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가을 전에는 나올 법한 소설책의 표지를 구상하며 몇 가지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전에도 한 번 올렸나, 아무튼 한 후배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뒤로 계속 탐낸 사진.

 

 

*

<태양은 가득히> 속의 알랑 들롱

 

 

*

 

<몽상가들> 속의 에바 그린.

 

 

어딘지는 모르지만 '뇌쇄적'이라는 단어가 실감난다.  환생이 가능하다면 다음 생에는 저런 포스를 갖고 싶다^^;;

 

*

 

전에도 올린 잔느 모로.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인가?? 거기서는 앞머리가 없었던 듯하고.  

 

위의 사진들의 공통점은 바로, 담배. 2010년 12월 1일부터 피우지 않고 있는데, 지금도, 이 순간도 피우고 싶다! 특히 비오는 날, 길 가다가 맡게 되는, 막 생성된 담배 연기의 맛, 너무 고소하다. 나도 모르게 그 흡연자 옆으로 한두발짝 다가가게 된다. 그런 것이다, 담배란. 그러게, 탐내지 마!^^;;   

 

*

 

공교롭게도, 내 소설 편집 작업과 내가 번역한 남의 소설 편집 작업이 엇갈리듯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백쪽 남짓한 책과 천 쪽에 육박하는(그래서 두 권이 될) 책. 하나는 무척 덥고 하나는 무척 춥다. (대박은 물론 어림없고), 하나는 잘해야 중박(심지어 소박?), 하나는 못해도 중박. 그러리라 추정된다. 그 중간에 아이들이 쓰는 소설, 죽어라 읽고 있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 아무리 개차반일지라도 죽을 때는 소설가로 죽으시라!  날이 더워서 비장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8-07-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남의 대명사가 알랭 들롱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ㅋㅋ

아, 태양은 가득히...

푸른괭이 2018-07-15 11:30   좋아요 0 | URL
제가 늙어서인지, 여전히 최고의 미남배우^^;;
 

 

아이의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몇 권 더 주문해 봤는데, 아, 상당히 괜찮다. 요 정도까지 읽었는데 나머지도 주문하려고 한다.

 

 

 

 

 

 

 

 

 

 

 

 

 

그 다음은 '받침 있는 동화' 시리즈가 있다. 그것도 받침의 종류에 따라 동화를 썼다. 놀라운 일이다. '받침 없는 -'을 다 보면 'ㄱ'부터 읽어볼 생각이다. 아, 물론 아이가.

 

 

 

 

 

 

 

 

 

 

 

 

 

도대체 누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고 또 저렇게 시리즈가 될 만큼 많은 동화를 써냈을까, 당연히 호기심이 동했다. 원래 소설가이고, 덧붙여, 헐, 소설가 한강의 오빠(남동생?)이시다. '피-유전자'의 무서움을 잠시 실감.

 

 

 

 

 

 

 

 

 

 

 

 

 

아이 책 시장도 외서, 양서가 많다. 어제 배부된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국어활동)를 보니 앤서니 브라운의 책도 포함되어 있다. 좋은 일이다. 이 점에서 번역가도 많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껴주시길!  이러나저러나 우리 작가들이 많이 분발해주면 좋겠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글자에서 낱말로, 문장으로, 문단으로, 궁극적으론 광활한 텍스트로 나아가는 첫 단계에 있다.  2, 3주 전부터 학교에서 금요일마다 받아쓰기를 시작했고 <독서기록장>을 보내온다. 1학년 1학기에는 겨우(?!) 문단, 혹은 짧은 텍스트(한 서너 쪽) 단계이지만, 2학기로 가면 각종 지식이 담긴(자연-과학, 도덕-윤리, 문학-철학 등) 텍스트를 접하게/배우게 될 것이다.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우리'에 나도 포함되나? -_-;;

 

