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그런데 나는 언제 죽어?"

 

언제던가, 아이가 큰 눈망울을 빛내며 물었다. 태어난 날은 명확히 아는데 죽는/을 날을 모른다는 것이 좀 신기한 모양이었다. 굳이 아이의 물음이 아니더라도, 사실 최근 1, 2년처럼 '모가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다. 아이에게는, 일단은 웃은 다음,  "너는 태어난지 얼마나 안 됐으니까 죽는 거는 생각하지 마", 이런 식의 답을 해준 것 같다.

 

 

 

 

 

 

 

 

 

 

 

 

 

 

 

모든 일에는 마감이 있다. 입학하면 졸업하고, 시작된 학기는 끝나고, 독감에 걸리면 낫는다. 그런데 진짜로 마감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모철학자의 비유대로 '셔터가 닫힌 듯'.(?) 그래도 마감임을 알리고 마감되는 일은 다행이다. 너 내일부터는 짤려. 너 다음 학기부터는 강의 없어. 너 내년부터는 오지 마. 도무지 그 마감이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마감, 우리 삶의, 목숨의 마감. 내가 언제부터 끝을, 마감을 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

 

젊은 제자가 막 커피숍에 왔다 갔다. 말쑥한 차림새에 커피 한 잔 들고 급히 나가는 와중에 자랑 한 마디 던지고 간다. "선생님, 저 변호사 됐어요. (어디 취직된 거냐?) **요~" 그쪽에 문외한인 나조차 알만한 법무법인이다. 오래 전에 제법 친하게 지낸, 결혼식까지 와서 커다란 고양이 머그잔을 주고 간 제자 역시(88년이라는 의미심장한 숫자를 생년으로 가진 발랄한 천재(^^;) 느낌의 여학생이었다) 국내 최고 법무법인의 변호사가 되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저 판사 됐어요. (그럼 그때 같이 있던 친구는?) 걔는 검사예요, 원래 검사 되고 싶어했어요." 이렇게 인사하고 자랑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이 동네에 머물지 않는다. 방금 본 제자 역시 조만간 이 동네를 떠나겠다. 명민했으되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저 아이들(더 이상 아이들 아닌!)이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이런 책들을 써주면 좋겠다.

 

 

 

 

 

 

 

 

 

 

 

 

 

 

 

 

스치듯 머무는 아이들 중에 의학도는 잘 없지만, 간혹 어떤 인상을 주고 가는 아이들이 있다. 가령 체호프의 <6호실>이 너무 좋았다거나, PTSD를 소재로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거나. 역시나 자라서 (가능성은 희박하다마는) 이런 책을 써주면 좋겠다. 너희만 할 수 있는 일, 쓸 수 있는 책이다.

 

 

 

 

 

 

 

 

 

 

 

 

 

 

 

 

 

 "너거들 다 졸업해 나가고 나는 계속 이러고 있고..."

고1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졸업하고 떠나는 나한테 오래 전에 하셨던 말이다. 그때 이십대후반(막 삼십대 초반)이었던 총각 영어 선생님, 선생님도 퇴직이 멀지 않으시네. 고1 담임이었음에도 고3 담임보다도 더 나를 아끼셨다. 아마, 미혼에다가 사실상 첫 제자(들)여서 그러셨을 것이다.

 

사십도 중반인데,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떠나보내는 저 자리에 있지도 못하다. 인생이 통째로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을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글쎄, 일을 해야지...^^; 게다가 아이 등굣길,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센티멘털'도 사치다, 정말.

 

암은 아니지만(그런 것으로 알지만) 꽃이 참 예쁘다. 시골에 살던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빨리 꽃 피는 봄이 오면 좋겠다.

