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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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 퇴근길에 카프카를 - 의외의사실 (민음사, 2018)


민음사 북클럽에서 첫 독자 이벤트로 받은 책이다. 3개의 선택지 중 가장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골랐고, 예상은 적중했다.


책은 의외의사실이라는 만화작가가 그리고 썼다. 총 열세 권의 고전을 읽고 느낀 점을 그림과 글로 남겼다. 책은 모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모던클래식 시리즈다. 선곡, 아니 선책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아주 좋은데,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 『페스트』, 알베르 카뮈 |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이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400쪽이라는 두께에서 오는 부피의 중압감과, 종이 한 장의 두께과 꽤 있어 묵직함이 느껴진다. 막상 책을 펴면 한 쪽에 많아봐야 세 개의 그림과 짤막한 문장이 다다. 책 두께에 겁먹을 책은 전혀 아니다.


여태까지 읽었던 고전 읽기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사적인 책이다. 다들 요약이나 심오한 철학 이야기를 할 때, 이 책은 사변적인 이야기를 반 정도 할애한다. 그 이야기가 되게 별거 아니면서도 의외로 가슴을 찡 울린다. 등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 가끔 시간이,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이 멈추거나 고여 있는 것 같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


라고 말하는데, 문장뿐만 아니라 사람이 쇼파에 앉아 멍때리는 그림이 함께 하니 더욱 특별히 다가온다.


고백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알맹이가 단단한 책은 거의 손에 잡지 않았다. 그냥 재미만 좇아서 가벼운 책 읽기가 일쑤였다. 매번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흘려보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책에서 제일 먼저 소개한 <체호프 단편선>을 꺼냈다. 아직도 책장에 안 읽은 책이 몇백 권 쌓였지만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으니까. 나도 <퇴근길에 카프카를> 같은 감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 어느 고전 소개서보다 동기부여도 재미도 가득한 책이다. 의외의사실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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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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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승섭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한다. 질병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학문 영역 바깥에서 우리는 사회역학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유아기의 경험이 성인이 돼서까지 트라우마로 남는 일이나 해고, 직업병, 고용불안, 국가적 재난, 제도의 불합리성, 소수자로서의 고통받는 삶이 각자에게 어떤 영향으르 미치는지,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아는 사실을 나열해서는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냥 아는 것과 자세히 아는 것은 조금 다를 것이다. 숫자와 통계 등의 데이터가 함께 있으면 한 사건을 두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각종 데이터를 말하면서 우리에게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사고의 방향을 틀어주는 역할도 한다.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의사는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이익집단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많은 의료진들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기는 커녕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일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전공과 의사 자신의 연차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 동시에, 의료진들이 일하는 직장(140쪽)이라는 문장을 읽고나서, 고생한만큼 돈을 많이 받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는 반문은, 그저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저급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에서 말하는 아픔이 결국 길이 되려면 우리는 공감하고 실행하면 된다. 찬반의 공방을 떠나서 우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금전적 가치 앞에서는 이상이 현실로 바뀌기 힘들다. 게다가 세상에는 아직 고쳐야 할 것들이 많으니, 결국 개중 옥석을 가릴 것이고, 그 와중에 또 갈등이 생길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결국 길이 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답을 내놓을까.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한 작은 목소리라도 말하기. 우리가 많은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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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 대중문화 속 법률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1
김지룡.정준옥.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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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정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으로 잡혀들어갈까? 하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책에서 간단히 답을 요약해주는데,

> 데스노트인 줄 모르고 이름을 쓴 것은 아무 죄도 없다. 데스노트일지도 모르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과실이다. 데스노트일지도 모르는데 ‘데스노트면 어때’라고 남의 이름을 쓴 것은 미필적 고의지만, 고의성이 있으므로 살인죄에 해당한다. 형법에서는 “죽으면 어때”와 “죽이겠다”를 똑같이 무거운 범죄로 생각한다.

란다. 모르고 하면 죄가 없지만, 세상에 데스노트의 존재가 충분히 알려졌다면 그때부터 과실의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실제 법에서는 이렇게 이분법적인 판결은 하지 않겠지만, 법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은 서문에서 법이란 전문적인 과정을 밟지 않으면 공부하기 힘든 것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대중문화 중 친숙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의 이야기와 법을 섞어 법을 더 흥미롭게 바라게 만든다. 데스노트부터 시작해 괴물로 변신해 소동을 피운 헐크,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해리포터, 악당과 싸우느라 건물을 부순 스파이더맨,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홍길동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들과 작품을 통해 법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지 말해준다.

