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구판절판


이런 걸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하는 걸까? 미쿠모 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했다, 애썼다, 에이이치! 물론 에이이치 본인도 기뻤다. 다 널 위해 하는 말이니 포기하라고 했던 담임이나 좌절도 인생 경험의 하나일 테니 도전해보라고 했던 진로지도 선생에게 앙갚음을 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추억들이 빛이 바래고 칙칙해져서 부옇게만 보인다. 무슨 일이든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다. 그리고 지구력을 키우는 것은 순발력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51쪽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다양한 일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신기한 일도 있다, 나는 그런 세계관으로 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107쪽

-뜻밖에 낚은 물고기에는 뜻밖의 즐거움이 있도다.
목적했던 물고기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낚으면 그 나름대로 즐겁다는 정도의 의미일 텐데, 탐문을 해나가는 와중에 에이이치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선생님 찾기라는 구실 따윈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어느 노부부 할머니의 공습 체험담과 할아버지의 만주 귀환 이야기에 한 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51쪽

즐거운 추억 이야기, 이웃과 보낸 한때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과 기록. 실로 바람직한 일이었다. -254쪽

결국은 느낌이라고 생각해. 마음으로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그건 과학이 아니야. 과학이 아니니까 누구에게나 똑같은 느낌이 깃든다고 할 수도 없지. 하지만 난 내 마음의 느낌을 믿어. -280쪽

정보란 늘 잘못 전달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304쪽

사람은 누구나 말하고 싶어 한다. 비밀을. 무거운 짐을.
언제라도 좋은 건 아니다. 누구라도 좋은 것도 아니다. 때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되는 때와 대상에 기준은 없다. 등을 돌리고 앉은 운전기사라도 좋고 어느 날 들이닥친 고등학생 두 명이라도 좋다. 그 모든 것은 마땅히 밝혀져야 할 비밀 쪽 상황이 결정한다. 흘수선을 넘어섰을 때, 쌓이고 쌓인 침묵의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렸을 때. -388쪽

어쩌면 저 애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애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앞으로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지는 여자. 울리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어. 항상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그런데도 왠지 울려버리고 말 때가 있지. 남자한테는 그렇게 되어버리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야. 그러니까 멍청이지. -4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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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1-12-1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계시네용..ㅋㅋ 저는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가면서 읽으려구요.

이매지 2011-12-15 15:06   좋아요 0 | URL
이제 하권 읽어야지요.
되게 소소해서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집에 내려가면서 읽기도 좋으실 듯^^
 
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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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산다. 그 중 하나가 내 인생이다. 가끔 엄마가 "하필이면……." 하시는데, 내가 아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사는 건 재미없는 일이니까. -6쪽

우리가 태어날 때 조물주가 아홉 개의 건강한 공과 한 개의 병든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셨는데, 나는 그중 병든 공 한 개를 골랐을 뿐이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님들도 그런 걱정이랑 마시길……. 사람은 저마다 제멋에 겨워 사는 거니까. -7쪽

만두 걱정 마시길…… 만두는 변함없는 만두일 뿐……. 장담하건데 아마 알라딘에 가장 오래 남을 인물이 만두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하여간 만두는 끈질기다. 어쩌면 만두의 병도 정떨어져서 나가 버릴지 모를 일이다. -7쪽

리뷰를 쓰는 건 글을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책을 읽고 소감을 올리는 것뿐이다. 가끔 스포일러성 글을 올려 비난받기도 하지만 아마추어 리뷰어의 글쓰기가 다 그런 게 아닐까. 서재를 예쁘게 잘 꾸미고 싶다면 무엇보다 노력과 정성이 중요하다. 남의 글을 도용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냥 책을 읽고 좋았다거나 나빴다는 몇 마디 정도만 써도 되지 않을까.
내가 만든 서재는 내 얼굴이다. 내 얼굴에 남의 눈과 코를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24~5쪽

지금 내가 가진 게 누군가의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골고루 적당히 가지면 좀 좋을까 싶은데, 세상은 언제나 고스톱 판처럼 따는 사람과 잃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인간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39쪽

