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거의 다 되도록 퍼질러 자고 일어나(이런 나무늘보 모드의 쾌감이란!) 뉴스를 검색해본다. 사진도 몇 컷 있어 분위기가 더 쉽게 짐작된다. 그리고 이런 얘기 해도 되나, 그가 저 무섭고 꼬장꼬장한 그곳에서 얼마나 '비주류'였는지도 짐작된다. 어디에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아마 너무 멋쩍어서?) 이런 추억이 있다.

 

1996년이었지 싶고 나는 그때 그의 전공 강의를 듣고 있었다. 마침 등단했다. 그 얘기를 하려고 수업 직후에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 자체가 워낙 큰일이라 정말이지 어마무시하게 떨렸던 것 같다. 그는 책상 앞에 서 있었고 내가 학과와 이름을 얘기하자 출석부를 들었다. 이번에 등단했고 어쩌고 하자(솔직히 너무 떨어서 말을 하긴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고개도 들지 않고,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고 심지어 사람 얼굴도 한 번 안 보고 한 손을 드는둥 마는둥 하며 그만 가라(거의 '꺼지라'는 느낌의)는 의사를 전했다. 어떻게 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 무섭고 죄송스럽고 등등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그 순간 그의 모습이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가 감히 공감을 표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검색되는 서영채 선생의 글에 무척 잘 묘사된 그런 것. 내 눈에 그는 거대한 짐승처럼 보였다.

 

보통 사람들과는 매우 달랐던 한 존재가 지니고 있던 기품, 지나치게 괴팍해서 고약해 보이기도 하고 엉뚱한데도 어느 순간 갑자기 거인처럼 육박해오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알기 힘든 그 독특한 향기. (...)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자 애쓰지 않았다. 그런 것을 위해 써야 하는 힘과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때로는 비굴할 만큼 겸손했고, 돌아서서는 한없이 오만했다. 싫은 것은 가차 없이 싫어해서 없는 적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태연하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르고자 하는 땅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고자 원했던 세계는 가치나 이념의 전쟁터 같은 곳이 아니라, 사실과 맥락이 묻혀 있는 황무지이다.(...)

 

말년에, 젊은 사람들이 모인 한 강의실에서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고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유서 깊은 한 독일 대학의 교훈이 진리 자유 그리고 고독이라고. 진리와 자유란 모든 대학의 모토이다. 그러니 특이한 것은 고독일 수밖에 없다. 3인칭으로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는 싸늘한 곳이다. 그 세계가 요구하는 것은 차가운 열정이다. 공부를 하려는 자라면 모름지기 집과 부엌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고독의 요체이다. 그 차가움을 버티고자 하는 사람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고독은 곧 대학의 이념이 요구하는 장소이다. 뒤에 확인해보니, 그 대학의 교훈에 고독은 없었다. (...)

 

니체의 말투를 빌린다. 피하라 너의 고독 속으로! (...)

 

피하라(달아나라) 너의 고독속으로. /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

 

<악령>을 다듬으려는 참에(이제야 1부 3장, 흑, 언제 다 하냐, 당최 왜 이리 기냐 ㅠ.ㅠ) 또다시 그가 떠오른 것이었다. 참 역설적인데 그의 강의에서 도-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도 같다. 도-키의 전기, 소설 세계 등에 덧붙여, 즉 이런 '샛길' 와중에 스타브로긴의 사상 얘기를 하셨던 듯하다. <악령>을 얼마나 제대로 읽었는지, 이런 것과는 무관한 어떤 것. 그는 누구보다도 이 소설을 사랑했고 특히 <스타브로긴의 고백>에 푹 빠졌던 것 같다.(<악령>은 나의 그 동기가 도-키의 소설 중 제일 좋아한 소설이기도 했다, 여고시절 화장실 갈 때도 들고 다녔다고...) 저 산문집(여행에세이?) 어디에 그 얘기가 잔뜩 들어 있었던 것 같다.(2층임에도 빛이 들지 않는, 꽉 막힌, 긴 직사각형의 자취방에서 3학년때 읽은 것 같다.) 이제는 이미지도 뜨지 않는 르네 지라르, <소설의 이론>(삼영사), 즉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역시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도-키 연구서이다. 바흐친의 도-키와 더불어 내가 제일 아끼는 책이다.  

