미웠다.
아버지를 졸라 야구 장비를 마련하고 끝내 유니폼까지 맞췄다.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회색유니폼에는 'LOTTE'라는 딱지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 가족들은 종종 구덕야구장을 찾았다. 와우, 야구장, 참 크고 멋있다. 소년에겐 야구장이 그랬다.   

한때 나는 동네야구계에서 군림(?)했다.
동네 형들이 '야구하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은 까닭에, 내가 왕고였다.
어린 동생들을 겁박(?)해 에이스 노릇까지 하면서 치고 달렸다.
물론 포볼공장 공장장이었다. 동생들은 투덜거렸지만, 끝까지 '쌩'깠다. 

지금은 그런 모습 보기 힘들지만, 참 많이도 도망다니고 어른들에게 혼났다.
아파트 유리창을 깨고 차에 흠집을 냈기 때문이다.
밥보다 야구였다. 조명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공을 던졌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때, 세상은 'Baseball Heaven'이었다. 

C. 물론, 즐김이 우선이었다.
무조건 야구가 좋았던 시절. 그러다 불이 붙었다.
내 자연스레 응원하던 연고팀 노떼 자얀츠(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완전 극적인 우승이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역전 3점홈런을 때린 유두열 아저씨.
내 같은 반 급우의 외삼촌이었다. 녀석까지 덩달아 영웅이 됐다.  

Champion. 그것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처음 알았다. 아, 세상엔 이런 희열도 있구나. 그리고 8년 후, 다시 희열이 찾아왔다. 

1992년, 서울에 올라온 촌놈이 한국시리즈 5차전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노떼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의 경기.
끝내줬다. 4승1패, 다시 한 번 Champion. 
아, 나의 10대는 그렇게 행복하였노라. 


D. 야구만화, 신난다 재미난다.
야구소년에게 야구보기, 야구하기만큼 좋아하는 것이 생겼는데, 그것이 야구만화.
생애 첫 만화부터 야구만화였다. 이현세 작가의 ≪제왕≫.
(그전부터 만화를 봤지만, 만화방에서 본 최초의 만화가 ≪제왕≫이었다!)

만화방 골수분자였던 나는, 야구만화라면 '닥치고 본책 사수'였다.
내용 따위, 작가 따위 거의 가리지 않고 넘겼다. 이유 따로 있나, 야구앞에.

그렇게 당시 나의 Desire는 야구였다.
그렇다고 정식 선수가 되길 바란 것은 아녔다.
난 이미 동네야구 선수였고, 야구인이었으니까! 누가 뭐래도! 

세상, 아니 한국의 모든 야구 만화를 섭렵하다가 만났던 이 작품.
≪H2≫!

훅~ 갔다.
이전까지 본 모든 야구 작품들을 무위로 돌릴만큼의 강력한 포스!
야구 만화의 모든 것. 세상 모든 야구작품을 합쳐도 따라오지 못할 폭풍간지.

내 생애 가장 뭉클하고 짜릿했던 야구만화였다.  
아니 '야구'를 빼도 무방할 정도의 내 생애 최고의 만화를 만났다. 심봤다~~~

E. 히로(≪H2≫의 주인공)는 나의 영웅(Hero).
깜빡 지나친 첫사랑에게, 
"너한테 야구를 빼면 뭐가 남니"라는 말을 듣는 '본투비 야구소년', 히로. 

나는 히로에 푹 빠졌고, 내 모든 감정을 이입했다.
아마 당시 내 감정은 이랬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히로로 태어나고 싶다.' 

야구소년 히로가, 야구인 준수에게 미친 Effect는 예사롭지 않았다.
말하자면, 히로 Effect.   

한 번 보자.
그의 절친, 고교야구 최강 타자 히데오의 야망 스케줄은 이렇다. 