누구나 분기점에서는 불안하다. 누구나 살면서 굴곡을 겪게 마련이다. 누군가 말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땅이 있어 좋다고. 이 말이 맞나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산을 넘어도 또 다른 산이 보이는 게 인생이다.
넘어져도 일어설 땅이 있어 좋은 사람은 일어서기를……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은 그 땅이 늪이 아님에 감사하기를…… 설사 늪이었다 하더라도 똥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를. -89~90쪽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상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더 행복해지기를, 더 많이 갖기를, 더 성공하기를, 꿈이 이루어지기를……. 하지만 그 과정에는 좌절과 슬픔이 있기에 고통스럽다.
한평생을 살면서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생이 행복한 사람도 절대 없다. 행복은 불행 가운데 생기는 감정이다. 불행은 인간의 필요악이다. 불행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똑같이 고통스럽다. 지금 당신에게도 어떤 고통이 있을 것이다. 어젯밤 마신 술로 쓰린 속도 고통이다. 시험에 떨어진 것도 고통이다. 지인의 죽음도 고통이고 병든 것도 고통이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고통은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끌어안고 보면 고통도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누군가의 고통에 슬퍼하고 자신의 고통을 서글퍼하며 살기를…… 왜 사냐고 묻거든 웃어 보자구. 산다는 게 별거냐구. 고통이 우릴 속일지라도 그저 한 번 웃고 넘겨 보자구. 그럼 누가 알아? 고통과도 친구가 될지…… 설마 친구가 나쁘게야 하겠어? 나쁘게 해도 할 수 없지. 친구니까. -111~2쪽

관계란 일방통행이 아니다. 언제나 쌍방통행이어야 한다. 그리고 배려와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에게 그걸 보여 주셨다. 만약 아버지가 권위적인 분이었다면 우리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엄마한테 잘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가정의 화목과 평화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관계를 맺고 산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부부 관계, 형제 관계, 친구 관계, 이웃 관계 등등……. 그 관계를 맺기 위해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배려와 이해는 필수다. 가끔 충돌도 하지만 단단한 관계는 충돌 몇 번에 깨지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많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 먼저 이뤄야 한다. 울 아버지 말씀이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른들의 이해와 배려,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121쪽

누구든 살면서 남보다 우위에 놓이길 원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그리 중요한가. 내 삶은 이생에서 단 한 번뿐이고, 그 삶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스스로가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175쪽

방명록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많은 분들의 서재가 썰렁해서 가슴이 아렸다. 다른 곳으로 옮긴 분들도 있고, 생활에 변화가 생긴 분들도 있겠지. 어언 2년.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남들은 많이 변한 거 같다. 그게 슬펐다. 가고 오는 인연을 막을 수는 없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티가 나는 법이다. 새로 오신 님들에 대한 반가운 마음과 함께 이제 아니 보이시는 님들을 향한 그리움도 쌓인다. 잘 계시길. 어느 곳에서든 늘 건강하시기를. 날이 더워지면서부터 뵈지 않는 님들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 본다. 감은 눈 속에서나마 님들의 자취를 그릴 수 있기를. -214~5쪽

나이 들면서 좀 느리게, 좀 여운 있게, 그저 뭔가를 바라만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거 아닐까. 지금 달과 별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세상에 어떤 여고생이 책갈피 사이에 은행잎을 끼워서 말리고 누군가에게 시를 지어 부치는 설렘을 맛볼까.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
"니들도 나이 먹어 봐라."
나이를 먹으니 좋아요. 아마 나이 들면 들수록 더 좋아지겠죠. -245쪽

그렇다. 나는 별점이 워낙 후하다. 사요나라님은 내 별점 세 개가 다른 분의 한 개 반 정도라고 했다. 네 개 이하로는 잘 안 준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100점을 만점으로 봤을 때 작가의 작품에 80점 이하를 줄 자격이 내게 있느냐를 생각한다. 둘째, 혹여 별점 때문에 추리소설을 안 읽는 독자가 생길까 봐서이다.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대부분 추리소설만을 읽는데 감히 추리소설을 깎아내릴 리가 있나. 그래도 깎을 때가 있다면 출판사의 무성의한 오타 남발, 잘못된 제본 등등 때문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에게는 조금 짜다. 내 자식은 매를 한 대 더 때리는 심정으로. 그것뿐이다. 별점을 후하게 줬지만 막상 리뷰를 읽어 보면 내가 그다지 마음에 안 들어 한 것들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별점과 함께 리뷰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모쪼록 님들이 추리소설을 많이 사랑해 주신다면 전부 별점만 주는 만두가 된다고 해도 좋다! 에헤라디여다. -281~2쪽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 위해 누군가 피를 토하며 썼을 글을 읽지 않고 모르는 척 외면한 죄. 책을 사랑하며 많이 읽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321쪽

