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빌라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2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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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날씨가 수상하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눈깨비가 내린다. 쿠궁쿵쿵 어디선가 구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하늘이 보인다. 이게 무슨 조화속인지... 그러기를 반나절째다. 봄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렇게 요란한 신고식을 해놓고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슬쩍 가버리고 만다. 이런 날씨를 빗대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인생도 그렇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조차 끝까지 살아보지 못했으면서. 이 소설도 그렇다. 아직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결국 그들의 짧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좋아질만한 티끌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결국 나도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고 말았다. 후우~ 큰 숨을 내뱉으면서, 삶을 내려놓는 그 때부터 그들의 봄은 시작일거라고 생각해버렸다. 누구나 인생의 봄날을 꿈꾸며 산다. 그러나 누구나 인생의 봄날만을 꿈꾸며 살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에 봄날같은 따스함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희망을 꿈꾸긴해도. 주인공 솔희가 그랬을 것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끝내고 그녀가 갖고 싶었던 건 더딘 겨울이 잉태하고 있었을 그 따스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소개글을 보다가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세계문학상수상작을 몇 편 읽어보았지만 작가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손을 내밀었다.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내 심장을 쏴라>, <컨설턴트>, <저스티스 맨>, <꽃그림자 놀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꽤나 많이 배출되었다. 각 작품마다의 특징이 이채로워서 현실적이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느낌을 받았었다. 시냇가빌라라는 이름처럼 맑고 고운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았겠지만 책의 주제는 의외로 무겁다. 사랑인 듯 보이나 사랑이 아닌 실체를 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고 있음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무심함과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있다. 남편의 폭력과 두 번의 유산, 그리고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 남편의 뻔뻔함에 질려 그녀는 이혼을 했다. 4년간의 결혼생활이 그녀에게 남긴 것은 모멸과 분노였다. 그 후 그녀 솔희가 살게 된 곳이 바로 시냇가빌라다. 그러나 삶은 잔인하다. 가난한 생활과 이웃과 얽히는 모든 일이 전쟁이다. 전쟁은 우군과 적군을 동시에 만들어내며 이해와 오해 또한 쌍둥이처럼 같이 온다. 그 전쟁에서 누가 패자이고 누가 승자인가는 알 길이 없다.

 

'시신의 핸드폰에서 짧게 신호음이 울린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녹녹치않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들이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결말을 맺게 되어 미안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약자의 삶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당신은 알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만 같다. 어쩌면 작가는 그토록이나 추웠을 그들에게 따스한 봄날을 조금 더 일찍 느끼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냇가빌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다. 주인공 솔희는 201호에 산다. 툭하면 올라와 솔희를 죄인다루듯 하는 아래층 여자, 척추장애를 갖고 있는 302호의 해아저씨, 그 아저씨를 짝사랑하는 202호의 공방아줌마, 301호의 늙은 화가와 야쿠르트 아줌마, 솔희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티티와 강아지 말랭이, 굳이 보내지 말라는 붕어즙과 붕어찜을 온갖 나물과 함께 보내는 솔희 엄마, 이혼 후 1년쯤 지나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하는 남편... 짐작대로 그들의 삶은 그들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고스란히 그림처럼 옮긴 작가의 글은 흡입력이 대단하다. 마치 영화와 책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마치 우리 옆집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공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그 화이팅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에. 날씨는 여전히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중이다. /아이비생각

눈이 다시 내린다.

아직도 세상을 하얗게 덜 칠했나 보다.

하얗게 모두 칠하면 세상은 더없이 고요해질까.

경건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순백의 은혜로움으로 밤마다 뒤척이는 모든 지상의 아픔들을 어여삐 거두어주실까.

잠시 소망해보는 사이,

눈은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내린다.

눈은 제법 내릴 것 같다.

- 14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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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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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주인공부터 알고 가야 한다. 붉은머리 오목눈이... 흔히 뱁새라고 불리운다는 작은 새. 주로 한국이나 중국, 미얀마등에서 살며 참새와 비슷하지만 벼이삭보다는 풀씨나 곤충류를 먹고 산다. 키 작은 나무에 지푸라기와 죽은 잡목의 나무 껍질등을 거미줄로 연결해서 둥지를 만든다. 붉은머리 오목눈이의 둥지는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보통은 푸른 색의 알을 낳고 뻐꾸기와 누룩뱀이 천적이다. 그런데 뻐꾸기가 천적이라고? 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잘 알다시피 뻐꾸기는 탁란으로 유명하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그 새로 하여금 자기의 알을 부화시켜 키우게 한다. 그런데 그 뻐꾸기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대부분 붉은머리 오목눈이라고 하니 천적이라 할 만 하다. 뻐꾸기의 탁란은 자연다큐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루나 이틀 먼저 부화하여 자신 가까이에 있는 알이나 나중에 태어난 다른 새끼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거지? 했었다. 그런 모든 과정이 자연의 순리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모든 것의 불행은 순리를 거스를 때 찾아온다. 자연의 법칙 또한 그렇다. 자연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흐른다. 아프면 스스로 치유해가면서. 너무 빠르면 잠시 늦추기도 하면서. 그러나 인간은 어떤가. 엄청난 자연속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만도 못한 존재이면서 하늘 아래 저만 잘난 줄 알고 사는 게 인간이다. 昨今에 이르러 빈번하게 일어나는 자연재해만 봐도 이제는 우리의 삶도 느슨해 질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함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빠르게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가고 있는지 한번쯤은 살펴봐야 한다고.