 통상 인간-동물은 태어난지 1, 2년이면 걷고 2, 3년이면 말한다. 그러는 것이 옳고 자연스럽다. 전자 부분에서 많이, 병적으로 쳐져 있지만,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고(적어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자기 스스로/먼저 운동화 신고 가방 챙기고) 학교 생활에 대해 조잘조잘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반면 '바른글씨 쓰기'를 무엇보다도 싫어하는("아, 내가 요즘 왜 이렇게 글씨를 못 쓰지?" "날이 너무 더워서 글씨를 못 쓰겠어!" "오늘 받아쓰기 했는데 세 개 썼어") 아이를 보면 내가 학구열이 솟는다. 하지만 이 나이에 내가 뭘 어쩌겠니, 등잔불마저 꺼놓고 떡이나(-을) 썰 수밖에. 너는 양지로 나가서 무럭무럭 자라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수다.

 

지난 5월 어느 날, 한 지인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나보다 두어살 많았고 대학 시절 러시아어 강좌를 함께 듣곤 했다. 낙성대 어디 호프 집에서 치킨과 호프를 먹은/마신 기억이 있다. 소위 '썸'은 전혀 아니었고, 그가 나에게 보인, 결코 여자로서는 아니고, 어떤 관심 정도는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드문드문 연락이 온다.

 

모스크바 있을 때도, 그런 식으로, 어딘가 피시방에서 그의 메일을 읽었다. 그때 내 메일함을 채우던 69년생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고, 그때 메일 확인하러 함께 피시방 갔던 79년생 남자(애)와 결혼했다. 그때 그 지인이 보낸 메일의 내용은, 러시아 어디(노브고로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던 듯하다. 아니면, 하버드 유학 중이었나, 생각도 잘 안난다. 세월이 너무 흘렀다. 이제는 남편이 된 그와 산책을 나간 그 날 날씨가 무척 화창했던 것만, 그래서 베르낫츠키 거리 잔디밭이 무척 예쁜 초록색으로 덮여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서울살이의 어느 시점, 그 지인이 외국 여기저기 있다가 귀국하여 자리 잡았다고 연락해 왔다. 그리고 지난 달 또 메일이 왔다. 내 책을 읽은 참에 겸사겸사 연락했다고, '숨은 아젠다'는 없다고 썼다. '숨은 아젠다'라는 말에 빵 터졌다, 간만에 많이 웃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고 최종 학위는 하버드에서 받았고 현재 서울소재 한 사립대 교수이다. 진짜로 나 빼고 다 교수됐음을 보여준다, 헐. 

 

그리고 내 주변의 인간들은 프로필(만) 놓고 보면 보다시피, 다들 엄친아, 엄친딸이다. 내가 보는 건 그 이면인데, 다들 우울증환자이거나 그 수준의 문제를 갖고 있다. 적어도 멀쩡하지 않다. 나에게 드문드문 연락하는 것부터가 그 증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내 정신 상태 역시 정상이 아님을 방증하기도 한다. 이 문장 자체도 병리적이다! 아, 이렇게 쓴 순간, 나는 '병리'에서 해방되는 듯도 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무튼, 그와 교신을 하던 중 실은 '숨은 아젠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아이다. 그의 아이는 일곱 살 남 아이고 혼혈이고 그 밖에 영어도, 한국어도, 러시아어도 제대로 하는 말이 없고 이런저런 문제가 있고 등등.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1분 안에 친구 된다. 어쩌면 그와 이제야 비로소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숨은 아젠다'는, '책'이다.

 

 

 

 

 

 

 

 

 

 

 

 

 

 

그의 기억 속의 나는 무척 학구적인, 그리고(!) 매력 없는 여학생이었던 모양인데, 내 기억 속의 그도 공부에 미친, 그러나(!) 매력 없고 어딘가 신경질적인 남학생이었다. 아마 그가 가장 동경하는 것 중 하나가 '책'이었던 듯하고, 그 시절의 나는 책을(그때는 소설 책) 쓰는 사람이었지 싶다. 그런 그도 책을 냈다. 그렇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마 계속 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처지는 한참 다르지만(시간강사인 나를 멋스럽게 소설 쓰고 번역 일을 하는 자유인-지식인 쯤으로 보는 그의 시각에 발끈할 정도로 나는 지금 나의 처지에 예민하다!), 이 지점, 책에 대한 우리의 욕심이 새삼스럽다. 톡, 치면 쉰 고개로 넘어가리라. '아젠다'를, 의제를 이제 더 이상 숨겨 둘 시간이 없다. 꺼내서 써야 한다. 하지만 두려운 것이다. 실은 어떤 '숨은 아젠다'도 없을까봐. 그렇다, 두렵다.

