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 - 미노스의 가족동화
미노스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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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책에서 읽은 이야기는 생각외로 평생에 걸쳐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난 커서 읽은 책들보다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7~8살 무렵, 집에 있던 동화책들을 닳고 닳도록 읽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그때 읽은 동화들이 어쩌면 지금의 내 상상력과 글쓰기의 자양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린 시절, 때로는 잠자리에 들기 전 동생과 나란히 누워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서 해주었던 기억도 많다. 단지 놀려줄 목적으로 해준 이야긴데 순진한 내동생은 눈을 반짝이며 믿어버렸고, 심지어 '다 뻥이야' 라고 말해줘도 동생이 그 말을 믿지 않아 진땀나는 경험도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전해듣는 세상 이야기로 부터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딸에게, 그리고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을 직접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이 책의 컨셉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라는 제목을 보고 사실은 막연히 작가는 엄마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편지 같은 에세이글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쓴 작가 미노스는 4살난 손녀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달라는 딸의 부탁 때문에 처음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딸이 자기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글로 쓰게 되었고, 그것이 신문에 연재되다가 결국엔 책으로 발간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신분은 밝히고 싶지 않다며 미노스 라는 필명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이 책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모르고 읽는다면 도저히 한 책으로 묶일 수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동 동화부터 시작해서 추리스릴러, 로맨스, 에세이, 우화 같은 글들이 섞여있는 것이다. 딸의 부탁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아빠 자신이 쓰고 싶었던 글들을 딸로 인해 마음 속에서 꺼내어 쓰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원하던 가정의 모습, 옛사랑, 자녀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 그런 다양한 아빠의 마음이 담긴 글들이 가득 담겨있다. 사실 전문 작가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좀 교훈적인 느낌이 강하고, 유치하거나 작위적인 글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가족에게 따뜻한 용기를 주기 위해 열심히 썼다는 노력과 애정은 충분히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책 표지를 가만히 보면 소녀가 들고있는 것이 책모양 등불이다. 어두운 밤길을 책이 뿜어내는 빛으로 밝히며 걸어가고 있다. 이야기는 우리 삶의 하나의 위안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훨씬 더 큰 위안일 것이다. 어릴 적 내동생이 나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조차 잼있다며 들어주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쑥쓰럽다면 이야기로 만들어서 전달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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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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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얘기할 때, 그 사람의 과거사는 얼만큼의 중요성을 지닐까?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의 과거를 꼭 설명해야만 하는가. 영화 <화차>처럼 작정하고 남편을 속이려고 작정했거나, 혹은 범죄자라서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걸 숨기는 정도가 아니라면 지금의 내 모습이 진심이라는 가정하에 어느 정도 나만의 비밀은 가질 수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난 내 입이 근질근질해서 묻지 않아도 짝꿍이한테 미주알 고주알 오만 얘기를 다 하고야 말지만 꼭 지켜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지나간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말 것! 오빠는 모든 걸 이해해줄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사랑 앞에 그런 이해까지 바랄 순 없더라. 그러니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정도의 비밀은 필수이지 않겠는가.  

《아서 페퍼,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는 40년도 넘게 함께 산 아내가 죽은 후, 힘든 일상을 살고 있던 아서 페퍼가 우연히 아내의 참charm 팔찌를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서 페퍼는 이른바 매우매우 가정적인 남자였다. 아내밖에 모르고 살던 그에게 아내의 죽음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아마 몸의 반쪽이 뚝 떨어져나간 듯한 기분이었으리라. 그동안 아내와는 아무런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이런 비밀스럽고도 묵직한 팔찌가 있었다니, 왜 아내는 그간 그에게 팔찌에 대해서 한번도 말하지 않은걸까. 코끼리, 책, 호랑이, 골무, 하트 등 다양한 참으로 구성된 팔찌는 아내가 소중히 간직해 온 듯 하트 상자에 고이 포장되어 있었고, 특별한 사연이 있어보인다. 그 중 코끼리 모양의 참에 알 수 없는 숫자가 조그맣게 적혀있다. 이 숫자가 뭘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아서페퍼의 호기심 여행은 시작된다. 

