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 내일을 밝히는 오늘의 고운 말 연습 아우름 22
이해인 지음 / 샘터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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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런 케케묵은 속담을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이득을 보게 되어있다. 문제는 그렇게 이쁜 말과 이쁜 마음을 일상 생활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일 뿐. 요즘 처럼 인터넷에서 비실명성을 핑계로 오만 해괴망측한 악플들이 달리는 세태를 보아하면 인간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품고 말을 할수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봐도 눈물이 핑돌고 마음 아픈 댓글들도 수두룩 하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정말 말을 막해서 주변사람까지 기분 상하게 하는 사람들도 수두룩 하다.


바로 어제 밥을 먹으러 간 중국 식당에서도 아주 불쾌한 경험을 했다. 낮시간 부터 남자 두명이 식당 한켠에 자리 잡고 서빙하는 아주머니들에게 계속 막말을 늘어놓으며 말끝마다 쌍욕을 하는 모습을 봤다. 어찌된 상황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술안주로 먹을 짬뽕을 그냥 좀 주면 안되겠냐고 하지 않았나 싶다. 선불제로 운영되는 깔끔한 프랜차이즈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것도 웃겼지만, 자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주변 손님들에게 다 들리도록 계속 욕을 하고 시끄럽게 술을 마시더니 자기가 식당에서 이런 취급을 받다니 이런 사태를 블로그에 올릴거라며 당해보라고 으름장을 놓고 나가는 것을 봤다. 블로그에 올려봤자 본인이 욕먹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꼭 여러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진짜 몰상식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시킨 짜장면이 너무 맛있어서 감동하면서 먹고 있었는데 그 손님때문에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나쁜 기운을 내뿜은 말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분도 상하게 만든다. 그게 돌고 돌아 본인에게 돌아올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나도 약간은 다혈질 성격이라 별것도 아닌걸로 흥분하고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은 편인데, 나에 비해 차분하고 이성적인 남자 친구와 말을 하다보면 다시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원래 나는 '말'이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뱉어내고 나면 사라지고 마는 것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는지 알아가는 중이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정말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많이 보다보면 그 사람이 하는 말 속에 그 사람의 성격과 사상이 다 들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미세한 행동과 말이 나 자신을 규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고 말을 조심하게 됐다. 그나마 잘 모르는 타인에게는 예의상으로라도 더 조심하기 쉽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가족에게 대하는 법이다. 너무나 가깝기에 가장 상처주기 쉬운 가족끼리의 말들, 가까운 사람에게 더 막말하게 되는 안타까운 습관등은 정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는 이해인 수녀님이 그동안 여기저기 기고한 다양한 고운 말과 고운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서 낸 샘터 아우름 시리즈 22번째 책이다. 고운말과 고운 마음 이라는 말 자체가 어쩌면 너무 흔해빠져서 오히려 일상과 동떨어진 느낌까지 들기도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바닷가에 나갔다가 모래 속 깊이 묻혀 있는 아주 작은 조가비들을 주워왔고, 오늘은 솔숲 길을 산책하다 깨끗한 모양의 솔방울과 도토리들을 주워왔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한동안 소식이 뜸했지만 마음으로 가까운 어린 시절의 벗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려고 상자에 담아 두었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물건들이 넘쳐 나고, 돈만 주면 못 사는 것이 없을 만큼 풍요로운 시대일수록 상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물건보다는 주는 이의 정성과 따스한 마음이 담긴 요란하지 않은 선물이 오히려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주 작은 쪽지 하나라도 때로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음으르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됩니다. 
몇년 전 여행길에서 여권과 비행기 표마저 잃어버리고 상심해 있을 때, 누군가 나뭇잎에 '굿 나잇Good Night' 이라 써서 제가 머무는 방에 놓아주고 갔지요. 박하사탕 한 개와 함꼐 놓고 간 그 격려의 말은 힘든 중에도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작은 마음의 표현들, p.98>

