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를 배경으로 한 듯한 겨울 눈보라 속을 두 주인공인 테라(지구)인 <겐리 아이>와 게센인 <에스트라벤>이 설매를 끌고 빙원을 가로지는 장면은 마치 <댄 시몬스>의 작품인 <테러호의 악몽>속 선원들이 보트를 설매 삼아 끌며 북극을 횡단하는 장면을 떠오르게 된다. 실제로 작가는 서문을 통해 겨울이라는 주제를 두고 남극에서 비극적 최후를 마친 <제임스 스콧> 대령의 자료를 참고했다고 한다. <테러호의 악몽>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북극 빙원의 설매 끌기는 역시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어서 두 이야기의 배경이 쉽게 겹쳐져서 떠올랐나보다.<어둠의 왼손>은 겨울 행성이라는 독특한 공간에 게센인의 특징인 자웅동체라는 설정을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의 주요 논쟁거리인 <양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간접적으로 들춰낸다. 혹시 페미니즘 논쟁이 잔뜩 묻어난 소설이 아닐까 싶은 우려와 달리 성평등의 논쟁적 설정은 유지하지만 여성과 남성을 오가는 게센인의 특징을 통해 성평등의 갈등요인인 양성적 시각을 날려버린다. 만약 게센인만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면 성평등과 관련한 작가의 문제 의식은 희석되어 버리고 자칫 밋밋한 구조로 흘러갈 뻔했겠지만 양성인인 테라(지구)인을 등장시켜 작품내내 갈등 구조 없이 양성적 시각에서 성평등에 대한 논쟁적 문제 의식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어슐러 K. 르 귄>의 소설들은 한결 같이 아름다움과 재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하면서도 현학적 문제 의식을 하나씩 던져준다. 이런 점이 그녀의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드는 매력인듯 하다.
《이기적 유전자》를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 〈종교〉에 대한 석학으로서의 지적인 통찰을 기대했지만, 도발적이다 못해 신랄하기까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는 마치 글이 소리쳐대는 느낌이어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전반부는 〈인격화된 신〉에 바탕을 둔 〈종교〉를 〈지적 설계론〉과 함께 묶어 가차없이 비판하며, 후반부에서는 《이기적 유전자》에 소개됐던 〈유전자〉와 〈밈〉 이론을 통해, 종교에 기대지 않고 인간 사회가 어떻게 호혜적 사회발전을 이뤄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무신론자의 변으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사실에 근거한 뼈아픈 지적은 오늘날 〈종교〉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사회적 소명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무신론자인 〈도킨스〉에게는 〈종교〉는 사라져야 할 시대착오적이고 무가치한 미신에 불과할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