아내의 숨겨진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평소 집에서 벗어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집돌이 아서페퍼는 점점 대담한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안정되고 규칙적인 생활에서 기쁨을 느끼던 아서 페퍼에게 자꾸 변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내와 알고 지냈다는 사람을 찾아갔다가 한낮의 정원에서 호랑이를 만나 죽을 뻔 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에게 자기가 생각해도 좀 멋진 조언을 해주고선 흐뭇해하기도 한다. 평소의 자기라면 생각지도 못할 다양한 경험을 아내의 비밀을 찾는 과정에서 하게 된 것이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어떤 특별한 일 때문에 엄청난 모험에 휘말리게 되는 스토리처럼 말이다. 그 모험 속에서 알게 되는 미리엄의 모습은 도저히 그가 알던 그녀가 아닌 것만 같다. 
그녀는 왜 그에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아서 페퍼는 아내로 인해 규칙적으로 일어나 식사를 하고, 시간 맞춰 식물에 물을 주던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모험과 변수가 가득한 세계에 발을 디딘다. 하루하루가 예상 불가능하고, 낯선 사람들 천지지만 그는 그 생활에 점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듯 하다. 평생 한번도 영국을 벗어난 적 없었던 그가 딸과 함께 비밀을 찾아 프랑스로 떠나기도 하고, 잠깐이었지만 또다른 사랑에 흔들리기도 한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좁지 않음을, 내가 알던 세계가 다가 아니었음을 아서 페퍼는 여행을 통해 점점 깨닫게 된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다 인 것 같고, 거기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원하는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심한 좌절을 겪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자기만의 동굴을 파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작은 집에 갖혀 시간이 가기만을, 이 슬픔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소설은 슬픔에 빠진 아서 페퍼를 아내의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솜사탕을 통해 세상밖으로 끌어내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아내의 과거 비밀 따위가 행복했던 아내와의 추억을 더럽힐 수 없음을 아서 페퍼는 깨닫는다. 

현재보다 중요한 건 없다. 
아서 페퍼는 이제 아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과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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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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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어떤 끔찍한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고, 어떤 이에게 냉담한 취급을 받고 좌절하기도 했다. 꿈에서 깨어나니 기분이 찝찝했다. 왜 하필 이런 꿈은 잠에서 깨어 난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지, 그날은 오후 내내 꿈에서 보았던 모습을 여러 번 리플레이 해서 생각했었다. 요즘들어 시간의 여유 덕인지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좀 많아졌다. 앞만 보고 달렸던 정신없는 20대를 지나, 드디어 내가 원하던 안정된 생활을 찾은 것 같은데 자꾸 이유 모르게 우울해질 때가 있다. 이제야 진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생겼나보다. 
어제는 공책을 펴고 지금 내 상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서 생각나는데로 적어봤다. 느끼는데로 적어놓고 보니 신기하게도 뭔가 일관성이 보인다. 좋은점에 적힌 점들은 물리적인 환경에 대한 것이다. 시간과 돈에 쫓기지 않는 여유, 좋은 사람을 만났고, 좋아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충분해졌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점에 적힌 글들을 보니 전부 정신적으로 두렵고, 의기소침하고 열등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한가득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속에는 그렇지 않은 감정들이 쌓여있었던 건가. 

저자 정여울은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를 통해 우선 저자 자신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집안의 장녀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를 만족시켜 드릴 수 없었던 어린 시절, 그로 인해 인생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게 되었단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집안의 맏이로써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는 모습만 보이려 노력하다 보니 진짜 자기 모습을 점점 잃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학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점점 자기자신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불사를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기 보다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상태에 가깝다. 그러니까 무너진 결혼 생활을 억지로 재건하기 위해 싫어도 꾹 참고 사는 것이 치유가 아니라, '그 없이도 내가 홀로 설 수 있음'을 깨닫고 과감히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치유적일 수 있다. '행복한 사람'보다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p.39>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종종 책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의 숨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모든 독자들은 책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책을 읽으며 위로 받기도 하고, 자신의 상처나 컴플렉스를 똑같이 지닌 인물을 발견하면 불편하고 껄끄럽게 느끼기도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문학을 읽는 이유는 아마 문학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싶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는 여러 챕터에 걸쳐 다양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버지니아 울프의 『유산』이라는 작품이다. 서로를 완벽히 안다고 믿었던 잉꼬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차도로 내려서다가 사고를 당해서 죽고 만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남편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내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까지 완벽하게 챙기고 떠난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남편앞으로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보면서 그동안 그녀가 숨겨왔던 모든 비밀을 알게되는 이야기다. 

