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당신은 그게 무엇에 쓸모가 있는 거냐고 묻지 않는군요. 나를 화나게 하는 질문이거든요. 

 우리는 무엇이든 쓸모가 있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쓸모가 있다>는 동사는 <뭔가의 노예가 된다>는 어원을 갖고 있죠. 그리고 자유의 개념을 구현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예요. (중략) 인간에게 새들의 무사태평을 제안했거든요. 그 무사태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예요. 왜냐하면 사실 새들의 자유는 전혀 무사태평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새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자유로워질 수 있긴 한데, 그것이 무척 어렵고 불안을 야기한다는 사실이예요. 새들을 보면 늘 주변을 살피죠. 공연히 그러는 게 아니예요. 자유란 원래 불안한 거예요. 우리와는 반대로 새들은 그 불안을 받아들여요.]

(중략)

 [내 얘기에 관심없죠?]

 [아뇨, 아주 교훈적이네요.]

 <교훈적>. 그는 그 말을 참아 내기가 힘들었다. <교훈적>, 그 말은 마치 욕설처럼 들렸다.


- 151~153쪽


다른 교훈

자연이 한 대상에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새기고 

예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색조로 칠한다 해도,

하나의 가슴을 민감하게 만드는 데는

그 어떤 자연의 선물들도 사랑이 발견하게 하는

단 하나의 보이지 않는 매력보다 못하노니.


- 역자의 <고수머리 리케> 번역에서 224쪽


 아주 오랜만에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었다. 신입사원들에게 강의할 때 즐겨 그녀의 소설속 한장면을 인용하곤 한다. 의욕에 차 회사에 입사한 주인공이, 온갖 단순업무에 시달리며 밤새 장부를 맞추고 맞추다 정신을 놓고 아침에 나채로 서류더미에서 발견되는 장면이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 바, 우리가 모두 알다싶이 그 회사를 때려치운 끝에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에 따르면 왕따의 피해자가 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표현이 적은 친구들이란다. (원래 성격이 아니라 왕따의 결과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여하튼 이 소설의 여주인공, 우리나라였으면 천사처럼 예쁜데 말한마디 않는 그녀의 고등학교 생활은 대재앙이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미묘한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몹시 못생겼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남자주인공은 어떤가? 새만 쳐다보는 초천재가 남자동년배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그의 진중한 태도가 먹혔는지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있다는 설정은 다소 의아하다. 


여하간 그가 어떤 사람이건 사랑은 서로에게서 미친듯이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한다. 일찍히 김춘수님이 말씀하셨지 않는가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된다고.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길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신작을 읽고 아 내가 왜 이 작가의 책을 그만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난 소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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