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이기에 책의 에피소드 전체가 재밌고 새롭게 다가왔는데, 그중 몇가지를 꼽아보자.

1. 재산 피해는 민법이 담당하고 몹쓸 짓은 형법이 담당한다. 난 이 사실을 책을 읽고나서 처음 알았다. 아무리 이과에 공대를 나왔다 하더라고, 시민으로서 교양을 전혀 쌓지 않았다는 방증이리라... 그리고 헌법은 가장 높은 법이란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2. 때로는 우리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생각나는 몇가지만 적어보자면,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과잉방어를 해 살해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어느정도 갈피가 잡혔다.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벗어난 후에 계속 공격해 상대를 다치게 하면 과잉방어로 인한 상해죄가 성립되는 셈이다. 집주인이 느낀 감정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가장 쟁점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의 반려견을 죽였을 때 재물손괴죄로 판결이 나는 케이스다. 애견인들에게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이겠지만, 아직 우리나라 법에서 반려동물은 재산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남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리(?)했으니 재물손괴죄가 나오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재산으로 취급되느냐 마느냐의 사회적 함의와 함께 현재의 법이 완벽하지 않고 충분히 바뀔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3. 민법은 유추적용할 수 있지만 형법은 유추적용을 금지한다. 형법은 법에 정해진 문구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비슷한 것을 들이대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형법에서 ‘이러이러한 것은 범죄다‘라고 규정한 것만 범죄가 되고, 그에 따른 벌도 법에 정해진 대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형법의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린 때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보기도 한다. 저게 왜 징역 3년밖에 안되지? 왜 쟤는 불구속이야? 법원은 순수하게 법전을 바탕으로 판결내리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겠지만, 이럴 경우 자칫하면 감정에 따른 인민재판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죄형법정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참 어려운 지점이다.

> 그래서 평범한 이들이 주인이 된 근대사회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죄형법정주의를 형법의 근본 원리로 택했다. 죄형법정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 하나는 형법에 규정된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범죄자로 처벌하지 않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즉, 형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국민에게 무한한 행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범죄자는 형법에 정해진 형벌의 범위 내에서만 처벌한다는 것이다. 법에도 없는 가혹한 형벌을 마음대로 내릴 수 없게 만든것이다.

4.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발상을 전환하지 못한다 느낀 지점은 두발자유에 대한 장이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건,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에 속한다. 머리 길이 제한은 이런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므로, 머리를 기르려면 ‘기본권의 제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머리를 기른다고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사회질서, 국가안보, 공공복리에 악영향을 미치는가? 결국 교칙에 의해 머리길이가 정해진다. 그렇다면 교칙은 헌법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학교는 머리를 기르면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머리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학생들은 두발자유와 성적이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데 애를 먹었다. 실상은 **두발 규제를 주장하는 쪽에서 두발 자유와 탈선이나 사회질서 유지, 공공복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셈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자라면서 응당 누려야 할 기본권을 지키지 못하고 시키는대로만 했는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생각조차 못했는지, 설사 잘못을 알았더라도 그저 순응만 했는지, 많이 반성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요새 학생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가지 이야기만 나열했는데 책 안에는 정말 많은 서브컬쳐 이야기를 법과 적절히 버무려 흥미롭게 풀어낸다. 딱딱하게만 생각했던 법을 이렇게 쉽고 재밌게 풀어낼 수 있다니, 아이디어와 기획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법을 조금 더 쉽게 알아보고 싶은 이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물론 책 안에서 틀린 내용이 있겠지만 그건 더 깊게 공부하면서 차차 알아내면 되니까. <지대넓얕>의 법 버젼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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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8-09-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렇게까지는 생각 못해봤는데, 재미있네요~
 
책 정리하는 법 -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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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유유, 2018)

제 책장을 보면서 한숨 푹 쉬며 남기는 잡담입니다.


>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책과 서가는 괴로움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책을 줄이자고 다짐하지만 그때뿐입니다. 그 고생을 하고도 다음 이사 때까지 그 다짐을 까맣게 잊으니까요. _p.78

책이 좋아 잔뜩 쌓아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책이 가득한 책장을 볼 때마다 마음은 너무나도 벅차지만 막상 이사하거나 책을 옮기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회사 기숙사에서 나와 1.5km 정도 떨어진 오피스텔로 이사할 때는 정말 아찔했다. 차가 없어 400권 정도 되는 책을 24L 여행용 캐리어에 담아 다섯 번 정도 ‘걸어서‘ 옮겼다. 한참 날씨가 쌀쌀한 늦겨울이었느니 망정이지, 지금처럼 뜨거운 날씨라면 차라리 책을 버리고 왔을 거다.

