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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요 - 자연의 지혜와 경이로움을 담은 그림 에세이
보 헌터 지음, 캐스린 헌터 그림, 김가원 옮김 / 책장속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낯선 고요'라는 책의 제목에 눈길이 갔다. 고요함이 낯설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분주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바쁜 생활, 시간에 쫓기듯 사는 생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묻고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자연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사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 머문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외면하며 살아갈 뿐. 아니 어쩌면 그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봄이면 꽃 구경을 하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하는 것이 자연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게다. 책 속의 말처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가로수도 자연의 일부일테지만 꽃이 피거나 단풍 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가로수를 일부러 쳐다보지는 않는다. 하물며 빛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나 발걸음 끝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어찌 느낄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것들을 싫어한다. 해충이 그렇고 잡초가 그렇다.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은 없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지.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 내심 놀랐다. 고요에 관한 에세이일거라고 미리 짐작했던 것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곁에 늘 머물며 한번 쯤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존재들. 자연은 위대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들 대부분 눈을 뜨고 있어도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속에 깃든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바로 곁에서 펼쳐지는 낯설고, 때로는 두려우리만큼 맹렬한 삶의 열기를 알아채지 못하죠.- 레이첼 가슨, 『침묵의 봄』 (-10쪽)
맞는 말이다. 세상에 오직 한 종류만이 존재하는 듯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다. 책의 들어가기를 넘어서면 1장에서 작은 생명체를 살펴보는 것으로 '고요'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딱정벌레, 메뚜기 말벌, 모기, 파리, 개미, 반딧불이... 모두가 거기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사는 동네에 나무가 많아서 산책을 자주 하다 보면 곤충들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거미, 지렁이, 사마귀, 메뚜기.... 그 많은 거미가 똑같은 모양의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수많은 생명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나무는 인간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찍! 쯔윗 찍~ 쯔윗! 후우~
이이~우우~리이~칵칵칵!
취취취! 쭈그쭈그쭈그! 띡띡띡!
쯔윗! 쯔윗! 투투투!
버르-베두 버르-베두
쯔르-쭈-쯔르-악
쫑쫑-디이이이잇!
까악! 크아아악! 꺽!
이게 무슨 말일까? 재미있게도 새들의 노래 소리를 표현한 문장들이다. 살풋 웃음이 났다. 살며시 소리 내어보니 재미있다.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새소리를 잠깐 들어본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했을까 싶다. 거의 모든 꽃잎 수와 솔방울의 나선, 해바라기의 씨앗 배열, 조개껍데기의 곡선, 달팽이의 집, 고사리의 싹등은 완벽한 피보나치수열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배운다. '나선, 폭발, 밀집, 구불거림, 갈라짐'은 자연의 대표적인 패턴이라고 한다.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마음대로 직선으로 바꾼 강줄기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곡선으로 바꾸는 강줄기가 많아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제대로 된 자연이다.
당신은 하늘이에요. 그 밖의 모든 건 그저 스쳐가는 날씨일 뿐이죠.-페마 초드론(-84쪽)
참 멋진 말이다. 소리 내어 읽어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본다. 스치는 바람을 느껴본다. 우리는 하루에 하늘을 몇 번이나 볼까? 또 구름은? 작은 곤충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별자리를 넘고 우주까지 간다. 작은 책 속에 이토록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책의 글처럼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그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말한다. 보고, 듣고, 걷고, 혹은 피부로 느끼거나 먹으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멋진 사진도 멋진 문장도 없지만 정감 어린 그림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책의 여정이 정말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