 

 

 

 

 

 

 

 

 

 

 

 

 

 

 

 

*  

 

돌이켜보면 무척 짧은 시간인 대학 학부 4년 동안 우리가 그를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너 역시, 너의 운명으로, 너의 고독으로 도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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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추도식에 가려면 지금은 나가야 하는데, 아니, 나갔어야 하는데 그냥 접기로 한다. 여전히 애도의 마음으로 가득 하지만(아, 또 검은색 정장도 있지만), 요즘 내가 약을 먹진 않으나 확실히 우울증(그런데 왜 이리 많이 먹고 많이 자냐?)에 덧붙여 대인기피증 같은 것이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집에 앉아 주절거려 본다.

 

그를 생각하면, 대학 시절 친구들(특히 지금 위암 투명 중인 그 동기와 문학회의 여러 선배들)과 함께 주고받은 (그에 관한 여러 흥미로운 에피소드 외에도 -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를 참 사랑했던 것 같다, 누가 교수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을 갖느냔 말이다)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사람은 한평생 얼마만큼의 책을 읽을 수 있나. 또 얼마만큼의 책을 쓸 수 있나. 단위를 좀 줄여보기도 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쪽수를 읽을 수 있고 또 얼마만큼의 매수를 쓸 수 있는가. 

 

하루 24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었고 무한히 건강했던 이십대. 그때도 책 읽을 시간, 책 쓸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왜냐면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가.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 이것보다도 더 무서운 의지의 부족. 하루에 원고지 20매. 대학 시절의 나라면, 애개개~라고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엔 앉은 자리에서 단편 하나 쓰는 건 우스웠으니까. 레포트도 마찬가지.

 

지금은 부디 엉망이라도 좋으니, 나중에 다 버려야 할 만큼 형편 없어도 좋으니 제발 아무거나 좀 써져라, 한 장이라도 좀 써져라, 하고 (어디에다? ㅠ.ㅠ) 애걸복걸해야 할 판이다. 그뿐인가. 하루 중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5~6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라고 자주 생각하는데, 이 자체가 하나의 징후다.) 그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도 육체적 건강(요즘은 이렇게 눈치를 봐줘야 하는 내 몸이 너무 '안습'이다), 정신적 건강, 즉 불필요한 감정 소비의 자제이다. 아이 낳은 뒤로 계속 '내려놓는' 중이지만, 오랜만에 '분발'이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일개 평론가의 죽음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다니. 심지어 욕설도 있어서 참 놀랐다.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음에 대한 반증이다. "너절한 것들!"

 

*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 시간 여유가 좀 많았던 시절(또 '장애'라 생각지 않아 마음의 여유도 더 많았던 시절), 유투브에서 봤던 동영상 중 인상적이었던 대사 하나. 대략, 요즘 사람들이 책을 좀 안 읽는 거 아니냐, 하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 

 

"전혀, 우리에겐 우리의 필연이 그들에겐 그들의 필연이 있으니까 뒷방늙은이 훈계는 염치없는 거지, 나는 다만 내 일을 뿐이오."

