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소도시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닌 내게 태어난 곳만 서울인 그곳은 참으로 낯설었다.
그러나 점차 커가면서 대도시의 모습과 다양한 문화자원이 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로운데다 미지의
동경심도 있었다. 날마다 진행되는 전시회, 공연, 이벤트 등이 갈 때마다 다채로운 색으로 나를 이끌
었던 것이다.

그런 서울을 문학과 더불어 조명한다는 기획은 누가 봐도 멋진 구상이었다. 더구나 그 안에는 문화뿐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모습을 밀도 있게 집어내려 갔다. 국문학 전공인 두 명의 지은이를 통해 풀어나
오는 서울과 문학의 향연에 배가 불렀다. 생각의 나무란 출판사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최근 접해
본 결과 튼튼한 양장본으로 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 르네상스의 비밀 』도 같은 출판사이다.

성인이 되어 그토록 풍부한 문화공간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때
를 돌아보았다. 집이나 직장만 나서면 사람들의 홍수를 만났으며 그 속에서 유유히 물고기처럼 흘러
다녔다. 대학로, 홍대, 연신내, 압구정의 순으로 거주지도 옮겼다. 직장과 가깝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친구들이나 연인과 가까운 곳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때 나는 외로웠나 보다. 나름대
로 고독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본능이었으리라. 그런데 책에서 보면 배금주의로 만연한 경제
개발의 서울에서 서울토박이가 아닌 외지인이 살아가기란 정말이지 버거운 곳으로 그려진다. 사실이었
다. 자본주의로 물든 사람들은 서울인이라도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은 더는 서울인이 아니었다. 그런 모
든 소외된 이들은 그 변화에 몸을 던져 달리는 폭주기차 같은 시대에 올라타 외로움과 생활고를 함께
겪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1장은 타향인 서울살이의 고달픔과 서울토박이라도 중심에서 벗어난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다룬다.
때마침 책을 읽는 시기에 TV 문학관에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까지 보았다. 1장에 내가 읽
은 슬픈 책이 두 권이나 있었는데 그것이『 난.쏘.공 』과『 영자의 전성시대 』였다. 너무 어릴 때 접
해서 사회상 같은 것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것만을 느꼈던 시
기였다. 그리고 커서 만난 그 책들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음을 알았다.

2장은 내집마련을 위한 우여곡절과 근대화의 산물인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읽어보지 못한 책이 많았는데 그와 관계없이 인용된 글과 지은이의 말만으로도 충분하게 공감했다. 아
파트는 많은데 왜 사람들은 집을 소유할 수 없는지를 생각하며 앞으로 갈 길이 멀었음을 느꼈다.

3장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망을 다룬다.
좋아하는 오규원의 글도 보이고 타이밍에 관한 글도 있다. 나에게 타이밍이란 중학생 때 시험공부하
며 졸지 말자고 친구들과 밤에 먹었던 약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타이밍은 고된 노동일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던 가난으로 사람들은 90년대가 들어서자 모든 관심은
돈으로 변해버렸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질렀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4장은 서울 사람들의 일상과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비교해 보며 읽었다.
직장 생활하며 만난 서울로 온 지방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쳤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괜찮은 삶
을 영위하고 있었다. 꿈도 있으며 실속도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나갔다. 그들은 아직도 서울에 대부분
있을 것이다. 나도 일 때문에 지방에 있으니 다시 가서 서울에서 살아가겠지. 어디서든 희로애락은 빠
질 수 없는 요소이나 심장부 서울은 복잡한 만큼 일도 많을 테니 희로애락도 배가 될지 모른다.

지은이의 마지막 말처럼 서울 자체가 아니라 서울 속에서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을 잊지 말아야겠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아가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현재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며(전태일처럼) 살아가는지 모른다. 또 살아있다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져 우울하게 살더라도 시간은 지나 미래를 맞이하니 이 책의 인물들을 보며 느끼고 살아가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어찌할 수 없이 끌려다니듯 사는 것보단 훨씬 나으리라.