 

*

 

고흐가 그린 붓꽃(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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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중반에 첫 책을, 첫 소설집과 첫 번역서를 내면서 스스로 생각했던 인생의 목표는 매년 소설책, 연구서, 번역서를 가리지 않고 1년에 최소 한 권씩은 내자라는 것이었다. 그게 삼십대 중반, 아이를 낳기까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물론 연구서는 못 냈지만 그래도 논문을 꾸준히 썼다.) 같은 책이라도 <카라마조프>처럼 두꺼운 책은 대략 두 권으로 쳐주면(^^;) 말이다. 하지만 출산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고, 이제는 비단 육아문제를 떠나(게다가 아이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나이와 뭐와 등등 복합적인 요인, 무엇보다도 게으름을 정당화하려는 갖은 술수 때문에 그 흐름이 좀 깨지는 듯도 싶다.

 

곧 <지바고>가 나온다. 계속 막 싫어라, 했지만 표지 시안을 보니 심장이 콩당콩당 뛰는 그 느낌이 싫지 않아 한 번 세보았다.(연도별로 찾아봤는데, <악령>은 <미성년> 이후에 도-키 전집의 형태로 나온 것 같다.) 지금 세보니 12권이다. 첫 책부터 20여년, 즉 2년에 1권 꼴. 올해는 (진작에 원고를 넘긴) 연구서도, 에세이집도 나오면(내주면) 좋겠다. 기왕지사 써놓은(발표도 한) 소설들에 이어 지금 만지는 소설 두 편도 완성하면, 그래서 '연작소설집'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조금 더 멀리, 성장소설(장편)을 탈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악령>도 다시 손보고,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도 쓸(정리하고) 시간과 여유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이 나올 때의 설렘과 달뜸.

이게 너무 짧은 순간만 맛볼 수 있는 것이라 더욱더 소중하다. 

<지바고>의 설렘과 달뜸이, 세상에, 흑, 책도 나오기 전에, 벌써 사그라져서 아쉬운데, 이참에 새해의 다짐을 해본다. 아이와 함께.  

 

일년에 한 권씩 쓰기(번역하기).

하루에 한 권씩 읽기.

하루에 삼십분씩 한컴 타자 연습.

하루에 삼십분씩 과목별 학습지 풀기.

하루에 삼십분씩 두더지 잡기. 

 

  

 

 

 

 

 

 

 

 

 

 

 

 

 

*

 

황순원 <소나기> 속 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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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재작년인가, 계절 수업에서 한 학생이 '나'를 대상으로 소설(초고)을 썼다. '헐'이라는 말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 말고도 나를 미적(글의) 대상으로 삼는 자가 있다니. 나름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선은 권력이다. 사람을, 사물을 보고 그릴(쓸) 때 나는 권력자다.

사진 찍힐 때는 어떤가. 오랜만에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을 해보았다. 맞아, 이런 것이었지.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이렇게 화보 수준으로 많이 찍어야 하는 지면인 줄 알았으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 또 - 시간 맞추기도 힘들어) 안 갔을 것을, 일단 원고도 쓴 다음이라 가서 찍게 되었다. 몇 컷 올려본다.

 

(나는 얼굴의 정면이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구도와 배경은 좋았는데 '오브제'가 망쳤다.) 

 

  (전신컷은 싫어하지만 잘 나왔다.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익숙한 표정이다.)

 

(예쁜 배경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컷들.)

 

 

(책과 사람보다 빛이 좋다. 나에게 저런 표정도 있구나, 싶은 사진.)

 

 (나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자가 없어진 지 오래라, 이런 사진 건지기(!) 참 쉽지 않다. 어깨를 좀 내려야, 허리를 세워야 디스크가 심해지지 않을 텐데.)

 

*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갖고 간 책이 제일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예쁜 모습은,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은 원래 나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흰색 셔츠 블라우스에 약간 짙은색 청바지,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시사철 감기를 예방할 머플러를 두른 모습이다. 날씨가 추워서 두툼한 스웨터에 패딩 입고 가야했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무리를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한 몇 년은 쭉 쓸 수 있겠다.

 

그럼 이제 문제는...