* 갑자원 - 프로야구 - 신인왕 - 올스타 출장 - 개인 타이틀. 팀우승 - 많은 기록을 남기고 은퇴 - 해설자에서 감독까지 

와우~ 고교야구 스타 플레이어이자 최고 타자다운 스케줄이다.  

어허, 하지만, 나의 히로는 상대적으로 야망(?) 없는 플레이어다. 

 "뭐, 야구야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할 거지만. 난 동네야구든 뭐든 괜찮아." 

'야망의 세월'따윈 필요없는, 허허실실 낭만적 한량 같으니.  
동네야구라도 상관없다는 그 태도. 나는 그 태도가 한없이 좋았다.

더구나, 비키니에 혹하고, 성인잡지라면 눈 반짝이는 십대의 야구소년이라니.
(<- 흠, 이건 십대의 나와 아주 비슷했다!)   

서울이라는 정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강박이 짓누르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에,
아, 그러지 않을 수도 있구나.     

물론, 히로는 "야구하고 있으면 꽤 멋진" 야구소년이자 남자다. 

오진때문에 잠시 멈췄던 야구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면서,
히로도 히데오와 똑같이 이런 딱지를 붙인다. 

목표
갑자원 

히로는 말하자면, 야심가다.
히데오처럼 어떤 지위를 확보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야구가 좋아서, 어떻게든 야구를 하는 일이 점지된 소명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나는 그래서, 히로가 되고 싶었다.
나의 행보도 조금씩 변모해갔다.
히로가 나의 영웅인 까닭이다.

F. ≪H2≫, My Favorite!
히로 덕분이다.
히로에 푹 빠진 덕분에 내 마음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재미에서도 ≪H2≫는 극강이다.
감동에서도 ≪H2≫는 작렬이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되레 흠좀무(흠 좀 무서운걸)?  

감히, 아다치 미츠루 작가는 천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그의 야구만화는 보는 이를 들끓게 만든다. 감정을 엄청 흔든다. 

사실 그의 만화 모든 작품은 내용이 빤~하다.
딱 보면 답 나온다. 구도 또한 진부하다.
그런데도, 그의 세심한 터치는 그 모든 단점을 깔아뭉갠다. 

≪H2≫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 
그럼에도, 혹 당신이 이 작품을 안 봤다면, 무조건 무조건이다. 

하루까는 히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후회되니? 히까리를 히데오한테 소개한 것." 

히로는 곰곰 생각하지만, 나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아." 

아니, 뭘 후회하지 않아?
당신에게 이 작품을 소개한 것!
내 사랑을, 내 Favorite을 당신에게 소개한 것!!
 
G. 다시 ≪H2≫를 꺼낸 것은,
'이제 겨우 플레이볼 했을 뿐이야'라는 글 덕분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말이지 어찌할 수 없는 무한 희열을 찌리릿.
꺄오~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그 블로거의 글을 나는 무척 좋아하는데, 
내 사랑하는 ≪H2≫를 그 역시 좋아하다니!

내가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간직한 것을,
누군가 역시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이 무지 친근해뵈고, 가까워진 그런 느낌.
그가 나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게 괜히 흐뭇해지는 그런 것.

그러니, 그가 말한 ≪H2≫에 대한 이 이야기도 덧붙여야겠다. 
"청춘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아깝고 여린, 그래서 더 눈부신 시절의 이야기.
사랑과 우정 '사이'를 그득히 채우고 있는 백만 번의 스윙 같은 만화다."

동의한다.
그러니 그 사람도, 나도 Guarantee한다! ≪H2≫를.
당신도 ≪H2≫를 보면, 동참하고 싶을 게다.
아니면? 그럼 당신은 우리와 다른 족속인 게지.ㅋ  

어떤 작품이든,
사귀어 보니 겉만 멋있는 게 아니었던 히까리처럼 추첨운이 따를 수도 있고,
하루까처럼 멋있다싶은 사람은 거의 다 겉만 번지르르한 뻥튀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엔 뻥튀기가 아닐거야.
아, 내가 guarantee한다니까! 

