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나왔다. '연작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편집부에서 '장편소설'로 읽어주어, 또 요즘 문단 풍토를 고려하니 그래도 될 것 같아, 그러라고, 그러자고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바닥만한 경장편까지 치면 세 번째 장편이다.

 

 

 

 

 

 

 

 

 

 

 

 

 

 

 

 

*

 

이 사진을 쓰려고 했는데 화질이 나빠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3, 4년 된 것이다.

 

 

*

 

읽히려고 쓴 건 아니나 잘,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팔려고 낸 건 아니나 기왕지사 나왔으니 잘 팔렸으면 좋겠다. 삭신이 쑤시는 와중에 뭔가 좋은 예감의 스침이 있다. 앗, 벌써 누가 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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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9-1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페크(pek0501) 2018-09-2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2
 

 

지난 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에 다녀왔다. 12시를 전후한 시각, 젊은 여자 둘이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아이 둘을 데리고 식당에 간다. 아이 둘 다 독립보행은 고사하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휠체어를 탄 아이를 엄마가 안아서 옮긴다. 아이는 말을 못하고 '앵앵'댄다. 안쪽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매표소로 향한다. "지체장애 둘 있어요~" 하고 표를 끊는다. 처음에는 자매인가 했는데, 아마도 비슷한 상태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친구들인 것 같다. 얼핏 아이들의 연령은 취학 전으로도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 상당히 많을 수도 있다.(4살도 심한 아이는 너무 자라지 못하여 돌 이전으로 보인다.) 엄마들도 얼핏, 젊고 예쁜 그저 평범한 삼십대 여성들이다.

 

하필 사람이 많은 시각에 중증 장애아를 데리고 외출한 엄마들의 용기, 그리고 높은 자존감, 화창한 초가을(늦여름) 날에 아이에게 이런저런 구경을 시켜주고 싶은 그녀들의 자식 사랑(또한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배려를 요구하는, 과하지 않은 당당함. 그녀들이 그래서인지, 옆의 그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듯했다. 보는 둥 마는 둥, 아이들도 많았는데, 역시나 보는 둥 마는 둥. 이 역시 좋은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릴 때는 이런 장애아들이 바깥에 잘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자꾸 노출시키는 수밖에 없다. 흔히 선천 장애는 무슨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아, 딱히 그렇지 않다. 뇌병변이나 염색체 이상, 희귀병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가령, 왜 다른 아이들은 멀쩡한데 내 아이만 태어날 때 산소가 부족했느냔 말이다. 산모가 고령이라? 담배를 피워서? 술을 마셔서? 그런 거 있는 경우 거의 없다. 있다고 한들 그 역시 종료된 과거지사, 현재 이 순간이 중요하단 말이다.

 

*

 

이번 주 늘 그렇듯 치료실. 음악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어, 원래 4명 정원의 그룹인데, 지난 주에는 우리 아이 혼자였다. 이번 주에 새로 한 아이가 들어왔다. 수업 끝나고 선생님(대학원생)한테 엄마가 하는 첫 마디. "우리 아이는 장애 아니에요~ ** 학원을 보냈는데 좀 잘 안 돼서~~" 그렇다, 물론 장애 아닐 수 있다. 엄밀히 말해, 검사 결과 장애등록이 되지 않는 점수가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만 8세(2학년)가 지난 아이가 이렇게 복지관, 병원 치료실을 (이른바 '주호소' 부분 한 두 개도 아니고) 전전, 두루 섭렵할 때는 굳이 여러 말이 필요 없다. 얼핏 보이는 아이의 상태. 체육 선생님이 원반을 이렇게 던져라, 시범 보이면(-여도) 따라 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스러운 행동과 산만함, 2년 지체인 우리 아이보다 결코 좋지 않다. 엘리베이터 페티시(흔히 자폐아들에게 보이는 감각 추구의 일종)도 있다, 심지어 심한 상태다. 대기실 소파에 곧잘 드러눕는다 등등. 

 

나는 지금 장애아 엄마지만 열심히 세금을 납부하는 근로자이고 또 그런 근로자의 아내이다. 사설 센타라면 등록하든 말든(즉 바우처를 쓰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국공립 복지관은 얘기가 다르다. 시설 좋고(여름에 에어컨 빵빵, 겨울에 난방 빵빵) 전문 치료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공익 등 인력도 많다. 이 많은 것들을 이용하는 데 겨우 시간 당 만원이고 심지어 어떤 건 아예 무료다. 나랏돈을 쓰려면, 혜택을 누리려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다. 아이가 장애는 없는데, 장애아는 아닌데 도움과 배려는 받아야 한다? 여기 있는 다른 애들은 장애아이고 자기 아니는 전혀 장애가 아니다? 글쎄.