 

소설을 쓰는 것이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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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번 주부터 방학에 들어갔다. 나도 이제야 비로소 방학모드인 것 같다. 게다가 추워서 아주 게을러지려는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문장 자체도 늘어지지 않는가.) 9시 전후 등교하면 대략 한 시간 안팎은 학습(수학, 한자, 독서-책벌레가될테야), 그 다음은 '자유선택활동', 그 다음은 점심. 나는 1시에 아이를 데리러 간다. 이렇게 돌봄교실이라고 안 가주면, 아이도 나도 완전히 폐인되기 십상이겠다.

 

- 내가 구구단 노래 부르는데 김**이가 내 머리를 빡~ 때렸어.

- 김**이가 너 좋아하는데 왜 때렸지?

- 음... 노래 부르면 안 되는 시간이었거든...  

 

어제는 치료가 없는 날이라 아이와 함께 많은 것을 했다.

 

- 학교에서 뭐 읽었어?

- 신기한 스쿨버스~

- 무슨 내용이야?

대답 못함 -_-;;

- 그럼 누가 나와?

- 어, 프레즐 선생님이 나와서, 물방울이 쏟아지고~

 

휴대폰으로 검색해본다. 헛, 이거 뭐야 완죤 복잡한 시리즈잖아. 키즈 시리즈도 있다. 이런 걸 볼 나이가 되었구나..ㅠ.ㅠ

 

 

 

 

 

 

 

 

 

 

 

 

 

 

웬일로 점잇기 삼매경에 빠져서 많이 했다.

 

 

 

 

 

 

 

 

 

 

 

 

마지막 책은 내가 따로 분책(?)해서 사용했는데, 이른바 점잇기 자체는 사실상 뗐고, 따라 그리기(?)만 못한 채였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투지를 보인다. 아, 물론 성과는 -_-;; 저렇게 틀리게 그려놓고서는 "100% 똑같이 그렸습니다"라고 써놓았다, 헐.  

 

 

노트북으로 유투브 동영상 보기도 하는데 어제는 <타요>, <엔들리스 남버> 외에 오랜만에 영어 <레터랜드>를 좀 보았다. 슬슬 영어도 조금씩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교재들을 많이 보는 모양이다. 아이는 놀이학교에서 <레터랜드>, <렛츠고우>를 했는데 각각 레벨2, 레벨3까지했다. 물론 아이가 그만큼 따라가지는 못했다. 여기에 청담영어(?)인가 <렛미플라이>를 수준별로 한 것 같다.

 

 

 

 

 

 

 

 

 

 

 

 

 

하루의 마지막은 항상 일기. 결코 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가 오면 곧바로 게임을 하게 해주실 거다, 라고 꼬셔서 쓰게 했다. 이런 식의 강화제-당근 없이는 과연 안 되는 것인지..ㅠ.ㅠ

 

제목: 자유 선택 활동 / 레고 블럭을 했다. 재미있었다. **이랑 했다.

오늘 잘 한 일: 정리하기. 내일 할일: 학교 가기.

 

다소 늦게 아빠 출현. 정확히 핸드폰-게임기의 출현에 완죤 기뻐 날뛴다. 아, 사람이 뭔가에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넘 부럽다, 아들아. 약속대로 20분간 게임 삼매경. 옆에서 말을 걸어주면 더 신난다. 갑자기 수준이 확 낮아져 타요콘(?), 이런 것에 빠졌다. 얼마 전에는 코딩게임(?), 시멘토(?), 이런 거 하더니.

 

자, 여기서 문제. 아이의 게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내 휴대폰에는 게임 앱이 없다. 아이가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 깔아주고 싶은 마음과(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다른 한편, 게임이야말로 망하기 제일 좋은 거라는 생각 사이에서 오가다가, 안 깔기로 했다, 덕분에 아이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고 또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 아빠 언제 온대?" "엄마 아빠가 게임하게 해주실까?" "엄마 아빠한테 전화 좀 해봐! (니가 해봐~) 그건 싫어, 엄마가 해줘."