맞다. 비싸고 휘황찬란한 선물보다 작지만 주는 이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과 편지에 더 많이 감동할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선물을 고를때면 주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가격이나 브랜드를 찾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란 나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이 글을 보면서 갑자기 누군가에게 소박함이 담긴 작은 마음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말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워서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 나만 하더라도 누군가 내게 했던 상처가 되는 말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슴 한켠 어딘가에 남아 똬리를 틀고 있다. 바꿔 생각하면 내가 살면서 생각없이 내뱉었던 말 중에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아 가슴 한켠에서 뿌리를 내린 말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말을 무서운 것이다. 나쁜 말과 생각은 돌고 돌아 무조건 나에게 돌아온다.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이 필요하다. "나 지금 좋은 생각이 났어, 니 생각" 갑자기 이 말이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말을 하루에 한번씩만이라도 해보는게 어떨까? 나부터도 하루에 한번 이상 고운 말하기 프로젝트에 들어가야겠다. 


말을 위한 기도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닫는시 중에서)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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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1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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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보이스피싱을 당해봐서 안다. 그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하고, 사람의 신뢰감을 얻어서 유유히 돈을 뜯어내는지. 몇년 전 집에서 막 나와서 친구랑 어디 가려던 길,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순간 어느 경찰서의 누구라고 얘기하면서 ㅇㅇㅇ씨를 아시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그 자들이 내 통장 명의를 도용해 범죄에 이용했다며 내가 범죄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면 어느 은행에 통장이 몇 개가 있고, 그 통장 안에 잔고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밝히라고 했다. 진짜 경찰관 같은 목소리와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순진했던 나는 한 시간에 걸쳐 설득을 당하고 내 통장 잔고 정보를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당장 컴퓨터를 켜서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말하는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란다. 접속해서 자기들이 시키는대로만 누르고 순서대로 실행하란다. 범죄 내용에 관한 법 조문 같은것을 확인하게 해서 혼을 빼놓고는,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하고, 다음페이지로 넘어갔더니..잉? 보안카드 번호를 다 적으라고? 그 때부터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가 당한건가 하며 머릿속이 흔들리는 거 같아 고민하다가 그냥 안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앞으로 2주동안 모든 금융거래가 정지될 것이고, 경찰서에 직접 와서 경위서를 적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금융거래가 정지되는 일따위는 없었다. 사이트를 자세히 훑어봤더니 경찰청 사이트를 똑같이 따라 만든 피싱사이트였다. 하아, 내가 보이스피싱에 당할 뻔 하다니!! 분하면서도 세상이 무서웠다. 


그리고 나서 몇달 뒤, 어느 한 기자가 "기자도 당할뻔 한 보이스피싱"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당한 똑같은 수법으로 보이스피싱 당한 얘기를 글로 쓴 기사를 봤다. 그래, 내가 바보 같아서 당한게 아니었어! 난 괜찮은 보이스피싱 기법의 초기 피해자였다. 당시 내 통장에는 돈도 100여만원 밖에 없었는데, 벼룩의 간을 빼먹지 그걸 빼앗아 보겠다고 한시간 넘게 씨름한 그들도 대단하다. 그렇게 난 다행히 비싼 수업료 없이 실제 보이스피싱을 경험했다. 


소설 <립맨>은 보이스 피싱으로 시작해서 유괴 사업으로 판을 벌린 범인들과 경찰들의 한판 승부를 담은 범죄 소설이다.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벽돌책에 경찰과 범인의 머리 싸움이 숨가쁘게 빼곡히 담겨있다. 범죄 소설이라 하면 무릇 경찰의 입장에서 범죄집단인 악의 무리를 처단하길 바라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참 아이러니 하게도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친숙한 범인들과 경찰의 의무를 다하는 바른 경찰, 아들을 유괴당한 대기업 사장마저도 너무 바르고 착한 사람이다. 범죄소설에 이렇게 착한 사람만 나와도 되는건가, 그것도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과 유괴사업에 관한 범죄소설인데 말이다. 


