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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평점 :
물론 해수면 상승이야 수십 년 전부터 받아 온 경고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속도였다. 몇 년 새 스콜성 기후와 다름없어진 한국의 여름 날씨가 모두의 신경을 교란시키는 동안 해수면은 순식간에 불어나 해변들을 먹어 치웠다. 오래 지나지 않아 더러운 거품이 이는 바닷물이 주변 마을들까지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마을은 해변이 잠기는 데 걸린 시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아 물속으로 사라졌다.(-61쪽)
제목이 강하게 시선을 잡아 당겼다. 개인적으로 SF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책을 선택하기까지 조금은 망설였다. 하지만 책의 주제가 기후변화로 인한 사건들이라는 것 때문에 손을 내밀었다. 이 소설은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집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청년이라면 어떤 생각인들 하지 못할까 싶어서. 틀에 박힌 사고관념이 청년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주제가 명확하게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껄끄럽게 느껴졌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 어쩌면 그 느낌처럼 받아들이기 힘겨울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황을 이렇게 SF형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일단은 이채로웠다.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라는 말이 보여 찾아 보았다. 여러 개의 사건이 인과 관계에 의해 긴밀하게 짜여진 구성이 아니라,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는 연작 형식의 구성을 말한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주 종말을 이야기 한다. 어떤 학자는 말하지.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인류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 소설속의 내용은 기이했다. 정체불명의 생선을 배달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유전자조작을 떠올리게 되고, 검게 변해버린 해변이 사람들의 피부를 녹이는 부분을 읽으면서 작금의 상황을 보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은 이미 사라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외로워 한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게 된다. 종말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말, 지금 이 순간에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차오르고 있다는 말이 섬뜩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나온다.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기억에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그의 이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말이 왠지 가슴에 남는다. 조금은 특이한 경험한 기분이 든다. /아이비생각
"민주주의 사회는 눈앞의 이해득실에는 과민하게 반응하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재앙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