 

정말 슬프게도 검사도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정확하다. 적어도 이것을 잣대, 지표삼아 아이의 상태, 엄마의 상태에 따라 주기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행여 경계선을 넘었어도 지적이든 자폐든 성향은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자폐임이 명백한데 자폐성 장애로 등록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적 장애도 마찬가지.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자랄 수록 점점 더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차이, 다름-틀림이다.  그 다음은, 수치나 진단명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최대한 아이에게 집중,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이 뭔지 생각함이 옳을 듯하다. 이론은 이런데 실제는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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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원래도 컸는데 그 새 더 컸더라?"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 아이를 데려온 남편의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원래도 발육이 좋은 아이들, 반년새 더 좋아지고 콩알(^^;;)만한 아이들은 여전히 그렇다. 물론 엎치락뒤치락 더 크겠지. 윗집 여자아이 보니 중학교 입학하면서 훌쩍 크기도 하더라. 그래도 큰 줄기는 유지되는 성 싶다. 부모를 보면 더 할 말이 없어진다. 유전자의 힘, 무섭다. 본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노력(집중력, 끈기, 투지 등)이야말로 유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나만 멍 땡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봐, 나만 놀고 있잖아 -_-;;

 

 장애인복지관(발달센터)와 초등학교, 즉 장애아들(및 준장애아들)와 일반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그 어느 때보다도 '차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발달장애는 대부분 '선천'이지만 그 드러남의 방식, 양상이 '후천'이다. 어느덧 1학년 2학기. 아이들의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연일 담임선생님한테 전화 오고 엄마들 고민하고, 아, 들어 보면 다 '노답'이다. "우리 애 장애예요~" 어쩌라고. 소위 당하는 입장에서는 참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이런 소리가 나올 법하다.  더 많은 인력(실무사, 공익 등)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마냥 쉽지는 않을 법하다. 여기저기서 다 '돈' 달라고 아우성이고, 우리는 모두 납세의 의무를 제일 싫어하는 평범한 백성이다...^^;;

 

우리 개개인의 모든 차이들. 세상의 모든 차이들. 선진국과 후진국, 빈자와 부자, 강자와 약자, 미남(녀)과 추남(녀), 늙은 자들과 젊은 자들.... 자꾸만 차이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이거야말로 불가능한데, 또한 옳지도 않은데) 서로의 차이를 최대한 인정하되 각자 잘 사는 식으로 가기가 참 힘든 듯하다. 이른바 강'소'국 마인드 말이다. 그게 힘든 데는,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고 남의 시선에 예민한 국민성도 있을 테고(과연 우리만 그럴까?^^;) 실제로 돈이 부족한 탓도 있을 터이다.  아이도 낳지 않으니 더 큰일. 내가 지금 나라 걱정할 처지는 아니나(-_-;;) 돈(세금)이 어디서 나오나.

 

*

 

개학 2주차 끝.  아이들 받아쓰기를 했으니(공책을 보고 쓰라고 했다는 문구를 보니 확실히 일반 아이들도 쉽지 않은 게 받아쓰기다) 확인하라는 알림장이 뜬다.

"오늘 받아쓰기 잘했어? 몇 점 받았어?"

"어, 백점 받았어! 10개 다 썼어!^^;;"

음, 실은 이랬다...

 

음, 쓰긴 다 썼지, 하지만 10점 ㅋㅋㅋ . 집에서 엄마랑 해보면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14개 중 12개를 쓰는데, 뭐가 문제냐? 무릇 '받아쓰기'에는 청각적, 시각적 집중력, 그 다음 순발력이 요청된다. 이게 전혀 안 되는 것이다. 덧붙여 최근에 지우개 쓰는 재미까지 붙어 좀 마음에 안 들면 자꾸 지운다 -_-;; 반면 정말 신통한 재주인데, 글자를 어려운 받침까지도  다, 거의 다 눈으로 보고서, 외운 것이다. 손에 힘을 키우면서 시지각 협응을 높이도록 독려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게 작업치료.

 

2학년 1학기 수학의 처음은 "1부터 100까지의 수"이다. 지난 학기에 50까지 했는데 더 나간다. 요즘 숫자에 꽂혀서 상당히 재미있어 한다. 그러나...

