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김훈의 글. 그간 읽으며 가슴을 저미게 한 소설도 있었고 또한 아름다운 문체에 깊이 빠져들어 작가의 사유에 감탄하며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자전거 여행을 읽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가 2007년이었는데 소설보다 훨씬 풍부한 작가의 문체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역시 그의 문체는 소설보다 에세이로 만나야 제맛이며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오래도록 갖고 있다가 이제야 펴든「자전거 여행 2」는 이미 절판되어 다른 표지로 바뀌었다. 그런데 내게는 지금 이 책의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책장에 오랜 시간 두어서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그의 애마인 자전거 옆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어찌하다 보니 올여름 휴가는 2주간 드문드문 다녀왔다. 일주일마다 책을 골라서 읽는데 피곤해서 얇은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눈은 이미 이 책에 박혀서 손도 거부할 수 없었다. 읽을 때가 왔나 보다. 난 자전거 여행 책을 항상 여름에 읽는다. 가을에 읽어야겠다고 벼르면서 내 뜻처럼 되지 않는다. 상관없다. 계절과 무관하게 활자들은 나를 반기니까.
 
 그의 유려한 문장을 좋아하는 나는 행복하게 책과 마주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첫 권을 만났을 때의 황홀경에 비하면 조금은 차분해진 느낌이다. 아니면 그동안 내 책 읽는 취향이 변했거나 수준이 달라졌을지도. 처음은 무덤덤하던 내 심장이 후반으로 갈수록 과연 김훈이구나를 실감한다. 초반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작가의 사물을 보는 각도. 채움과 비움, 있음과 없음, 앞과 뒤, 시작과 처음 등의 모든 상반되면서도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관계적 느낌이었다. 그 반복은 줄기차게 이어져서 끝까지 유효하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문다. 활자로만 읽자면 단조로운 지겨움이 되겠지만, 사유의 세계로 이끄는 손길을 따르자면 철학적이다. 이런 성찰력은 매력 있다. 아름다운 글로만 끝나지 않고 들여다보고 곱씹는 맛이 있으니까. 멀지 않은 광릉 수목원에 가서 한국의 재래종 연꽃이라는 노랑어리연꽃도 보고 싶어졌다. 가평 산골 마을의 역사와 남한산성 등의 이야기에서는 치열하게 역사에 관심을 보이고 소설을 내놓은 그의 애정어린 마음도 다시금 느껴진다. 소설「남한산성」이후로는 역사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도 아쉬울 수가 없다.
 
 전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난 전편에 더 열광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이 책도 괜찮았다. 김훈의 최근 몇 년 작품은 읽지 않아서 모르나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 피곤한 여행 후에 차분하게 쉬며 사유하게 해준 책이었다.
 
얼굴은 내면의 풍경이고 외계로 향한 창구다.
얼굴의 언어는 말의 언어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언어이다.
사람은 말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교신한다.
 
229쪽, 얼굴 그 안과 밖에 대한 명상中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6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여러 해 동안 1등을 차지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의미인데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칭하는 이유를 이 책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존경받는 여러 종교인이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피에르 신부처럼 휴머니스트이며 더불어 사는 기쁨을 이미 알며 실천하는 분들이다.
 
 앙리(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9세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레지스탕스,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으며 그가 가장 주목받을 만한 이유인 빈민구호 단체 '엠마우스'를 만들어 삶이 힘겨운 이들을 위로하며 보냈다.
 
 이 책을 쓴 동기는 자살 생각에 사로잡힌 힘겨운 사람에게 편지를 받았고 편지의 물음이 삶의 의미 즉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피에르 신부는 스스로 질문을 하며 생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린 명확한 결론이 바로 책의 주제이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기쁨 그 단순한 기쁨을 위하여.'
 

 삶에 대해 몽상하지 말자, 삶을 만들어가자. 공허한 말에 만족하지 말고 사랑하다. 그리하여 시간의 어둠에서 빠져나갈 때, 모든 사랑의 원천에 다가서는 우리의 마음은 타는 듯 뜨거우리라. 

 

                                           228쪽. 애타게 기다리던 만남 中 일부. 

 책의 구성은 1장 상처입은 독수리들, 2장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확신, 3장 만남을 향하여로 짧지만, 공감과 생각을 이끌어 낸다. 첫 장에서 '엠마우스' 단체에 대한 이야기 등을 따라가며 피에르 신부에 대해 바로 파악하게 되며 2장과 3장은 종교적이지만 비종교인이 읽기에도 부담이 크지 않다.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54쪽. 희망 中 일부.

  이 한 문장을 접하자 지난주에 만났던 김영하의『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떠오른다. 유디트와 미미로 대표되는 이들 또한 이 문장을 접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누구든 단순하게 정의하고 분석할 순 없다. 소통의 부재는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란 언제나 어렵고도 쉬운 일이다. 피에르 신부의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이 바로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의 폭을 넓혀본다. 나조차도 한때는 사랑 운운, 사랑 따위라며 냉소적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사랑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거기에 내 믿음의 세번째 확신이 있다. 인간에게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수십억 개의 은하계로 구성된 거대한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알기로 인간만이 자유를 부여받은 유일한 피조물이다. 거대한 우주에 비춰볼 때 너무도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인간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를 가진 존재이며, 이 자유가 그로 하여금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105~106쪽. 세 가지 확신 中 일부. 