모두가 선하지만 모두가 서로의 적이다. 누가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절묘하게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낸 시즈쿠이 슈스케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소설의 전편으로 '범인에게 고한다' 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래서 립맨의 또다른 이름은 <범인에게 고한다 2>라 할 수 있다. 범인에게 고한다에서의 범죄 이야기가 립맨에서도 암시되어 이야기 되고 있고, 시간상 배경도 전편의 사건 후에 일어난 일로 소설이 전개되긴 하지만 범인에게 고한다를 안읽은 사람도 <립맨>을 읽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립맨의 범죄자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20대 청년들이다. 몇 년 전 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슬픔에 빠졌었지만 형 도모키는 공부도 잘하고 건실한 청년이라 열심히 취업준비를 해서 건실한 과자회사 미나토당에 일찌감치 취업이 확정되어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나토당이 과자 유통기한 조작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회사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져 위기에 처하자 이미 취업이 예정 되어있던 신입사원들을 협박해 거의 강제로 취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런 과정에서 도모키는 예정되어 있던 회사취업도 날아가고, 이후 다른 곳에 취업하지도 못해서 중간에 붕 뜨게 된다. 하루하루 먹고 살일이 점점 막막해지며 앞날이 걱정되던 어느 날, 도모키는 동생 다케하루와 함께 우연히 보이스피싱에 발을 들이게 된다. 


소설 립맨 초반에는 보이스피싱 일당들이 어떤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빼놓고 돈을 뺏어가는지 아주 흥미롭고 상세하게 나온다. 정말 이건 안 속을 수가 없겠다 싶을 만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하게 속여서 신속하게 전화통화 만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실행팀, 수령팀이 나누어져 있고, 한탕씩 성공할 때마다 보수도 회사 급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두둑하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에 꼬리가 밟히면서 보이스피싱 일당들이 싹 다 잡혀가버리고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는 아슬아슬하게 가까스로 도망쳐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형제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보이스 피싱으로 번 돈 만으로는 앞으로의 인생이 바뀔 것 같지가 않다. 바bar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래를 고민하던 도모키는 자신과 같이 학교를 다니던 (그때 당시에는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던) 대학 동창들이 바에 와서 술을 마시며 은근슬쩍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느낀다. 큰 돈만 있다면 남부럽지 않게 사업이나 하면서 살고 싶었던 도모키는 자신을 범죄 동료로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아와노의 끈질긴 설득에 못이겨 다시 범죄, 이번에는 보이스피싱 같은 시시한 범죄가 아니라 좀 더 판이 큰 유괴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대유괴단'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달고, 올해를 일본의 유괴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이들의 유괴사업은 '유괴는 하지만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유괴해서 멀쩡하게 인질을 풀어주지만 경찰 몰래 스스로의 의지로 돈을 입금하게 만든다.  이들은 무자비하고 무지막지한 범죄자들이 아니다. 어느 정도 사회성을 갖추고 있고, 지성도 있다. 범인에게 유괴되어 함께있는 몇 일 동안 인질은 이들의 인간적인 면을 느끼고, 어느 정도는 신뢰하기도 한다. 


도모키 일당에게 아들과 함께 유괴당했다가 혼자 풀려난 미나토당의 미즈오카 가쓰토시 사장은 아직 그들 손에 있는 아들을 구해오기 위해 어떻게든 경찰 몰래 범인들에게 일억엔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경찰은 그들의 본분대로 일본 사회를 어지럽힐 수 있는 범죄일당을 검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경찰에 무심코 맡겼다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에 망설이는 미즈오카 사장과 범인을 꼭 잡아야 하는 경찰과 경찰 몰래 돈을 꼭 받아내야 하는 도모키 일당의 숨막히는 삼각 줄다리기는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앞서 말했듯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삼자 모두 자신만의 굳건한 이유와 이해관계가 있다. 립맨은 그 줄이 팽팽해서 더 읽는 재미가 있다. 



가쓰토시는 사원과 함께 이를 악물고 애쓴 덕에 경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지금의 이익도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도모키처럼 입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강요받은 자를 포함해 정리해고로 잘린 사람이 수십명은 있다. 그들은 착실히 일했다면 얻었을 벌이와 생활 기반을 잃고,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해를 봤다. 미나토당의 회복된 업적은 그 희생 위에 세워졌다. 

