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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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의 최신작 <살인출산>을 읽고 나서 이 작가의 괴기스럽고, 독특한 매력에 끌려 전작들을 정주행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베스트셀러로 꽤나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던 무라타 사야카의 대표작 <편의점 인간>은 쉽게 읽히는 짧은 소설이지만 긴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다.  무라타 사야카는 크레이지 사야카 라는 별명에 걸맞게 이 책 또한 아주 독특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고 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생각이 주인공에게 투영된 것일까 궁금해진다. 

주인공 '후루쿠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말하자면 좀 비정상적인 여자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라 할 수 있지만, 자기 스스로는 미치도록 세상 속의 보통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녀의 남다른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 식으로 나타나곤 했다. 

「유치원 시절, 한번은 공원에 새가 죽어 있었다. 어디선가 기르던 새였을 것이다. 색이 파랗고 아름다운 작은 새였다. 맥없이 목을 떨군 채 눈을 감고 있는 새를 둘러싸고 다른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어떡하면 좋아?" 한 여자애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재빨리 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벤치에서 잡담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무슨 일이니, 게이코? 어머나, 작은 새가....! 어디서 날아왔을까... 불쌍해라. 무덤을 만들어줄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말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이거 먹자" 하고 말했다. 
"뭐라고?"
"아빠가 꼬치구이를 좋아하니까 오늘 이거 구워먹자."
<편의점 인간>


책을 읽다가 흠칫 놀랐다. 죽은 새를 보고 구워먹자고 했다고? 또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학교에서 남자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지자 아이들이 싸움을 말려야 한다며 소리친다. 우리의 후루쿠라는 이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창고에서 삽을 가져와 한 남자아이의 머리를 삽으로 내려친다. 그래야 싸움이 멈출 것이므로. 뭔가 정상적인 생각과는 약간 거리가 멀지만 스스로는 그것이 왜 이상한지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후루쿠라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자신의 행동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는 걸 알아차린 후 부터 그녀는 스스로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따라하거나, 되도록 말을 아끼면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그녀가 비로소 정상처럼 보이게 된 것은 대학교를 들어간 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난 후부터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메뉴얼을 알려준 적이 없다. 하지만 편의점은 고객이 오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물품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고, 옷차림은 어떠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메뉴얼화 되어있다. 그녀는 편의점 점원으로써 성공적으로 첫 손님을 맞는 그 순간, 처음으로 이 세상의 진정한 하나의 부품이 되었다고 느끼고 기뻐한다. 후루쿠라는 자신의 말투, 옷차림,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을 주변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다. 적당히 따라하다보면 사람들은 그녀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18년째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취업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편의점 알바로써만 살고 있다. 대학생일때는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것이 정상적이었지만,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가 되니 점점 비정상이 되어간다. 

「"이 세상은 이물질을 인정하지 않아요. 나는 줄곧 그것 때문에 괴로워해왔어요."
음료 코너에서 티백을 우린 재스민 차를 마시면서 시라하씨가 말했다. 
재스민 차는 움직이지 않는 시라하 씨를 대신하여 내가 탔다. 시라하 씨가 말없이 앉아 있어서 내가 찻잔을 가져다 앞에 놓아주자, 그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모두가 보조를 맞춰야만 하는거죠.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요'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 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공포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다. 무리에서 다수의 편에 속하기 위해, 혼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는 것이다. 살다보니 사회의 이물질이 되어버린 후루쿠라와 시라하 그들은 다시 정상의 범주에 들 수 있을 것인가.  