 

 

아빠가 언제쯤 휴대폰을 내놓나... 애타게 기다리는데 안 주자... 삐질...

 

  

그러는 사이에 거의 2년 전에 대기 걸어놓은 음악치료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어제는 기대를 접었던 그룹체육 자리가 났다. 보다시피 기다리면 자리는 난다, 교수 자리 빼고...^^;;   

 

*

 

우리는 왜 이런 타락을 즐길까. 게임, 오락, 쇼핑, 도박, 흡연, 음주, 마약 등.

 

 

 

 - 엄마는 시간은 왜 뒤로 안 가?

 - 엄마 내 생일은 항상 *월 *일이야? 올해도, 내년에도 안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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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 고색창연한 낭만적 단어를 생각한다. 천재. 역사 속의 그는 분명히 천재였지만, 물론 살아서도 그 수식어를 별명처럼 달고 살았지만 확실히 생존시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그 단어의 느낌은 사뭇 달랐을 터이다. 우선 생김새. 정말 그냥 흔해빠진, 어쩌면 평균에 못 미치는 아저씨. 또한 달리 말하면, 모차르트-천재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 없을 그런 평범한 아저씨. (흡사 우리가 나폴레옹을 무슨 땅콩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는 사실상 평균 신장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 성격. 글쎄, 개차반은 아니었을 테고, 좀 경박했을까. 이 역시 '평범-일반'의 수식어에 부합할 것 같다. 워낙 '신동', 요즘 같으면 '영재'였던 것인데, 음악(피아노 연주, 작곡)에 몰입할 때 이외의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그 나이 또래 꼬마의 모습이었다고. 그랬을 테지.

 

문제는 성장. 마의 16세던가, 아무튼 여러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즉, 그를 협박하는, 동시에 돈을 대주는 귀족들, 대략 그런 부류와 다름 없는 구세대(부모),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의 흐름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덕, 굴곡 등. 특히, 그의 아버지.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키워준 것은 전적으로 아비였다. 나는 그가 그저 업계종사자 정도인 줄 알았는데, (하이든 작곡으로 알려진) <장난감 고향곡>을 작곡한 인물이라니. 헐, 모차르트 역시 '핵금수저', 유전자 부자였던 것이다!(피카소의 아버지 역시 화가, 미술 선생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존 어른의 세계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여기서 성공. 그리고 결혼도 한다. 흔히 우리가 세계 3대 악처라고 부르는 콘스탄체는, 천만의 말씀, 너무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저 책에 이런 편지가 인용된다.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작은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해둬. 내 귀여운 장난꾸러기는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녀석은 아주 훌륭하게 처신하고 있어. 당신의 매혹적인 (    )을 소유하고 싶은 것 외엔 다른 희망이 없지.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동안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면서 내가 질문을 해대는 그 악동을 생각해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는 해. 하지만 그 녀석은 그저 (   )할 뿐이야. 이제 그 못된 녀석은 더 뜨거워져서 통제할 수가 없어.(<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

 

처음엔 축자적으로 읽었는데, 밑에 저자가 써놓은 글을 보가 다시 읽었다. 헐, 엄청 야한 얘기였구나. 괄호 부분은, 훗날 모차르트 전기 작가이기도 한, 공교롭게도 콘스탄체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자가 지워 놓은 부분이라고. 비슷하게, 도-키의 두 번째 아내도, 도-키가 첫번째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일부를 열씸~히 지웠다. 거참, 죽은 배우자까지도 질투하는 그런 사랑이라니, 부럽다.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콘스탄체는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중 성년에 이른 아이는 둘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알콩달콩, 티격태격, 옥신각신 좋은 부부였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해도 "씀씀이가 헤픈"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박도 마찬가지. 쓰면 쓸수록 어쩜 도-키와 이렇게 비슷한지. 모차르트가 급사할 때도(진짜 돼지고기 식중독이었는지) 그의 옆을 지킨 건 막 출산한 콘스탄체였다.