 

*

 

이십여년 전의 그 질문. 사람은 평생 얼마만큼의 책을 읽고 또 얼마만큼의 책을 쓸 수 있나. 하루에 원고지 20매. 에이포 두어 장. 너무 힘들면 10매라도. 에이포 한 장이라도. 그만큼 쓰기 위해 우리는 열배는 족히 읽어야 한다. 90년대 내 소설에 대한 월평은 물론, 아무도 내 소설을 읽지 않은 2000년대에도 그는 내 소설에 대한 월평을 썼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은 평생 그렇게 읽고 그렇게 쓸 수 없다. 이 점에서 그는 정녕 천재였나 보다. 학적 성실성 역시 타고난 것, 즉 하늘이 준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

 

역시나 그 시절, 나의 지도교수가 사석에서 그를 욕했다. 어쩜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아마 도-키와 러시아문학) 것에 대해 그렇게 무식하게 마구 써대냐, 하는 식의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말한 자는 정년이 다 하도록 그럴 듯한 연구서 한 권 내놓지 못했다. 명백히 훌륭한 학자였음에도, 여하튼, 결과적으로 그렇다. 너무 '아카데믹'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글쎄다. 어떤 것이 옳을지, 어느 길로 갈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나는 욕을 듣더라도(제발 욕이라도, 악평이라도 해주시길!) 쓰고 싶다. 많이, 많이 쓰고 싶다. 그 수치를 이겨내지 못하고 어떻게 글쟁이냐. 걸작만 쓸 수는 없는 거다. 또 세상에는 걸작 쓰는 작가(연구자)만 있는 건 아니다.

 

*

 

아무것도 써지지 않을 때, 소설도, 논문도, 연구서도, 심지어 일기도 써지지 않을 때, 내가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말하자면 지금이 그렇다. 이제부터 [악령]을 고친다! 여기다 썼으니 진짜 '수행'하도록 한다.

 

그리고... 땄다, 운전면허.

 

 

 

학원에 입학한 것이 2017년 8월 8일. 필기는 한 번에 붙었다, 그것도 간신히. 기능은 한 번 떨어지고 두 번 연기하고 두 번째 시험에서 붙었다. 도로주행, 한 번은 신호위반 실격, 5분도 못 달리고 떨어졌다. 그 다음은 주행은 끝냈으나 60점, 점수 미달 불합격. 마지막은 81점으로 붙었다. 지난 추석 연휴, 10월의 빨간 날, 심지어 수업까지 두 번 휴강하면서 수업 듣고 시험 보고, 아주 난리였다. 나중에는 오직, 오로지 지하인처럼 "오기에서", 정말 뻗쳐서 죽어도 따야겠다는 집념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 대목이 무척 '너절'하게 여겨졌다. 면허증을 따기만 하면 '장롱'에 처박아둬야지, 하며 이를 갈았는데, 음, 또 한 번 너절하시다, 도로연수 등록했다. 차를 모는 인생은 어떨지.  

 

이십여년 전, 사람은 딱 두 부류였다. 소설을 쓰(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면허 따니 세상에는 두 부류의 존재가 있다. 차밖의 사람, 차안의 사람. 혹은 두 발로 움직이는 사람, 차로 움직이는 사람. 후자에 살짝 끼어 보니 길바닥이 새삼스럽다.

 

*

 

이렇게 쓰는 동안, 어느덧 다섯시가 다 되었다... 

사람이 서문만으로도 저렇게 두툼한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다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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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룩주룩 왔다. 아이는 체험 학습을 다녀오고 나는 빈소에 다녀왔다.

이럴 줄 알았다. 에효.

사람은, 늙고 아프면, 죽는다.

이만한 학자, 이만한 평론가, 이만한 교수가 다시 나오긴 힘들겠다.

 

 

 

 

 

 

 

 

 

 

 

 

 

 

 

 

 

 

 

 

 

 

 

 

 

 

 

 

 

 

 

 

 

 

 

 

 

 

 

 

 

 

 

국문학과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의 수업을 찾아듣고 그의 저서를 탐독하고(아무리 부지런히 읽어도 계속 나왔다, 새 책이ㅠ.ㅠ) 액자에 끼운 그의 사진을 자취방 책상에 세워두고 매일 바라보곤 했다.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그는 참 미남 교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오늘 보니 사모님의 미모와 기품도 놀라웠다.) 저서야 지금도 읽을 수 있지만, 그 강의는 물론 다시 들을 수 없겠다. 돌이켜 보면 대학 4년 내내 얼마나 많은 강의를 듣는가. 하지만 그만한 강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문학함, 그의 삶, 그의 짐승(=문학)스러움, 그런 것을 우리는 닮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데 왜 그의 고별 강연이 떠오르지 않지? 돌이켜 보니 그해(2001년) 나는 러시아에 있었다. 그걸 놓친 게 참 아깝다. 

