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2) - 사과의 맛

 

 

 

 

 

작고 동그랗고 빨갛다 

연노랑 속살을 베물자

아삭! 귓전이 울리고  

연노랑 즙에 혓바닥이 

촉촉 달콤하게 젖는다  

 

역시, 이건 '가을'이라 쓰고 '가을'이라 읽는다

 

이제 곧 저녁이 秋夕 들겠네

이제 곧 가을도 저물겠네

이제 내 가을도 初老 완연해지네

 

사과의 맛 선악의 맛

태초의 맛 낙원의 맛

맛있는 맛 알싸한 맛

 

 

 

*

윤병락, 작은 우주....

 

어제 먹은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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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의懷疑

 

 

 

 

1

 

곰탕, 꼬리곰탕이라고? 너무 무서워!

아이야, 곰탕은 소뼈와 고기를 푹 곤 탕이란다

그 착한 소를, 더 무서워!

 

 

2

 

곰탕 안에는 왜 곰이 없는가, 왜 뽀얀 국물뿐인가?

어린 나의 독한 懷疑에 주어진 답이란 

총총 썬 초록 대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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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1) - 아침바람 찬바람

 

 

 

 

 

 

창문을 열자마자 아침바람 찬바람이 엄습한다

열매 맺기는 글러터진, 토마토 줄기가 주눅든다

이건 '가을'이라 쓰고 '가을'이라 읽는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목구멍이 칼칼하고 아랫입술이 메말라 딱지가 된다

아른거리는 추일서정, 조만간 트렌치코트를 꺼내야겠다

역시, '가을'이라 쓰고 '가을'이라 읽을 수밖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신석정. 문득 그리워지는 이름이! 아줌마, 가을 타는 중^^; 검색을 막 해봤으나 마땅한 시집이 없어(미래사 시인선이 언제 절판됐지, 흑ㅠ), 도서관 가야겠다. 명실상부한 개강입니다, 그만 놀고 정신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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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쓰는 봄의 기록

 

 

 

 

 

5월 5일 우리 동네 텃밭 

널따란 공구함 나무 상자 위, 고양이가 낮잠을 주무신다

새끼를 뱄는지 몸집은 한층 더 방만해 

검정 바탕에 얼룩덜룩 흰 무늬

눈썹에는 눈꼽까지 묻어 

참 더럽고 못 생긴 고양이다

 

이봐요, 고양이씨, 이 몸은 인간이거든요? 도망 안 쳐요?

어쭈, 야 이 괭이 놈아, 냉큼 안 일어나?

 

게슴츠레 눈이라도 떠주면 덜 뻘쭘할 텐데

웬걸, 인간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여전히 봄날의 낮잠 삼매경이시다

인간만 자존심 상하고 자존감 무너지지   

고양이는 행복해 햇살은 너무 따사로워  

 

그러게

상관 없는 거 아닌가?

 

 

*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 도-키의 일종의 기행문인데 유럽(영국, 프랑스 - 2개국 순방?^^;) 문명 비판서라도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어릴 때는^^; 정음사 판 큼직한 전집에 <하상동기>라는 한자 제목으로 들어가 있던 것. 무엇 때문인지 내 머릿속에는 제목을 아예 풀어 <겨울에 쓰는 여름 인상>으로 기억되어 있다. зимние заметки о летних впечатлениях.

 

 

 

 

 

 

 

 

 

 

 

 

 

 

장기하를 보면 이적이 항상 생각난다. 언젠가 한 영문과 선배가 말한대로, 우리는 예술가(이때는 소설가, 시인도 마찬가지)에게 모종의 spontaneity를 바라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런 즉흥성, 자연스러움을 나는 '들림/홀림'으로 이해했다. 아무래도 이적보다는 장기하가 그런 것이 좀 부족해 보이고, '토이' 유희열 역시 그렇다. 더 옛날로 가면 (고 김광석 대비)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김창기 역시. 이러나저러나

 

- 상관없는 거 아닌가?  

 

역시 제목이(얼굴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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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너와 함께한 첫날밤

밤잠을 설쳤다 꿈이 없었다 

밤에도 먹고 싸는 존재였지

너란 녀석은

 

세상에 제일 어려운 건 띄어쓰기 글짓기

못지않게 어려운 건 나머지 있는 나눗셈 

그리고 물질의 성질과 자석의 원리 등등

딱 싫은 건 고장의 유래와 문화유산 등등

 

너와 함께하는 몇날밤

잠은 같이 자지만 꿈은 항상 달라

네 꿈의 초대장은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꿈밖에서 그러나, 나를 기다리는 건

원효대사 해골물이롤세

엄마, 나도 핸드폰 사줘, 응? 

친구들은 다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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