「모두가 사랑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사랑의 비밀은 이렇듯 우리의 확신을 비웃는다. 사랑이란, 이제 사랑에 대해서라면 좀 알겠다고 확신할 때쯤 어느새 믿을 수 없이 낯선 얼굴로 돌변하는 그 무엇이다. 심리학자 융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드높은 산맥이라고. 이제 다 올랐다 싶으면 어느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또 다른 봉우리를 보여 주는 험준한 산맥이다. 」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p.119>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도 조만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밤마다 옆방에 남자손님을 들이는 아내, 소설 속 '나'는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기에 아내가 이따금씩 쥐어주는 화폐를 받아 생활하고, 아내가 아스피린이라 속이며 준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척 약간 모자란 듯 살아간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 고민의 시간을 끝없이 유예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p.221>

두려운 사실은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것 같다며 모른척 해버린 기억, 나도 언젠가 그런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철저히 무력해져 본 기억이 있었기에 『날개』의 주인공 이야기가 아프게 따끔거렸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상처나 트라우마는 있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나 자신을 탐구해봤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상처를 받고 웅크리고 있는걸까. 나도 어쩌면 집안의 장녀로써 어릴 때부터 어른스럽기를 강요 당해온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동생처럼 어리광 부리면서 멋대로 굴어보고 싶었고,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놈의 맏이가 뭐길래, 난 시키지도 않은 책임감을 껴안고 언제나 반쯤은 어른인 척 살았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된 지금, 난 언제 마음껏 어리광을 부려봤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슬며시 든다. 이제 다 컸으니 오히려 한없이 어린애처럼 굴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고 여전히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그래도 심리치유의 시작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나를 짓누르는 생각들이 여기저기 숨어서 나를 본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책을 읽고, 스스로를 많이 들여다봐야 나에 대해 알 수 있을 듯 하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제대로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소중한 나 자신을 많이 많이 쓰다듬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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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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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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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경제학 -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경제학 레시피
유성운.김주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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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밍아웃을 좀 해보자면 난 아이유 팬이다. 아이유의 신곡이 나오면 항상 즐겨듣고, 아이유 팬 블로그를 이웃추가해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구경하기도 하며, 심지어 몇 일전에는 아이유가 꿈에도 나왔다. 누구나 맘 속에 품고 있는 좋아하는 아이돌 한 명 쯤 있을 것이다. 아이돌의 위세가 어느 순간부터 드높아지더니 심지어 요즘 아이들의 꿈 첫번째가 아이돌이나 연예인이라고 하니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의 별star이다. 어릴 때는 연예인이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들이 활동하는 방식, 연예계 전반적인 경제구조 등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요즘엔 아이돌들을 보면 왜이리 짠한 마음부터 드는지, 늙은건가..  끝없는 경쟁구조 속에서 싸워 이겨야 하고, 긴 시간동안 개인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습에 매달리지만, 막상 데뷔하고 나서도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매 해 데뷔하는 걸그룹들을 다 정리해놓은 표를 보고는 좀 충격 받았다. 2017년에 데뷔한 걸그룹 중에 왜 아는 그룹이 하나도 없는가. 그 전에 데뷔한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그룹들 중에 이름을 아는 걸그룹은 정말 몇몇 그룹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돌 세계도 파레토의 8:2 법칙이 지배한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게 상위 10%가 거의 모든 수익을 가져가고 나머지 그룹들은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무대에서 빛나는 그 순간 만을 바라보고 몇년동안 고통을 참아올 텐데 경쟁에서 제외됐을 때의 아픔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연예기획사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른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외국 가수의 인기가 많은 경우는 드문 반면, 우리나라 가수들은 해외에서 국내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것 또한 철저한 경제원리를 고려해 만들어 온 결과다. 
《걸그룹 경제학》은 다음 소프트의 '텍스트 마이닝 엔진'을 활용해서 언론에 언급된 기사들을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꽤 체계적인 도표들과 함께 걸그룹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경제학 책에서 재미난 연예인 얘기를 가득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신나는가. 궁금했던 연예계 이야기도 가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되다 보니 다소 짠한 아이돌 얘기도 있어 마음이 아팠다.  

