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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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소설이라고 술술 넘어가는게 아니라 거의 심리,철학,..좀 복잡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진다.말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들과 미국대륙을 횐단하는 여행기라지만 결코 아니다.실제 작년부터 읽다가 지쳐 안 읽다가 이제 새책보다는 올해는 읽던책 위주로 마져 읽어보자는 마음 가짐으로 겨우 다읽은 첫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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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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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에릭호퍼란 작가가 쓴책인데. 지은이 소개를 보면 어렵게 살다가 이책을 1951년도에 발표했다.이책은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황폐화된후 직후에 나와 집단 동일시에 관한 연구서로 그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주었으며, 오늘날에도 테러리스트와 자살폭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지침서가 되고 있다라고 쓰여져 있다.

 

며칠전 읽은 [불가능한것의 가능성]이 나온 출판사가 궁리인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좀 일관성이 없는것 같다.조선일보는 아니더라도 중앙일보 정도의 출판사가 기획해서 나올 성향의 책인것 같다.쭉 읽다 보면 테러리스트의 심리라던지 부랑자,사회불만자,뭐기타...심리를 잘 묘사한 느낌도 없지않아 있어 보인다.

 

히틀러=스탈린 뭐 이정도는 그렇게 등치시킬수 있지 않나 싶다가 나중에는 레닌마저도 광신자 취급한다.히틀러와 레닌이 별반 차이없어 보인다.도대체 대중운동을 모두 그런식으로 치부해 버리면 모두 또라이들만 이사회에 존재하는 꼴이다.

그리고 이 책이 좀 더 수상하고 이상한건 옮긴이가  책을 옮기면서 서론이나 후기 뭐 이런 해설도 없어 이책에서 뭘 전달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이책에서 대중운동을하는 모든이는 맹신자라는 건지?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집단심리를 이해할수 있다지만 그보단 우리 한국사회에 더 많은 대중운동에대한 우파들의 편협된 시각을 대변해 주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씁슬하다.

 

개정판이 나오면 좀 알차게 기획의도 라던지, 뭐 이책에서 얻을게 뭔지 설명이나 좀 해 줬으면 싶다.출판사 '궁리'가 좀 괜찮은줄 알았는데,좀 성의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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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 세계금융위기와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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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년만에 다 읽은 책이라 감개가 무량하다.사이즈도 작을뿐더러 지젝의 책중에서 분량도 아마 제일 작지 싶다.그리고 내용도 그렇게 철학적인(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실재계,상상계..또?) 내용이 아니라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다루는 현실적인 사건 위주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글이라 읽기도 쉬운데 왜이리 중간에 포기하고 또읽고 포기하고 했는지 모르겠다.

 

지젝이 이책의 제목이 다루는 것은 21세기 첫 십년을 열고 마감하는 두사건 ,2001년 9월11일의 공격과 2008년의 금융붕괴를 말한다.

"맑스는 역사가필연적으로 반복된다는 헤겔의 생각을 정정하면서 자신의 저작 '루이 보나빠르뜨 부뤼메르 18일'을 시작했다."어디에선가 헤겔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번 나타난다고 말한다.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처음에는 비극으로,그다음에는 희극으로" 이것은 맑스가 헤겔의 역사의 반복이라는 관념에대한 보충을 사로잡았던 수사적 비유였다."

 

첫장에서는 2007년 그 유명한 서브프라임모기지에서 발단이된 리먼부러더스 사태로 이어지는 세계적인 금융공황 상태에 대한 미국정부의 대처및 좌,우파의 대응등을 비교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출발하여 그 조건과 함의들의 규명해감으로써 차츰 '연관된 문제들'로 옮아간다. 첫번째 장은 위기 자체와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및 반응,이 양자를 규정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유토피아적 핵심을 개략적으로 서술하면서 우리가 처한 곤경을 진단해본다. 두번째 장은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적 실천을 위한 공간을 여는 지점들이 우리의 상황 가운데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밝히려 시도한다."

 

그리고 지젝은 이책이 당연히 당파성을 가지고 쓰여진 책이며, 도 그렇게 읽혀져야 한다는 생각인것 같다.