이 정도 일로 약해지긴 싫다. 이것보다 더한 일에도 약해지지 않았다. 세상에는 약해져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약해지고 싶어도 약해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미 넘어진 사람도 있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약한 건 아니다. 강하다는 것이 약하지 않다는 뜻도 아니고, 약하다는 것이 강하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 어디에서라도 버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때가 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사람도 있고 추락만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고 나면 단지 기분이 나쁜 일이었을 뿐. 세상에 이보다 더한 일이 있을까 싶겠지만 세상에는 이보다 더한 일이 있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겠지만 더 나빠지기도 한다. 목숨이 있는 한 약해질 수 없음은 나를 지켜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기운 빠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 누군가 나를 바라봐 주는 한, 나는 절대 약해지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그리고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올 때까지 절대 떠나지 않겠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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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1-12-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계시는군요..저도 얼렁 사야겠어요..^^

이매지 2011-12-01 09:15   좋아요 0 | URL
물만두 삼남매의 이야기에 웃고 즐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

전호인 2011-12-0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습니다.
물만두님을 이렇게 1년만에 재회하게 되는군요^^

이매지 2011-12-02 23: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울다 웃다 하면서 읽었어요. ^^
 
펭귄 하이웨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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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 계산해보니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3000하고도 888일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나는 3000하고도 888일을 나날이 훌륭해지는 거다. 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얼마나 훌륭해져 있을지는 짐작도 못 하겠다. 너무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모두들 깜짝 놀랄 거다. 결혼해달라는 여자도 많겠지. 하지만 나는 벌써 상대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결혼해줄 수 없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9~10쪽

내가 치과에 다니는 이유는 내 뇌가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나의 뇌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뇌의 에너지원은 당분이다. 집에서 먹는 간식만으로는 내 뇌가 필요로 하는 당분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나는 내 예산에 간식비를 두고 독자적으로 에너지를 비축한다. 그러다 보니 그만 단 과자를 많이 먹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 전에 이라도 제대로 닦으면 좋으련만, 낮 동안 뇌를 많이 쓰는 바람에 밤이 되면 칫솔을 들지도 못할 정도로 졸려서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를 닦을 틈이 없다. 아침에 이를 닦는 것만으로는 충치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 자신을 통해 분명하게 증명했다. -21쪽

젖가슴은 수수께끼야, 하고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생각한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건 누나의 가슴이다. 왜 누나의 가슴은 엄마의 가슴과 다르지? 물체로 치자면 같은 건데 내가 받는 인상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엄마의 가슴을 문득 바라보는 일은 없는데 누나의 가슴은 나도 모르게 자꾸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만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기분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게 나를 관찰한다는 걸까?-39~40쪽

아버지의 3원칙에 대하여.
아버지는 나에게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줄 때 세 가지 도움이 되는 생각을 가르쳐줬다. 나는 그것들을 노트 표지 뒷면에 써서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건 수학 같은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 닮은 문제를 찾는다.
나는 펭귄 하이웨이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나'와 '펭귄'이다. 나는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를 연구하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막혀버린 거다. 관점을 바꾸면 이 수수께끼는 펭귄들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펭귄에 대해 좀 더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닮은 문제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매우 보기 드문 문제다. 닮은 문제가 있기나 할까. -84~5쪽

낮에 자는 사람은 외로워 보인다. 누나가 밤에 잠들 수 없다니 참 안됐다. 나는 밤이 되면 견딜 수 없이 잠이 쏟아지는 게 종종 슬프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졸음을 다른 사람에게 수출하는 시스템을 미항공우주국이 개발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평소에 늘 한다. '졸음 이동 시스템'이 있으면 누나는 내 졸음을 써서 밤에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밤늦게까지 연구를 해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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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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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인간세계에 눈을 돌리면 인재가 마치 분수처럼 한 시대에 한꺼번에 배출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분수처럼 많은 물을 기세 좋게 뿜어올리고는 소리 없이 떨어지며 인재 고갈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런 현상이 끼치는 영향이 국내에만 한정된다면 문제해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전 시대에 축적해놓은 것을 갉아먹으며 차분히 앉아 다음 분수가 뿜어져오르기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인재 배출과 인재 고갈의 순환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쪽은 인재 고갈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한쪽은 인재 배출의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상당한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인간셰계이다. -46쪽