 종교에서는 주님이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피에르 신부는 '교회 밖에서의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편협한 사고라고 한다. 물론 이 의견에 공감한다. 사람들이 교회에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경계 혹은 그 근처 어딘가에 서 있는듯하다. 교회를 다니며 기도를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게 어렵다. 그러나 조금씩 나아지는 나와 만날 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른다. 책의 내용에서 2장이 많이 와 닿았다.

 

 그리고 3장에서 자유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다시 한 번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피에르 신부는 결코 연설적이지 않고 포용력이 있으며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며 그간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내 생각과 누군가의 생각이 맞아들어가는 한 지점을 발견하면 어찌나 기쁜지 말이다. 명상자에 대한 생각 또한 일치했다. (자세한 내용은 책 200~201쪽 참고.)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피에르 신부가 친절하게 내게 속삭이는듯했다. 사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이 타인을 위하는 종교인의 온화한 삶에 대한거려니 했는데 읽으며 공감대도 크고 울림도 있어서 신부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확실히 다르지만 그런 구분조차 할 필요가 없다. 그게 피에르 신부식의 세상을 감싸 안는 포용력이 아닐까. 닮고 싶은 부분이다.

 

 단순한 기쁨이라는 제목과는 역설적이게 단순함을 넘은 오묘한 기쁨이 함께하는 책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복잡함이 아닌 단순함 속에서 빛나고 있었던 거 같다. 참 단순한 진리를 새삼 느낀다. 독자 누구나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피에르 신부의 개인적인 철학을 더 알고 싶어서 다음에는 그런 책을 찾아 만나봐야겠다. 

 

 (사족이지만 그런데 가끔 문장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 건 번역의 한계일까. 아니면 내 사고의 한계일까. 프랑스어 공부해서 직접 읽고 싶어라~~)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2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감정적이지 않고 다소 차가운 느낌이지만 흡입력이 있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요구했다. 흥미진진한 여러 요소가 있음에도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펼쳐 들지는 않았다. 한 권으로 작가를 판단하기는 이르겠지만 내가 좀 더 젊었다면 아니 더 모험적이었을 때였다면 아주 좋아하고 빠졌을 거 같다. 다시 읽은「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처음처럼 강렬하지 않지만, 여전히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의 특징은 일단 두드러지는 제목이다. 제목을 잊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파괴할 권리란 나를 진흙탕에 마구 파묻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은 스스로 삶의 종지부를 찍는 것을(자살) 의미한다. 제목만 읽고도 바로 아는 독자도 있겠지만 난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를 어디까지 몰아갈 수 있나의 의미로만 생각했으니까. 자학 정도로. 
 
 나는 자살을 권리와 책임의 윤리적 혹은 종교적 측면까지 생각해서 절대 반대를 고수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제목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작가의 발칙하고 관능적인 이야기를 이해한다. 한때 잠시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경험 때문일까. 삶을 즐길 수 없는 무의미한 절망의 시간이 길어지자 산다는 게 괴롭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잠시 영원한 휴식에 대해 떠올렸다. 내 안으로만 침잠하던 때였는데 돌아보니 나 역시도 그때는 단절된 상태였다.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자꾸만 그 늪으로 빠져들던 시간. 그리고 또한 책에서 나오는 이처럼 생의 끝을 지켜주는 이(자살 도우미 정도.)와 비슷한 직업에 대해 뜬금없이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내가 우울과 냉소의 끝을 달리며 느꼈던 것들이 약간은 들어있는 책이다.  
 
 명화의 선택은 탁월했다. 클림트의 유디트,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까지. 그러나 그렇게까지 미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왜일까.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서인가. 그가 대하는 미술의 방식은 짧지도 깊이 있어 보이지도 않으나 보통이상임은 분명하다. 특이한 소재를 명화와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좋다. 작가의 번뜩임과 개성이 느껴진다. 동시에 조금은 투박함도 느꼈다. 더는 함몰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의 거친 신선함 때문이지 않을까. 김영하가 20년 후에 이 책을 썼다면 어떤 느낌일까. 신선하지 않아도(이미 세상은 너무도 자극적이지 않은가.) 중후하거나(그의 꾸준한 저작활동을 생각하여.) 광시곡적인 죽음의 전염을 퍼뜨리지 않았을까. 아, 이런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영화〈글루미 선데이〉가 겹친다. 작가 김영하의 초기작인 게 우리에게는 다행인지도 모른다.    
 