 

참 슬픈 날이다. 영면하시길.

영정 사진 속의 그는 여전히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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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최근에 지은 앞 건물 앞이 시끌벅적하다. 주로 검정색 위주의 정장을 입은 청년들(심지어 소년들?), 멀리서 보기에도 비주얼이 일반적이지 않다. 뭘 하는 자들이지? 3층인가 되는 곳에 상당히 넓은 홀(?) 있다. 맨앞쪽(왼쪽)에 심사자일 듯한 사람들이 쭉 앉아 있다.(벽에 가려 잘 안 보인다.) 안내원(?), 도우미 같은 여성 한 명이 정장 차림으로 홀을 오간다. 홀의 반대쪽 끝(오른쪽), 대여섯명 되는, 훤칠한 미남 청년들이 일렬로 서 있다. 그 다음, 한 명씩 앞으로 나와 홀을 정확히 두 번 돈다. 끝. 그 다음 차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3분? 5분? 그 정도일 법하다. 그런 '나'들이 수십명이다. 밝을 때 시작했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홀에 전깃불(^^;;)이 켜질 때까지도 계속된다.  

 

*

 

도무지 한 번뿐인 것은 아예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디서 나왔던가. 여러 표지 중 그래도 맨 처음 읽었던 저 표지가 제일 좋다. 결국 한 번만 살게 되는 삶, 또 한 번만 살게 되는 지금 이 순간, 이건 도무지 없는 것과 같다.

 

 

 

 

 

 

 

 

 

 

 

 

 

 

 

 

 

이십대때 이렇게 지적인(!) 소설 쓰고 싶어했다, 지금도 그렇다. 공부가 답은 아니지만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도 없어 또 공부를 생각한다. 공부하라. 넓은 의미로. 쉰 살이 되기 전까지 완성한다, 자전적인 성장소설. 문법, 문체를 못 찾겠다. 그 동안 또 공부하라. <악령> 손질을 끝내고 <백치>를 번역해야겠다. 그 사이사이 계속 읽으라, 눈이 허락하는 한, 허리가 버티는 한 계속 읽으라. 정녕 이제 뭘 어쩌겠는가. 작은 우울이 더 큰 우울로 이어질까봐 계속 나를 다독인다. 나는 위암 따위는 걸리고 싶지 않다! 진심이다. 그런 식의 소원성취는 현재의 나에게는 호사다.   

 

겸사겸사 쿤데라는 소설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 에세이를 잘 쓰는 작가였던 듯하다. '배반당한 유언들'은 카프카와 막스 브로트 얘기였던 듯하다.(거기서 출발했던 듯하다.)  

 

 

 

 

 

 

 

 

 

 

 

 

 

 

 

*

 

잘은 모르겠지만, 어제의 검은 워킹들(?)은 모델 면접(오디션)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어제 그들은 서류 전형(?)은 다 통과한 자들일 터이다. 말도 필요 없다, 그냥 걷는다, 다소 빠른 속도로 한 번, 그 다음은 다시 제자리로. 이 움직임을 한 번 더 반복, 그러곤 끝. 저 중에 몇 프로가 붙을까. 그들에겐 또 심층의 면접이 있을 터. 그 다음 직업 모델이 되면, 또 다른 정글이 기다릴 터.