 

헐,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갔나, 아이 데리러 가야 한다. 오늘은 또 얼마나 까불었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학교 때부터 읽어온<닥터 지바고>에서 1차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유리 지바고가, 남편 찾아 전선에 나온 간호사 라리사(라라) 기사로바(안티포바)와 처음 만나는 소도시의 이름은 '멜류제예보'였다. 번역하는 내내 그랬다. 지난 달에 교정 보면서도 놓쳤다. 논문 한 편 읽다가 아차 싶어 다시 찾아 보니 이렇다. 이런 맹목이. 정녕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다.

 

통상 지명(도시, 마을)은 '-o' 어미가 많아서('바르이키노', 이런 식) 이런 실수가 반복된 것 같다. 게다가 러시아어는 격이 변하기 때문에 통상 '멜-프'는 뒤에 다른 어미를 단 채 나온다. 주격(대격)으로 나오는 경우는 저 두툼한 책에서 딱 한 군데. 영역본도 마찬가지. 어찌 보면 '멜-보'나 '멜-프'나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은 항상 성실하게, 까칠하게!^^;; 에효, 또 뭘 얼마나 많이 틀렸으려나. 어느 인터뷰에서, 혹시 다시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느냐, 있다면 뭐냐, 라는 식의 물음에 "전부 다요!"라고 대답한 정영목 선생님의 이 책들, 사보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랜만에, 뜬금없다. 일하다가 수다 떤다.

 

'케이트 스페이드'라는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 '케. 스.'의 자살 뉴스를 보며 잠깐 생각해봤다. 옷이라는 것, 더 넓게, 우리 몸에 걸치고 붙이고 등등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에 종사하는 자들, 특히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서. 해골 무늬가 들어간 스카프로 유명한, 상당히 껄렁해 보이는 영국 남자 알렉산더 맥퀸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대체로 '창작'이란 무척 소모적이고 심지어 병리적인 활동이니, 음, 뭐랄까, 이들의 자살이 아주 기상천외하게 들리진 않는다. 이런 생각 자체가 퇴폐인가. 아무튼 의류(가방, 구두 등) 디자인만큼 미학적인(동시에 실용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예쁘면서 편해야 한다. 편하면서 예뻐야 한다. 어떨 때는(가령 예복이나 수트) 불편이 또한 최고의 가치와 맞물려 있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고급할 수록 편한 건 맞다. 

 

옷은 유표다.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 사람의 직업, 성격, 경제력, 심리, 건강, 오늘의 기분 상태. 스타일(문체^^;;)이라는 건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못 생겨도 스타일이 좋을 순 있다. 반대로 잘 생겨도 스타일이 엉망일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엉망인 스타일조차 스타일이라는 것. 즉, 옷(외모 가꾸기 전반)에 신경 쓰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스타일이라는 것.

 

왠지 외모 치장에 신경을 쓰면 안 될 것 같은 시절이 있었으리라. 강조하건대, 그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다. "사람이 옷을 이렇게 촌스럽게 입을 수 있다니!" "네가 걸치면 왜 숄도 거적떼기가 되냐?" "너 옷 입은 거 보면 눈이 불편해진다~" 등의 농담을 친구들이 아무렇게나 해대고 나 역시 전혀 불쾌하지 않던, 심지어 뿌듯해 하던 시절이다. 옷에 돈 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의 옷을 얻어 입는 일도 많았는데(특히 체구가 작은 디자이너 누나를 둔 어떤 선배 덕분에 가봉한 옷도 많이 입었다), 그 역시 하나의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통째로 우리가 꿈꾸는 우리 자신의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지금 내가 꿈꾸는 나는 어떤 이미지의 나인지. 내 멋대로 쓸 거야, 라고 외치는 후줄근한 무명 작가의 이미지? 나 좀 동정해줍쇼 하는 불쌍한 시간강사의 이미지? 러시아문학 번역가의 성실한 이미지? 경증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 - 동네 아줌마의 이미지? 이러나 저러나 우리가 삼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이상, 그 어떤 스타일도 없을 수는 없다.

