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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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중 4대 비극의 종착역으로 『리어 왕』을 택했다. 리어라는 인
물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정말로 많은 것을 다시 눈으로 쫓고 싶
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인생사의 굵직한 사건이 많이 들어있는데 사
랑, 죽음, 음모, 욕망 등은 물론이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또한 극을 풀어가는데 있
어서 중요하다. 통속적인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은 바로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우
리 인간의 모습 때문이다. 단, 우리가 그의 작품을 고전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아직도 유효한데다 제대
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해되지 못하면 이후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더라도 가끔 그 이름값 때문에 손해 보는 고전작품이 많다는 사실이
때로는 우울하다. 많이 알려지고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오만하다.

리어가 세 딸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의 모든 부와 권력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랑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표현도 마찬가지겠지만 리어의 성격상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 코딜
리아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바랬던 만큼의 분노를 퍼붓는다. 그 노인(리어)은 괴팍하고 강
렬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이라는 표현보다 효(孝)라는 개념을 적용해보니 그것
이 내 정서에는 더 들어맞았다. 리어와 세 딸 그리고 글로스터와 두 아들을 보면 너무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리어는 두 명의 불효녀를, 글로스터는 한 명의 불효자를 둔 셈이다. 다행하게도 리어나 글로스터
에게 한 명씩의 효녀, 효자가 있었으나 부모와 자식이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그러나 리어와 글로스터는 같은 상황이지만 그들의 성격이 다른 만큼 행동도 다르다. 리어는 코딜리아
에게 말을 바꿀 시간을 주었지만 글로스터는 당사자 에드거의 말을 확인하지도 않고 의심한다.
이 작품에는 큰 줄기로 리어의 이야기를 작은 줄기로 글로스터의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며 그 밖에도 작
은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얽히고설켜 정신없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다양성을 추구하
려고 했던 것 같다. 자식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해 고통받는 두 부모의 모습을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 부
모의 사랑을 모르는 자식의 경우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 글로스터의 눈이 뽑히는 장면은
처절했다. 왜 꼭 눈을 뽑았어야 했을까 생각했는데 셰익스피어는 신화를 살짝 넣은 것이다.
물론 오이디푸스와 상황은 다르지만 눈을 잃고, 코딜리아의 최후는 안티고네와 같다. (물론 코딜리아는
타인에 의해서다.) 그러나 이미 리어와 글로스터는 마음의 눈을 뽑힌 상태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비극
은 시작되었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보였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재치있으며 날카로운 송곳 같았으니 과
연 리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다. 물론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과 결말은 너무도 아쉬웠다. 재간둥이 바
보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리어는 코딜리아의 죽음에서 바보를 언급했다. 그가 바보를 사랑했음은 알
겠는데 왜 사랑했을까. 어쩌면 바보의 반은 들락거리는 정신을 사랑하진 않았을까. 바보였지만 누구보
다 현자였으며 왕을 사랑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결정적으로 바보는 리어가 실망감을 느낄 수 없는 대상
이기에 더욱 그랬던 거라 짐작한다. 바보행세를 하던 에드거와 바보의 만남은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냈다.

모든 등장인물은 리어를 제외하고는 한 방향으로만 걷는 모습이다. 즉,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코딜리아부터 에드거, 바보, 충신 켄트... 지금 같으면 보이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희귀한
광경일 텐데 극에서의 모습은 반대다. 그래서 리어라는 인물이 독특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하고
화내고 반성하고 나약했다가 강해지니 말이다. 리어와 바보를 합친 인물이 나온다면 굉장하겠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사람의 마음 밭에는 얼마나 많은 씨가 존재하는가였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는 삼라만상이 함께하니 과연 우주가 들어있다 하겠다.
어떤 식으로 가꾸어 나가건 중요한 것은 그저 육안의 눈으로만 쫓지 말 것이며 혜안의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을 알면서도 육안의 눈이 먼저 마음을 지배한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작품은 현재 4대 비극이 전부인데 지속적인 관심으로 번역을 하는 모
습이 좋다. 그래도 더러는 읽고 넘어가기에 걸리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보완될 것으로 생각한
다. 또 군데군데 오타가 눈에 띄어 거슬렸고 에드거의 갑작스런 사투리 조(147쪽)의 말도 매끄럽지 않
다고 생각한다. 사투리를 조금만 줄였으면 좋을 거 같다. 과도한 사투리에 흐름이 잠시 멈춘 나 같은 독
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민음사에 감사한다.


