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읽다 나를 이루는 성분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시 멈췄다. 가족 안에서 나는 누군가의 딸이며 누나, 언니, 아내, 조카, 손녀가 된다. 그러나 나는 아이와 조카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엄마, 이모, 고모, 숙모, 큰엄마, 작은엄마는 (아직) 아니다. 사회에서 나는 장소와 입장에 따라 손님, 학생, 선생, 시인, 환자, 방문객, 회원이 된다. 나는 얼마나 복잡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 성분을 정말 다 가지고 있는가? 어떤 성분이 들어 있을 때 가장 나다운가? 


- 장석주 박연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난다, 2017(1판1쇄), 139p


정보 제공의 경우를 제외하고 문장 안에서 괄호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괄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문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연준 시인의 이 문장을 읽다가 "(아직)"을 대면하고서는 깜짝 놀랐다. 괄호 사용을 해야 하는 좋은 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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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한갓 물 밑에 잠긴 자갈밭 같은 것이어서

물이 지나갈 때마다

지나온 겁의 시간이 다 소리를 내는 거라


- 이홍섭 <물소리> 14~16행, 시집 [검은 돌을 삼키다], 달아실출판사, 2017


한때 종일 물소리나 듣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마침 등산을 하다 날이 저물어 야영을 했다. 깊은 산중 냇가에서 듣는 물소리는 처음에는 생소했으나 차츰 익히 듣던 일부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새벽녘, 물소리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에 퍼뜩 잠에서 깼다. 필경 저것이 수백년 전부터 할 말이 있어 나를 이리로 불러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말만 받아 적어도 평생 쓸 글을 한 자리에서 다 쓰겠다 싶었다. 귀를 가만히 귀울여 봤다. 한참을 듣고 있어도 그게 그거였다. 범상한 내가 범상치 않은 행동을 잠깐 한 것일 뿐이었다.  


대로변으로 이사를 하였다. 집앞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문 닫고 누워 있으면 꼭 냇물소리 같았다. 가만히 듣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 밤, 한밤중에 깨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귀신처럼 앉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모든 소리는 단 한 번도 같은 게 없다는 걸. 그 당연한 걸 혼자 터득하는데 꽤 오래 걸린 셈이다.  


혼자 걸어왔다 싶은 길, 혼자만 알고 있다 싶은 얘기, 혼자만 껴안고 있었다 싶은 고통도 돌아보면 다 별거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어떻게든 그걸 들려주고자 애쓰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몸과 마음 위를 지나가는 것들로 인해 스스로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똑 같게 들리지만 단 하나도 같지 않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물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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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법이나 범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치권력층과 밀착하여 초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부유한 천민’이라고 부르자. 부유한 천민은 법망 피하기를 넘어, 정책과 법을 이해관계에 맞추어 바꾸기도 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을 조작하기도 한다.

재산과 부를 등에 업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을 내재화한 ‘정신적 천민’이 ‘부유한 천민’이고 ‘기득권 천민’이다. 이런 정신적 천민이 공동체를 위한 책임 의식과 인륜적 감정을 얼마나 견지하겠는가? 사회 정의와 기본 질서를 망각하고 부조리를 양산하는 ‘부유한 천민’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다."


이정은(한국철학사상연구회), <다문화 사회와 민족정체성 - 이질적 문화공동체들의 한국적 갈등과 연대>, [철학, 삶을 묻다], 동녘, 2016


이재용이 징역 2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지 353일 만에 풀려났다. 이번 판결은 이재용의 집행유예를 목표로 논리를 짜맞추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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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 그림책이 참 좋아 3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백희나의 <알사탕>은 부재에서 출발한다. 같이 놀 친구가 없고, 엄마가 없다. 
그러면서도 부재가 부재의 공간을 만들지 않는 것은 작가가 부재 속에서도 따뜻함을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말과 형상과 사물 이면에는 정작 하고 싶은 말과 마음이 있다. 
그걸 내비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면 끝내 그 진심을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타인의 마음을 들어야 하고, 자신의 진심을 내보여야 한다. 

듣지 못하던 말을 듣게 해준 알사탕이 맨 마지막으로 들려준 말은 뭘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의 마음이고 나의 말이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하게 해준 알사탕.
작가가 제시한 부재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알사탕>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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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8-02-14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 아이에게 읽어 주면서 내 자신도 따뜻해졌어요

푸르나 2018-02-14 11: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다음이 궁금하고, 그 다음이 궁금하고, 그 다음이 궁금하다가....
마지막에서 환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저자 출생연도 틀렸음. 1966(×) --> 1963(o)로 수정 요망. 

알라딘의 나카마사 마사키 소개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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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18-01-1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담당부서 전달하여 정보는 이미 수정되었고, 정확한 정보 보여드릴 수 있도록 신경쓰겠습니다. 이후 이용하시면서 불편하신 부분은 나의계정>1:1고객상담으로 연락주시면 신속하게 안내 드리고 있으니 참고해주십시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