H. ≪H2≫의 'H'는 히로와 히데오의 이니셜, '2'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
두 영웅은 확연히 '다르다'.
어느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감정이입할 것인지는 당신의 몫이다. 

물론, ≪H2≫, 히까리와 하루까를 가리킬 수도 있다. 

짧은 가을 떠나보내고, 예기치 않게 겨울이 훌쩍 다가온 시간.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말이 있듯,
야구로 받은 상처, 야구로 치유하는 것일까. 

내 손에는 ≪H2≫가 쥐어져 있고,
나는 다시 플레이볼할 내년 시즌을 고대하는 '기다림 모드'로 바뀌고 있다.

내 가을야구는 안타까운 참사로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야구인이다. 

그래서 나는,
야구는 9회말 2아웃에서도 역전될 수 있음을,
야구는 3할만 치면 엄청나게 잘 치는 것임을, 
야구는 시즌이 끝나면 다시 시즌이 올 것임을,
여전히 믿고 있다. 

나는 이 긴 겨울을 버티고 견딜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내년 시즌까지 존재한다면,
나는 여지없이 호들갑에 오두방정을 떨어대면서,
당신도 익히 예상하듯, 이리 씨불댈 것이다. "봄은, 야구와 함께 온다." 

그 모든 것은,
야구 뿐 아니라, 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생이 움푹 파인 순간,
≪H2≫의 그들이 그랬던 마냥,
나는 당신 손을, 당신은 내 손을 잡는 것임을, 믿고 있다. 

I 믿 You! 

H2.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   
많은 사람이 알고, '이제 겨우 플레이볼 했을 뿐이야'에서도 언급됐다시피, ≪H2≫의 자장에서 비롯된 노래다. 

덧붙이자면, 그 노래 가사는,
히로가 히까리에게 느끼는 감정,
히까리가 히로에게 느끼는 감정,
히까리가 히데오에게 고백하는 감정 등으로 엮여있다.

≪H2≫를 보고,
<고백>을 들으면 그 노래 더 팍팍 꽂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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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제리. 

내가 아는 제리는 셋이었다.  

우선, 톰과 제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제리가 아닐까 싶은데. 고양이 톰을 늘 골탕 먹이는 영리한 쥐 제리. '고양이 앞의 쥐'라는 인류의 편견을 부순, 재능 있는 쥐. 쥐 한 마리가, 세상의 권력도 바뀔 수 있다? 

두 번째, 제리. 제리 제리 고고. (이)승환 형의 노래다. 이 노래, 무척 좋아했었다. 지금도 좋아한다. 특히, 이 구절. "제리 제리 고고/ 락앤롤 고고/ 불타는 피아노/ 너만이 할 수 있어." 멋쟁이 제리를 향한 연서?   

너의 이름은 멋쟁이 제리
너의 피아노는 최고였지

사람들은 말했었지
엘비스도 문제없다고

너의 무대는 환상의 축제
사람들은 모두 열광했지

흥겨운 Rock `n Roll 리듬
정신없이 춤을 추었지

Jerry Jerry Go Go
Rock `n Roll Go Go

불타는 피아노
너만이 할 수 있어...  

셋째는, 제리 로이스터.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다. 8888577, 8년 연속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만년 꼴찌, 그래서 '꼴데'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던 팀을 부임 이후 3년 연속 가을야구로 진출시킨 부산 명예시민. 올해도 4위로 턱걸이했지만, 팀 창단 이래 처음이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역시 제리는 능력자의 이름?  

그리고, 최근 제리 하나가 더 붙었다.  

김혜나 작가의 [제리] . 어떤 제리일까. 궁금도 했다.  

그러나, 문학상 수상 작품이라는 레떼르보다 이 책을 사게끔 불씨를 당긴 것은,  

'요가'의 유혹이었다.

