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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특별판)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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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라는 인간이 국가의 표적이 될만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본디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조용히 살고만 싶기에 그런 일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싶지만, 0%라고는 할 수 없으리라. <골든 슬럼버>의 주인공 아오야기도 아무런 이유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살해범으로 저격당해 쫓기게 되었으니까. 무엇이 갑자기 그를 살해범으로 만들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오로지 도망칠 뿐이다.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할 기회조차 없다. 아무도 진실따위 궁금해하지 않을 테니까. 평범한 택배기사일 뿐이었던 아오야기, 굳이 특별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좀 잘생겼다는거, 그리고 1년 전 택배 배달을 하다가 우연히 아이돌 린카를 구해주어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는 것 정도? 그게 갑자기 촉망받는 총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고갈 이유는 될 수 없지 않은가. 읽으면서 '왜 하필 그 였을까'에 대한 답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결국엔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밑도 끝도 없이 쫓길 뿐이다. 이런 걸 단순히 재수가 없었다고 볼 수 있으려나.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몇 십 페이지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 줄기가 다 공개되기에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뒤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지길래 이렇게 전개가 빠른걸까 했는데, 특이한 구성으로 진행된다. 첫 부분에서는 TV로 사건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보는 사건의 전개양상을 빠른 속도로 보여준다. 어느 날 새로운 총리 가네다를 위한 환영 퍼레이드가 센다이 시내에서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던 총리는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무선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이 엄청난 사건을 벌인 범인을 찾기 위해 국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다행히 얼마전에 있었던 연쇄 살인 사건 덕분에 시내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안전을 이유로 시민들의 정보는 모두 국가가 감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있다. 덕분에 경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범인을 찾아낸다. 1년 전 아이돌을 강도로 부터 구해줘 국민영웅이 된 아오야기 마사하루다. 그의 행적에 관한 빼박 증거들이 이미 즐비하다. 이제 그만 잡으면 된다.
그리고 다음, 20년 후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을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긴 시간의 흐름은 비상식적이었던 그때 그 사건이 어딘가 이상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실제 사건의 시간 속, 즉 현재 속으로 들어가 아오야기가 겪는 이 어이없는 일들을 함께 쫓아다니며 보여준다. 같은 사건을 두고 시선을 달리 함으로써 다른 형체로 인식된다. 시민들의 눈으로 보는 흥미로운 스포츠 경기와 비슷한 느낌의 총리 살해 사건, 20년이 지나 역사적 사건으로 되짚어 보는 총리 살해 사건, 그리고 억울하게 총리 살해범으로 몰린 엉뚱한 사람이 겪는 일생 일대의 사건.
소설은 억울한 개인의 입장이 되어버린 아오야기를 따라다니며 소설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자신이 왜 도망쳐야 하는지도 모른채 도망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개인, 아오야기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 소설은 극명하게 국가와 개인의 싸움을 보여준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개인의 이야기다. 아오야기는 약한 개인이지만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라는 친구 모리타의 말을 끝없이 떠올리며 어떻게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하나하나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반해 국가와 언론의 무기는 '이미지'다.
「"정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거지. 자네는 범인이지만 증오해야 할 역겨운 인간이 아니야. 용서받을 수는 없지만 동정 못할 것도 없지.그런 범인상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정보를 조작하겠다고?"
"이미지" 사사키는 짧게 말했다. "이미지란 게 그런거 아닌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사람은 이미지를 갖게 되지. 세상은 이미지로 움직여. 맛은 똑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레스토랑이 번창하는 것은 이미지가 좋아졌기 때문이야. 서로 모시려고 아우성치던 배우의 일감이 떨어지는 건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이고. 총리를 암살한 남자인데도 큰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은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지."」 <골든 슬럼버 49%>
국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건의 책임 소재를 찾아내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는 목적을 위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모습을 보인다. 생각해보면 국가라는 것도 하나의 상상 개념에 불과하다. 결국은 인간으로 이루어지는 그룹인데, 그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개념의 권력으로 개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짓밟는 것을 보면 무서워진다.
「"우리 같은 대중이란 잘난 놈들이 정한 대로 끌려갈 뿐이야. 우리가 코앞에 닥친 일이나 연애에만 매달린 사이 멋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러다가는 문제가 되는 짐짝만 덜컥 떠맡긴다니까. 그래가지고, 잘난 놈들은 저런 감시카메라 너머에서 놀라 쩔쩔매는 우리를 비웃고 있지."」
골든 슬럼버는 오락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는 좀 약했던 게 사실이다. 이미 전체적인 사건 개요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세부적인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중반 부분은 사실 좀 지루하기도 했다. 거기다 신기하게 도망치는 과정에서 아오야기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별 의심도 없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오야기를 도와주는 부분도 개연성이 좀 떨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책을 다읽고 이틀쯤 지난 시점이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 지금 드는 감정은 씁쓸함이다. 이야기에서 전개되는 비상식적인 현실들이 지금 현실 세계와 과연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언제나 현실은 영화나 소설을 훨씬 넘어서는 막장이니까.
마침 영화도 개봉한 시점이지만, 혹평들이 많아서 보진 않았다. 하지만 아오야기 얼굴에 강동원의 얼굴을 대입해서 상상하며 읽었다. 소설을 보는 내내 영화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지만 평이 안좋은 걸 보면 그리 잘 표현해내지 못했나보다. 특히 소설과 다른 영화의 결말에 대해 안좋은 말이 많던데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다.
어쨋든 하고 싶은 말은,
"아오야기, 잽싸게 쪼르르 도망쳐!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