"이 책은 중립적 분석이 아니라 참여적이며 대단히 '편파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진리는 편파적이고,우리가 어느쪽을 편들 때에만 접근가능하나,이런이유 덜 보편적인 것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좌파가 권력에 대하여 근본은 건드리지 못한체 그저 주변만 타격을 주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지젝은 몇차례 비웃고 있다.예에사 몽고 장수가 러시아 침입때 농부의 아내를 강간 했을때 농부가 어떻게 처신했는가의 비교는 탁월하다.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제 11테제는 이것이어야한다--우리의 사회들에서 비판적 좌파는 지금까지 권력자들에게 때를 묻히는 데에 성공했을뿐이나,진정 중요한 것은 그들을 거세하는 것이다...."

 

"금융붕괴와 위기는 자본의 순환이 완벽하게 스스로를 유지할수 있는 폐회로가 아니라는 점--그것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실제의 재화가 생산되고 팔리는 부재하는 현실을 전제한다는점--을 분명히 환기시켜주기도 하지만,더 미묘한 교훈은 ('금융투기의 가상공간으로부터 생산하고 소비하는 실제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자'는 그 모든 수사에는 미안한일이지만)그 현시롤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역설은 실물경제라는 건강한 아기는 그냥 놓아두고 금융투기라는 더러운 물만 내다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의를 부자에 대한 위선적 변호라고 일축하기는 너무나 쉽다. 문제는 우리가 잔본주의적 질서 안에 머무는 한 그논의 안에어떤진실이있다는데, 즉 윌스트리트를 걷어차면 실제로 평범한 노동자에게 타격이 갈 것이 분명하다는데 있다."

 

"실행 가능한 전지구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좌파의 무능력이 또다시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현위기의주된 회생자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좌파 자신이 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사실상 덜미를 잡힌 쪽은 좌파였다."

 

"칸트(I.Kant)는 '생각하지 말고 복종하라!"는 보수적 모토에 '복종하지 말고 생각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복종하라,그러나 생각하라!' 는 명령으로 맞섰다. 우리가 구제금융안 같은 사건들로 옴짝달싹 못하게 될 때 기억해야 할것은 이것이 사실상 공갈의 한 형태이므로, 우리의 분노를 행동화(act out)하여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포퓰리즘적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무기력한 행동화에 굴복하는 대신 우리는 격분을 제어하고서,생각하려는 차가운 결의로 그 격분의 변화시켜야한다__ 진정으로 급진적인 방식으로 철저히 생각하며, 그러한 공갈을 가능케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회인지를 물으려는 결의로…"

 

 타자를 악마로 재현하는 데 대한 적절한 싸움의 방식은 타자를 주체화 하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는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거부해야 한다.

 

지젝의 비유는 계속된다.

"내가 즐겨드는 예 가운데 하나를 말하자면,홀로코스트를 구상한 장본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한가한 저녁시간에 친구들과 더불어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를 연주하기를 좋아했다.주체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경험은 '나의 내면생활의 풍요로움'에 대한 경험이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교수 등등으로서) 공정 생활에서 떠안고 있는 상징적 결정들과 책임들에 대비되는 나의'진정한존재'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대해 내부로부터 지니는 경험,자신이 하고있는일을 설명하기위해 우리자신에 관해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진실은 오히려 외부에,우리가 하는 일에 있다.

 

 - 자본주의의'새로운 정신'

 

소비의  차원에서 이 새로운 정신은 소위 '문화적 자본주의'의 정신이다.우리는 일차적으로 상품의 유용성 때문에,또는 지위의 상징으로서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풍이 제공하는 경험을 얻기 위해 그것을 구매하며 우리의 삶을 유쾌하고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그것을 소비한다.이 삼원구조에서 우리는 라깡의 삼원구조RSI를 떠올릴수밖에없다-- 직접적 유용성이라는 실재(몸에좋은건강식,자동차의 품질 등) ,지위라는 상징계(나는 나의 지위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자동차를 구매한다 유쾌하고 의미있는 경험이라는 상상계.

 

이렇게 생각한 적이 많은데,유기농은 누가 먹는가?그리고 미친 소고기는 누가 먹는가?같은 고기를 먹고 같은 채소와 과일을 먹어도 급이 다르다.