* 에드거의 말을 기억하며...

최악을 말할 수 있는 한 최악은 아니다. (121쪽, 4막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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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2-21 13:31   좋아요 0 | URL
고전의 맹점은 책의 사상과 내용이 어느 정도 고착되어져버린다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워낙 유명하기에 개인의 주관적인 재해석이 가로막히는 모순, 그것이 고전의 딜레마인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고전 다시 읽기를 늘 염두에 두면서도 항상 걸리는 것이 저런 문제랍니다.

은비뫼 2007-02-21 16:01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책 뒤편의 친절한 해설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해설과 주관을 혼동하지도 말아야겠고 의지하지도 말아야겠고...생각하기를 그만둘 수도 없고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데 어째 요즘 멍한 상태로 책을 보는 거 같습니다. 제 이야기죠. ^^
 
집 없는 소녀
엑토르 말로 지음, 원용옥 옮김 / 궁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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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커서 다시 꺼내 읽기란 유년의 향수를 찾을 뿐 아니라 생각의
주머니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때 내가 그렇게도 열광했던 책들
은 공주 이야기보다 모험 이야기였다. 특히나 『집없는 아이』와 이 작품은 힘겨운 생
활을 잘 헤쳐나가는 소년, 소녀의 모험이 들어있는데 지금 읽어도 새삼 느끼는 점이 많다. 이들의 순수
함은 물론이거니와 정직함과 용기가 좋다. 나도 이런 용기있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모험의 비중이 자꾸
만 줄어간다. 그보다는 안락함을 더 찾기 때문일 것이다. 모험과 안락함이 적절히 조화되면 최선이겠으
나 모험을 다소 주저하게 된 것이 문제다. 매순간의 선택에서 모험은 뒤로 빼버릴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모험은 삶의 활력이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는 뻬린느의 모습을 보며 지금 병원에 계시는 엄마 생각을 했다.
작은 수술을 하나 하셨는데 엄마의 공간이 크게 느껴진다. 이제 성인이라 모든 것을 내가 처리할 수 있
지만 가족의 자리란 것은 그 사람의 부재만으로도 공허함이 크다.
각설하고 이런 상황에서 홀로 된 뻬린느는 길을 나서게 된다.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소녀를 괴롭힌다.
날씨와 배고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아이
특유의 밝은 마음씨를 간직한 소녀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극적으로 만난다.
가족의 소중함은 곁에 있을 때는 모른다. 부재했을 때에야 느껴지는데, 그런 상실감을 최소화시키는 방
법은 관심과 대화이다. 소녀도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고 그들은 서로에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족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인공 뻬린느인데 대충 우리나라 아이라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
도가 아닐까 싶은데 여간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홀로 된 상태에서 그렇게나 꿋꿋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간혹 들지만 작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곳곳에 아이 특유의 소심함도 함께 나타냈다. 그
래도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그렇다, 이 책은 동화의 완역본이다. 그래서 꽤 분량이 많고
내용은 흥미진진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동화적 느낌이 강한 부분은 뻬린느가 홀로 섬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모습이다.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에서 느껴지는 산업혁명시대의 배경과는 대조되는
모습인데 섬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다분히 그 시대상이 묻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뻬린느는
아이치고 너무도 신중하다. 개인적으로 너무 교과서적인 인물에는 흥미가 떨어진다. 아무튼, 환경이
아이의 능력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좋았던 것은 삽화!
어릴 때 보던 삽화와 정말 비슷하다. 색채가 아닌 흑백인 것까지 말이다. 삽화에 대한 말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옮긴이의 말에 적힌 <앙리 라노스(Henri Lanos)>의 삽화로 추정된다. 몽환적이거나 밝지도 않지
만 낯이 익어서 그런지 내게는 친숙했다.