 

김혜나 작가와의 만남. 그녀는 요가 강사였다. 작가와 요가 강사. 독자와의 만남이 요가를 통해 이뤄진다는 이야기. 솔깃했다.  

왜 솔깃했냐고?  

여름의 초입에 만나뵀던 [문숙의 자연 치유]의 저자 문숙 선생님의 필살기(?) 중의 하나가 요가였다.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된 요가의 힘.  이전까지 요가는 그저 운동의 하나이면서, 명상이 가미된 뭐 그런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문숙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된 요가는 달랐다.  

여기에 덧붙여, 일종의 카운터 블로. 고미숙 선생님과 함께 떠난 열하여행에서 알게 됐다. 고미숙 선생님이 요가를 하고 계신다는 것. 아니, 두 번의 요가.  

어찌 가만 있을쏘냐. 요가!  

제리를 만나러 가는 시간.  둑흔둑흔 쿵쿵.

 

요가는 뭐랄까, 새로운 신천지였다. 어떤 관념이 실체와 맞닥뜨리며 만나는 그런 놀라움 혹은 매력.  

김혜나의 [제리]는 어쩌면, 요가가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 속 제리는 소설 속 '나'에게 그랬다. "그저 하룻밤만의 쾌감을 안겨 준 채 떠나기로 예정된 아이"였지만, 나는 제리를 어쩔 수 없이 찾는다.  그 짧은 체험이 나는 요가가 김혜나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했다. 불쑥 나에게 다가온 제리가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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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 Salvador Allend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요즘 '칠레', 하면 무사귀환부터 바라게 된다.
알다시피, 지하 700m 갱도에 갇힌 33인의 광부 때문이다. 8월5일에 갇혔으니 한 달도 넘었다. 구출작업도 늦어졌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됐는데, 3~4개월이 걸린단다. 다행이랄지, 8.8cm의 초큼한 구멍을 통해 외부와 소통하고 있다. 그들이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8.8cm의 구멍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엉뚱하고 미안한 호기심도 든다.-.-;; 

아울러, 그보다 더 험한(혹은 악랄한) 갱도에 빠진 우리를 생각한다.
칠레의 33인 광부는 구조된다는 기대라도 있지만, 현재의 내 심정은, 이땅의 갱도에선 아니다. 도리도리. 우리가 갇힌 갱도에는 8.8cm의 지름만큼도 안 되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하긴, 그거라도 어딘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꽉꽉 막힌 화폐갱도에 갇혀 있다는 인식도 못하고 있으니까. 심약한 나는 궁시렁 대면서도 그 갱도에서 꾸역꾸역 지탱하고 있고. ㅠ.ㅠ

어쨌든 칠레를 와인으로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대한민국 자유무역협정(FTA) 최초 체결국인 칠레. 덕분에 싼값의 칠레 와인은 한국의 마트를, 한국의 식탁을 장악했다.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하지만, 칠레는 와인으로만, 길이로만 떠올리는 건, 뭔가 부족하다. 한국의 지난 현대사와도 겹쳐지는 어떤 핏자국 때문이다. 인민들의 피, 말이다. 우리에겐 대표적으로 80년 광주민주항쟁의 피가 있었듯이. 




2010년 9월11일.
대한민국 국민인 내(으응? 증말? 대한민국에서 인정한대?)가 칠레를 떠올리는 건, 37년 전 그날 때문이다. 혁명적 사건이 좌절되고 말았던 그날.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이 총칼에 의해 피눈물 흘리고 말았던 그날. 이 한 맺힌 혈서적 유서를 보자.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내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1973년 9월11일 살바도르 아옌데
 

 

최근 칠레에선 아옌데 정권 탄생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970년, 세계사에서 유래없는 일이었다.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뿔테안경을 낀 샌님적 외모를 지닌 살바도르 아옌데 씨는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남아메리카 최초의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의 실현이었다. 덩실덩실~


워워, 이 포스를 느껴보라. 아옌데와 카스트로의 만남!

