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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일전에 서강대의 김경만 교수님의 "담론과 해방" 의 서문을 읽는데, 왠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졌었다. 그때가 2007년 이었으니,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정체를 알고자 나름대로 꽤나 노력했었던것 같다. 이번에 에드워드.W.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담론과 해방" 에서 김경만 교수님의 이런 표현을 했었다.
" '독자적 한국 사회 이론' 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서양의 이론을 의존해왔다는 자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그들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그들과의 '비판적 대화'를 유도해냄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이 그런 도전과 비판적 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난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냐하면, 난 소위 말하는 백인 지성인들에게 "비판" 이라는 단어를 감히 들이댄다는 것을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글읽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봐라 그러면, 요하네스 휠쉬베르거, 니체, 칸트 등등의 학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서적을 읽어가면 갈수록, 그들은 모두 백인이었고, 나는 노란색깔을 가지고 있는 동양인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교설을 내리면, 나는 충실히 읽어가야만 했고, 그들의 체계적인 논의를 따라간다는 것이, 원숭이와 비슷한 부족한 뇌구조를 가진 동양인 꼬마인 "나"에게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사고하며,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싶지만, 그들에에 대한 출처를 알수 없는 경외감은 항상 나를 짓눌러 왔다. 한국을 떠나 한번도 살아보지 못하였으면서도, 공부라는 과정을 통해, 내 머리속이 " 백인화 " 되어가는 과정을 겪을때는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며, 다음 생애에는 백인으로 독일이나 미국에 태어나리라는 아련한 소망을 품기도 했었다. 이런 와중에,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동양인 학자가 세계 일류이론가라고 일컬어지는 기든스, 하버마스를 거론하며, 그들을 향한 비판의 잣대를 댄다는 것은 나에게 거의 충격적인 구절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의 제국주의 내 감정의 출처를 보여주었다. 사이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문화와 제국주의 간에 연대관계(affiliation)를 꼬집으면서 말한다. 사이드의 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문화에 대한 숭고함, 순수성을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이야기 한다. 문학은 철저하게 정치와 결탁하여, 시대를 반영하며 글이 작성되어진다. 하지만, 문학작품에서 언급되어지는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유럽인들에 의해 주도가 되어진다. 유럽인들에 의해 주도되어지는 이야기는 그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내용들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바, 이것을 사이든 태도와 언급의 구조(structure of attitude and reference) 에서 찾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제국주의 영향아래, 비판적 글 읽기가 어렵게 되어있는 상황에서, 순수한 문학이며, 숭고한 문학이라는 미명아래, 문학에서 태도와 언급의 구조를 발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이드는 이러한 작업을 대위법(counterpoint)를 통하여 해결해 나간다. 사이드의 비판의 대상에는, 제인 오스틴, 콘래드, 알베르트 카뮈등 한국사회에서 세계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진다. 사이드의 분석과 비판은 제국주의와 연관되어진 많은 문학작품에 연결이 되어지며, 그 대상은 쉐익스피어에게 까지 연결이 되어진다.
이런 와중에서도 사이드는 콘래드, 쉐익스피어와 같은 책이 좋은 책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그러한 책을 철저히 거부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자 내지 반식민론자(postcolonist)이기를 거부한다. 그는 철저한 제국주의 문화의 부정이 아니라, 비판적 방식을 통하여, 자신의 현재 처한 전통과 상황들과 건강한 잡종(hybrdity)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이드의 비판적이면서도, 유연한 태도를 통해서, 그는 진정한 상생과 협력의 삶을 주창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