"우리가 유기농식품을 사는 이유도 그런것이 아닌가? 반쯤 썩은데다 값은 너무 비싼'유기농'사과가 다채로운 비유기농 과일보다 정말 더 건강에 좋다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누가있을까? 요는 유기농 사과를 살 떄 우리는 구매하고 소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어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즉 우리에게 있는 배려의 능력과 세계의식을 보여주며 집단적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 두가지 물신주의 사이에서

 

 진정한 좌파는 위기를 환상 없이,진지하게,그러나 불가피한 어떤 것으로,전면적으로 활용해야할 기회로 받아들인다. 급진좌파의 기본적 통찰은, 위기는 고통스럽고 위험 하지만 피할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은 싸움을 벌여 이겨야만 하는것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급진좌파의 차이는 비록 그들이 동일하게 세가지요소(자유주의 중도,포퓰리즘 우파, 급진좌파)를 언급하지만 이것들을 근본적으로 상이한 토폴로지 안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중도의 입장에서 볼때 급진좌파와 우파는 동일한 '전체주의적'과잉의 두가지 형태다.

 

- 자본주의적 예외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자기혁명화를 통해서만,그자신의 한계의 끊임없는 극복을 통해서만 자신을 재생산할수 있다-

진정한 과제는 국가에 거리를 취하는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를 비국가적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지젝은 쾌쾌먹은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꺼내든다.

"레닌의[국가와 혁명]이주는 교훈을 뻔뻔스럽게 반복해야한다-- 혁명적 폭력의 목표는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형하는 것, 그것의 기능,토대에 대한 그것의 관계등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일종의 (불가피한) 모순어법 으로서,포롤레타리아가 새로이 지배계급이 된 국가형태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 자체가 근복적으로 변화되어 민중참여의 새로운 형식들에 의존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다루고있는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칭하는 것은 민중이 자기 자신의 권력을 더이상 믿지않을 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중이 엘리뜨들,즉 그들을 대신하여 안다고 가정되며 지침을 제공하는 자들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을때,'(진정한) 권자는 비어있다'는 이제 결정은 정말로 엘리뜨들 몫이라는 인식에 수반되는 불안을 민중이 경험 할 때 발생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핵심적 문제는 후기 자본주의 내의 '지적 노동'의 우위(혹은 심지어 주도적역할)가 노동의 객관적 조건으로부터의 노동의분리,그리고 이러한 조건의 주체적 재전유로서의 혁명이라는 맑스의 기본적 구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물신주의 '사물들간의 관계'로의 전치는 '개인들간의 관계'를 탈물신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형식적'자유와 자율성을 획득할수 있게한다. 시장경제에서 나는 사실상 내내 의존적이지만 그래도 이 의존성은 '문명화되어'있어서 직접적인 예속 혹은 물리적 강제의 형태 대신 나와 다른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시장 교환의 형태로 실연된다.

그래도 그 의존성을 탈피할수 없는게 자본주의적 예속관계가 아닐까!

   ☞감옥이 따로없다.

 

"자유로운 존재로서만 나는 나의 실제의 예속을 나의 인간적 조건의 타락으로 경험할 수 있다. 헌데 나의 자유와 나의 예속의 실제성 사이의 이러한 적대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되어야한다. 나의실제의 자유에 대한 요구는 나의 '형식적' 자유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다. "

그럼 나는 현재 자유로운 존재인가?형식상의 자유로운 존재 자체도 중요한건가?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 생산과정의 자본 아래로의 형식적 포섭이 물질적 포섭에 선행하듯이 형식적 자유는 실제의 자유에 선행하며 후자의 조건을 창출한다. 유기적 생활세계를 붕괴시키는 추상의 바로 그 힘은 동시에 해방정치의 원천이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을 어떤 특수한문화속에뿌리박은 존재로 지각한다고 해도 우리가 세계자본주의에 참여하는 순간 이 문화는 항상 이미 탈자연화되며, 사실상 추상적인 데까르뜨적 주체성의 하나의 특정하고 우연적인 '생활방식' 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 바로앞의 적을 물리쳤으나 새로운 형식의 한층 더 노골적인 자복주의적 지배가 대신 들어섰다. '포스트모던'자본주의에서 시장은 교육에서 감옥과 법질서에 이르기까지 종래 국가의 특권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분야에 새로이 침입해들어갔다.