2008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시장을 거의 양분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너무나 많은 걸그룹들이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인기를 누린다. 그 중에는 꾸준히 잘 나가고 있는 그룹도 있는가하면, 팀 내 인기의 불균형으로 활동의 지속이 아슬아슬해보이는 팀도 있다. 팀 이름보다 개인적으로 더 유명한 미스에이 수지나 AOA 설현 같은 경우는 팀 내 독보적인 소녀가장 멤버다. 누가 벌어오더라도 수익은 1/n 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이 편하겠는가. 서로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다보면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도 빈부의 격차가 큰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듯, 걸그룹 내에서도 멤버들간의 인기 정도가 비슷비슷한 그룹들이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건강한 구조라고 한다. 그 중 에이핑크가 멤버들간의 인기정도를 가장 고르게 가져가는 그룹이라고 한다. 처음엔 오히려 몇몇 멤버가 더 주목을 받았지만 해가 갈수록 모든 멤버의 인기가 고르게 분포되어 북유럽 스타일의 인기구조라나ㅋ
<프로듀스 101>의 성공 이유로 '이케아 효과'를 드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케아는 가구를 사서 고객이 설계도를 보고 직접 조립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그 대신 좋은 품질의 가구를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손으로 직접 가구를 조립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손길이 간 가구에 더 애정을 가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말하게 된다. <프로듀스 101>은 국민들이 직접 뽑는 아이돌이었고, 자기가 뽑은 아이돌이 점점 성장하며 잘되는 모습을 보고 투표자들은 더 큰 애정과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우리집을 꾸미면서 대부분의 가구를 이케아에서 구매했는데, 가구를 사올때부터 시작해서 조립하고 완성할 때까지 사실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나 침대는 무려 4~5시간동안이나 조립을 하고 나서 지쳐 쓰러졌는데,  그것이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하나의 무용담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조립할 때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괜히 더 애정이 가고, 제품에 대한 만족도도 커서 앞으로도 아마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아이돌은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만큼 빛과 어둠의 차이도 크다. 잘되는 걸그룹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잘 안되는 걸그룹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제학 책이 아니라 아이돌 잡지 한권을 읽은 느낌이다. 근데 약간 아쉬웠던건 걸그룹 얘기로 시작해서 관련된 경제원리를 설명해주고, 많은 경우 정치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저자가 중앙일보 기자라서 그런 부분에 밝다보니 그런건가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민감할 수 있는 현재의 정치이슈까지 들고와서 설명한 부분이 조금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걸그룹 경제학》은 정말 재미있다. 단, 자기가 좋아하는 걸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안드는 방식으로 언급될 수도 있으니 주의요망ㅋ 한 예로 아이유가 뮤지션으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데 반해 연기쪽으로는 실패했다는 식으로 적혀있어서 좀 마음에 안들었다. 

난 그 의견 반댈세.
팬심은 어쩔수 없나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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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1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어잡학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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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단어 friend 의 고대어원은 본래 '사랑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가. 마냥 친구로만 지내던 이성이 어느 날 좋아졌다면 요런 있어보이는 멘트로 조금은 고급지게 고백해보는 건 어떨까? 
"친구라는 단어 friend의 고대 어원이 뭔줄알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래. 그래서 내가 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나보다."  
좀 오글거리겠지만, '사실은 널 좋아했어' 이런 식상한 멘트보다 훨씬 고급지지 않은가.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영어잡학사전》 은 우리가 자주 쓰는 영어 단어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나 어원이 이야기 식으로 재미나게 풀어져있는 말 그대로 영어잡학사전이다. 자연환경과 민족 /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 정치·경제와 군사·외교 / 문화·예술과 종교 / 과학 기술과 산업 각 분야에 있어 알아두면 폼나는 다양한 지식을 영어와 관련해 재미있게 풀어두었다. 

영단어에 대한 어원 및 얽힌 이야기와 함께 아랫부분에는 관련된 표현도 몇 개 제시해두어 해당 단어와 관련된 관용어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편안하게 읽다보면 전혀 의외의 지식들, 혹은 친구한테 써먹어 보고 싶은 포인트들도 많이 보인다. 
프랑스어 ami, 이탈리아어 amico, 스페인어 amigo는 동사 amare(사랑한다)에서 파생된 친구라는 뜻을 가진 단어들이다.  미국에서는 amator(사랑하는 사람)를 친구라는 뜻으로 쓰려고 보니 영어에는 이미 freind라는 단어가 정착되어 있었단다. 그래서 amateur(아마추어)라는 뜻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보통 풋내기나 실력없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표현하는데 어원을 보면 '그 일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어원을 가진 단어인 것이다. 프로가 아니면서도 어떤 일을 너무 사랑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마추어 라는 단어가 갑자기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별거 아닌 어원이라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재미있는 법이니까. 

단, 영단어의 어원이 잘 풀어져 있다고 해서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이 책을 보는 것은 비추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이 이야기로 풀어져 있기 때문에 심심풀이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좀 아쉬운 점은 정말 사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이 단조롭다. 단어가 제시되고 그에 따른 설명이 나오는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좀 지루할 수 있다. 너무 많은 내용을 책 한권에 담으려고 시도해서 그런 듯 하다. 책 읽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생각보다는 말 그대로 사전처럼 앞에서 목차를 보고 궁금한 부분을 그때그때 찾아서 읽어보는 방식으로 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다. 

영어를 못해도 영어로 잘난척은 할 수 있다. 
영어잡학사전에서 배워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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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7-12-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림냥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조승연의 인문학 이야기와 비슷한 책인듯 하네요
그책에서도 이런 식으로 되어있더라구요

다림냥 2017-12-30 00: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하긴 그분 언어 천재라 이런거 엄청 많이 알고 계실듯요ㅋ 그것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