 

오목눈이 육분이는 세번이나 뻐꾸기의 새끼를 키워냈다. 제 새끼를 밀어내는 뻐꾸기 새끼를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육분이의 이름은 원래 육분의다. 육분의는 별자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배의 위치를 판단하기 위해 천체와 수평선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는 기기라는 걸 나는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눈치가 빠르다면 육분의라는 이름이 뭘 말하고 있는지 미리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던 새끼 앵두가 뻐꾸기어미를 따라 가버리고 난 후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 육분이는 마침내 길을 떠나기로 한다. 앵두가 그립기도 했지만 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고난을 겪어내며 마침내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앵두를 만났으나 육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왜 그랬을까? 이쯤에서 말해두자면 뻐꾸기는 철새다. 5월초에 찾아와 탁란을 하고 새끼가 자라 날 수 있게 되면 제 새끼를 불러내 8월초에 다시 떠난다. 뻐꾹뻐꾹하며 우는 게 수컷이고 암컷은 삐이삐이하는 소리를 낸다.

 

어른에게 들려주는 동화, 라는 말은 이미 시작부터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寓話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장르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童心을 한자락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면 빡빡한 삶의 바퀴가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오래전에 읽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멋진 삶을 위해 평범함을 거부했던 갈매기 조나단의 모험을 그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모험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어머니께 이 글을 바칩니다,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이 뻐꾸기새끼를 제 새끼인줄 알고 키워낸 오목눈이 엄마새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그러나 오목눈이 엄마새의 여정을 통해 작가의 안타까움이 담긴 또하나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아니 세 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새와 뻐꾸기의 삶에 대한 것이 그 첫번째이고, 세번이나 얽힌 뻐꾸기와의 묘한 인연에 대한 오목눈이의 철학적인 성찰이 두번째이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작가의 메세지가 세번째 이야기이다. 책띠에서 보이는 말이 따갑게 눈에 들어온다. 의미없는 비교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작고 고독한 오목눈이가 전하는 삶의 아름다운 가치.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 책띠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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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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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빈센트 반 고흐 형제의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딱히 제목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 이 그림! 할 것이다. 그만큼 색채감이 강렬하다. 하지만 당시의 미술계에서 그의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다. 추상화라는 장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대중도 사진처럼 잘 그려진 풍경화나 인물화를 더 인정했던 시기이니 우리가 당대의 화가로 알고 있는 마네나 모네도 무시당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고흐의 자화상에 얽힌 일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고갱과도 연관이 있는 일화다. 일전에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으면서 고갱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았다. 이 책을 통해 고흐라는 화가를 다시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동생 테오와의 편지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1890년, 37세의 나이로 고흐가 죽었을 때까지도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죽은 후에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평탄하지 못했던 그의 삶의 통해 그가 그리고자 했던 그림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하지만 그의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주제넘은 짓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원적인 풍경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도 있겠지만 자연에 공감하는 그의 탁월함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청년이 되고 독립을 해야 할 시기가 되어 목사인 아버지의 길을 따라 전도사로서의 삶도 살아보게 되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술로 가는 길은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 때 그에게 구세주 역할를 하게 된 것이 동생 테오다. 화랑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테오에게는 형의 존재가 어쩌면 어깨를 짓누르는 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형제사이가 늘 좋을 수 만은 없었다. 각각의 삶으로 존재하지만 또 같이 가야할 삶이었기에 형제의 고뇌는 깊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견뎌내며 정신적인 아픔으로 인해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고흐의 그림은 날로 발전하게 된다. 좋아지는 그림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형제의 시선에도 따스함이 묻어나기 시작하지만 삶의 수레바퀴는 때로 자갈밭길에서 삐그덕거리기도 한다. 운명의 장난일까? 고흐와 테오는 무슨 일인지 비슷한 삶의 여정을 걷게 된다. 사랑도 건강도. 그렇지만 형제는 더욱 더 강한 형제애로 그런 삶의 힘겨움과 맞서 싸운다.

 