『집없는 소녀』는 집도, 가족도 없이 엄마의 유언을 따라 친지를 만나러 가는 소녀의 모험이다.
물질적인 집이나 정신적인 가족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집과 가족 모두가 있어도 뻬린느처
럼 당당하게 모험을 해나갈 의지가 강한 아이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화로 보았던 『엄마찾
아 삼만리』가 머릿속에 겹쳐진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모험 동화책을 한아름 선물하시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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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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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차원을 떠나 책이 많은 의미를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제목에 「책」자만 들
어가도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마디로 짧은 여정처럼 길지 않지만 의미 있는 시
간을 보낸 것과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시작부터 책의 희생자들을 열거하는데 그들의 죽음에는 하나의 상징처럼 책이 공존한다. 한때는 나도
지진이 나면 나만의 서재나 책장 앞에서 온통 책으로 덮여 최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과연 그에 걸맞게 제대로 책과 만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델가도나 브라우어처럼 열정이 있는지의
문제도 필수적이다. 이들의 열정이 지나치다면 나는 거기에 미치지 않는 아직은 풋내기니까.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ㅡ 17쪽


책장에 마구잡이로 쌓아둔 책을 보며 가끔은 일정기간을 두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행
해 본 적이 없다.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북크로싱을 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차차 시도
해야겠다.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때때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그래도 좋은 책이 많
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이것도 앞으로는 목록을 만들어 두기로 생각했다.

다시 책과 사랑에 빠진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떠올려 본다. 그의 모든 것이 된 책은 그에게 곧 짐이 된
다. 저주처럼 사랑이야말로 강력한 파괴의 성질을 갖추고 있다. 그 능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결코
거부하기 어렵다. 영화 《킹콩》에서도 콩은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파국을 맞았다. 물론 콩의 선택이
었지만. 이토록 치명적인 장단점을 사랑은 갖고 있는데 브라우어의 대상은 바로 책이었던 것이다. 그
것이 사람이건 음악이건 영화이건 이것들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처럼 중독 적이다. 이미 경험한 우리
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간만이 책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ㅡ 82쪽

자, 그렇다면 내 책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나에게 달렸다. 단지 습관적으로 책을 읽
고 있는지 또 소유욕으로 모으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어느 존재든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 끝
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할 수 없으니까. 다만, 과시적이
거나 계산적인 노력은 책과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임을 명심하자.

시(詩)처럼 함축적인 글 그리고 퍽 어울리는 삽화를 보며 책으로 집도 짓고 무너뜨리며 책에 대한
환상을 떠올렸다. 책으로 집을 지은 브라우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가 행복하다면 그런 것이므로. 소화할 수 없는 책을 읽어 거북해진 배는 그만
큼의 내공이 쌓여야 묵은 체증 내려가듯 뚫릴 것이다. 그처럼 단계적으로 책을 읽어야 함을 다시 생각
했다. 그리고 이후에 찾아올 여러 문제점을 지금부터 싸매고 걱정하진 않겠다. 지금은 책 자체를 오롯
하게 소화시킬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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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2-14 12:5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은 묵은 체증을 생각하지 말고 책 자체를 소화시킬 시기인것 같아요. 언젠가 뻥 뚫어질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현재의 책읽기만을 생각하렵니다.^^

은비뫼 2007-02-14 21:35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즐거운 책읽기 하세요. ^_^
시원하게 뻥 뚫어질 날이 오면 유쾌한 마음의 잔치가 벌어질 겁니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정철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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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회사에서 한 선배가 말했다. "너만 알고 있어. 나 주식 대박이야~!" 이 말과 함께 선배는 얼
마 후 퇴사했다. 연락처를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 타입이었는데 그날
은 아마도 기분이 매우 좋아 내게라도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한 적이
없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집안일 하며 아이 키우며 회사 다니며 그야말로 바
쁜 사람이었다. 한순간 그렇게 지나간 과거의 그녀가 이 책으로 다시 떠올랐다.

경제, 경영에 관한 책에 관심이 없던 내가 우연하게 『여자 경제학』을 읽으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그 전으로 올라가서 『주식투자의 심리학』을 보면서 부터인거 같다. 그 전에도 읽은 적은 있었
지만 본격적으로 조금씩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물론 20대, 재테크 이야기를 30대에 읽는 것은 조금 아이
러니지만 내용을 보니 30대도 얼마든 상관없었다.