 

연일 패션 사이트를 보면서(이게 내 책의 세일즈 포인트를 확인하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는 훨씬 좋은데^^;; 문제는 돈이지만 반품을 생활화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눈에 뜨이는 것이, 시즌별로 교체되는 모델들이다. 정말 안 예쁜 애들이 하나도 없다..ㅠ.ㅠ 키는 다들 어찌나 큰지, 그들에겐 미니 원피스인 것들이 160센티를 전후한 일반인들, 평민들에겐 미디 원피스, 롱 원피스다. 간혹 참 못 생긴 모델(서양인이라, 치아 벌어졌거나 주근깨 투성이거나)도 올라온다. 하지만 그게 또 유표-매력이다. 한동안 샤넬 모델을 했던, 조니 뎁의 전처 바네사 파라디의 치열(앞니 쩍 벌어짐)과 체형(전형적인 추파춥스 - 머리 작지 않고 어깨 좁고)을 생각하면 될 듯하다. 전성기의 그녀는 정말 매력적인데, 바로 이런 역설적인(?) 요소 때문인 듯하다. 그들의 딸인 릴리 로즈 뎁 역시 그 라인이다.

 

*

 

하필 '나'가 아니라서 억울한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3분이라 억울한가. 수능 한 번에 인생이 결정난다고? 정신 차리시라, 그게 인생이다. 그 3분에, 그 수능 한 번에 의외로(!) 많은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조건은 모든 '나-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 '나-들'은 모두 그 3분을 위해 달려왔다. 공평한 것이다. 거기 앉아 심사하는 자들 역시 그 과정을 다 거쳐 왔고 그 3분 안에 '싹'을 고르도록 훈련받아 왔다. 물론 여기에 오류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또 재수, 삼수가 있지 않나.

 

*

 

작년에는 중간에 한 번 쉬고 한 시간 반에 걸쳐 받은 검사를, 어제는 한 시간만에 끝냈다. "집중력은 좋아졌더라고요." 검사해주신 임상심리사도 똑같다. "집중력은" 저 강조보조사(?) '은'이 너무 슬프다, 에공. 우리 아이는 이~만큼 좋아졌지만, 심지어 이 정도의 집중력과 행동력(^^;;)을 갖게 되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상대평가라는 것이다.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니 똑같은 검사도구(웩슬러 4)임에도 문항이 상당히 어려워진 것 같다. 시험 문제를 얘기해줄 만큼 똑똑해졌음에도("사과는 절반으로 쪼개면 몇 조각이에요?" "재민이나 책이 다섯 권 있었는데 한 권을 잃어버렸어요, 그럼 남은 책은 몇 권인가요?"), 전체 점수가 내려갈 수도 있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흠, 무섭다.

 

*

 

발달장애 카페의 어떤 엄마가 쓴 말, 폐부를 찔렀다. "검사도구는 슬프게도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이건 모든 시험(그에 준하는, 우리 인생의 모든 계기)에 적용된다. 그럴수록 진단명이나 점수에 연연하지 말고(이건 냉정하게 수용하되 참고만 하고) 개별적인 현상에만, 또 지금 현재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은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 오늘 아침 체중 41.6킬로, 딱 아들의 두 배다. 좀 적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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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내가 해야할 수업도 없고, 내가 받아야할 수업도 없다. 전자는 원래 없는 날이고 후자는 자리가 없다. 전자의 경우 연휴에 곰곰 생각해보니 이제는 교수자리는 고사하고 시간강사자리, 즉 당장 강의 자체도 없어지기 십상이겠다는, 이마저도 짤리는 건 시간 문제라는 위기의식이, 진짜 목까지 바투 다가선 식칼처럼 번득인다.(세상의 모든 '정치'는 다 비동일한 메커니즘을 따른다...^^;) 후자의 경우, 흑, 기필코 따고야 말겠다, 그 운전면허, 이런 오기가 생기는데, 이를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이 확인되는 듯도 하다. 수업을 못 들으니 <미남의운전교실>을 보며 복습한다. 이 '미남'은 최소한 손과 팔뚝은 정녕 미남이다.. ㅋ 핸들 잡고 돌리는 남자의 손과 팔은 대략 언제나 섹시했던 듯하다. 일단은 모의고사(^^;;)를 치고 그 다음 진짜로 합격하는 거다.   