사실 고흐의 작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동생 테오의 덕분이 아니었다. 테오의 아내 요의 노력으로 고흐의 작품은 세상과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고흐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요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남편 테오와 고흐의 형제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점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고흐와 테오가 살아 생전에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편지를 정리해 책을 냈기 때문이다. 고흐의 작품을 소중하게 여겨 갤러리가 아닌 일반 집에서 그의 작품만을 전시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물려받은 조카 빈센트 빌렘 반 고흐가 반고흐 미술관을 설립하는 일을 도왔다.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설립되어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갔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동생 테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고흐의 작품을 바라보는 깊이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난 후 고흐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아를풍경>, <꽃이 핀 과수원>, <씨 뿌리는 사람>,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 <생 레미 요양소의 정원>, <폴 고갱의 의자>, <우체부 조셉 룰랑의 초상> 등 엄청나게 많은 그림이 태어나게 된 배경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놀라워라, 고흐의 <자화상>이 그렇게만 많았다니! <해바라기>시리즈는 또 어떻고! 그럼에도 그 강한 색채로 인해 그림에 대한 나의 완고함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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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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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그 이름만큼이나 열린 집안이었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물론 집안의 가풍도 한몫을 했겠지만 당사자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도 대단했을 것이다. 어릴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여동생을 위해 오빠는 당대의 문인에게 그녀를 맡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자랐던 집안과는 다른 가풍을 가진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그녀의 재능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는 시기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녀의 기에 눌린 남편은 바깥으로만 돌게 된다. 그러던 중 친정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자신의 처지를 어찌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병마가 찾아온다. 그리하여 그녀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다. 허난설헌의 이야기다.

 

마틸드라는 여자가 있었다. 예쁘고 매력적이었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또 가난한 남자와 만나 결혼을 한다. 어느날 남편이 내밀었던 초대장으로 인해 그녀는 지난한 삶을 살게 된다. 무도회에 가고 싶어 남편이 모아 두었던 돈으로 옷을 사고 거기에 걸맞는 보석(다이아몬드 목걸이)을 빌려 파티장으로 간다.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 잃어버린 목걸이를 사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빚에 허덕이게 된다. 세월이 지나 자신이 빌렸던 목걸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모파상의 <목걸이>다.

 

'여자'라는 주제를 앞세워 얘기하라고 하면 나는 위에 언급한 두 여자를 떠올리게 된다. 죽은 뒤에야 동생에 의해 당대의 문인소리를 듣게 된 허난설헌의 안타까움도 그렇고,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 10년이라는 세월을 힘겹게 보내야 했던 마틸드의 삶도 그렇고 왜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만약 허초희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마틸드라는 여자가 자존심따위는 잠시 접어두고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그녀들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형의 집>을 탈출하게 되는 노라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여기 이 책도 그런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늘 어떤 형식에 꿰맞추듯 살아가는 소설속의 여인들을 불러냈다. 그저 시대적인 흐름이 그랬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좀 아쉬운 점이 많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속 그녀들의 삶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일단 언급하고 있는 책이 너무 많다. <여자의 일생>, <보봐리 부인>,<목로주점>,<골짜기의 백합>, <적과 흙>, <마농 레스코>, <소녀 파데트>,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주홍글씨>, <작은 아씨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캐롤> 등 무려 57편이나 된다. 그 중에서 일본작가의 작품이 21편이나 된다. 그 많은 책을 언급하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책속의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 짓밟히거나 현실과 타협하거나 자신의 꿈을 향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이 책은 지독히도 주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책을 읽지 못했다면 작가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게 쉽지 않을 듯 하다. '고전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이라는 말 책의 제목 아래에 보인다. 말 그대로다. 그러니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다면 이 책과 마주해도 나쁘지는 않겠다. 단, 당신도 어느 정도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의 수다만 고스란히 들어줘야 할테니까. 덕분에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더 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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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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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가라는 옮긴이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 출신으로 <오베라는 남자>를 쓴 작가다. 나는 아직 읽지 못했기에 그 작가가 궁금했다. 전작 <베어타운>을 먼저 읽는 게 순서겠지만 책을 읽다보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작품때문에 호기심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그런데 이 책 한 권을 다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당신의 소설을 읽고 싶었던거지 그렇게 깊고 따분한 심리학 강의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느라 애썼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책을 덮고나서. 그가 왜 그토록이나 많은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를.

 

우리편이 아니면 남의 편이 아니라 적이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책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벤이는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고, 비다르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마야는 성폭행을 당했고 마야의 친구 아나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두었으며 마야의 동생 레오는 열두살이지만 누나의 일로 폭력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벤이는 최고의 하키팀 공격수이며 비다르는 타고난 골키퍼다. 하키팀 감독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마야는 하키보다 기타를 더 좋아하고 아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또한 마야와 레오는 부모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베어타운은 그런 곳이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도 없는 아주 지독히도 평범한 곳. 하지만 어딘들 문제없는 곳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문제의 해결점을 어떻게 찾는가이다. 그리고 삶은,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하나의 희생양을 요구한다. 뭔가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혹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불행하게 백 살까지 사는 거랑 행복하게 딱 일년 살고 죽는 거...(-70쪽) 둘 중 당신은 어느쪽을 택하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후자쪽을 택할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마도 후자쪽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베어타운의 중심이 되고 있던 하키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계기로 마을사람들은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된다. 선택 뒤의 불편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느쪽이냐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를.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오히려 그 문제를 덮지않은 사람을 원망하면서. 작가는 묻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 얼만큼의 신뢰와 관심을 갖고 있느냐고.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31쪽) 이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작가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일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갈등을 상당히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게 선택할 수 있고 누구나 그렇게 믿고 싶어할 수 있다고. 이 세상에서는 불공평한 게 공평한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438쪽) 라고 말하면서.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한다. 자기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인정할 때,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할 때 꼬인 것들은 풀리게 마련이다. /아이비생각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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