그것과 도모키가 손댄 범죄는 무엇이 다를까. 보이스피싱이든 몸값을 노린 유괴든 누군가를 희생으로 이익을 얻는 점은 가쓰토시가 사장으로서 한 짓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지 않은가. 도모키의 행동이 명백한 범죄고, 가쓰토시의 행동이 경영 판단이라는 단순한 차이뿐이다. 가해 의식이 적은 만큼 오히려 가쓰토시 쪽이 질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219>



물론 범죄자들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합리화는 어느정도 억지스럽긴 하다.  피해를 봤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옳은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각자가 나름의 억울한 점이 있고, 합리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소설 전체가 끝까지 흥미롭게 이어질 수 있었던 듯 하다. 


소설이 마무리되고 끝 부분에 저자가 보이스피싱에 대해 참조한 책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살짝 웃었다. 보이스 피싱에 대한 책이 이렇게 많다니!! 보이스피싱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만 책을 5권 이상 읽었나보다. 그래서 그런 실질적인 수법들이 소설에 쓰여질 수 있었겠지? 하지만 행여나 이 책을 보고 우리나라의 보이스피싱이 더 발전한다거나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속여서 그 신뢰감을 바탕으로 사기를 치는건 정말 나쁜 짓이다. 근데 얼마전 OCN 드라마, 멋진 서인국이 나왔던 <38사기동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사기는 분명 나쁜건데 멋져 보였단 말이지. 이렇게 범인에게 공감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범인에게조차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시즈쿠이 슈스케 또한 독자에게 사기를 친 듯 하다. 이렇게 착한 인물들 사이의 심장 쫄깃한 범죄소설이라니! 범인에게 고한다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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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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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나는 무슨 책을 고를까? 과연 내 인생을 흔들고 바꿀만한 일생 일대의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책 한권을 고르기가 과연 쉬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골똘히 생각해봐도 딱 한권을 집어서 말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소설 하나가 있다.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양귀자의 <모순> 이라는 소설인데 화자가 엄마와 이모의 정반대의 삶을 비교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 삶의 이상한 모순을 이야기 하는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순>이라는 책에서  '살면서 이 책을 반드시 한번 더 펼쳐볼 것'이라는 말을 본 것 같다. 정말로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 소설을 기억하게 될지 몰랐다. 아마도이 책이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이 던지는 농담과 거대한 아이러니를 직접 경험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책이 나에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는 그런 때이다. 그 책의 이야기가 꼭 내 얘기 같을 때!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책이라니, 저는 그런 책을 고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키키가 말했다. "언제 책을 읽느냐, 어느 때 어떤 상태로 책을 읽느냐에 따라 그 책이 중요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거든요. 말하자면, 기분이 나쁠 때라면 <길 위에서>나 <삼총사>같은 책을 읽어요. 그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생각이 달라지면, 그때는 그 책이 제일 중요한 책이죠. 그때는요."