 

 

이 쉬운 것도 하나 틀렸다. 뭘 틀렸냐.

 

 

"구십"이라고 써야 하는 걸 "90"으로 썼다. 물론 저걸 혼자서 다 읽고 문제를 푸는 것이니까 무척 기특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우리 아이는 지적 장애 3급이다. 만약 작년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무척 속상했을 법도 하다. 행동도 그렇다. 요즘 아이의 평판(^^;;)이 나쁘지 않다. "요즘 서준이가 선생님 말을 잘 들어요." "오늘 서준이 그림 잘 그렸어요."

 

잠깐, 여기서 드러나는 다른 아이들의 성격. 내가 묻지 않아도 "서준이 엄마다~" 하고 와서 '보고'를 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생뚱한 표정 짓는 아이도 있다. 단답형을 즐기는 아이도 있고 서술형에 평가까지 덧붙이는 아이도 있고 디테일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 2학기가 다 됐는데 숫제 인사를 안 하는 아이도 있다. 흥미로운 건 열에 아홉 그 부모(주로 엄마)도 그렇다는 점이다. 물론 없어져야 마땅한, 그래서 없어진 악습이지만 연좌제가 이해된다. 자, 이런 차이들(성격, 취향, 습관), 이 역시도 최대한 서로서로 인정하고 참아주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

 

 

개학 후 아이의 쾌거. 드디어 앞니 두 개가 빠졌다. 심지어 어느 새인가 밑에 작은 이도 하나 더 빠졌다. 심지어 실종되어 뱃속을 한 바퀴 돌고 나왔다.(남편이 찾았다 -_-;;) 치아 발달도 1년 정도 늦다고 했는데,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자기 때에 알아서 빠져주니. 불과 열흘 사이에 세 개가 몽땅 빠졌다. 몸과 지능의 발달도 제발 그러면 좋으련만! 그래서, 그저 늦되는 아이면 좋으련만! 에효, 꿈이 참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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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순전히 울적해서 그림(사진)을 올려본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 나갔다가 2시간쯤 뒤 돌아와 보니 볶은 서리태를 저렇게 옮기고 있다. 검지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은 괜찮다. "새끼 손가락으로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콩이 자꾸 도망 가~ " 애 아빠 말론, 보고 있어야 한단다, 안 그러면 검지로 옮겨 버리기 때문에. "검지로 옮기면 벌 받아." "무슨 벌인데?" - "응, 바른글씨쓰기 해야 하거든."

 

 

나와는 이런 걸 해봤다. 자기 혼자 한 것인데, 보다시피 반타작. "3개 틀렸으니까 마이너스 3이라고 쓸 거야~"

 

 

 

 

 

 

 

 

 

 

 

 

 

 

독해력 책도 펴봤다. 아직 '프리스쿨러' 단계지만, 내가 전혀 개입하지 않고 "엄마는 엄마 일 할 테니까 너 스스로 읽고 답 써 봐, 다 쓰면 엄마한테 가져와~" 이런 식으로 푼 것이다. 15번 문제도 다시 짚어주니 맞춘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스스로(!) 해야 하고, 지금처럼 '한 문단'(문장들) 단위에서 두 세 문단 단계, 즉 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단 말이다. 에효. 

 

 

 

*

 

어제 개학. 지금처럼 비가 와서 아이를 4층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집으로 갔다. 9시 학교 종이 울렸다. 그건 음악소리지만 왠지 '땡땡땡'으로 전사해야 할 것 같다. 아이는 개학 첫날부터 돌봄 교실 갔다. 활보 선생님이 못 오신다 하셔서 돌봄 선생님이 직접 가시기로 했는데, 아이 말을 들어 보니 아이들과 함께 간 듯하다. 아이 말이 사실이라면 무척 고무적이다.(그래도 계단이 좀 무섭긴 하다.) 아이는  오늘도 학교 갔다. 오늘은 5교시. 이제 점심 먹겠다. 보다시피 나는 일 없이 빈둥빈둥대며 '울적'씩이나 하고 있다.

*

 

- "비가 와서 그런지 애가 너무 소리를 질러서요, 중간에 데리고 나왔어요."

- "그럼요, 어른도 우울한데 얘들은 오죽하겠어요."