 책의 등장인물들을 두 번째 만나니 놀랍지는 않으나 이내 수긍하게 된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그만큼 시대는 변했고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넘쳐나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작가는 시대를 앞서 간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당시의 충격이 미래에는 보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나 놀랍지도 않다는 것. 서글픈 현실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161쪽, Ⅴ. 사르다나팔의 죽음 중.
  나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든다. 어떤 의미로 적었건 난 이 문장으로 인해 책장을 덮고도 마음이 편안하다. 전혀 착잡하지도 죽음이나 그 어떤 우울한 인자에도 감염되지 않는다. 그것이 이 문장의 힘이고 작가의 힘이라고 여긴다. 결국, 어디로 흘러가거나 도망쳐도 달라지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이를 두 가지 반대의 입장에서 풀어보자면 전자로 어차피 변할 게 없는 인생 될 대로 돼라지. 자포자기적인 입장. 그리고 후자로 여기서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도 결국은 달라질 게 없으니 포기 말고 여기서 버텨내자. 그렇다면 선택은 독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각자의 기분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결말이다. 책에서 주는 중첩의 의미.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것과 매우 닮아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분법적 결말을 내고 모아니면 도가 될 수도 있으나 사실 그 경계는 지극히도 주관적이며 선택적일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타인과의 소통이 끊어지고 다가서지 않는 차가운 무관심. 그 소리 없는 침묵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 파괴적이다. 다시 제목을 돌아본다.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타인이 나를 파괴하는 힘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묻고 싶은 한 가지. 스스로의 파괴에 만족하십니까? 유디트건 미미건 영원한 휴식을 치른 이들은 대답이 없을 뿐이다. 아무리 평온한 얼굴로 남아있어도 싸늘해진 그들의 피와 영혼이 대답 대신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우울함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피상적인 영혼을 위로하며 생의 희망적 당위성을 찾아 나서게 하는 힘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텍스트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것들과 새롭게 부여한 나름의 정의. 역시 작가는 독자를 집요하게 꿈꾸고 생각하게 독려하는 존재들이다.  
 
 작가 김영하의 다른 책을 이제서야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생각거리가 없는 책은 이미 글자 장식에 불과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선정성과 논란 혹은 부자연스러움으로 다져진 책만이 아님이 분명했다. 따뜻한 책은 아니지만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 책좋사(http://cafe.naver.com/bookishman) 책읽기 프로젝트 50 8기, 1주에 만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보면 참으로 여러 유형의 책과 마주하게 된다. 필요에 의한 책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책까지. 그래서 다양함 속에 때로 부산하게 책장만 넘기다 마는 때도 있다. 그러나 책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반대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문장이나 상황, 인물을 간접적이지만 그 어떤 직접적인 상황보다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을 딱 만나기 때문인데 이때의 공감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신기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말과 위로보다도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 다정하게 속삭여주니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와 그녀도 즉 타인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비록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존재에서 느껴지는 감동의 파장은 뜻밖에 크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은 바로 책을 읽으며 우리가 느꼈던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게다가 한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추억이나 감정까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다.

 

 저자 서유경은 현재 네이버 책 관련 파워블로거(http://littlegirl73.blog.me)로 특히나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소설을 드물게 읽었던 내게는 그래서인지 참으로 반가운 책이었다. 한국문학 속 인물 등을 통해 풀어낸 그녀의 일상과 문학 이야기에 빠져보자!

 

 

순임이 엄마와 주인공의 삶이 같을 수 없다. 다만, 산다는 건 누구나 같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절망을 어떻게 길어 올릴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매일매일 절망을 끌어 올리며 그 순간을 행복해하는 순임 엄마처럼 말이다. 

 여름마다 장마는 찾아온다. 우리는 장마가 끝날 걸 알면서도 장마가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장마가 끝난 후 더 큰 태풍이 몰려올까 걱정하는 것이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는 지금, 이곳이 병원이 아니란 사실에 감사하다. 삶은 때때로 장마의 날들을 견디는 건 아닐까. 지루한 장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 것이다. 회색 하늘이 걷힌 자리에 뜨거운 태양이 당당하게 설 것이다. 뙤약볕 더위가 몰려오면 한편으로는 장마의 날들을 그리워하니까.

 

-본문 57-58쪽. 절망을 어떻게 길어 올릴 것인가: 절망을 건너는 법 중에서. 

  공지영의 단편 <절망을 건너는 법>을 읽지 않았더라도 저자의 이야기에서 독자가 느끼는 공감대는 다시 한국소설로 이끈다. 돌아보건대 소설 그중에서도 한국소설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진다. 우리와 동시대에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점. 게다가 비슷한 상황과 인물을 통해 함축적이지만 잊고 살던 기억이 불쑥 고개를 쳐든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는 그래서 속도가 더뎌졌다.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여기에도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쉬이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찌 보면 무게감이 잠시 엄습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그 무게감의 삶의 고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버거움이 아니라 오래전 헤어진 그리운 무언가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점점 공감의 폭은 커졌고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분명 치유하는 책읽기이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시종일관 독자와의 유대는 이어가면서 차분했다. 담담한 어조여서 더 좋았다는 말이다.

 

 마음이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할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떨림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사실 서평도 임신 후 몇 달만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두서없이 쓰게 되었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책이라 털렁털렁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써야 하는 서평이 여러 개 있는데 도무지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만으로 실로 오랜만에 흐뭇함을 느끼고 있다. 무료하고 지친 일상을 오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4-23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담담하면서도 동시에 포근한 저자의 글. 치유하는 책읽기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