사회주의 정권은 33인의 광부가 갇힌 탄광과도 관련을 맺는다.
칠레의 노동운동은 광산촌 광부들에 의해 출발했다. 이들의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1917년 루이스 에밀리오 레카바렌이 주도해 칠레 최초의 노동자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창당됐다. 이는 아옌데까지 명맥을 잇게 된다. 칠레는 와인이 아닌 구리가 왕이다. 세계에서 구리 생산이 가장 많다. 광업은 칠레에서 가장 큰 산업이다. 파블로 네루다도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쨌든, 아옌데는 사회주의 경제개혁을 시행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미국(인)이 선점하고 있던 구리광산을 전면 국유화했다. 구리광산의 수익은 사회적 자산으로 배당됐다. 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토지 및 농업개혁이 실시됐고, 어린이에 대한 무료 우유배급 등도 시행됐다. 사회주의는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고민했고, 당연히 있는 자가 아닌 없는 자를 위한 정책에 적극 앞장섰다.   

문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열폭(열등감 폭발)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의 항해는 쉽지 않았다. 물가는 상상도 못할만큼 뛰었고, 생필품은 동이 났다. 1972~1973년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이것을 사회주의 경제개혁의 실패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미국의 농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레경제의 핵인 구리의 국제가격을 떨어트리고, 아우구스트 피노체트를 앞장 세워 군부 쿠데타라는 비열한 수를 뒀다. 1970년 9월11일, 미국의 하수인 피노체트는 산티아고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명박, 아니 겁박했다. 투항하라고.

하지만, 아옌데는 진짜 '리더'였다.   
속된 말로, 과장하자면, '식빵, 쪽 팔리느니 확 산화할란다!'. 그는 투항하지도 않았다. 망명을 택하지도 않았다. 그가 택한 것은 죽음.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으로 그는 스스로 쾅!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모든 것이 압축된 그 말. 그는 칠레 속으로, 인민 속으로, 노동자 속으로 온전하게 스며들었다. 많이 다르긴 하지만, 이 땅에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와 살짝 겹치기도 한다. 

그 이후의 참혹함도 아주 살짝 겹친다.
범죄자 피노체트가 1990년까지 17년 동안 독재적 대통령질을 해대는 동안, 3000여 명이 살해되거나 실종됐다. 역시 범죄자 출신의 통치자가 대통령질을 하는 대한민국, 선량한 시민들은 범죄자로 내몰리고, 힘과 돈 듬뿍 가진 범죄자들은 총리나 장관(후보)으로 임명되며, 똥돼지는 왜 그렇게도 꿀꿀대는지. 토 나와!



올해 초,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칠레 전투:비무장 민중의 투쟁> 상영 얘기다. 지난 1998년 제3회 인권영화제를 통해 비로소 정식 소개된 이 영화는, 3부작으로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개혁과 최후, 노동자들의 투쟁 등을 다루고 있다. 지난 1월에 인권운동사랑방이 함께 보자고 했는데, 아 시간이 맞질 않아 좌절.

지난 2005년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제6회 전주국제영화제. <칠레전투>의 감독, 파트리시오 구스만이 역시나 연출한 <살바도르 아옌데>를 보지 못했다. 구스만 감독은 이렇게 말했단다. "바로 그 시기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유토피아를 나의 조국에 실현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 인생을 결정지은 인물이고,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뭣보다, 인민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옌데.
또 다큐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자식들 저녁상을 준비하는 노인의 입을 통해 "그것은 정말 위대한 유토피아를 위한 꿈이었다." 인민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저런 말은, 아마 직접 듣는다면 먹먹~할 거다. 



아옌데의 꿈은 아직 살아있으라.
칠레 인민의 피 같은 칠레 와인을 마신, 33인 광부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대한민국의 한 찌질한 청년이 바라는 바다. 사회주의정권 탄생 40주년 기념식에서 
아옌데 대통령의 딸인 이자벨 아옌데 상원의원 왈. "아버지의 이상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렇게, 나는 믿고 싶다. 