 

언제 그랬냐는듯(정확히 지난주 목요일(?), 처음으로 에어컨 끄고 잤다) 폭염이 사라졌다. 이 모든 고민이 그렇게 사라져주면 좋겠지만, 참 그러길 바라지만, 이런 바람이 오히려 '울적'의 근거인 것 같아 더 '울적'한 것이다. '울쩍'이 아니라 '울적'이 표준어라(방금 찾아봤다), 그것도 왠지 '울적'을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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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단어만 놓고 볼 때 얼마나 우아한가. '현기증'. 검색해 보면 이런 저런 것이 뜨지만 아무래도 나한테는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제발트의 소설은 언제 읽어야지 하면서도 결국 못/ 안 읽는 책.  

 

 

 

 

 

 

 

 

 

 

 

 

 

 

반면 '구토'는 순전히 말만 들어도 '구토'스럽다. 그래도 토한다, 역하다, 멀미 난다, 우웩, 토사물 등등 비슷한 의미의 다른 단어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우아하다. 무엇 때문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릴 때부터 좋아한 책. La nausee(맞나?), 아무튼 원어도 어딘가 좋았던 듯. 아주 오래 전인데, 옛날 남자친구가 마침 교보에 간다기에 원서를 사다 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몇 장 뒤졌던가. 적어도 그런 야망도 있던 시절이다.  

 

 

 

 

 

 

 

 

 

 

 

 

 

 

지난 수요일,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두 단어의 조합을 떠올렸다. 현기증과 구토. 복지관이었고 아이가 작업치료를 끝내고 4시쯤, 그룹체육을 하러 들어갔다. 웬일인가. 항상 비교적 얌전해보이던 홍**씨가 웬일로 괴성을 지르고 난리다.(지난 금요일, 나 대신 아이를 데려간 남편이 얘기해준 대로다.) 자폐, 바로 이게 문제다. 무발화 중증, 이것도 문제지만, 아무리 훈련을 해도 이런 식의 돌발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시즌'인 모양이다. 그가 '엄마'와 함께 떠났다.

 

얼마쯤 지났나, 갑자기(그야말로 '갑자기'여서 놀랐다!) 손에 들고 있던 출력물의 글자열이 흔들흔들, 휘청휘청거리면서 시야가 급속도로 망가졌다. 이건 뭐지. 가끔, 한 2, 3초 시야가 흔들리거나 약간 노르스름해지다가 멈추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물론 많지는 않았고), 이건 질적으로, 양적으로 아주 다르다. 머리통이 뒤로 툭 젖혀지는데, 아, 사람이 이러다가 곧장 기절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종잇장들을 내려놓고 머리를 벽에 기대도 보고 의자(여러 개가 붙여진)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도 본다. 시야가 너무 흔들려 눈을 감는데, 몸이 화끈, 훅 달아오르는 느낌도 든다. 잠시 뒤 화장실. 나온 다음에도 편치 않아, 저쪽 복도 구석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또 화장실. 정녕 현기증과 구토.

 

아이가 나왔다. 너무 힘들어 아이와 함께 좀 앉아 있는다. 또 구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3층 대기실로 내려간다. '태양에 지친 자들'이라는 미할코프의 영화 제목이 생각나는 풍경. 여기서 '태양'은 스탈린인데, 내가 말하는 건, '희망'. 장애가 이른바 '극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래서 나날이 더 지쳐가는 듯한 엄마들. 사실 더 큰 절망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정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지적 장애 2급에 최근에 뇌병변 4급까지 추가. 겉보기에는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던데, 그래서 등급이 나오더라도 훨씬 더 낮게(좋게) 나올 줄았는데, 엄마가 아는 아이의 실제 상태는 그토록 심각했던 것이다.) 대기실에 좀 드러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엄마, 다른 엄마들은 다 가는데 엄마는 왜 이러고 있어?" 다시 화장실. 토하는 엄마 옆에서 "엄마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서 등이 아닌 엉덩이를 두드리는 내 아이라고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옆에서 수돗물 틀어보며(걸레 빠는 곳) 키득거리기까지. 아이고, 내 팔자야.

