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상사
루이스 A. 코우저 지음, 신용하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우선 이 책은 콩트로부터 시작해서 칼 만하임에 이르는 사회학 전반의 흐름을 보여준다. 흐름을 보여준다고 해서, 간략한 이론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 사상가의 이론의 요약, 성장 배경, 지적 배경 그리고 사회 배경 까지도 보여줌으로써, 그가 취하는 이론의 발생원인과 지식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콩트, 마르크스, 막스베버 그리고 뒤르켐까지는 재밌게 열심히 읽다가, 그 뒤를 넘어가면서 부터는 솔직히 지루함을 참을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소개해놓은 미국의 학자들은 심리학과 연관되어지면서, 사회학 심리학쪽으로 기울여서 그런것인것도 같고, 사회학이 가지고 있는 사회제도에 대한 저항적인 자세를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것도 같고, 여러가지 이유였던것 같다. 

전반적인 사회 사상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한번은 필독해서 천천히 읽어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정혜용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앙드레 고로의 책 읽기는 마르크스와 이반 일리히에 대한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면 이해가 나을 것 같다.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환경 파괴의 문제, 인간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문제, 금융성장에 대한 비판등이 그 내용을 간직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이반 일리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로 마르크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수 있겠다. 내용 자체가 신선하다기 보다는, 정치 생태학과 생태학으로서 들어가기 위한 가벼운 입문서 정도로 보아주면 좋겠다. 하지만, 입문서라고 해서 만만치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들어 제국주의 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폭으로 읽게 되었다. 먼저 The wretched of the earth 와 비교를 해서 보자면, 이 책의 내용은 흑인의 열등성에 대한 심리 구조 분석의 틀을 적용하여 분석했다는 점이다. 심리 분석의 틀을 이용하여, 바라 보았을때, 흑인성에 대한 열등감은 과거의 틀과 유산으로 백인들은 흑인들을 몰아가고, 흑인들을 과거 노예제로서의 흑인으로 가두어 둔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분석은 언어분석을 근간으로 하여서, 각종 문헌들에 사용되어지는 글들을 분석 내지 파악하며 나아간다. 

파농이 보기에, 이러한 심리의 구조 분석의 틀은, 사회와 연관되어진다는 점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언어 분석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백인들과 흑인들의 사고 속에서, 과거의 노예제로서의 흑인에 대한 생각으로 고착되어지고, 그러한 생각으로 나오고자 하는 흑인을 나오지 못하도록 강제하는데서, 그 문제점을 바라본다. 흑인 또한 그러한 열등성의 내재화로 인한여, 자신의 흑인성을 극복하기 위해, 백인과의 결합을 꿈꾸며, 다양한 신분상승의 기회를 결혼이라는 기제를 통하여 해소하고자 한다. 이러한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는 과거와 같이, 백인 여성을 향한 " 이죽거리는 태도" 짐승과 같이 대비되어지는 "하얀 이빨" 백인에게 있어서, 흑인은 짐승이며, 죄이며, 사육되어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미개인인 것이다.  

흑인은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운명내지, 당연히 받아들이며, 거부하지 못한다. 자신을 평가하는 백인들의 시선들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사회의 고정화되어진 편견에 사로잡힌 언어들에서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게 된다. 파농은 이러한 점들을 분석해나간다. 그의 결론은 이러한 문장으로 귀결이 되어진다.  

"여기서 또오르는 문제는 시간이다. 사물화된 과거의 탑에 스스로를 가두기를 거부하는 흑인과 백인만이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기타 흑인들에게도 소외를 극복할 여지가 있다. 현재를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여기에 파농의 처녀작인 "검은 피부, 하얀가면" 의 핵심적인 내용이 있으며, 그의 이후 저서인 "The wretched of the earth" 로 이어지는, 가두교를 놓게 된다고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일전에 서강대의 김경만 교수님의 "담론과 해방" 의 서문을 읽는데, 왠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졌었다. 그때가 2007년 이었으니,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정체를 알고자 나름대로 꽤나 노력했었던것 같다. 이번에 에드워드.W.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담론과 해방" 에서 김경만 교수님의 이런 표현을 했었다. 