편의점 인간은 짧고 독특한 이야기에 참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어서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하다. 곱씹고 또 곱씹어봐야 할 소설인 것 같다.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본다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사람들 속에서 정상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물질로 전락하지 않고 버티는 것, 어쩌면 이건 우리 모두가 현재를 매일같이 이 악물고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긴, 생각해보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난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게 살고 싶다. 
적당한 직업으로 적당한 돈을 벌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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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견주 2 - 사모예드 솜이와 함께하는 극한 인생!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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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랑스럽다니!! 난 개보다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고양이파지만, 읽는 내내 강아지 '솜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순진무구한 장난꾸러기 같은 눈을 하고서 온갖 사고를 치는 솜이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극한견주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유쾌했다. 그림체가 단순한 듯 하면서도 강아지 솜이의 귀여운 표정과 제스처를 아주 잘 잡아냈기에 귀여움이 극대화된다. 이번 책은 극한견주 두 번째 시리즈다. 첫번째 시리즈를 못본 상태에서 이 책을 만났기에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고민했지만, 에피소드 형식으로 되어있기에 전편을 안 봤어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만화를 즐겨보는 타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건 1편도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올만에 취향저격 동물만화를 만나서 기쁘다. 




표지 앞 뒷면의 강아지 모습이 극과 극이라 너무 웃겼다. 특히 질풍노도 개춘기를 겪는 뒷면의 솜이 얼굴을 보고 빵 터졌다. 사람도 사춘기때 제일 못생긴 얼굴을 하고서 성질도 최대치로 괴팍해지듯이 개는 개춘기가 되면 털이 묘하게 자라서 딱 원숭이 같은 얼굴이 된단다. 유치가 빠지면서 이빨은 맹구가 되고, 더럽게 말을 안듣기 시작한다 원숭이 같은 얼굴이란 어떤 걸까 만화로 봤을 땐 설마 했는데 책에 나온 실제 솜이의 개춘기 사진을 보고서 진짜구나 하고 현웃 터졌다ㅋㅋ 



북극에서 썰매를 끌었다는 사모예드 종 '솜이'는 복실복실한 하얀 털과 웃고 있는 듯한 귀여운 얼굴이 매력적이지만, 온 집안을 부시고 다닐만큼 장난꾸러기다. 보라, 엉망진창 집안꼴에 얼어붙은 개주인을 뒤로 하고 혼자 순수하게 신난 얼굴을 ㅋㅋ   



솜이의 박스 사랑도 넘 귀여웠다. 임시로 만들어준 작은 박스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그 박스에 들어가서 잠을 잔다. 덩치 큰 솜이의 몸이 점점 박스에서 흘러나온다. 나중에는 머리만 넣고 자는게 넘 웃겼다. 들어가고 싶은데 안들어가졌쩌용~~ 우쭈쭈!! 
이런 순수한 모습들이 동물들을 한없이 사랑스럽게 한다.



배변 훈련을 시켰더니 배변패드에 쉬한 자기를 스스로 대견해하며 주인 부르는 표정 좀 봐. 어찌 이런 표정들을 이렇게 다양하고 귀엽게 잘 표현했는지 솜이의 다양한 표정변화들을 지켜보는게 동물만화 극한견주의 제일 즐거운 포인트 중 하나였다.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단지 귀엽다고 쉽게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의 견주님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고생의 끝에는 미치게 귀여운 솜이의 애교가 있기에 결국엔 또 행복할테지만 말이다. 

솜이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ㅋ
견주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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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특별판)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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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라는 인간이 국가의 표적이 될만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본디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조용히 살고만 싶기에 그런 일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싶지만, 0%라고는 할 수 없으리라. <골든 슬럼버>의 주인공 아오야기도 아무런 이유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살해범으로 저격당해 쫓기게 되었으니까. 무엇이 갑자기 그를 살해범으로 만들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오로지 도망칠 뿐이다.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할 기회조차 없다. 아무도 진실따위 궁금해하지 않을 테니까. 평범한 택배기사일 뿐이었던 아오야기, 굳이 특별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좀 잘생겼다는거, 그리고 1년 전 택배 배달을 하다가 우연히 아이돌 린카를 구해주어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는 것 정도? 그게 갑자기 촉망받는 총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고갈 이유는 될 수 없지 않은가. 읽으면서 '왜 하필 그 였을까'에 대한 답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결국엔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밑도 끝도 없이 쫓길 뿐이다. 이런 걸 단순히 재수가 없었다고 볼 수 있으려나.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몇 십 페이지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 줄기가 다 공개되기에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뒤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지길래 이렇게 전개가 빠른걸까 했는데, 특이한 구성으로 진행된다. 첫 부분에서는 TV로 사건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보는 사건의 전개양상을 빠른 속도로 보여준다. 어느 날 새로운 총리 가네다를 위한 환영 퍼레이드가 센다이 시내에서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던 총리는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무선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이 엄청난 사건을 벌인 범인을 찾기 위해 국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다행히 얼마전에 있었던 연쇄 살인 사건 덕분에 시내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안전을 이유로 시민들의 정보는 모두 국가가 감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있다. 덕분에 경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범인을 찾아낸다. 1년 전 아이돌을 강도로 부터 구해줘 국민영웅이 된 아오야기 마사하루다. 그의 행적에 관한 빼박 증거들이 이미 즐비하다. 이제 그만 잡으면 된다. 