'비물질노동'(교육,치료등)이 사회적 관계를 직접 생산하는 종류의 노동으로 칭송될때우리는 이것이 상품경제 내에서 의미하는 바를 잊지 말아야한다--지금까지 시장에서 배제되었던 새로운 영역들이 이제는 상품화된다는 것말이다.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 더이상 친구와 의논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에게 문제를 처리해달라고 돈을 지불하며 아이들은 갈수록 부모가 아니라 유료탁아소나 육아도우미의 손에맡겨지는 그런식이다."

 

 사유화의 이러한 새로운 형태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맑스의 개념적 장치를 비판적으로 변형시킬 필요가있다. 맑스는 '일반지성' 의 사회적 차원을 경시했기 때문에 '일반지성' 자체의 사유화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화가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투쟁의 핵심에 있는 문제다.

고전 맑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착취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으며,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착취는 점점 더 직접적인 법적 조치, 즉 비경제적 수단에 의해 강제되어야하는 것이다.

오늘 착취가 갈수록 세(貰)의 형태를 취하는것은 그때문이다.오늘 이를 다른식으로 표현하면,부의 창조에 있어서의 '일반지성'(지식과 사회적 협동)의 핵심적 열할로 인해 부의 형식들이 갈수록 '그것의 생산에 소요되는 직접적 노동시간과 전혀 균형을 이루지 않게' 되는 경우, 그 결과는 맑스가 예상했던 듯한 자본주의의 자체 붕괴가 아니라, 노동력의 착취에 의해 생산되는 이윤이 바로 이 '일반지성'의 사유화에 의해 전유되는 세로 서서히 상대적으로 변화해가는것이다. 빌게이츠의 경우를 보라.->지성의 사유화?

 

"오늘날의 선진사회들에서 '세가지 주요계급'의 외양을 하고 나타나는데 그것은 정확히말해 세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세 분파로서 곧 지적노동자,구래의 육체노동자,그리고 추방자(실업자,슬럼가 거주민,그밖의 공적영억의 틈새들).노동계급은 이처럼 세분파로 갈라졌고 각 분파는 자신의 '생활방식'과 이데올로기를 지니는바.

1.지적계급은 계몽된 쾌락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를

2.구래의 노동계급은 포퓰리즘적 근본주의를

3.추방된 분파는 더욱 극단적이고 독특한 형태들을 지닌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이 삼자는 명백히 보편자,툭수자,개별자의 삼자다.이 과정의 귀결은 본래의 사회적 삶,세분파가 함계 만날수 있는 공적공간의 점차적 붕괴이며 온갖 형태의 '정체성'정치는 그러한 상실에 대한보충물이다. 정체성 정치는 각각의 분파내에서 특정한 형태를 띠는바,

지적 계급에서는다문화주의적 정체선 정치로,

노동계급에서는 퇴행적인 포퓰리즘적 근본주위로,

추방자들에서는 반비합법 집단화로 나타난다. 이들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결여된 보편적 공적 공간에 대한 대용물로서의 특수한 정체성에 대한 의존이다.이렇듯 프롤레타리아는 세부분으로 분열되어 각 부분이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지적 노동자들은 '촌무지렁이' 노동자들에게 대한 문화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육체노동자들은 지식인과 추방자들에게 태한 포퓰리즘적 증오를 드러내고,추방자들은 사회 그자체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리하여 "포롤레타리아여,단결하라!"는 옛 외침은 그 어느때보다 적실하다.'포스트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조건속에서도 노동계급 세 분파들의 단결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를 뜻한다. 그러나 이 단결을, 그것을 역사적 과정 자체의 '객관적 경항'으로 규정하는 무슨 '대타자'의 형상이 보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세분파로 확연히 규정해 놓고 단합이 정말 가능하기나 할가?

 

지젝은 이제 우리(좌파를 지칭하겠지?)가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역사가 합법칙성을 가지고 필연적으로 역사의 주인은 우리고 승리할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아니라고...

 

'역사의 의미'는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한가지는 '정향'으로서, 역사가 어딘가로 향해 간다는 것, 다른한가지는 역사가 의미를 지닌다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프롤레타리아를 통한 인강해방의 역사,역사가 '우리를 위해 일하고'있다른 편견을 가차 없이 버려야한다."