중근동의 십자군 국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작령, 트리폴리 백작령, 예루살렘 왕령 네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적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그리스도교도들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이제 신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것인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런 공포는 한 나라의 왕이든 일개 서민이든 다르지 않았다. -77쪽

종교인의 일반적인 설교 방식은 현세의 타락을 단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세상을 견뎌야 하는 것은 신이 우리의 불신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속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에데사를 이교도 이슬람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리고, 에데사 함란 당시의 참상과 성지에 사는 그리스도교도의 불안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외친다.
"이교도를 몰아내고 성스러운 땅을 그들의 손에서 해방하는 일이야말로 너희가 하려는 속죄에 대한 신의 보상이다."-89쪽

이슬람교도는 모든 악이 담긴 항아리다. 악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악의 표본이다.
이자들에 대한 대책은 하나밖에 없다. 근절이 바로 그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혹시 필요할 때는 그들의 칼에 맞아 죽는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116쪽

그리스도교 일색인 유럽에서야 성 베르나르두스처럼, 이슬람교도는 적이니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니 죽여라, 고 절규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근동에서는 성 베르나르두스의 칭찬을 받은 템플 기사단의 기사들조차 이렇게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죽여라, 죽여라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몸값을 내면 포로가 된 그리스도교도를 돌려보내주겠다는데야 돈으로 교섭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용할 식량을 생산하는 경작지의 소유주가 우리라 해도 경작은 그 땅에 예전부터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 농민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으며, 소작료로 가져다주는 농작물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교도와 일상다반사로 접촉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여라, 죽여라 한들……"-127쪽

가톨릭교회의 교황 이하 고위 성직자들도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의 유력자들은 자신들은 오리엔트 물산에 젖어 있으면서 오리엔트로 십자군을 파견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129쪽

21세기인 지금도 유럽에서 '비잔틴식'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한 나머지 대국(大局)을 잃는, 그때는 득을 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138쪽

인간의 야심이란 곧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하는 의욕이다. 한편 허영심은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세상을 버린 은둔자일 테니 여기서는 제외하고, 인간성이 풍부한 인가능로 이야기를 좁히기로 한다.

문제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인간이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145쪽

인간은 흥미를 가지고 하는 일은 잘되고, 관심이 별로 없는 일을 하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잘되니까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잘되지 않으면 그에 비례해 관심도 희박해지는 식이다.-149쪽

네가 유복한 출신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네가 지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또한 네가 미모를 갖고 태어났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원인이 되어 네가 오만하고 건방져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오만과, 오만의 표현인 건방짐은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네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해치고 더럽히며 비속화하기 때문이다. -172쪽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권해야 할지 권하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가 결혼, 둘째가 전쟁, 그리고 셋째는 성지순례다. -217쪽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성공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역량(virtu), 행운(fortuna),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질(necessita).

눈엣가시이던 인물이 적절한 시기에, 이쪽에서 손도 쓰지 않았는데 알아서 사라져주는 것만한 행운도 없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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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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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뢰를 받아 조금씩 일을 시작했을 무렵, 어느 편집자에게서 "무라카미 씨, 처음에는 어느 정도 대충 써나가는 느낌으로 일하는 편이 좋아요. 작가란 원고료를 받으면서 성장해가는 존재니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과연 그럴까'라며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옛날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이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하고 납득이 갔습니다. 수업료를 내는 게 아니라 원고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왠지 좀 뻔뻔한 것 같습니다만. -13쪽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 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처럼 날것인 형태로 그것들을 아웃풋하는 일도 가끔은 필요합니다. 픽션이라는 형식으로는 다 주워담을 수 없는 자잘한 세상사도 조금씩 찌꺼기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재를 에세이(잡문) 형식으로 조금씩 주워담게 됩니다. 혹은 또한 현실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정도 날것인 형태로 스스로를 표현할 필요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인사말 같은 것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입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니까요.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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