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고요 - 자연의 지혜와 경이로움을 담은 그림 에세이
보 헌터 지음, 캐스린 헌터 그림, 김가원 옮김 / 책장속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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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요'라는 책의 제목에 눈길이 갔다. 고요함이 낯설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분주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바쁜 생활, 시간에 쫓기듯 사는 생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묻고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자연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사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 머문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외면하며 살아갈 뿐. 아니 어쩌면 그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봄이면 꽃 구경을 하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하는 것이 자연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게다. 책 속의 말처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가로수도 자연의 일부일테지만 꽃이 피거나 단풍 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가로수를 일부러 쳐다보지는 않는다. 하물며 빛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나 발걸음 끝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어찌 느낄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것들을 싫어한다. 해충이 그렇고 잡초가 그렇다.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은 없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지.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 내심 놀랐다. 고요에 관한 에세이일거라고 미리 짐작했던 것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곁에 늘 머물며 한번 쯤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존재들. 자연은 위대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들 대부분 눈을 뜨고 있어도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속에 깃든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바로 곁에서 펼쳐지는 낯설고, 때로는 두려우리만큼 맹렬한 삶의 열기를 알아채지 못하죠.- 레이첼 가슨, 『침묵의 봄』 (-10쪽)

맞는 말이다. 세상에 오직 한 종류만이 존재하는 듯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다. 책의 들어가기를 넘어서면 1장에서 작은 생명체를 살펴보는 것으로 '고요'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딱정벌레, 메뚜기 말벌, 모기, 파리, 개미, 반딧불이... 모두가 거기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사는 동네에 나무가 많아서 산책을 자주 하다 보면 곤충들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거미, 지렁이, 사마귀, 메뚜기.... 그 많은 거미가 똑같은 모양의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수많은 생명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나무는 인간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찍! 쯔윗 찍~ 쯔윗! 후우~

이이~우우~리이~칵칵칵!

취취취! 쭈그쭈그쭈그! 띡띡띡!

쯔윗! 쯔윗! 투투투!

버르-베두 버르-베두

쯔르-쭈-쯔르-악

쫑쫑-디이이이잇!

까악! 크아아악! 꺽!

이게 무슨 말일까? 재미있게도 새들의 노래 소리를 표현한 문장들이다. 살풋 웃음이 났다. 살며시 소리 내어보니 재미있다.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새소리를 잠깐 들어본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했을까 싶다. 거의 모든 꽃잎 수와 솔방울의 나선, 해바라기의 씨앗 배열, 조개껍데기의 곡선, 달팽이의 집, 고사리의 싹등은 완벽한 피보나치수열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배운다. '나선, 폭발, 밀집, 구불거림, 갈라짐'은 자연의 대표적인 패턴이라고 한다.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마음대로 직선으로 바꾼 강줄기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곡선으로 바꾸는 강줄기가 많아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제대로 된 자연이다.

당신은 하늘이에요. 그 밖의 모든 건 그저 스쳐가는 날씨일 뿐이죠.-페마 초드론(-84쪽)

참 멋진 말이다. 소리 내어 읽어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본다. 스치는 바람을 느껴본다. 우리는 하루에 하늘을 몇 번이나 볼까? 또 구름은? 작은 곤충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별자리를 넘고 우주까지 간다. 작은 책 속에 이토록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책의 글처럼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그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말한다. 보고, 듣고, 걷고, 혹은 피부로 느끼거나 먹으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멋진 사진도 멋진 문장도 없지만 정감 어린 그림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책의 여정이 정말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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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그림 찾기 - 차별과 편견의 경계에 갇힌 사람들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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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의 경계에 갇힌 사람들'이란 부제가 눈에 띈다. 경계... 정말 경계에 서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어쩌면 그 경계를 이미 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쉽게 '다름'과 '틀림'이라는 말을 한다.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은 이렇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말처럼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나와 다르다면 그것은 곧 틀린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회가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생각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어내는 걸까?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진실은 생각보다 많다. 도처에 깔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쩌면 문명의 혜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해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이 책에서도 그런 점을 꼬집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견해를 인정하며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일 경우 승리감에 도취하기 쉽다고. 하지만 그런 도취감은 금방 사라져 그런 경험을 더 많이 갈구하게 된다고. 그러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벽을 쌓고 서로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안주하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배척하게 된다고.(-76쪽) 요즘 한창 세간에 이슈가 되었던 카카오톡 사태를 보면서 작금의 현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나 가볍게 연결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끊어질 때도 그렇게 가볍게 끊어진다. 그리고 원하는 것만 보고자 하는 편협함과 듣기보다는 들어주기 만을 원하는 사고의 일면을 보게 된다. 수많은 SNS의 글들은 제발 나 좀 봐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역전된 시선의 세상에 익숙해졌다는 저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물론 편향적 연상이 있다는 것이 곧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차별은 의도 없이,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어떤 문화 혹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된 집단(부족)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부족주의를 추구한다.(-75쪽)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만 요시미치는 결국 차별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최대의 적은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원래 그렇다' 거나 '당연하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미 만들어진 사고의 틀에 맞춰 생각을 한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왠지 핑계처럼 들리기도 한다. 앞의 말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삶이 있는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는 건 너무 피곤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같은 흐름을 타는 것은 엉덩이에 뿔 난 소가 되기 싫은 까닭일 것이다.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잠깐의 만족은 더 많은 일탈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처럼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책이다. '차별'과 '차이' 라는 말에 대해 깊숙히 생각할 수 있는 문장들이 빼곡하다. 책 표지의 그림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아이비생각