5x5 책장에 꽉꽉 담긴 책은 청소할 때도 골치아프다. 공사장 주변 오피스텔이어서일까, 어찌나 먼지가 많이 쌓이는지 일주일만 청소를 안해도 책에 먼지가 수북하다. 지난 3주 동안 모종의 사정(?) 때문에 방 청소를 게을리 했더니 눕여 놓은 책 앞표지에 쌓인 회색 먼지가 어우... 표지는 먼지만 쓸면 되니 괜찮은데, 세워둔 책은 책 윗쪽의 먼지를 닦아내면 책장 사이사이에 먼지놈들이 들어가 골치아프다.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를 앓는 당신을 위하여, 이 책이 나온 것이다. 제목만 봐도 책덕후를 자극하기 딱이다. 나는 이 책 신간알림이 뜨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수많은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 내게는 어떻게 하면 책장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할까, 일말의 잘난척과 맞물리기도 했다. 저자 조경국은 진주에 위치한 헌책방 소소책방의 주인이다. 이전에 괜찮게 읽은 <필사의 기초>를 쓰기도 했다.

<책 정리하는 법>은 저자가 헌책방을 운영하는 지금까지 모은 책 정리와 보관법을 총망라해둔 책이다. 책 둘 곳이 사라져 보관 장소를 위해 물색하고, 독서를 위한 자신의 공간(방, 책상, 독서대 등)을 보여준다. 또 여러 서가의 형태와 책 정리와 이동, 보관하는 법을 차례차례 소개한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은 책 정리하는 법을 말하는 5장이다. 하지만 5장의 세부 내용을 보면, 십진분류법으로 또는 분야, 작가, 출판사 판형, 시리즈, 지역, 관심사, 비슷한 색깔별이나 읽은(혹은 읽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법을 나열한다. 아예 정리하지 않기 항목도 존재한다. 애서가라면 한번쯤은 생각하고 직접 해본 정리법일테다. 이 지점에서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을 보고 책을 산 이들은 익숙해서 새로울 게 없는 책이 되고 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허무함에 책을 잠시 덮고 내 서가를 쳐다본다. 시리즈와 분야별로 나름 깔끔히 정리된 책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을 정리하는 방법이 아니라 ‘왜 책을 정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 유명한 독서가이자 와세다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객원교수 나루케 마코토는 ‘뇌 기능을 백업하는 서가‘에 대해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가지고 있어도 필요할 때 꺼내 쓰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즐거움을 위한 순수한 독서라면 그냥 쌓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완벽한 서가를 찾는 일은 어쩌면 현재 가진 서가를 최대한 활용해 자신만의 ‘지식 저장소‘로 바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 뇌를 스쳐 간 정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두는 곳이 책장이 다. 책장은 뇌의 기억 영역 대신에 정보를 저장해 들 수 있는 장소다. 필요할 때 ‘이 내용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하며 기억해 내고 책장에서 그 내용이 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으면 책장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세세한 정보의 백업은 책장에 맡기면 된다. (중략) 뇌를 백업하는 기능을 못 하는 책장이라면? 책은 차라리 종이 상자에 넣어서 쌓아 두는 편이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정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책장 하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로 얻는 성장을 거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_80쪽

단순히 재미와 감동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나에게 책장이란 크게 의미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저 예쁘고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책 정리하는 법이나 찾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 책장의 90%는 읽지도 않은 새 책이니(읽은 후 보관하는 책은 모두 본가에 있다), 발췌문에서 말하는 지식 저장소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는 셈이다. ‘**즐거움을 위한 순수한 독서라면 그냥 쌓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고 내 뼈를 때리는 문장은 정말, 울고만 싶다. 지식의 보고가 아닌 지적 허영을 위한 존재로 전락한 내 책장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나무야,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이거지. 내 책과 서가는 분명 허영심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모르는 세상을 알고 싶은 욕심도 분명 마음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게 비중이 적어 겉으로 잘 안드러난달 뿐이지...