그리고 다음, 20년 후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을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긴 시간의 흐름은 비상식적이었던 그때 그 사건이 어딘가 이상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실제 사건의 시간 속, 즉 현재 속으로 들어가 아오야기가 겪는 이 어이없는 일들을 함께 쫓아다니며 보여준다. 같은 사건을 두고 시선을 달리 함으로써 다른 형체로 인식된다. 시민들의 눈으로 보는 흥미로운 스포츠 경기와 비슷한 느낌의 총리 살해 사건, 20년이 지나 역사적 사건으로 되짚어 보는 총리 살해 사건, 그리고 억울하게 총리 살해범으로 몰린 엉뚱한 사람이 겪는 일생 일대의 사건. 
소설은 억울한 개인의 입장이 되어버린 아오야기를 따라다니며 소설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자신이 왜 도망쳐야 하는지도 모른채 도망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개인, 아오야기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 소설은 극명하게 국가와 개인의 싸움을 보여준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개인의 이야기다. 아오야기는 약한 개인이지만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라는 친구 모리타의 말을 끝없이 떠올리며 어떻게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하나하나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반해 국가와 언론의 무기는 '이미지'다. 

「"정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거지. 자네는 범인이지만 증오해야 할 역겨운 인간이 아니야. 용서받을 수는 없지만 동정 못할 것도 없지.그런 범인상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정보를 조작하겠다고?"
"이미지" 사사키는 짧게 말했다. "이미지란 게 그런거 아닌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사람은 이미지를 갖게 되지. 세상은 이미지로 움직여. 맛은 똑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레스토랑이 번창하는 것은 이미지가 좋아졌기 때문이야. 서로 모시려고 아우성치던 배우의 일감이 떨어지는 건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이고. 총리를 암살한 남자인데도 큰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은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지."」 <골든 슬럼버 49%>

국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건의 책임 소재를 찾아내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는 목적을 위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모습을 보인다. 생각해보면 국가라는 것도 하나의 상상 개념에 불과하다. 결국은 인간으로 이루어지는 그룹인데, 그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개념의 권력으로 개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짓밟는 것을 보면 무서워진다. 

「"우리 같은 대중이란 잘난 놈들이 정한 대로 끌려갈 뿐이야. 우리가 코앞에 닥친 일이나 연애에만 매달린 사이 멋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러다가는 문제가 되는 짐짝만 덜컥 떠맡긴다니까. 그래가지고, 잘난 놈들은 저런 감시카메라 너머에서 놀라 쩔쩔매는 우리를 비웃고 있지."

골든 슬럼버는 오락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는 좀 약했던 게 사실이다. 이미 전체적인 사건 개요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세부적인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중반 부분은 사실 좀 지루하기도 했다. 거기다 신기하게 도망치는 과정에서 아오야기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별 의심도 없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오야기를 도와주는 부분도 개연성이 좀 떨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책을 다읽고 이틀쯤 지난 시점이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 지금 드는 감정은 씁쓸함이다. 이야기에서 전개되는 비상식적인 현실들이 지금 현실 세계와 과연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언제나 현실은 영화나 소설을 훨씬 넘어서는 막장이니까.