문제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굴종하게 만들어 일상생활의 미세한 국면에까지 지배권을 행사하는 규율, 교묘하게 정신과 일상을 조직하는 고도화되고 권력 장치로서의 파시즘이다.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이러한 파시즘을 '일상적 파시즘'이라 명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상적 파시즘은 '잡식성'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주정이든 전제정치이든 무엇과도 손쉽게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짝을 이뤄 찰떡궁합이 된 규범은 (혹은 그 규칙은)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타자화하고 배제한다. -중략- 벽을 만드는 시선, 우리 안의 파시즘을 들여다 볼 용기가 필요하다.(-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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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풀꽃 이야기 - 2025년 개정 3학년 2학기 국어활동 교과서 수록, 어린이를 위한 친절한 풀꽃 책
이동혁 지음 / 이비락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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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근무하고 있다. 식물을 연구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야생화 사진가, 풀꽃나무 칼럼니스트, 생태교육 강사로도 활동한다.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모두 풀과 나무에 관한 것들이다. <오감으로 쉽게 찾는 우리 풀꽃>, <오감으로 쉽게 찾는 우리 나무>, <꼭 가봐야 할 우리나라 수목원 & 식물원 23>,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손바닥 식물도감(봄편, 여름가을편)>, <야생화여행 꽃따라기>, <이야기가 깃든 우리 나무 30선> 등 많은 작품이 있다. 풀과 나무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이 늘 부러웠다. 한 때는 풀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었다. 산과 들로 나갈 기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지금은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손바닥 식물도감(봄편, 여름가을편)>은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저자의 전작 <풀꽃, 어디까지 알고 있니>를 읽고 다시 만나는 풀꽃들이 반가워 설레기도 했었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저자는 이해하기 쉽게 풀꽃을 소개한다. 목록을 보니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풀꽃들이다. 마음만 있다면 이 책을 들고 풀꽃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그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행복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숲해설가를 하고 있는 지인이 있어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무 이름, 꽃이름 제대로 불러주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의 모습을 알아야 그 나무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줄 수가 있는 까닭이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풀꽃들의 이름은 또 어떤가. 이 책을 통해 비슷한 이름의 풀꽃들에 대해 다시한번 배우게 되었다. 또한 아파트나 학교의 화단에서 만날 수 있는 풀꽃, 산이나 들에서 만날 수 있는 풀꽃, 물가에서 혹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풀꽃,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풀꽃으로 구분을 나누어 준 것도 이채롭다. 쑥부쟁이, 개미취, 구절초, 산국, 감국... 이 책을 통해 그 차이점을 뒤늦게 배워본다. 백합과의 참나리, 중나리, 땅나리, 말라리, 하늘말라리, 애기나리꽃, 뻐꾹나리도 잘 기억해둬야겠다. 전작 <풀꽃, 어디까지 알고 있니>와 겹치는 꽃들이 많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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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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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평가와 생존만이 과도하게 강조되며 가치 합리성보다는 목적 합리성이 더 중요시되는 분위기 속에서는 물질만능주의적인 사고관이 싹틀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실용주의를 극도로 추구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젊은이는 정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철학이나 지성적인 면은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지요. 싱가포르가 생존을 위해 채택한 국가적 원칙인 능력주의는 사회적으로 성공의 여지가 좁다고 느끼게 만들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해타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키아수 사고방식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싱가포르의 이러한 초경쟁사회의 분위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학교야말로 경쟁사회의 압축판이자 시험판입니다.(-73~74쪽. 초경쟁사회의 민낯, 싱가포르편에서)

우선 묻고 싶어진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선진국 기준은 단순히 GDP가 높다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른 교육수준이나 중산층 비율이 높아야 하고, 의료·교육·복지 제도가 잘 운영되어야 한다. 거기에 정치적 안정성과 시민의식까지 높아야 진정한 선진국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아직 아닌 듯 하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들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이채롭게 다가온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나라들 앞에 붙어있는 소제목들이 먼저 눈길을 끄는 이유다. 행복 이면에 숨겨진 모순, 덴마크... 초경쟁사회의 민낯, 싱가포르... 청산되지 않은 과거, 미국... 타자화된 역사의 그림자, 아이슬란드... 콤플렉스의 거울, 일본... 엘리트주의의 실체, 프랑스... 신자유주의의 그늘, 영국... 가족주의의 덫, 이탈리아... 물질만능주의 사회, 중국... 앞에 정의되어진 소제목들만 보고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어렴풋하게 유추해 보게 된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현재와 맞닿아 있을테니 말이다.