아울러, <칠레전투>의 2부 끝장면, 이런 내레이션(자막)이 나온다. "아옌데는 죽었지만 칠레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글 머리에서 이 땅의 흉악한 갱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기대? 희망? 그 따윈 없다고 도리질을 쳤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까진 감출 수가 없구료.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지름 8.8cm도 되지 않을 구멍이라도.   

다른 9.11 이야기

덧붙여, 대개의 사람들 뇌리에 박힌 9월11일의 사건은, 그렇지, 2001년 9월11일. '9.11'이라는 이름의 아마도, 21세기 최초의 전인류적 트라우마. 어느덧 9주기가 됐다. 명복을 빈다. 

아울러, 1906년의 9월11일. 올해로 104주년이 된 셈인데, 무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를 본격 펼친 날이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며 평화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오늘 2010년의 9월11일. 예스24의 파워문화블로그 간담회에 갔다. 뭐, 오로지 떡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간 속물적 인간인 나는, 늘 그러하듯 존재감 없이 떡밥만 먹고 돌아오긴 했는데, 한 분이 던진 한 마디가 영 불편해서 오늘 글을 이렇게 길게 늘여놨다. 

역시나 졸렬하고 편협한 포스팅인 셈인데, (내 승질이 못돼서 그렇다!) 물론 그 분의 생각과 다를 뿐, 그 분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비판은 해야겠다. 오해는 마시라. 그 분이 나쁘다는 뜻도 아니요, 그 분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한지는 모른 채 하는 얘기다.

자기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다루는) 블로그는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듣기 나름일텐데, 나는 그 뉘앙스가 더 정치적으로 느껴졌다. 정녕,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에 숨은 뜻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 걸까, 궁금했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 문화·예술이 어떻게 정치에 휘둘리며, 정치적으로 억압 당하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 걸까. 인류사에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정권과 기득권의 통치 도구로 이용됐으며, 문화·예술이 어떻게 기득권에 저항했는지를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문화'라는 말이 붙었다는 이유로, 정치색을 띠지 말라? 아주 협소한 의미의 정치를 갖다붙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은 자신의 글을 부정하라는 말 같아서 영 마뜩찮았다. 더구나, 물론 나는 잡문날품팔에 불과하니 '파워'니 '리더'니 하는 레떼르와는 동떨어진 블로거이나, 예스24에서 강조한 파워와 리더로서의 오피니언 블로거라면, 그런 말씀은 완전 의외다. 


문화나 예술은 한 시대의 산물이요, 시대나 정치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문화나 예술이든, 어떻게든 일정 부분 정치색을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 말씀으로 그것에 대한 언급은 맺겠다. 

"작곡가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무심할 수 없다. 인간적인 고뇌, 압제, 부당함이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 (…) 고통이 존재하고, 오류가 존재하는 그곳에 나는 내 음악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음악과 권력』 중에서) 



결론은 이렇다.
여름은 위태롭고, 커피향이 서서히 깔릴 즈음의 계절인 9월.
그 어느해 9월에, 나는 칠레 사람들을 만나고, 칠레의 공기를 흡수할 테다. 

그때 나는,
아옌데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만나고, (11일)
빅토르 하라를 노래(Venceremos·벤세레모스:우리 승리하리라)하며, (16일)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를 읊는다. (23일) 
칠레 와인, 그리고 칠레 커피를 곁들여서.
 
내 어느해 9월은, 칠레가 익어가는 계절. 
떠나요~ 둘이서~ ^.~ 


그리고, 외쳐요. 벤세레모스!!! 

 

* 오해마시라. 나는 이 영화(다큐)를 아직 못 봤다. 보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렇다면 별점은 뭐냐고? 저 별 5개는 살바도르 아옌데를 기리는, 추모하는 나의 마음이라고만 알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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