<p.353>


이 소설은 주인공 에이바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곁을 떠나자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친구 케이트에게 부탁해서 가입하게 된 북클럽에서 사람들과 함께 읽는 책 이야기와 함께 진행된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매달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함께 읽게 되는데 올해의 책 선정 주제는 멤버 각자의 '내 인생의 최고의 책' 을 소개하는 것이다. 북클럽 사람들이 선정한 책은 한결같이 너무나 유명하고 익숙한 고전소설이 대부분인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유명한 소설들이다. 여기서 소개된 소설 들 중 내가 읽은 책은 부끄럽게도 2권밖에 없었는데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었다. 다른 소설들은 대충 줄거리는 알지만 읽어본 적은 없는, 말 그대로 누구나 알지만 읽어본 사람은 없다는 고전 책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소개하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책들 속에서 자신의 삶과 비슷한 부분을 봤거나, 혹은 그로 인해 크게 위로받은 경험 때문에 그 책들을 소개한 이유가 큰 것 같았다. 어쩌면 고전은 어떤 특수한 시대에 쓰여졌더라도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잘 나타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읽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은 청소년의 반항이야기가 잘 드러나 있었는데 요즘 애들이 참 버릇이 없다지만, 그건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언제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에이바도 <호밀밭의 파수꾼>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자신의 반항적인 딸 매기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소설은 매달 해당되는 소설에 대한 독서토론 장면과 함께 에이바의 딸 매기의 방황 이야기, 1970년 여름 어느 날 아침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목이 부러져 목숨을 잃은 에이바의 동생 릴리, 딸을 잃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1년뒤 동생을 따라 세상을 떠난 에이바의 엄마 이야기등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어릴 적 사랑하는 동생과 엄마를 거의 동시에 잃어 상심하던 에이바는 누군가가 전해준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라는 소설을 수도없이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북클럽의 11월 추천책으로 에이바는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추천한다. 하지만 너무 옛날에 출판된 책이고 절판된 이후 작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어 사람들이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다른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에이바는 자기도 모르게 저자를 초청하기로 했다며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책 저자 로절린드 아든을 찾기 시작하는 에이바는 점점 놀라운 사실들을 알아가게 되는데.. 이 내용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치 추리소설 처럼 흥미진진하게 표현되니 책으로 직접 보시길.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는 이런 내용이다. 한 가족이 막내딸을 잃고 나서 남은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됐는데 거기서 아빠가 잠시 다른 곳에 간 사이 엄마와 딸은 우연히 바닥으로 이어진 기나긴 계단을 발견하고 끝없이 걸어들어간다. 바닥에 닿을 만큼 깊이 들어가자 세상을 떠난 막내딸이 흐릿한 영혼의 모습으로 거기에 있다. 엄마는 딸을 꼭 껴안고 자기는 돌아가지 않겠으니 남은 딸에게 혼자 돌아가라고 말한다.  




자리에 앉아 쌉쌀한 맥주를 홀짝거리자니 에이바의 생각이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해 여름날과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로 흘러갔다. 소설 마지막에, 엄마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느니 죽은 아이와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 때문에 에이바는 밤에 잠을 잘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엄마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라는 사람이 대체 어떻게 자기를 절절히 필요로 하는, 살아있는 자식을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자기 엄마가 남은 식구들을 등지고 다리에서 뛰어내린 것이 작중 엄마와 동일한 선택이었다는 걸 당시에 그녀가 알았던가? 아마도 어떤 차원에서는 알았겠지만, 어쨋든 오늘 밤 여기 앉아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양극단과 그 선택을 생각하다보니 지금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p.382>



어찌보면 아주 잔인한 이야기다.  동생을 잃은 것도 남은 아이에게는 충격일 텐데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동생과 함께 하기 위해 남은 딸을 돌려보내고 혼자 목숨을 버린 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에이바는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은 소설 속 남은 딸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위로를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같이 슬퍼하며 여러 날을 사무치게 아파했을 것이다. 에이바는 그 뒤로 다른 책들과도 멀어졌다. 에이바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쓴 저자 앤 후드는 다섯 살짜리 딸을 급성 질환으로 단 며칠만에 잃고 나서 한동안 그 충격으로 글을 전혀 읽을 수 없게 되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일년 동안 상심과 치유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 첫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나서 이런 글을 남겼다. 



책을 한 권 샀다. 그런 뒤 집에 가서 소파에 앉아 책을 코 밑에 올리고 깊이 냄새를 들이켰다. 그 냄새는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책을 펼쳐서 끝까지 한숨에 읽었다. 그러고 나서 울었다. 잃어버린 딸을 생각하며 울었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생각하며 울었다. 책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생각하며, 말이 주는 위로를 생각하며, 끝없이 부서졌다 치유되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며 울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p.478>



이 책은 고통받는 인간이 책을 통해, 혹은 책을 통해 이어지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고통받고, 자신만의 아픔을 지니고 살아간다. 살면서 겪는 세부적인 아픔에 대해 일일히 누구에게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비슷한 삶의 미세한 결들과 아픔을 소설 속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되면 꼭 나를 위한 책 같고, 그런 사실만으로 위로 받기도 한다. <절망독서>라는 책에서 절망은 절망으로 치유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같은 아픔을 지닌 말과 글에서 위로 받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나이와 직업으로 구성된 북클럽이 무척 부러웠다. 누군가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진솔하게 토론하고, 마음을 공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다. 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아주 개인적인 매체라서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고 깊은 토론을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바가 북클럽에서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통해 서서히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고 뿌듯했다. 