 

 우리는 가능성의 차원에서 우리의 미래가 끝장나게 되어있다는것, 파국이 일어나리라는 것, 파국이 우리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재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재난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것이다. 다시말해 어떤행위가 의존하는 확실성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다. 참된 행위는 그에 관해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어떤 투명한 상황 속의 전략적 개입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참된 행위가 지식의 틈새를 메우는것이다."

 

 혁명의 성공은 그 황홀한 순간들의 숭고한 경외감으로 평가될 일이 아니라 그 거대한 사건이 반란 후에 찾아오는 일상의 차원에서 남기는 변화들로 평가되어야한다.

 

"우리가 의존할 대타자는 없다는것을 의미한다.'역사가 우리편에있다'는 고전 맑스주의의 믿음과 달리 현시대의 형세를 보면 대타자는 우리에게 적대적이다.우리의 역사적 발전의 내적추동력은 그대로 놓아두면 우리를 파국으로,세계의 종말로이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수한 주의주의,다시말해 역사적 필연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다. "

 

지젝이 주는 교훈은 세상을 가만히 놓아두면 저절로 잘 굴러가 우리편으로 오는것이 아니라 사실을 인정하고 그파국을 헤쳐나가는 실천의지야 말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라고...지젝의 난해하지만 이 복잡한 현실에서 이론을 어떻게 정립하고 현실을 해석하는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가며 해주는 글이라 책을 읽다가 거의 책에 밑줄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한마디로 놓칠 문장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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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궁리 공동선 총서 1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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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리뷰다.모처럼 일찍 마쳐 집으로 와서 평일에 PC앞에 앉아 WIFE가 끓여준 아메리카노 한잔 하면서 여유로움을 누려본다.

 

집에 지젝의 책은 많지만 제대로 읽다가 만책이 많아 지젝이 멀게만 느껴진다.레닌재장전에서의 단편,그리고 2번이나 중간까지 읽다가 만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100페이지 읽다가 중단된 '시차적 관점,, 그냔 사다가 꽂아둔 '지젝이 만난 레닌', 진짜 2번 거의 다 읽어가다 이책 때문에 미룬 '한번은 비극으로....', 지젝 스타일의 글은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지만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지젝도 지젝의 아들이 아빠더러 너무 두거운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읽다가 다 못읽고 죽으면 어쩔거냐고,ㅋ.., 그리고 지금 헤겔에 대하여 쓰는 1000페이지 분량의 책도 쓰지 말랜다.중간에 죽으면 어쩔거냐고...뭐, 인생을 자기가 바라는 대로 다하고 죽을수 있나...재미있게 살다 과정에 몰두하다 가는거지

 

인디고서점이 아마 기억에 부산에서 청소년들의 사회과학서점 책읽기 모임 이었던것 같은데, 언제 이들이 지젝과 인터뷰까지 하는 세대로 성장했는지 모르겠다.이책의 참고 문헌을 보면 지젝에관한 책을 모두 다읽었을뿐 아니라, 이해와 더불어 문제의식까지 공유 한것 같다,아직 어린것 같은데..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것 같다.

 

내가 이때에는 아주 편협한 독서로 한방향으로만 읽다 보니 지금 나오는 철학이론서들이 읽기에 버거울뿐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가 상당히 어렵다.읽기는 읽지만 다 읽고 난뒤 도대채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머리가 나쁜건지 나이가 들어 감각이 무딘건지 모르겠다.

 