후반부의 책을 책커버로 쌓는 이야기나 옮기는 방법, 손상된 책을 손보는 이야기는 당장 내게 필요한 부분이 아니어서 크게 감명깊지 않았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아끼는 책이 있는 서재를 항상 내 인생의 베이스캠프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맺음말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나를 대변하는 책장을 만들 수 있게 내일도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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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20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서 작년부터 책을 많이 팔았어요. 팔린 책의 빈자리에 새로운 책을 채워 넣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가끔 팔았던 책을 다시 사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애서가의 책 욕심은 끝이 없고 책을 파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

양손잡이 2018-08-20 11:54   좋아요 0 | URL
cyrus님은 그래도 책을 많이 읽으시지만 저는 읽지도 않는 책만 계속 붙들고 있어서 고민이 커져만 갑니다 ㅠㅠ

비연 2018-08-20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사하면서 판다고 팔았는데 책장가득 책이 들어가게 되어 이제부터 더 사면 또 쌓아야할 판이라... 판 후에 산다 라고 원칙은 정했으나.... 아 눈앞에 책들이 어른거리고 알라디너들은 자꾸 좋은 책 소개하고... 알라딘을 끊어야 하나 ㅠㅜ

양손잡이 2018-08-20 13:23   좋아요 1 | URL
저도 이사 전에 반틈정도 팔았는데 요요현상 오듯 전보다 늘어났어요... 아무래도 책 읽기보다 돈쓰기를 더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알라딘은 절대 끊을 수 없으니 카드를 끊어저리는 방향이 옳을 것 같습니다 ㅋㅋ

비연 2018-08-20 13:27   좋아요 1 | URL
카드를 잘라야할까요 허허허 ㅠㅠㅠㅠ

양손잡이 2018-08-20 14:21   좋아요 0 | URL
저희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ㅎ...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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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스켑틱이나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편 과학 대중서다. <코스모스>는 뭔가 클래식한 분위기의 책이어서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았는데, 10년 전 읽은 <엘러건트 유니버스> 이후로 간만에 머리 쓰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과학서적이어서 요약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평가를 하기에는 이해가 어려워 다 관두고, 저자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오던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부숴버린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최소 영역이 존재한다! 공간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최소 단위를 가지는 공간의 '양자'로 치환되는 셈이다. 공간은 알갱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길이는 무려 1센티미터의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의 백만분의 1이라고 한다(10^-33센티미터). 저자가 든 예시를 보자.


호두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전체만큼 크게 만든다고 해도 플랑크 길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확대된 뒤에도 처음의 호두보다 백만 배나 더 작습니다.


와우...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어떻게 보면 '없다'고 할 수 있는 길이다. 물리적 공간은 양자끼리의 관계의 망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결과로 생겨난 조직이다. 공간은 불연속적인 구조를 가진다. 이 개념을 가지고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을 보면,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웠던 풀이가 어그러진다. 무한급수의 계산법을 이용해 제논의 역설을 논파했는데, 공간을 무한히 나눌 수 없고 최소단위의 '양자'가 존재한다면 이 계산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의 덧셈이 된다.


시간은... 공간의 양자가 이어지는 링크에서 만들어진 거품의 흔적이라고 한다(사실 시간 부분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진짜' 시간 t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자연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도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을 자연히 익혀왔다. 골때리는 게,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보면 시간 변수 t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은 세계, 즉 공간 양자에 내재되어 있고, 양자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시간이 태어자는 것이다! 으아아! (그런 점에서 저자는 시간은 인류의 무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이론으로 기술되는 세계는 우리가 익숙한 세계와는 아주 다릅니다. 세계를 ‘담고’ 있는 공간은 더 이상 없습니다. 사건들이 ‘그것에 따라’ 발생하는 시간도 더 이상 없습니다. 공간의 양자들과 물질들이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 과정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상은 이러한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멀리서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결과입니다. 투명하고 잔잔한 산정 호수가 무수한 작은 물 분자들의 빠른 춤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내 머리 안에 최신 과학 이론은 초끈이론인데, 저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의 대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끈이론이라고 말한다. 사실 현재로서는 루프양자중력이 완전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학이론은 언제나 현재를 합리적으로 말해주는 것뿐이지, 온 세상의 진리를 담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루프양자중력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되는 부분을 상쇄시켜준다니, 지금으로는 최선의 이론이겠다.


분명 저자가 이 책은 동료 물리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확실한 사실들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했듯이, 몇십 년이 지나면 분명 반박당하고 다른 이론이 튀어나올 것이다. 저자가 틀렸다 해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지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은 항상 즐거울 것이다. 한 달 꼬박 걸려 읽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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