문학에는 달콤함뿐만 아니라 더없이 쓴맛까지 표현한다. 꿈결처럼 또는 처절하게. 이것을 누릴 권위를
가진 작가들은 그만큼 미친 듯 살아가며 관찰한 또 다른 나의 외침이다. 그러니 제대로 새겨들을 수밖
에 없다. 박완서 작가의 글이 여러 번 인용됨을 보며 그녀의 작품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또한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이 박태원, 최인훈, 주인석으로 세 번이 쓰인 것을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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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시에서 길을 만나다
로저 하우스덴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시와 자기계발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시를 좋아해서 그들의 조화가 궁금했다.  

시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은유적이고 읽는이에 따라 얼마든 새롭게 이해하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씨앗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열 편의 시를 인용하여 거기에 따른 설명을
곁들였다.

처음의 느낌은 지은이의 설명이 교과서처럼 느껴져서 조금 지루했다. 시는 시로 느껴지면 되는 게 아니
겠는가. 구태여 이 부분은 이렇고 하는 식의 친절한 설명이 낯설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이야
기 할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필처럼 흘러가나 했더니 역시 이 책은 자기계발서였다. 단지 보통의 자
기계발서처럼 설득력이나 거부감 있는 명령이 아니었을 뿐이다.

지은이의 시에 대한 사랑은 남달라서 자신이 감동하고 느꼈던 것을 독자에게 고루 나눠주길 원한다.
그러나 그의 시적인 지식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 안에 다른 시를 또 인용해서 집중이 떨어
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책장이 넘어갈수록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자기계발서이긴 하지만 이 책은 자기치유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시를 통해 내면을 어루만지고
인생을 헤쳐나간다. 또 다른 점으로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의지를 확고하게 하라는 식인데 그보다
는내면성찰, 즉 영적인 것이 주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 비슷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가 인용한 시에서
예전에 심취했던『우파니샤드』등이 떠올랐다. 나와의 차이는 그는 인도나 티베트 등의 영적 스승이나
시인에 관심이 있는 서양인이며 시가 강렬한 깨달음으로 각인된 것이다. 시를 좋아하지만 강렬한 깨달
음까지는 모르는 나는 그저 시가 좋을 뿐이다. 무심코 접한 그 어떤 말이나 글보다 시에서 그런 가르침
을 받은 사람이라면 지은이를 이해하리라. 휘트먼과 카비르의 시가 기억에 남는다.


▼ 책 속에서

불이 꺼졌다고 생각하고
잿더미를 쑤시다가
손가락을 데었네. ㅡ 151쪽, 마차도의 시 <격언과 민요>


방법이란 전략일 뿐이다. 전략은 가슴의 문을 열지 못한다. 가슴은 광풍으로, 사랑의 바람으로 열어야
한다. 사랑의 바람만이 우리를 진실로 데려갈 수 있다. ㅡ 152쪽, 지은이


죽기 전에 많은 책을 읽어도 현자가 될 수 없다.
'사랑' 이라는 말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바로 현자이다. ㅡ 157쪽, 카비르

 

* 얼리 리뷰어로 미리 원고를 읽고 올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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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비밀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01
리처드 스템프 지음, 정지인.신소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르네상스 예술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그리고 이탈리아에 관심이 많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었다.

처음 이 책을 만나던 날 졸업앨범만큼이나 두꺼우며 더 크기까지 해서 압도당해버림을 기억한다.
과연 담고 있는 내용도 그럴 것인가라는 생각과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 르네상스의 비밀. 과연 비밀(secret)이 어울리는가.

제목에서 내거는 비밀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보기로 하자. 결론은 비밀보다 차라리 『르네상스의 신비
혹은 『르네상스 예술』등이 바람직하지 않았을지 싶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은밀함을 이해하지
만 어느 시대에나 도상학은 있지 않았을까? 문제는 바로 르네상스의 비밀인데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엮
은 책으로는 비밀이 풀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도움이 된 것은 사실
이나 방대한 자료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하듯 이 책을 통해 다른 작품을 보아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은 성공했다. 그러고 보면 꼭 제목을 따지고 넘어갈 필요는 없지
만 사람심리가 비밀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호기심이 생각을 넘어서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조금 아쉬
울 뿐 큰불만은 없다.


▼ 예술서적으로의 활용성.