몇가지 생각나는 것만 겨우 리뷰 해 보자.지젝은 프롤레타리아의 개념을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벗어나 지금은 배제된자, 소외된자의 계급에서 찾아야 된다고 한다.노동자 계급은 어떻게 생성되는가?대자로서의 자본가 계급이 존재 하여야만 두 대립 계급이 형성되어 지는데. 가만히 생각하면 요즘 임노동자들이 어디 그렇게 계급의식을 자각하고 이 자본주의를 전복하려고 하는가?물론 비정규직 및 최하층 임노동자들이야 별반 이전대비 나아진게 없지만,웬만하면 자가용 몰고 다니면서 얘들 학원 보내고 부모님 잘모시고 이렇게 산다.뭐 이사회에 큰 불만을 가지고 혁명하자고 대 들겠는가? 한 번지젝이 말하는  배제된자가 어떤 상황에 존재하는 이사회의 구성원인지 곰곰히 생각하여 이론적으로 정립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자본주의 이후의 주의는 뭐라 말인지?지젝이 말하는 공산주의 인지?여기서 지젝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이전의 그런 공산주의는 아닌것 같은데..애매하다.공산주의가 이런게 있고 저런것도 있는지? 아마, 한국은 공산주의라 하면 안되니 좀 어감 좋은 꼼뮨이라 하는지?개념 정의가 상당히 까다롭다.쉽게 정의 하긴 힘든게 틀림 없다.

 

생태주의,페미니즘,소수자(이주노동자)에 대한 투쟁에 주안점을 두는 좌파?들에 대한 지젝의 관점은(내가 해석한 관점) 근본은 건드리지 않고 주변만 즉,이 체제안에서 허용되는 그런 투쟁으론 이 난국을 헤쳐 나갈수 없다는  그의 통찰력에 이래서 '지젝,지제'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이책은 그나마 지젝에 쉽게 다가갈수 있도록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어 그의 사상을 잘 이해할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어 읽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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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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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지는 모르겟지만 손미나가 이혼을 한후 쓴책인것 같다.'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결혼전인것 같고 이책은 결혼과 이혼을 거친후 아르헨티나 여행을 한후 나온 책인것 같다.제목도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인걸 보니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이책을 쓴거 같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와 거의 같은 느낌을 받았다.손미나가 스페인어를 할줄알아서 스페인,아르헨티나로 가서 이런 여행기를 쓰지 않나 하는 느낌과 더불어 언어를 모르면 여행을 가서도 거의 건물만 보고 뭐 좀 색다른 음식만 먹고 올뿐인데 언어를 통한 사람과의 경험이 이 여행기를 풍성하게 해준다.

 

이런 책은 절판이 잘 안되는데 알라딘에서 구할수 없어 보관함에 그냥 두고 있었는데 알라딘종로 헌책방에 마침 나와 있어 구입했다.헌책이 별로 살건 없지만 가끔 몇권씩 눈에 띄는게 있어 시간 날때마다 둘러 보는게 좋다.

 

아르헨티나라고 하면 생각나는게 당연히 축구다.마라도나,그리고 지금의 메시...손미나는 2002년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에게 패했을때 바티투스타가 그라운드에서 울때 아르헨티나 국민은 물론 자기도 울었다고 한다.긴 경제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축구를 통해 기쁨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때 나도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박지성의 팀동료인 마이클 오언이 패널티 박스에서 헐리우드 액션으로 넘어져 pk를 얻어 냈다,분명히 발에 걸려 넘어진게 아니었다.베컴이 침착하게 차넣어 1:0으로 잉글랜드가 16강에 진출하고 아르헨티나는 예선 탈락했다.

 

나는 꼬소했다.아르헨티나가 어떤 나라인가.축구에서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굴욕을 안겼는가.1986년부터 월드컵 한국 경기때마다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승리를 기원했지만 그때마다 정말 처참하게 축구선진국에게 유린 당했다.그때는 당연히 우리가 아르헨티나에게 지는것이었나?가슴이 서렸지만 --나도 그때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울었지만 글쎄 누가 우리를 보고 같이 울었겠는가?경제는 경제고 축구는 축구다.

 

그리고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좀 건방진것 같다.축구 하나 빼고 뭐 잘하는게 없으면서 큰소리 치고 아시아 동양 사람들을 무시하고...뭐 안 접해봐서 모르지만 선입견일 확률이 높지만..

 

손미나의 여행은 광활한 대지믜 남미 끝자락에 위치한 이 대륙을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서 순수한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의 감정을 대화와 연대로서 이해하여 글로써 나타냈다.우리가 여행하면 유명한 건물과 공연등 관광회사 가이드 따라다니느라 바빳을 텐데..역시 뭔가 다르다.

 

요즘 손미나는 소설책도 펴내고 , 간혹 사회자로도 TV에 출연도 하던데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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