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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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창 시절 유난히 국사 과목을 어려워했다. 역사 관련 이야기만 나와도 머리가 아팠다.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면서 좋아하게 된 장르 중 하나가 역사소설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 되어 소설화되는 이야기들은 읽을수록 빠져든다.

겉표지가 무척 고급스럽다. 단아한 여인네의 한복 입은 자태가 눈에 아른거린다.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에 태어나 사주 전체가 갑술이니, 아버지 주달문은 딸의 이름을 논개(論介)라 짓는다. 논개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일본군을 끌어안고 강으로 투신했다는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글솜씨에 감탄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했다는 자료가 엄청나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역사소설을 구상하기 전에 그러하겠지만 대단하게만 보인다. 60세가 넘는 고령의 소설가들에 비해 젊은층이지만 저자가 쓴 문체는 감칠맛 난다.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옛시절에 사용하던 말들이 그랬다. 읽는 동안 이게 맞는 말인지 이러한 말들이 지금도 쓰이는지 궁금했던 것도 많다. 역사소설을 쓰려면 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할까.

책을 펼치면 '논개'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부터 상영된다. 2권을 덮으며 다시 1권을 펼쳤다. 고단하고 애달픈 짧은 생애를 보낸 스무살 논개의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날아오르듯,으로 끝나고 날아올라,로 시작된다. 마치 두 권의 책에 끊김이 없는 듯하다. 빠른 템포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여느 역사소설처럼 긴장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루하지 않고 뒷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올차고 도랑도랑한 여섯 살 꼬마의 모습과  굵고 거친 손가락에 반지 다섯 개를 낀 스무살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젊다. 젊음은 봄처럼 새롭고 새벽처럼 활기차며 꽃처럼 도발적인 것이다. 그것은 삶,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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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8-0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아이도 사회나 역사를 싫어하네요.(나 닮은듯)
많은 책들을 읽다가 님처럼 곧 좋아하길 바라게 되네요..
 
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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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대가족으로 살아 보고 싶다. 한집에 어르신들부터 아이들까지 북적이며 산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물론 힘들고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도쿄밴드왜건'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이야기이고, 그 가족이 운영하는 헌책방 주변이 소설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헌책방에 딱 한번 가보았는데 오래된 책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의 기분은 왠지 들떠 있었다.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가 있는 책- 꽤 오랜만이다. 장편 추리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역시 대가족이라 인물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식구들을 한 명씩 소개해주는 분이 계시다. 바로 홋타 사치 할머니. 세상을 떠나셨지만 집에 머물며 가족들을 지켜보고 있다. 할머니의 눈으로 보고 할머니의 입으로 이야기를 한다. 어릴 적 잠자리에 누워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경청하는 기분이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사치 할머니의 편안한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도쿄 변두리의 낡은 건물에 오순도순 모여 사는 홋타 가. 가게 벽 여기저기에서 가훈을 여러 개 볼 수 있다. 많은 가훈들 중에 '식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 먹는다'가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급적 가훈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등장인물들이 헷갈려 인물 소개 부분을 몇 번이나 넘겨보았다. 4대가 모여 사니 그들의 성격 또한 제각각이다. 기억에 남는 인물은 가나토와 미스즈. 전설의 로커 가나토는 예순의 나이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가나토가 추구하는 것은 러브다. 러브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각자 자기 나름의 러브를 책임진다. 미스즈가 홋타 가에 찾아온 계기는 좀 복잡하지만 결국 아오와 결혼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야기는 사계절로 나뉘어 많은 사건들이 터지고 해결되며 진행된다. 미스즈의 정체가 밝혀지고 가나토가 밖에서 낳아 온 아들 아오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일본 여행을 하다가 겉표지의 그림같이 헌책방과 작은 카페가 나란히 있는 멋진 집을 발견한다면 나도 모르게 발을 들여놓지 않을까. 그곳이 어쩌면 도쿄밴드왜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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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서정윤의 홀로서기 그 이후
서정윤 엮음, 신철균 사진 / 이가서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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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좋아졌다. 시와 초록빛과 흑백사진이.
일생을 100년 기준으로 하면 아직 절반의 절반 밖에 못 살았지만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옛 시절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흑백사진을 볼 때가 그런 때 중의 하나이다. 
학창시절에는 시라는 영역이 지루하게만 느껴졌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공부하며 어렵기만 했는데 시를 시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으니 한 편의 짤막한 소설과도 같았다. 내 나름대로 시에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류시화, 안도현 등 유명 시인들이 엮은 시집을 읽으면서 정겨움과 따스함과 그리움을 만끽했다.

서정윤 시인이 보기에 참 좋은 시들을 모았고 다시 따스한 느낌의 시들을 골랐다고 한다.
모든 시에 애틋함과 진실된 마음이 가득하다. 
신철균 사진작가의 작품은 우리네 옛 정취를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상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을, 박물관에서 일부분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을, 그 시대의 순간이 담긴 사진 한 장에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의 풍성함과 산뜻함이 물씬 풍기는 초록빛 시집 한 권.
빗물에 번진 듯한 겉표지의 제목과 어린 동생을 목말 태우고 만면에 웃음 가득한 형의 모습.
이 모든 것이 친근하고 사랑스럽고 무딘 감성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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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이
필립 포레스트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림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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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살짝 비친 아이의 모습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긴 여운.

불투명한 색채 위에 날개를 펴고 있는 나비들은 왠지 슬프다.

50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 밝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이지만 그저 실제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무덤덤했다.

아픈 아이를 지켜 보아야만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릴까.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일을 세밀하게 표현한 저자의 아픔이 전해오는 듯하다.

투병생활 하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무서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이도 힘들지만 옆에 있는 부모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힘들 것이다.

그런 부모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결국에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 슬프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게 사람이라지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면 너무 불공평하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한 저자.

글을 쓰면서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세상에는 여전히 이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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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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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하다. 검붉은 하늘 아래 달빛에 의존한 상황 설정이 무언가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제목은 물론이고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추리소설이라면 어느 나라 작가가 썼는지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상관하지 않고 좋아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좌우로 눈을 굴리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그 순간이 너무 짜릿하고 흥미진진하다.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일을 할라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다시 책을 잡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범인을 밝혀내는 데 중점을 둔 것에 반해 '야간 여행'은 초반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주인공 마크가 저지르는 살인사건의 과정을 천천히 하지만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보여준다. 맙소사. 지루하지 않을 정도라니. 문득 마크의 정신 세계며 뇌 상태가 궁금해진다. 밖으로 달려나가 터뜨리는 미친 듯한 그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도 했다. 주의를 기울여 생각해보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할 이유도 아닌 것 때문에 살인을 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쓰기는 했지만 자신의 소설을 형편없다고 한 이유로 먼 친척을 죽이고, 자신이 반해버린 젊은 여자의 나이든 남편을 치밀한 계획으로 살해한다.

범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기 전까지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가 범인일 거라는 추측을 아무도 하지 못하다니. 혼자서 모든 걸 진행시키는 미친 남자가 잔인하면서도 애처롭기만 한 이유는 왜일까.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크를 이해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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