세상에 책이라는 것이 있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저마다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 글로써 사람과 사람사이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줘서. 내가 느끼는 아픔과 상처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서. 난 오늘도 책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행복하게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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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폰 -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 캐빈 폰
스티븐 렉카르트 글, 김선형 옮김, 노아 칼리나 사진, 자크 클라인 기획 / 판미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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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따닥따닥 성냥갑 처럼 붙어있는 집에 살면서 옆 집, 아랫 집에서 들리는 말소리나 핸드폰 벨소리까지 공유하며 살다보면 문득, 집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오지가 그립다. 언제든지 마음껏 노래 부르고 기타 치고, 편한 옷차림으로 산책하고, 밤에는 집 앞 마당에 드러누워 쏟아질듯한 별들을 볼 수 있는 그런 집 말이다. 물론 그런 집을 구하려면 생활의 편의성, 인터넷, 택배 배달, 문화 생활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겠지?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차지하고서라도 우리는 슬며시 그런 집 하나쯤 마음 속에 품고 산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노년쯤에는 시골에 그림같이 예쁜 집 하나 지어서 평화롭고 목가적인 삶을 살리라 꿈꾸면서.  



그런 꿈을 상상 속에 두지 않고 현실로 실행시킨 젊은이들이 있다. 숲속에 자기들만의 오두막집을 만들고 싶었던 젊은이들이 모여 실제로 집을 짓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이 책은 웹사이트 '캐빈 폰'을 통해 수집된 상상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하고 신기한 오두막 집들의 사진을 모아서 펴낸 포토 에세이집 이다. 두툼하고 깔끔한 양장으로 장정된 책 안에는 컬러로 인쇄된 수많은 환상의 집들이 소개된다. 




비버 브룩을 건립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캐빈 폰(Cabin Porn)' 이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친구 몇 명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수집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재를 이용해 기발한 아이디어와 장인 솜씨로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진 건축물을 찾았다.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배워 나가며, 흔들림 없는 결단력으로 무장한 대담무쌍한 사람들이 일구어 낸 건축물을 모았다. 2010년 이후 웹사이트 방문객이 1000만명 에 육박했고, 1만 2000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나무집 사진을 우리와 나누었다. 

'캐빈 폰'이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나로서는 놀랍지 않다. 우리가 첨단기술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어 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 풍광은 점점 더 숭고해진다. 통나무집 사진은 야생의 자연을 당장이라도 들어가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환상이 현실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라도 노력하면 지을 수 있는 집 한채 씩을 품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p. 20>





나무 위의 오두막집 - 캐빈 폰

나무위에 어떻게 저런 집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릴 적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동화가 생각나는 집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와 집으로 이어지는 판자다리, 문과 창문까지 다 달린 진짜 집이다. 저기선 무서워서 잠도 못잘 것 같긴 하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환상적이다. 이런 집을 상상해내고 그걸 실천에 옮겨 실제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막한가운데 지어진 집

책에 나온 집 중에 특히 인상 깊었던 집은 사막 한가운데 덩그라니 있는 나무집이다. 사막에 버려진 방갈로를 한 부부가 직접 수리하고 개조해서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방이 뻥 뚫려 있으니 보고 싶은 광경이 있는 쪽으로 창문을 내면 그것 그대로 풍경이 된다. 침실에 누워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문만 열고 나오면 불을 피우고 놀 수 있는 캠프파이어 시설이 있다. 무엇보다 이 집 가까이에는 그들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무것도 없다. 이 얼마나 완벽한 휴식인가. 부부는 이 집에서 휴식처럼 머물면서 계속해서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집을 뜯어고치며 발전시켜 나간다. 물론 사막이라 기후가 걱정되긴 하지만, 미국 내 집에서 자동차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집이니 별장으로 이것보다 좋을 순 없다