 

 

 

 

 

 

 

 

 

 

 

 

 

 

 

 

 

그 다음 교우 관계, 특히 살리에르. 그가 모-트의 재능을 질투하여 사십대 중반의 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 과로사를 유도했다는 식의 얘기는 진짜 사실무근인 것 같다.  이 스토리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원작은 푸시킨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소비극)이다. 푸시킨도 말하자면 모-트형 천재였는데 은근히, 자기를 여기에 빗댄 듯하다. 그 다음, 여기에 기반한(그런 것으로 나는 아는데) 피터 셰퍼의 저 희곡이다. 오히려 그는 멀쩡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사실상 유복자나 다름없는 모차르트 아들의 음악 교육에도 관여한다. 물론 그 아들은 아버지 같은 음악가로는 자라지 못한다.  

 

주경철의 책에서 새로 알게 된 것, 혹은 새로운 해석. 당시 살리에는 상당히 잘 나가는 작곡가였다. 심지어 모-트와의 이른바 '작곡 배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정도로 더 인정받은 측면도 있었다. 요컨대 음악적 재능 때문에 모-트를 저렇게 질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 싶은 대목이었다. 동일자끼리 알아본다, 라는 것. 차라리 모-트의 선배인 하이든은 모-트를 질투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넘을 수 없는 산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평가를 참조한다면, 살리에르는 모-트의 재능을 알아볼 만한 눈/귀조차 갖고 있지 않았을 법하다. 새삼,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의 시구가 떠오른다.

 

 

 

 

 

 

 

 

 

 

 

 

 

(자유로운 지식인의 밥벌이 문제는 실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겠으나.)  

 

18세기, 세계는 변하고 있다. 귀족(궁정)의 하수(이른바 후원-패트로니지 시스템)로 살지, 아니면 곧이어 베토벤이 보여줄 굶주린, 그러나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지. 모차르트가 그 중간에 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나와 내 주변의 '프리랜서들' 역시 자주 생각하는 대목. 자유는 좋지만 배가 고프고, 배도 채우고 내 맘대로 쓰려면 귀족(^^;)보다 더 무서운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책이 팔려야 한다. 참 냉혹한 현실인데 이걸 무시하고는 천재성이고 나발이고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차르트는 돈도 많이 벌었고 그 아버지가 놀랄 정도의 사업 수완도 있었다. 문학계의 셰익스피어, 괴테랄까. 

 

요컨대 천재성이 여러 병리적인(각종 정신질환) 요소를 정당화주지 않는다. 천재는 다 미친놈이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범인들의 속된 바람일 뿐, 천재는 생활인으로서는 그냥 생활인(심지어 더 뛰어난)이고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인 것이다. 세상 참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니 빌 게이츠의 말이던가,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라."

 

*

 

"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이어령 선생의 최신 인터뷰 기사를 반복해서 읽는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극찬하시던 분인데, 참 왜 이어령인 줄 알겠다. 어떤 주제를 들이대도 귀 기울일 만한 말을 쏟아내는 자,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열린 태도(안티-꼰대의 전형이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운이 잘 맞는지. 저건 단순히 문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사람 자체의 문제이다. 검색, 사색, 탐색. 비교적 최근에 그가 쓴 이상에 관한 논문(에세이)를 어느 모음집에서 읽었다. 너무 현학적이고 시건방지고(?) 저돌적이어서 좀 놀랐는데, 무려 대학교 1학년(?)인가에 쓴 글... 역시 천재ㅠ.ㅠ

 

어릴 때 천재인 아이는 많아도, 가령 모차르트처럼 죽을 때도 천재인 사람은 잘 없다.(주변에 영재는 왜 이리 많은지, 그냥 '겨우' 상위 2~3프로니까 많은 게 당연할 지도^^;)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잘 늙는 일이 참 힘들다. 

 

'소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좀 끄적여 보았다. 나한테도 재능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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