일단 질적으로 우세한 회화, 조각품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또 세부그림을 확대하거나 그에 따른 설명이
깃들어 있으며 각주처럼 귀찮은 것이 적어서 편하다. 물론 다른 작품과 비교해야 하기에 다른 페이지를
넘어갔다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차례가 역자의 의도에 따라 3부까지 나뉘어서
맨 뒤의 찾아보기를 통해 원하는 작품에 관한 페이지를 찾게 되어있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구성이라고
생각되었다. 보기에 불편함도 없었으니 말이다. 조금 아쉬운 것은 조각의 경우 한 방향만 나왔는데 다
른 방향도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5쪽의 <헤라클레스와 안티오스>라는 조각
상은 어느 방향으로 돌려보아도 흥미를 자아낸다고 책에 쓰여 있는데 독자는 한 방향의 조각상만을 봐
야 해서 궁금증이 생긴다. 작은 배려로 다른 방향의 모습도 있었으면 했다.


▼ 책의 차례와 구성.

르네상스. 그중 이탈리아만을 다루고 있는데 1부는 입문식으로 여유롭게 보고 넘어갈 수 있도록
2부는
르네상스의 언어
라는 제목에 걸맞게 집중적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가장 좋았다. 3부는 테마별
그림읽기인데 르네상스의 주도층이 그리스인들이어서 그런지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음이 느껴진다.
로마, 즉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중심이었고 인간중심의 예술을 꽃피우지만 종교개혁이나 종교비판이
다른 나라보다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더욱 종교색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결과적으로 2부가 차지하는
중요성 덕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데 많은 것을 배운 거 같으면서도 너무 빠르게 넘긴 거 같아
서 차차 생각날 때마다 넘겨봐야겠다.


▼ 도상법이 필요한 이유.

도상법이란 미술작품이 그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책에 명시되어 있듯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이
다. 작품에 들어 있는 기호나 상징물을 찾아 이해하는 적극적인 방법인데 그것이 지금 보아도 파악되는
작품도 있지만 풀어야 할 부분이 퍽 많다. 특히 나처럼 성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래도 신화에 관심이 있다면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일단은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의 생생함에 즐거움
을 느끼는 것이 더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는 작품은 더 많은 감동을 준다.
그림을 보고 그저 아름답다는 감정만 느끼고 말 것이 아니라면 그 작품을 얼마나 생각하며 대하느냐에
따라서 발견해 낼 것은 무궁무진하다. 무엇을 표현했는지 주제(종교, 윤리, 신, 예술성 등)로의 접근이
나 빛의 형태, 바람의 방향은 어디인지 그런 생각과 관심이야말로 마주하는 작품과의 진정한 통(通)함
이리라. 책을 읽듯 글자만 보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며 찾아간다는 점이 미술작품을 느끼는 방법과 같다
고 생각된다. 작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전에 갔을 때 사람도 많았지만 진지
하게 감상할 시간이 적은데다 생각만큼 열린 사고로 접근하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다.


▼ 르네상스 시대의 생활상.

예술과 정치가 손잡거나 부와 권력을 예술로 과시하는 모습에서 예술의 순수성이 타락했다고 느껴지기
도 했지만 예술은 또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런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며 오히려 고대신화
까지 되살려 더 발전시킨 점은 과연 만개한 꽃 같은 예술의 정점이라 느껴진다.
부유층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그들의 생활이 녹아들게 그린 이유를 알겠다. 예술가를 후원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르네상스 시대의 보편적인 일반인의 생활이 담긴 그림과 부유층의 것을 비
교하는 책이 나온다면 정말로 볼만하겠다. 그러나 과연 그런 작품이 제대로 전해지거나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신화에 근거한 작품이 좋으며 종교색이나 권력과시용의 화려한 그림을 보노라면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끝없는가를 새삼 느낀다.


▼ 책 속의 즐거움.