숲속의 나무집

이 집도 커플이 함께 만든 집이다. 숲속 한가운데 있는 이 집은 눈뜨면 울창한 숲의 신선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머리맡에 숲과 나무가 펼쳐져 있다니 이건 왠만큼 좋은 펜션에 가도 못누릴 호사 아닌가. 주변에 다른 집이 없으니 사방이 뚫린 침실도 문제없다. 숲속에 있는 집이라 전기나 보일러 시스템은 수동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마저도 퇴비의 미생물 분해를 통해 발생하는 열로 따뜻한 물을 공급하고,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전기를 충당하며, 집 앞의 밭에는 수많은 종류의 농작물이 자라고 있어 먹는 것도 자급자족으로 해결 가능하다.  커플은 이 집을 만들고 나서 호스텔을 개업했고, 2011년에는 둘이 결혼도 했다. 이 호스텔은 전세계의 여행자가 묵어가는 인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이글루 모양 집 - 캐빈 폰

이 집은 겉에서 봤을때는 둥근 이글루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안쪽은 커다란 텐트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원하면 하얀천을 들어올려 얼마든지 푸르른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요즘 집 안에서도 따뜻함도 높이고 아늑한 분위기를 내기위해 텐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집 자체가 커다랗고 동그란 이글루 모양의 텐트다. 무척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집인 것 같다. 



나도 내 짝꿍과 몇 년 안에는 도심지에서 좀 벗어난 곳에 땅을 사서 우리가 원하는 공간을 꾸밀 수 있는 집을 짓자고 약속하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숲 한가운데에 기상천외한 모양으로 지을 순 없겠지만 이 집들이 추구하는 로망과 상상 속에서 좋은 부분을 뽑아내서 진짜 아늑하고 포근한 내 집을 가지고 싶다.  시대가 발전해 기술이 최첨단으로 발달하면 할 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자연의 편안함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갈수록 자연을 온전히 누리는데 드는 비용이 커진다.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여, 캐빈 폰 책을 통해 자연과 가까운 환상의 숲 속 오두막집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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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7-08-26 0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낭만적인 책이네요

다림냥 2017-08-26 09:42   좋아요 1 | URL
ㅋ 그쵸~ 사람들의 마음속 환상을 건드리는 책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08-2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소개된 집을 직접 만들거나 계속 사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책의 내용만으로도 더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것 같네요^^:

다림냥 2017-08-26 11:4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야말로 상상속의
집일 뿐이지만 그걸 보면서 대리만족 할 수 있는거 같아요 :)
 
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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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질 때,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가 처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을 때 사람은 단지 이 환경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수도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현재의 실패와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본인의 미래와 가족을 몽땅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일본에는 실제로 스스로 증발해버리는 사람들이 매년 1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어떻게 살아가는걸까? 사라진 이후 그들의 인생과 남아서 기다리는 가족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인간증발은 어느 날 갑자기 소리없이 사라진 이들을 추적해 그들의 삶을 인터뷰하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본사회의 숨은 민낯을 밝혀내는 이야기다.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이 책을 쓴 작가가 일본인이 아닌 프랑스인 임을 알고 좀 놀랐다. 당연히 일본인이 자국의 인간증발 문제를 조사하면서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작가는 프랑스 인 부부이다. 레나 모제가 글을 쓰고, 남편인 스테판 르멜은 사진을 찍으며 자그마치 5년간이나 함께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증발한 사람들을 추적했다고 한다. 한때 사회에서 증발해서 살아보고 픈 생각이 있었던 이들 부부는 일본에서 인간증발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접하고 취재에 나섰다고 한다. 일본문화가 낯선 서양인의 시선에 의해서 관찰되었기에 오히려 일본 사회의 문제점이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책에는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사라져 이름과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주로 사업에 실패하거나, 시험에 낙방하거나,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하는 불행을 겪는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단지 지금 있는 곳과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고 싶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져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왜 스스로를 사회에서 증발시켰을까?