블레어는 1997년 10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 연설에서 "엘리트의 영국은 끝났습니다. 새로은 영국은 실력사회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말은 의도야 어떻든 분명 사회 정의를 위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한다는 외침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은 채 외치는 실력주의란, 신노동당이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중산층에게라면 모를까 노동계급의 약자들에게는 전혀 공정한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중략) 그의 '실력사회' 선언은 모순적이게도, 대처 집권 시기 열심히 일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신노동당 집권 시기에 이르러 부유층의 자녀들과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그 자녀들의 현실을, 마치 실력이 부족해서 비롯된 것으로 정당회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295~296쪽. 신자유주의의 그늘, 영국편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능력주의 혹은 실력주의라고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진정한 능력주의시대는 아닌 듯 보여진다. 민주주의라는 사회는 공평과 공정을 말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대는 이익을 목표로 한다. 결과적으로 10을 가진 사람보다 90을 가진 사람이 더 잘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말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교과서적인 이론만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절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낮은 출산율은 단지 경제적·인구적 차원에서 국가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신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한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려는 의지가 극도로 낮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가진 많은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신호이자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높은 고용 불안정성 때문에 출산 의향이 지연되는 노동시장의 여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안정된 주거 환경,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보다는 정규직 근로자의 보호에 중점을 두는 사회보장제도, 불충분한 돌봄 서비스 때문에 보육과 요양에 있어 가족 구성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또 잦은 정권교체와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집권으로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의 무능 등, 이런 이탈리아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결국 이탈리아를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든 사회'로 만들고 말았습니다.(-309쪽. 가족주의의 덫, 이탈리아편에서)

가족주의의 덫,이라는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역시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처해진 상황이 모두 대한민국의 현실과 다를 바 없으니. 덴마크의 '휘게'가 갈등 회피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폴리텍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직업교육훈련이라는 개혁 의지를 담고 있다고 나오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교육을 받자는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 시기에 국가 엔지니어로서의 독점적 지위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제 나라의 현실은 고려하지도 않고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은 것들만 죄다 가져오니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실험실의 쥐나 비이커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갈 뿐이다. 무리한 경쟁과 고강도 근무에 피로를 느끼는 일부 중국 청년들은 "적게 벌고 적게 쓰며 경쟁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어떨까?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주의조차 이겨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과연 마르크스가 말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지금 이 역사 속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언컨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뇌구조를 가졌다고 하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오류를 짚어본다. 만들어진 것들의 세계라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아니 간사하다. 인간에게는, 인류의 역사속에는 숨기고 싶은 이면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많이 보인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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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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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해수면 상승이야 수십 년 전부터 받아 온 경고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속도였다. 몇 년 새 스콜성 기후와 다름없어진 한국의 여름 날씨가 모두의 신경을 교란시키는 동안 해수면은 순식간에 불어나 해변들을 먹어 치웠다. 오래 지나지 않아 더러운 거품이 이는 바닷물이 주변 마을들까지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마을은 해변이 잠기는 데 걸린 시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아 물속으로 사라졌다.(-61쪽)

제목이 강하게 시선을 잡아 당겼다. 개인적으로 SF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책을 선택하기까지 조금은 망설였다. 하지만 책의 주제가 기후변화로 인한 사건들이라는 것 때문에 손을 내밀었다. 이 소설은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집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청년이라면 어떤 생각인들 하지 못할까 싶어서. 틀에 박힌 사고관념이 청년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주제가 명확하게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껄끄럽게 느껴졌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 어쩌면 그 느낌처럼 받아들이기 힘겨울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황을 이렇게 SF형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일단은 이채로웠다.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라는 말이 보여 찾아 보았다. 여러 개의 사건이 인과 관계에 의해 긴밀하게 짜여진 구성이 아니라,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는 연작 형식의 구성을 말한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주 종말을 이야기 한다. 어떤 학자는 말하지.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인류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 소설속의 내용은 기이했다. 정체불명의 생선을 배달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유전자조작을 떠올리게 되고, 검게 변해버린 해변이 사람들의 피부를 녹이는 부분을 읽으면서 작금의 상황을 보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은 이미 사라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외로워 한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게 된다. 종말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말, 지금 이 순간에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차오르고 있다는 말이 섬뜩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나온다.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기억에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그의 이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말이 왠지 가슴에 남는다. 조금은 특이한 경험한 기분이 든다. /아이비생각

"민주주의 사회는 눈앞의 이해득실에는 과민하게 반응하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재앙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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