" '독자적 한국 사회 이론' 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서양의 이론을 의존해왔다는 자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그들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그들과의 '비판적 대화'를 유도해냄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이 그런 도전과 비판적 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난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냐하면, 난 소위 말하는 백인 지성인들에게 "비판" 이라는 단어를 감히 들이댄다는 것을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글읽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봐라 그러면, 요하네스 휠쉬베르거, 니체, 칸트 등등의 학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서적을 읽어가면 갈수록, 그들은 모두 백인이었고, 나는 노란색깔을 가지고 있는 동양인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교설을 내리면, 나는 충실히 읽어가야만 했고, 그들의 체계적인 논의를 따라간다는 것이, 원숭이와 비슷한 부족한 뇌구조를 가진 동양인 꼬마인 "나"에게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사고하며,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싶지만, 그들에에 대한 출처를 알수 없는 경외감은 항상 나를 짓눌러 왔다. 한국을 떠나 한번도 살아보지 못하였으면서도, 공부라는 과정을 통해, 내 머리속이 " 백인화 " 되어가는 과정을 겪을때는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며, 다음 생애에는 백인으로 독일이나 미국에 태어나리라는 아련한 소망을 품기도 했었다. 이런 와중에,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동양인 학자가 세계 일류이론가라고 일컬어지는 기든스, 하버마스를 거론하며, 그들을 향한 비판의 잣대를 댄다는 것은 나에게 거의 충격적인 구절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의 제국주의 내 감정의 출처를 보여주었다. 사이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문화와 제국주의 간에 연대관계(affiliation)를 꼬집으면서 말한다. 사이드의 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문화에 대한 숭고함, 순수성을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이야기 한다. 문학은 철저하게 정치와 결탁하여, 시대를 반영하며 글이 작성되어진다. 하지만, 문학작품에서 언급되어지는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유럽인들에 의해 주도가 되어진다. 유럽인들에 의해 주도되어지는 이야기는 그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내용들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바, 이것을 사이든 태도와 언급의 구조(structure of attitude and reference) 에서 찾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제국주의 영향아래, 비판적 글 읽기가 어렵게 되어있는 상황에서, 순수한 문학이며, 숭고한 문학이라는 미명아래, 문학에서 태도와 언급의 구조를 발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이드는 이러한 작업을 대위법(counterpoint)를 통하여 해결해 나간다. 사이드의 비판의 대상에는, 제인 오스틴, 콘래드, 알베르트 카뮈등 한국사회에서 세계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진다. 사이드의 분석과 비판은 제국주의와 연관되어진 많은 문학작품에 연결이 되어지며, 그 대상은 쉐익스피어에게 까지 연결이 되어진다. 

이런 와중에서도 사이드는 콘래드, 쉐익스피어와 같은 책이 좋은 책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그러한 책을 철저히 거부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자 내지 반식민론자(postcolonist)이기를 거부한다. 그는 철저한 제국주의 문화의 부정이 아니라, 비판적 방식을 통하여, 자신의 현재 처한 전통과 상황들과 건강한 잡종(hybrdity)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이드의 비판적이면서도, 유연한 태도를 통해서, 그는 진정한 상생과 협력의 삶을 주창해 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종계약 - 근대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찰스 W. 밀스 지음, 정범진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떠올랐다. 그 책을 읽을때, 생물학적인 진화에 근거한 백인들의 지배 논리가 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책이 시대에 뒤쳐진 책이라고 생각했건만, 사실상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피부색이 다른 인종에게 식민지 역사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개론, 세부사항, 자연주의 관점의 이론들 장점으로 책을 구성하고 있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유럽 백인우월주의(whiteness)를 근거로, 세상을 바라보았을때, 불명확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확실하게 보인다고 제시한다. 학문적인 예로서는 홉스, 로크, 칸트의 예를 든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이성의 확실성과 보편주의적인 사고관이라고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 이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다른 원주민들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논리적인 결함이 있는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찰스 밀스는 홉스, 로크, 칸트의 경우는 그들의 사회 계약론이나, 정치론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은 백인우월주의 근거로한 인종차별 계약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다. 그렇게 되었을때, 홉스의 저서와 인종차별계약의 근대적인 사상가인 칸트의 모습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제시하는 시민과 주권을 가진이는, 바로 백인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럽인의 비유럽인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를 확신하는 용어들에 대한 사례에서 볼수가 있다. 저자는 "발견", "미개척지" 등과 같은 용어 속에서, 그 대륙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백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그들은 인간이 아닌것이다. 그러므로 그 땅을 " unpeopleing land" 뼈 있는 단어로 제시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재산, 권리 등이 없다. 단지 점유권만이 있을 뿐이다. 백인들은 이와 같은 형태로 공간을 규범화 시켜 나갔고, 골상학이나 문화인류학을 통해서, 신체의 규범화와 열등한 인간인 원주민과 우등한 인종인 백인들의 구분을 심화 시켜 나갔다. 이러한 논의를 확장해나가는 것을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며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교묘히 발전시켜 나갔고, 폭력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확립시켰다. 르완다 사태, 미국의 흑백 차별문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라헤이트의 문제들 말이다.

나는 오늘날까지 직접적인 인종차별을 겪어보지는 않았다. 그러하기에 인종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사람이 베트남 사람, 연변 사람에게 행하는 일련의 작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가 과거 인종주의적인 발상에 근거되어진 논리들을 내면 깊숙히 받아 들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좀더 연구하고, 나 역시도 내 안에 있는 백인 우월주의의 인종적인 차별의식을 알아차리고 바꾸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