동시대 인물들의 합동작품이나 경쟁 등의 이야기가 녹아있어 즐거웠다. 좋아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의 소수(극소수!)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마냥 좋았다. 비록 모두 본적 있는 작품이라 아쉽지만...
함께 온 보티첼리의 그림엽서도 만족스럽고 출판사 달력도 괜찮다.
41쪽의 베네데토와 줄리안 다 마이아노의 작품을 한쪽 눈으로만 감상하고 놀라움을 느꼈다. 그냥 쳐다
볼 때는 몰랐는데 한쪽 눈으로 보니 사물의 이미지와 거리 등이 더 생생하다. 설명에 따르면 예술가의
후원자는 마상 시합에서 한쪽 눈을 사고로 잃었다 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그를 위해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55쪽의 이삭 이야기라는 작품에서 오래도록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93쪽 동정녀의 생애의 장면
들에서 성모와 아기 예수라는 작품도 마찬가지 형식인데 지속서사 기법이라고 말한다. 이 기법은 97쪽
에 설명되어 있는데 중세회화의 공통적 특징이지만 또한 르네상스 화가들이 뛰어났던 부분이라 한다.
하나의 그림에 중심인물의 생애가 함께 나타나져 있다. 즉 이삭 이야기에서 보면 동일인물이 여러 번
보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요즘 모 광고에서 보이는 특수영상 같다. (M 포인트 광고 중 비편에서 비가 한
화면에 여러 명 중복되어 화면을 채우는 모습) 생각해보니 그림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는 듯 보인다.
서사기법이 인상적이었다.


▼ 책을 통한 확장성.

책을 덮고 나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그동안 내가 르네상스라 명명하던 그 모든 것이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단지 이탈리아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몇 명의 인물과 작품을 더 깊게 느
끼는 방법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용했다.
그리고 역시 르네상스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했으며 성서를 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에
박차를 가한다. 르네상스의 업적도 돌이켜 보았다. 회화나 조각 등의 예술뿐 아니라 과학이나 문학까
지도 모두 연결되며 부흥기를 누렸던 시대이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전세에는 영웅이 필요하듯 혼란기
에는 예술혼이 싹트는 무엇이 있는 거 같다. 그들의 열정을 끌어들이고 발전시키는 원동력 말이다.
앞으로 이 시대를 살다간 인물의 예술작품뿐 아니라 그때 쓰인 책도 찾아 부지런히 봐야겠다는 계획
이 생겼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르네상스의 비밀을 파헤치기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다가섰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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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3-07 14:41   좋아요 0 | URL
꼼꼼하게 잘 쓰셨네요. 추천 드리고 갑니다.^^

은비뫼 2007-03-08 02: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서평 올리셨군요. 보러 갑니다. :)
 
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박완서 작가의 데뷔작인 『 나목 』은 6·25 전쟁에 관한 이야기의 출발이며 자신에 관한 이야기의
출발이라 생각된다. 이후 그녀의 여러 작품에서도 전쟁은 되풀이된다. 그뿐 아니라 PX에서 근무한
이야기와 박수근 화가의 이야기를 빗댄 이야기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도 어김없다. 그래서 가끔은
작가에게 있어서 전쟁과 가족사는 풀어도 풀어도 끝없는 실타래일지도 모르기에 지속적으로 살아숨
쉬는 것이 아닐까라고 여겨진다.

전쟁은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간다. 주인공 경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여자이
다. 그러나 불안한 시대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한참 꽃이 피는 나이지만 온통 회색빛으로
둘러싸인 경도 피해갈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집 일부가 날아갔고 거기서 오빠들은 죽었고 그로인
해 어머니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은 이 땅에서 전쟁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은
아직도 끝이 없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암울한 회색빛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은 아직 성장하고 있었기에 온몸으로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그녀를 향해
웃음 한번 주지 않고 자신만의 상처에 빠져있었고 경은 방황하고 목적 없는 몰두와 간절한 그 무언가를
갈망하며 허우적거렸다. 나 또한 20대 초반에 정체성을 찾고자 부단히도 허우적거리며 까닭 없는 외로
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경처럼 어떤 일인가 일어나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여겼다. 물론 나는 경처럼 확고하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만큼
많이 깨지기도 했지만.


그놈도 자신을 역겨워하고 있는 눈치였어. 그래서 그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 게야.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태엽만 틀면 그 시시한 율동을 안할 수 없고… 한없이 권태로운 반복, 우리하고 같잖아.

[172쪽, 화가 옥희도의 말.]



