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 안주철, <다음 생에 할 일들>,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창비, 2015.6.22 초판1쇄)
안주철 시인의 시 <다음 생에 할 일들>을 읽다.
아, 시라는 게 이런 거구나. 힘 빼고 써도 범종 울리듯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감동을 주는 것. 그게 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런 시를 쓰지 못하면 어찌할 것인가. 더 열심히 시를 써야 하는 이유를 거듭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