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 안주철, <다음 생에 할 일들>,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창비, 2015.6.22 초판1쇄)

 

안주철 시인의 시 <다음 생에 할 일들>을 읽다.

, 시라는 게 이런 거구나. 힘 빼고 써도 범종 울리듯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감동을 주는 것. 그게 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런 시를 쓰지 못하면 어찌할 것인가. 더 열심히 시를 써야 하는 이유를 거듭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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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데스크탑의 윈도우7을 10으로 무료 업그레이드 하였다. 윈도우8을 잠깐 사용하기는 했지만 10은 7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작동에 무리가 없다. 이 참에 구입한 지 7년이 된 소니 VIO 노트북을 윈도우10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하였다.

이 노트북은 빠릿한 속도감보다는 베터리 소모를 최소화하고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에 주안점을 둔 듯한 느낌을 구입할 때부터 받았다. 그 점이 신뢰성을 높여 애정을 가지고 사용해왔다. 그러나 느린 부팅과 잦은 버퍼링은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이 참에 윈도우10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이를 해결해볼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펜티엄4 프로세스와 1GB RAM 사양으로 움직이기에 원도우10은 너무 무거웠다. 가벼운 운영체제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회사 동료의 도움을 받아 리눅스 운영체제인 우분투(Ubuntu)로 교체하였다. 우분투는 생각보다 빨랐다. 몸짓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분투’는 남아프리카의 반투(Bantu)어에서 유래한 말로, ‘나는 당신과 우연히 만났고,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존중과 헌신, 관계와 공유, 나눔과 공존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 우분투 정신에 대하여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에는 우분투라는 정신이 있다. 우분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통해서만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으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일이나 업적과 끈끈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스펙을 쌓는 데 전력 투구하는 한국의 현대 사회 현상에 비추어보면 우분투 정신은 먼 나라 얘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공존과 공유, 존중과 나눔은 우리의 미래를 살릴 유일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리눅스 커널에 기반한 운영체제의 하나로 우분투라는 이름을 정한 것은 너무도 어울리고 적절해 보인다.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우분투는 소스코드가 공개된 덕분에 누구나 내려받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직접 사용해보니 맥 os와 닮은 점도 보이고, 원도우보다 편리한 기능도 있다. 평소 자주 사용하던 윈도우 상의 소프트웨어를 당장 실행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클라우드 오피스를 주로 사용하다보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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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8-2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느려터진 노트북이 하나 있는데 우분투 깔아서 인터넷을 쓸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오피스 정도도 앱이 있겠죠?

푸르나 2015-08-27 09:12   좋아요 1 | URL
분명 기대 그 이상임을 확인하실 것입니다~~.
 

며칠 전에 거실 청소를 하다가 세 살 아들과 부딪쳤다. 정확히 말하면 아들도 아빠를 따라하겠다고 밀었다 당겼다 하던 밀대 걸레에 걸려서 넘어질 뻔 한 것이었다. 쓰러져 긁힌 발뒷꿈치를 주무르면서 소리내서 "아이고 아파, 아이고 아파"  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아들이 다가와서는 "아빠, 아파?" 했다. "응, 아파." 그랬더니 내 머리에 손을 대고선 "미안해"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자신이 미안한 상황임을 알고 미안하다는 말을 정확히 하는 것에서 깜짝 놀랐다. 상황을 인지하고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할 줄 안다는 증거이다.

몇 개월 전, 서툰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게 불편해 보여서 아들이 들고 있던 장난감을 3층까지 들어다 주었더니 "고마워"라고 말을 하여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건 아무말이나 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처지에 맞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담은 말을 하는 것이다. 입을 떠난 말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가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변화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말이란 정보전달, 의사소통 역할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말,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내뱉는 말, 요구를 회피하는 말, 엉뚱한 말, 딴청 부리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박근혜에게는 세월호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외치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딴소리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은 말하는 사람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근혜가 하는 말을 듣다가 보면 세 살 난 아이만도 못할 때가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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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선생의 『고려 한시 삼백수』(문학과지성사, 2014)를 구입하다. 

<책머리에> 쓴 문장 하나가 나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1972년에 김춘동 선생이 정년을 맞으시며 퇴임 기념 강연에서 한시의 자안(字眼)에 대하여 말씀했다. 


笛聲搖山去  피리 소리는 산을 흔들며 가고

漁火斂水來  고깃배의 불은 물을 걷으며 오네


선생은 위와 같은 자작의 시구를 칠판에 적어놓고, 이 두 줄이 시가 되는 이유가 흔들 요(搖) 자와 걷을 렴(斂) 자에 있다는 것을 자상하게 풀어주셨다. 그날 나는 시라는 것이 그냥 말이 아니라 한 자, 반 자 사이에서 결정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날 이후 시를 읽을 때 시의 눈을 찾아보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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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 선생이 시조집을 출간하였다. 

2008년 두 번째 시조집 이후 6년만이다. 

선생은 시집 맨앞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나는 한 번도 시조를 고쳐 쓰지 않았다. 

다만 다시 썼을 뿐이다. 

2008년 두 번째 시조집 <절반의 고요>를 출간하고 

이 시조집에 스물 세 편의 작품을 싣는다. 

나에게 6년 동안 시조 스물 세 편은 너무 많다. 

3장 6구 28자 내외의 시조에서 형식은 

말이 많은 시대 가혹하리 만치 

함축과 절제를 요구한다. 

앞으로 더 몇 편의 시조를 쓸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시간이 주어지면 

절필하듯 시조를 쓰겠다. 

그렇게 쓰겠다.


나의 시도 말이 많았다. 

선생이 던진 비수를 맨몸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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