 

*

 

지난 토요일 과천 동물원에 갔다. 그 사이에, 남편이 찾아둔, 꼬마김밥을 파는 분식점에 들렀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근처 풀밭(?)에서 아이와 얼쩡거렸다. 왠지 예감(!)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동네, 바로 이쯤일 것이다. 앗, 아니나 다를까, 언덕-풀밭보다 조금 낮은 길로 한 남자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어쩜, 한 1, 20년만에 보는 그의 얼굴이 이토록 여전한지. 다른 한편으론, 똑같은 이목구비에 차곡차곡, 꾸준히 내려앉아 아로새겨진 그 주름살, 살갗의 전체적인 느낌, 그리고 별로 살이 찌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축적된 나이테의 두께를 보여주는 몸의 실루엣이, 어떤 의무적인 '우수'를 유발하는 것이었다. 이런 놀라운, 어쩌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 나의 한마디(좀 더 우아하게 물었어야 했단 말이다, 이 아줌마야!). "저어기, **이  남편 맞으시죠?" "어, 아닌데요. 아.... ***요?" 그리하여 나는 오랜 친구의 근황을 남편을 통해 짧게 전해 듣게 되었다. 새로울 것이 뭐가 있나. 살아 있음, 외에 의미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 모두.  

 

*

 

그애(그녀)는 속된 것을 굉장히 경멸했다. 특히, 출세, 입신양명, 제도 순응적, 이런 것들. 그런 태도를 나는 무엇보다도 부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너와 내가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런 경멸적인 의미들에 흠뻑 젖어있음을, 적어도 한 번 들어온 이상 빠져나가기는 정말 힘듦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누가 더 미칠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 좋은 이십대를! 어제, 하필 날씨도 너무 좋고, 졸업사진 찍는 아이들을 보니 "꽃피는 처녀들(총각들)의 그늘 아래서"라는 어구가 떠올랐다. 니네들, 어쩜 이렇게 예쁘냐! 한껏 피어나시라!   

 

*

 

먹고 싶은 것이 많다.  산삼과 전복 들어간 삼계탕, 버섯과 부추가 많이 들어간 능이버섯 오리백숙, 단호박과 알밤이 들어간 소갈비찜, 유산슬과 전가복, 시푸드 토마토 파스타와 버섯 샐러드. 헐, 내 입이 언제 이렇게 업그레이드 됐지? 쓰고 나서 내가 더 놀랐다. -_-;;

 

*

 

아흔네살에 고관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할머니가 있는 반면,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오늘내일 하는 신생아도 있다.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둔다. “1929, 8월 말의 어느 아침, 유리 안드레예비치는 가제트느이 골목의 정거장에서 전차를 탔는데(2, 407) 전차는 만원이고 길도 무척 막힌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전차 안의 지바고와 전차 밖의 후텁지근한 니키츠카야 거리를 걷는 한 노부인이 만들어내는 병치와 대조의 효과가 무척 시적이다.(2, 408)  이어, 지바고의 죽음 이후 묘사되는 장면.

 

"연보랏빛 원피스를 입은 부인은 스위스 국민으로서 멜류제예프에서 온 마드무아젤 플레리, 몹시 늙은 여자였다. 그녀는 이십 여 년 동안 조국으로 돌아갈 권리를 얻으려고 서면으로 청원해 왔다. 아주 최근에야 그녀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출국 비자 때문에 모스크바에 온 것이었다. 그날은 돌돌 말아 리본으로 묶은 서류 뭉치로 부채질하며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에 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열 번째로 전차를 앞질러 앞으로 걸어갔고,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지바고를 앞질렀고 그보다 더 오래 살았다." (2. 411)   

 

*

 

  

사람이 너무 많아 곳곳에서 진입장벽이 높았던 동물원(참 슬픈 곳이다, 동물원이란!), 호랑이부터 봤다. 동물원에 갇혀 있음에도 눈을 보면 '인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 멋있어! 그래서 옛날부터 그렇게 희화하길 즐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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