마침 영화도 개봉한 시점이지만, 혹평들이 많아서 보진 않았다. 하지만 아오야기 얼굴에 강동원의 얼굴을 대입해서 상상하며 읽었다. 소설을 보는 내내 영화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지만 평이 안좋은 걸 보면 그리 잘 표현해내지 못했나보다. 특히 소설과 다른 영화의 결말에 대해 안좋은 말이 많던데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다. 

어쨋든 하고 싶은 말은, 
"아오야기, 잽싸게 쪼르르 도망쳐!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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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처방전 - 글씨가 예뻐지는 60일의 기적
임예진 지음 / 북스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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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손글씨로 끄적거리는 걸 좋아해서 집에 갖가지 노트가 넘쳐나는 편이다. 스케쥴링이나 일기도 컴퓨터나 핸드폰보다는 노트에 펜으로 쓰는 것을 선호한다. 문제는 내 손글씨가 예쁘지 않다는 것! 천천히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쓰는 글자는 그나마 정갈해보이는 편이지만 급한 상황일 수록 글자는 바람이 부는듯 휙휙 날아간다. 나도 예쁜 손글씨가 가지고 싶다. 연습으로 가능하다면 꼭 가지고 싶다!



우선 손글씨가 예쁘면 그걸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멋스러운 캘리그라피를 사용해 다양한 소품을 장식할 수도 있고, 아기자기한 손글씨로 다이어리를 꾸미거나, 노트를 정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센스있는 손편지를 써주기에도 부끄럽지 않겠지. 



손글씨 처방전

손글씨 처방전은 4가지 버전의 손글씨를 다양하게 따라쓰면서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격식있는 정자체, 동글동글 귀여운글자체, 흐르는 듯한 느낌의 흘림체, 개성 넘치는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형태의 손글씨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반복해서 써볼 수 있게 제공한다. 처음에 책을 받아들고는 순간 한글을 처음 배우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도 살짝 받았지만, 손글씨는 직접 써봐야 느는 만큼 한글을 다시 배운다는 마음 가짐으로 꽤 많은 글자를 따라써야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따라쓰기만 해서 과연 글자체가 좋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점 쓰다보니 전체적인 글자의 균형과 비율을 고려해서 쓰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손글씨도 결국엔 비율의 미학이구나. 그리고 손글씨는 습관의 문제다.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를 쓰는 습관에 따라 개인의 글씨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꾸준히 연습을 하면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의 중간쯤부터 매일 따라 쓸 수 있도록 미션이 나와있다. 60일 동안 매일 정성스럽게 글씨쓰는 연습을 하면 좀 더 예쁜 글씨체를 가질 수 있을까?



아쉬운 건, 글씨가 두껍게 인쇄된 글씨체를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서 두꺼운 네임펜으로 글을 따라 썼더니 뒷면에 글자가 비치는 것이었다. 다양한 손글씨를 연습하기 위한 책인만큼 종이 두께도 좀 더 두꺼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마지막 부분엔 그림과 더불어 캘리그라피를 연습하는 칸도 마련되어 있다. 캘리그라피는 손글씨라기 보다는 그림 실력에 가까운 듯 보인다. 전제적인 비율과 느낌을 살려 아름답게 표현하는 캘리그라피 글씨체는 지금 상황에선 너무나 먼 미래 같아 보인다.



손글씨를 쓰는 행위는 나에게는 일종의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다. 하루에 1~2페이지씩 아무 생각없이 정성을 다해 글씨를 따라써보는 시간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하얀 종이를 내 글씨로 조금씩 채워간다는 생각도 나쁘지 않았다. 손글씨가 예쁘지 않아서 고민인 사람은 손글씨 처방전을 통해 기본적인 글자체를 익혀보고, 이후 따라하고 싶은 글씨체가 생기면 프린트해서 꾸준히 따라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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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세븐틴
최형아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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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의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뭔 줄 아세요? 그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말을 못하겠어요. 내 잘못이 아닌데, 그게 내 나머지 인생을 모두 망쳐버렸다고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굿바이, 세븐틴>