특히 앞부분은 개인 재무제표 하는 방법 등의 이야기부터 보험, 펀드, 저축과 투자, 주택청약통장에 관
한 이야기까지 실생활에서 모두 득이 되는 내용이다. 대략 알고 있었던 내용이 정리가 되었다. 20대에
이 책을 읽고 시작하는 이들은 얼마나 시간을 많이 벌까 라는 생각도 했다. 나도 20대에 주식에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 크게 놓아버린 일이 있어서 다음부터는 돈에 관심이 없어졌었다. 지금도 돈보다는 실
생활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똑똑한 책이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3000만 원 정도를 공격적으로 주식으로 굴리려면 적어도 1년 이상 체계적인 공부도 필요하다. 적어도
시중 증권사에서 매일 발간하는 '애널리스트 리포트' 를 읽고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정도의 식견
은 갖춰야 한다. 신문 증권면에 나오는 기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100% 이해하고 토론할 정도
는 돼야 한다. ㅡ 237쪽


위의 글은 마지막 4장 <실전! 20대 재테크>에 있는 말인데 실제 투자하고 있는 사람이나 곧 시작할 이
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방법을 말한다. 더구나 각각의 금액에 따른 투자지침이 들어있으니 의욕이 생
길만도 하다. 나처럼 좁은 경제 식견을 가진 이는 묵묵히 읽어나가지만 그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은 전
혀 들지 않는다. 20대를 위해 쓰여진 책이지만 누구에게나 도움되는 책. 아, 경제서에 이러다 취미 붙이
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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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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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기영 작가의 성장소설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정말이지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
에 소리 내어 웃게 한 장본인이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에 치중하여 살던 내 삶에 잠시 쉬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지나간 과거를 돌
아보는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왜 가끔 잊어버리는 것일까. 작가의 잊혀진 유년을 만나고자 쓴 책
에서 더불어 나의 유년도 살며시 꺼내보았다. 물론 작가와 나는 세대 차가 있기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선물 받았다.

제주도의 풍경과 어우러져 커 나간 작가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내게 제주도는 그저 수학여행
으로 다녀와 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일본TV에 제주도에 관한 내용이 자주 반영되는 것을 보고 역시
자랑스러운 제주도라고만 생각했다. 이질적인 제주도 말을 들으면 도대체 어떤 말인지 몰라 궁금해하
던 내게 작가의 제주도와 만나고 나자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이렇듯 내게도 자신의 유년시절과 제주도
를 나눠 눈 책이라 책장을 덮고 나도 기분이 좋다. 제주도의 사투리도 구수한 누룽지처럼 느껴진다.

어머니만이 나를 키운 것은 아니다. 내 동무들도 내 성장을 도왔고,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대지 또한
내 성장의 요람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속물이면서 동시에 아이들 무리 속의 일부였고 대자연 속의
한 분자였다. ㅡ 82쪽


정말이지 제주도의 다채로운 풍경만큼이나 풍요한 유년시절 이야기가 샘솟듯 흘러나오는데 거기에는
좋은 추억만이 아닌 슬픔과 고뇌가 함께여서 감동적이다. 제주도 4.3이야기는 나 같은 육지인은 잘 모
르거나 알더라도 관심에서 비켜가는데 그래서인지 묻혀진 아픈 역사의 한 가닥이 서글펐다. 시대의 참
상을 바로 알아야 현재를 제대로 보고 미래도 예측할 터. 그런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을 다잡고 경건하
게 임했다. 또 작가는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기에 내가 겪은듯한 몽롱함을 주었다. 물론 그중에는 너
무도 생경한 것도 있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해서 마음마저 밝아지게 했다.

삶이란 두려움의 대상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 ㅡ 167쪽

소리 내 웃은 부분은 바로 맥베스를 연극하는 부분이었다. 바로 전에 읽은 책이『맥베스』였기에 친
근감까지 들었다. 누구라도 이 부분을 읽는다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거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많은 것을 겪으며 터득해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힘들던 일이 아니 바로 얼마 전의 일
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듯 말이다. 물론 시간의 흐름이 지니는 장점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성숙이
라고도 부르지만.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작가는 유년시절의 여행을 끝
맺는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구절의 모습에서 작가이기 이전에 성숙한 인간에게서 느껴
지는 참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직도 익어가는 길에 서 있는 내게 숙연함을 주었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이렇게 귀향연습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중략)
..저 바다 앞에 서면,궁극적으로 내가 실패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ㅡ 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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