내면의 혼란과 어딘가 비어 있는 상태를 간직한 사람들은 한눈에 서로 알아보는 것일까.
경과 옥희도는 서로에게 끌렸으며 기꺼이 상대의 탈출구가 되었다. 그러나 구원까지는 해줄 수 없었다.
경에게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옥희도에게는 화가로 살고자 하는 예술적 소망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계를 쉽게 사랑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는 이유다. 하나의 끌림이 반드시 사람관
계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 하나로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사랑보다는 미치도록 몰두할 그
무엇이 절실했다. 경은 오빠들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억누르며 살았고 자신을 보지 않는
엄마에게 작은 관심을 받기를 원했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그것을 잊어버릴 달콤한 알약이 필요하다. 누
군가가 절망의 나락에서 건져주거나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외로움
까지 벗겨줄 희망이었다. 경은 친절하지만 때로는 심술도 부린다. 그러나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가는 모습에서 덤덤하지만 강한 모습을 보았다.

제목이 나목(裸木)인 이유는 넘어가는 책의 두께가 줄어들수록 알게 된다.
눈앞에 닥친 현실의 어려움이 고목처럼 소름끼치게 두려워도 지나고 나면 여유 있게 웃으며 말할 수 있
듯 경의 눈에도 고목은 나목으로 다시 보인다. 이것이 삶의 신비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봄을 기다리듯 나목(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을 보며 또 한 번 주어지는 봄을 감사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나긋하게 흘러가는 작가의 문장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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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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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으니 그저 무관심하다고
할 수밖에...그의 시를 읽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한 것
은 지인이 이 책만은 해마다 꼭 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책인지
호기심이 일어 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로 읽을만했으며 나
도 해마다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다른 책에 순위를 뺏겨 밀리기 시작했다. 2004년 작
품집의 경우는 작가 김훈이 <화장>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김훈의 <화장> 이 한 작품만 읽고 더는
읽어 나갈 수 없었다.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작품에 실망해서는 더욱 아니었다. 오히
려 좋았으니까.

<화장>은 사람의 몸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표현했다. 아내의 화장(火葬)과 그녀의 화장(化粧)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묶여있듯 말이다. 특히나 그녀를 표현하는
문장은 건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상형을 보는 듯 애처롭기까지 하다.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는 것인지
주인공에게는 여신(女神)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아내와 병들고 늙은 주인공 그리고 생생
한 그녀를 오가며 삶을 보여준다. 진지함과 가벼움이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듯 그렇게 천천히...단편임에
도 오롯하게 느껴진다. 아내의 개를 안락사시키는 모습에서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는 내 모습을 보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명은 소중하지만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늙고 병든 그는 그런 결정을 한 거
라고 이해해본다. 오늘도 일 초의 시간까지 재생되고 있는 삶에서 내면을 들여다 본 시간은 과연 몇 초
나 될 것인가. 작가 김훈이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쓰기를 기대한다.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
다>도 좋았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
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
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희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
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ㅡ 김훈, 에세이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69쪽


특별상을 받은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느낌이 끝까지 일치했다.
잘 발효된 된장처럼 작가의 역량이 조절된 글에서 숙연한 느낌도 받았지만 교과서적이라는 느낌은 지
울 수 없었다. 하지만,누구나 방식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기억에 남는다.

소설은 낡고 오래된 것 속에서 새롭고 아름다움을 찾는 미학일지도 모른다. ㅡ 문작가의 말, 107쪽

김승희의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은 티타임(tea time) 분위기로 여성작가 특유의 느낌이 묻어난다.
현대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지나 구성은 떠밀려오는 물결처럼 지나간다. 구효서나 전성태의 글과
는 대조적이다. 고은주의 <칵테일 슈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의 경고 같았다.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시적인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서론을 조금
풀어두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드라마를 보는 느
낌이다. 기러기 아빠와 불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은 좋았다. 마지막으로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
구리야>를 읽으며 딱 한마디가 생각났다. 「고마워, 과연 당신은 박민규야」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건
언제나 마찬가지니 말이야.

작가들 모두가 문학은 환상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고 표현한 거 같다. 차이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등인데 독특한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상문학상을 아끼는 독자
로 이 정도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무엇이 빠진 걸까. 독특하다는 말을 정확하게 쓰기에는 그 말이 조
금 아까운 것이다.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정도의 독특함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낡은 것이 꼭 나
쁘거나 새로운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님을(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듯) 인정하나 얼마나 제대로 그 세계
를 깨부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현상을 알고 있기에 궁지에 빠졌거나 고민하고 있
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깨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상문학상을 계속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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