사카에가 보기에 일본 열도는 '압력솥' 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위에 올라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증발 문제는 터부시 되고 있지만 연간 자살자 수 3만 3000명, 즉 매일 집계 되는 자살자수가 90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p.128>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은 과거의 관습 속에서 살아간다고 쓰고 있다. 일본인들은 넓은 의미에서 윗사람들(조상, 부모, 교수, 심지어 일왕)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진다. 이 빚을 갚는 것은 체면과 관련된 문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를 당해도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질까 두려워서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빚을 지고 있다는 이 독특한 감정은 의무를 요구한다. 그 중 첫번째 의무는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 의무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조그만 실수에도 일본인들은 크게 자책한다. 결국 예의를 지키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증발이나 자살을 선택한다. '일본인들은 실패, 수치심, 매정한 거절을 견디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보다는 자기자신을 괴롭힌다.' 루스베네딕트가 쓴 글이다.

<p.130>



체면을 중시하고 빚지기 싫어하는 그들의 심리 외에도 일본은 획일성을 특별히 강요하는 사회인듯 하다. 일본 사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일반적인 케이스와 달리 튀는 것을 싫어한다. 대중 속에서 눈에 띄지 않고 평균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평균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실패를 저질러도 사람들은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쉽게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라진다고 해서 가지고 있던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남은 가족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더 큰 마음의 빚을 지는 행동 아닐까? 내 생각엔 체면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들어 차라리 사회의 유령으로 살아가기를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그들이 혹여나 다시 돌아왔을 때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까? 슬픈 이야기지만 다시 재회했을 때 서로 울고불고 기뻐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그 뒤를 이었으며 두 분 모두 화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충격을 받아 온몸이 뻣뻣해진다. 실망감. 이번에는 내가 숨을 쉬기 힘들다. 마음이 아프다. 이어서 아내의 소식을 전한다. 아내는 이미 오래 전에 재혼을 했다고 한다. 아이는 둘이고 새 남편은 오사카 대학의 교수라고 한다. 아내는 날 많이도 찾아다녔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내가 사라지고 10년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자 아내는 사망신고를 했다고 한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그후로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행복은 절대로 되찾을 수 없다. <p.55>



어느날 증발했다가 10년뒤 용기를 내어 집으로 찾아온 그는 변한 가족의 환경에 망연자실한다. 자신이 사라진 긴 시간동안 자신이 변한만큼 남은 가족들의 삶도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10년전 그대로 가만히 멈춰있다가 내가 돌아갔을 때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반겨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다. 



어느 40대 남자가 시청 주차장에 세워둔 자가용 안에 신분증을 남긴 채 그대로 증발했다. 불법 사채를 이용한 후 협박에 시달리던 그는 도주했고 마침내 협회의 탐정들에게 발견되었다. 탐정들은 모친에게 연락해 사라진 아들이 숨어지내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제안을 거절했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다쿠미는 재회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가족과 지인들은 사회에서 도망치는 것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본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개인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죠."

<p.154>



작가 부부는 불행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증발해 찾아드는 일본의 숨겨진 마을들을 찾아다니면서 취재를 하는데, 하루하루 공사 일용직으로 근근이 먹고 살며,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사회에서 수치심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것보다 덜 힘든 것인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경제가 출렁이고, 나쁜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증발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서웠던 점은 과연 이게 일본만의 문제일까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각종 사회문제로 방황하는 청년, 중년들이 수두룩하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체면차리는 문화가 강하다. 나도 한때 주변의 걱정을 가장한 호기심의 시선들이 너무 싫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증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막상 현실에서 괴로울 때 이 현실에서 벗어나면 고통이 사라질 것 같지만 책에서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더 큰 고통이 평생 따라다니며 남은 가족들의 고통까지 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증발 같은 현상이 흔히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에서 도망가는 선택만은 하지 않길, 좀 더 좋은 선택도 있다는 걸 기억하기를 나에게, 또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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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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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0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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