 

간난신고 끝에 택시 타고 귀가, 집에 오자마자 엄청 토하고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다시금 시야. 세상이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는데, 이 흔들림의 양상과 지속 시간이 무섭다. 거물거물 천정을 보다가 곧 잠들었다. 깨 보니 7시였다. 한 시간 넘도록 잔 것이다. 이후, 또 다시 구토와 현기증의 연속. "엄마가 아프니까 내가 위로해줄게." "엄마, 나 배고픈데?" 늘 그렇듯, 이런 날은 꼭 남편이 출장 중이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급체한 것 같다. ("엄마가 아까 배아프다고 했잖아?") 증상은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어 다음날 아침에는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오늘, 아이의 개학이 연기되어 나도 계속 '놀탱이' 모드다. 그런데, 활자열, 문자열과 마주하며 그저께와 비슷한 그 현기증이 미약하게 다시 재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학 시절부터 시작되어 최근들어 잦아진 이명까지 합세. 나이가 우리에게 안겨준, 참 달갑지 않은 종합선물세트다. 아, 고맙지만 됐어요~ 그래도 자꾸 떠미는 것이다, 이 선물. 문제는 그런데 이게 아니다.

 

 

 

 

 

 

 

 

 

 

 

 

 

 

이 책이었지 싶다. 김현 선생의 일기 어딘가에, '매일 혈변을 본다, 무서운 건 혈변 자체가 아니라 그걸 무서워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하는 식의  문장이 나왔던 듯하다. 20여년 전에 읽은 문장이 새록새록 '재발', '재생'한다. 원래 위장이 약해 구토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한 번 꼬이면 이삼일은 족히 간다. 찬겨울이거나 다른 요소와 겹치면 일주일씩 앓기도 한다. 그래서 구토에 관한 소설도 한 편 썼다.

 

 

 

 

 

 

 

 

 

 

 

  

 

 

 무서운 건 이토록 상습적이고 하찮은(!) 증상 앞에서 의기소침해지는 나 자신이다. 그저께 그 현기증이 너무 아뜩하여, 한참을 뇌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아주 쫄아버렸다. 바로 직전에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파 계속 파스 부치고 약을 먹던 중이라, 혹시 이 모든 것이 더 무서운 어떤 것의 일환이 아닐까 말이다. 죽을병에 걸릴(-렸을)까봐 너무 쫄다보니 자살 따위에 대한 생각이 아주 없어져, 이것 하나는 좀 좋다. 더 이상 많은 것을 의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그럴 힘이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하나만 해야 한다. 우리 말 번역 [구토]도 다시 읽기 힘들다, 원서는 고사하고.

 

*

 

- 엄마 좀 누워 있을 테니까 아까 읽은 책 제목만이라도 써봐.

 

 

다음 날 보니 진짜로 사실상 제목만 딱 써놨다. "이름을 이렇게 쓰면 어떡해? Carle 이렇게 써줘야지!" "어, 너무 길어서 짧게 줄였어." -_-;; 아이 방학 숙제의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다 음식, 먹는 것 관련 책이다.

 

 

 

 

 

 

 

 

 

 

 

 

 

 

작업 치료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서 아이와 함께 <투데이 이즈 먼데이>를 봤다. '읽었다'라고 하기에는 글자가 너무 적다. 아무래도 노래 책이니까.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바로 왼쪽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 '사대주의'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나, 달리 선진국이 아니다. 어떤 아이도 저 아이의 장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다 같이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신나게 먹을 뿐이다. 이 책은 그냥 평범한(?) '노부영' 중 하나이지, 딱히 장애에 관한 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배려가 있는 것이다. All you hungry children, come and eat it up!

 

 

보다시피 지체장애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정신장애(지능장애와 정서장애)이다. 말 한마디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씨를 보면, 누구라도, 심지어 우리조차도 무서워할 만하다. 지난 주에 남편은 애 귀를 막았다고 한다. 참 어찌해야 할지.

 

*

 

오늘로 아이의 방학 중 돌봄교실 생활은 끝이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학기 중 스케줄로 간다. 어제, 활보 선생님이 아이 점심 먹는 걸 도와주러 오셨다가 그냥 가셨다.(-라고 한다.) "친구들하고 웃으면서 밥 잘 먹고 있어서요~" 제발 좀, 이렇게만 자라다오!

 

*

 

무엇보다도, 먹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식판이 엄청 크다. 많은 아이들이 싹싹 긁어먹는다. 아이가 적게 먹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내 식사량의 두 배는 되는 듯하다. 그런데도 체중 증가 속도는 내가 더 빠른 듯하다. 체형의 변화 역시 눈에 뜨인다. 역시 나이. '청년' 속도로 질주하던 태풍이 졸지에 '노인'이 되었다더니, 나는 계속 귀가 먹먹하다. 다시 현기증이 올까봐, 세상이 흔들릴까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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