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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 - 미노스의 가족동화
미노스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평점 :
어릴 적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책에서 읽은 이야기는 생각외로 평생에 걸쳐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난 커서 읽은 책들보다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7~8살 무렵, 집에 있던 동화책들을 닳고 닳도록 읽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그때 읽은 동화들이 어쩌면 지금의 내 상상력과 글쓰기의 자양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린 시절, 때로는 잠자리에 들기 전 동생과 나란히 누워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서 해주었던 기억도 많다. 단지 놀려줄 목적으로 해준 이야긴데 순진한 내동생은 눈을 반짝이며 믿어버렸고, 심지어 '다 뻥이야' 라고 말해줘도 동생이 그 말을 믿지 않아 진땀나는 경험도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전해듣는 세상 이야기로 부터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딸에게, 그리고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을 직접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이 책의 컨셉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라는 제목을 보고 사실은 막연히 작가는 엄마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편지 같은 에세이글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쓴 작가 미노스는 4살난 손녀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달라는 딸의 부탁 때문에 처음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딸이 자기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글로 쓰게 되었고, 그것이 신문에 연재되다가 결국엔 책으로 발간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신분은 밝히고 싶지 않다며 미노스 라는 필명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이 책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모르고 읽는다면 도저히 한 책으로 묶일 수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동 동화부터 시작해서 추리스릴러, 로맨스, 에세이, 우화 같은 글들이 섞여있는 것이다. 딸의 부탁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아빠 자신이 쓰고 싶었던 글들을 딸로 인해 마음 속에서 꺼내어 쓰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원하던 가정의 모습, 옛사랑, 자녀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 그런 다양한 아빠의 마음이 담긴 글들이 가득 담겨있다. 사실 전문 작가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좀 교훈적인 느낌이 강하고, 유치하거나 작위적인 글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가족에게 따뜻한 용기를 주기 위해 열심히 썼다는 노력과 애정은 충분히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책 표지를 가만히 보면 소녀가 들고있는 것이 책모양 등불이다. 어두운 밤길을 책이 뿜어내는 빛으로 밝히며 걸어가고 있다. 이야기는 우리 삶의 하나의 위안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훨씬 더 큰 위안일 것이다. 어릴 적 내동생이 나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조차 잼있다며 들어주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쑥쓰럽다면 이야기로 만들어서 전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