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거실 청소를 하다가 세 살 아들과 부딪쳤다. 정확히 말하면 아들도 아빠를 따라하겠다고 밀었다 당겼다 하던 밀대 걸레에 걸려서 넘어질 뻔 한 것이었다. 쓰러져 긁힌 발뒷꿈치를 주무르면서 소리내서 "아이고 아파, 아이고 아파" 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아들이 다가와서는 "아빠, 아파?" 했다. "응, 아파." 그랬더니 내 머리에 손을 대고선 "미안해"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자신이 미안한 상황임을 알고 미안하다는 말을 정확히 하는 것에서 깜짝 놀랐다. 상황을 인지하고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할 줄 안다는 증거이다.
몇 개월 전, 서툰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게 불편해 보여서 아들이 들고 있던 장난감을 3층까지 들어다 주었더니 "고마워"라고 말을 하여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건 아무말이나 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처지에 맞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담은 말을 하는 것이다. 입을 떠난 말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가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변화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말이란 정보전달, 의사소통 역할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말,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내뱉는 말, 요구를 회피하는 말, 엉뚱한 말, 딴청 부리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박근혜에게는 세월호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외치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딴소리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은 말하는 사람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근혜가 하는 말을 듣다가 보면 세 살 난 아이만도 못할 때가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