그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폭행 당한 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평생 아픔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 사이에서 무용담처럼 떠벌리며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도 말이다. 그런 사회가 요즘 미투 운동으로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다. 더 이상은 피해 여성들도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않는다. 다른 범죄들과 달리 성폭행 사건은 범인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항상 피해자가 불리한 경우가 많다. 여지를 줘서 당한 거라나 뭐라나. 하지만 사회적 공론이 형성되면서 #metoo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그동안 이렇게도 숨은 사건들이 많았나 싶을 만큼, 각종 정치계, 연예계의 성폭행 가해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당하고도 어쩔 수 없이 입 다물고 있었던 피해자들이 그만큼 많았던 셈이다. 오늘자 뉴스에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자 남자들이 불똥 튈까 무서워 회사 내 여성들과 아예 대화도, 식사도 거부하는 '펜스룰'(Pence rule)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이상한 방식의 역차별인 것 같긴 하지만(떳떳하다면 왜 피하는 건지), 어쨌든 이런 문제들이 공론화 됨으로써 공공연한 성추행들이 앞으로는 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시점에서 읽은 <굿바이, 세븐틴>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주인공 윤영은 잘 나가는 여성전문 성형외과 의사이다. 능력 있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여자다. 그녀는 친구 닥터 안과 함께 동업으로 운영하는 병원에서 여성의 음부 성형을 담당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 외에도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예쁘게 성형해 남자의 사랑을 쟁취하려 한다. 그런 여자들을 하루에도 여러 번 상대하는 윤영은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내세워 친절한 미소로 상담해주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짓는다. 윤영은 17살 때 비 오는 날 밤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가던 길에 옆 학교의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쓰러져 있는 자신을 앞에 두고 마치 사람이 아닌 양 서로 먼저 하겠다고 투닥 거리며 욕을 내뱉던 그 남학생들의 대화와 목소리를 윤영은 20여 년이 지나도록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윤영의 가족은 도망치듯 그 도시를 떠나 서울로 이사 와서 살았다. 마치 그곳에서 벗어나면 그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처럼. 
공부를 잘했던 윤영은 그 일로 마음의 병이 생겨 학교도 중간에 그만두게 되지만, 얼마 후에는 부모님을 더 이상 걱정 시키지 않기 위해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2년 만에 의대에 진학한다. 결론적으로는 전문직도 얻고, 멀쩡히 살고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윤영은 그 이후 정상적인 사랑을 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아무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 남자가 가장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관계를 갑작스럽게 끝내버린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남자들에게 가하는 일종의 벌인 셈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몸을 일부러 학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걸로도 부족할 땐 일부러 몸이 고통스럽도록 곳곳에 문신을 한다. 그래서 그녀의 몸엔 날개를 펼친 나비가 여기저기서 날아오를 듯한 기세로 새겨져 있다. 그걸 빼면 윤영은 아주 정상적인 가면을 쓰고, 차가운 얼굴로 사회생활을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환자 심희진은 왠지 윤영을 불편하게 한다.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 환자와 의사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많이 하고, 자주 찾아와 이상한 말을 털어놓던 그녀. 그런 그녀가 병원에서 성형 후 어느 날 불현듯 자살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윤영은 그때야 희진이 했던 말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며 뭔가 이상하고도 익숙한 느낌을 깨닫는다. 희진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와 맞닿아있는 듯했던 것이다. 그렇게 윤영은 자신과 심희진의 관계, 또 희진이 겪었던 아픔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애써 숨겨 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 나아간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그것을 견디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그것은 처음부터 소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버리는 거라니, 마음이 아팠다. 가장 소중한 것이었어야 할 자신의 몸이 누군가로 인해 악몽으로 뒤덮인다면, 어쩌면 살기 위해 정신적으로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원래 소중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난 괜찮아.' 하지만 그건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다. 성폭행 범죄의 가장 나쁜 점이 피해자가 모든 정신적, 물리적, 사회적 피해를 모두 덮어쓴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서 오히려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협박 받기도 한다. 어떻게 성폭행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더러울 수 있는가. 

아픈 사건일수록 어쩌면 더 양지로 끌어내서 정면으로 맞서야 되는지 모른다. 그래야 진정으로 어두운 기억과 깔끔한 굿바이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들의 진정한 굿바이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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