 

소위 데일리룩의 강자, 누구가 좋아할 법한 셀럽, 패피(^^;;), 알렉사 청. 그녀가 입으면 어지간히 드레시한 옷도 데일리, 로 바뀐다. 혹은 반대로, 화장이나 헤어 등에 따라 데일리가 드레시로 바뀐다. 유학 가기 전에 쓴 단편소설에서 트렌치코트 얘기를 잠깐 썼는데, 나도 무척 좋아한다. 강의 시작하면서 맨 처음 산 옷도 트렌치. 10만원짜리 남색 트렌치다. 전임이 되면 버리기로 원칙을(!) 세웠는데 아직 못 버리고 있다. 원칙을 버리고 그냥 버리든지, 아니면 평생 갖고 있어야 할 듯. 이후 '깔별'로 사고 있는데, 가격대가 점점 올란다. 음, 하지만 같은 트렌치(저건 버버리 샌드링엄 라인 - 하니베이지 - 미드랭스 같은데, 내가 생각해도 엄청난 내공이 느껴지는 분석이다^^;; )인데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름도 마음에 드는 엠마누엘 알트. 파리 보그 편집장, 이라고 한다. 막 감고 나온(린스나 컨디셔너도 안 쓰는 것 같은^^;;), 드라이도 안 한 것 같은 산발한 머리카락, 거의 민낯에 가까운 푸석푸석하고 까칠까칠한 질감의 얼굴(실제로 색조 화장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 하더라도 속눈썹 마스카라 정도), 주로 스키니 진 스타일의 바지, 주로 단색의 셔츠 블라우스, 그리고 매니시한 느낌의(주로 발망ㅋㅋ) 자켓이나 트렌치를 즐겨 입는다. 얼핏 활동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것 같은 그녀의 패션의 화룡점정은 킬힐^^;; 어찌 걷는지. 이런 패션 속에서 완성되는 아찔한 걸음걸이까지도 역시나 스타일인 것이다.  마치 영국 수상 테레사 메이의 화려한 키튼 힐처럼, IMF 총재인 '멋쟁이 할머니' 크리스틴 라가르드의 스카프처럼. 또 모르겠다, 그녀 역시 감기 걸릴까봐 걱정돼서, 혹은 추위를 잘 타서 스카프를 자주 두르는지.

 

스타일은 늙어 죽을 때까지 가는 것이니, 마땅히 나이의 상한선이 있을 수 없다. 각종 톤의 블루(그레이시 블루, 네이비 블루, 로얄 블루, 인디고 블루~^^;;)와 스키니 진과 미니 원피스를 '애정'하는 브리짓 마크롱의 바지 정장 패션.

   

환갑을 넘어 이런 패션이 가능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필수적인 건 건강이다. 허리 디스크 있으면 저런 구두 못 신을 듯하고, 머리카락 빠지면 역시 저런 헤어 스타일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패션보다도 부러운 건 그것, 일단 건강이고, 그 다음은 자신감과 자존감인데, 사실 두 가지(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편견인가, 프랑스 여배우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프랑스 여자들은 왠지 늙어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없어지는 젊음에 대한 원한(르상티망!) 갖지 않기.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투덜대지 말고 몸을 잘 달래보자. 청춘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에공, 정말 첫 사랑에 실패 안 했으면 자식 뻘인 것이다 -_-;;

 

끝으로,  "manners maketh man!" 여기서 '매너(스)'는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더블 버튼 정장 패션(=자리=직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게 옷은 스타일-문체, 나 자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