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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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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쓴다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이 재미있으면 재미있는대로, 책이 재미없으면 재미없는대로 쓰기가 어려운 것이 리뷰라는 것이다. 사실, 가장 리뷰 쓰기 좋은 책은 적당한 책이다. 적당히 재미있거나 적당히 재미없을 때, 그 '적당함' 속에 내 할 말이 생긴다. 책이 너무 쉬우면 할 말 자체가 없어지고, 책이 너무 어려우면 읽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린다. 책이 너무 나쁘면 그 나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전에 시간이 아까워지고, 반대로 책이 너무 좋아도 이 책에 어떤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말이 없어지게 된다. 이 책은 후자의 이유로 리뷰 쓰기가 어려워지는 책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마지막 리뷰 도서인 것을.

난 불명확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잘 쓴 경우가 아니면 오픈 엔딩은 종종 작가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인터넷으로 다른 이의 리뷰나 해설을 찾아서 그 불명확한 부분을 명확하게 바꿔야 직성이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첫 이야기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느껴지는 단편답지 않은 묵직한 무게감은 바로 그 '빈 공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이야말로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작과 진실 사이엔 그 리 큰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이란, 어쩌면 진실을 마주 보기 두려워서, 그게 무서워서 바라보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갖게 되었다. 그리니 이 이야기의 운명 역시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P.263 <화라지송침> 중


나의 '오타', 후진이 되지 않는 삼촌의 프라이드, 김박사의 존재, 눈에 침을 뱉은 소녀의 정체, P와 얽힌 진실, 이정의 의미, 죄책감의 이유, 팬티인지 반바지인지 ... 이 모든 의문들은 이야기에 공백을 만들고 우리는 짐작을 통해 그 공백을 채운다. 그 짐작은 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살짝 감춰져 있기에 그 진실이라는 놈이 더 무겁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그래, 사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고 하지만, 막상 진실을 들이대면 눈을 돌려버리고마는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진실은 때론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무게를 지니고 있다. 정작 남의 이야기는 술술 늘어놓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에는 입을 다물어버리는 김박사처럼, 우리의 이야기에는 그런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공백이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공백은 부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야기를 완결시키며, 이 책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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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유언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전집 12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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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는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고 나서는 어떤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고, 나 역시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반 이상이 지나도록 알쏭달쏭해지기만 하는 내용에 갸웃거리기만 하며 내 지적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는데, 에코는 차라리 나았다. 그건 최소한 미스테리한 사건이라도 있지, 이 책은 처음부터 내개 큰 벽이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어째서 소설도 아닌 에세이집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 거냐며 궁시렁거렸다.

 

 이 에세이집에 나오는 일부 소설가는 심지어(!) 이름 조차도 생소했고(특히 1부는 이게 무슨 말인지도 모를 정도로 얼떨떨한 기분을 안겨줬고), 작품들 역시 대부분 낯선 것들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리뷰를 읽는 격이니 이 책이 내게 친숙할 리가 없다. 심지어 이 책 표제가 왜 '배신당한 유언들'이었는지도 마지막에 가까워져서야 깨달았단 말이다!! 때문에 내가 느낀 것이 제대로 느낀 것인지가 맞는지,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기만 할 뿐이다.

 

 사실 이 책은 배신당한 유언에 대한 책은 아니라고 본다. '철수가 다리를 다쳤대'에서 시작한 말이 사람과 사람을 거치면서 '철수가 죽었대'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철수가 죽었대'라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본질(철수가 다리를 다쳤다)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하나의 사실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사유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소설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 작품만 오롯이 접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단 그 책에 대한 광고, 짧은 비평, 잡지사의 선전 문구, 리뷰, 서평 등등을 거치면서 오히려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보다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그 과정들이 보다 깊은 오해로 이끌어가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바쁘게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요, 그에 따라 없어지는 것은 여유라지만, 이 책만큼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손에 잡아보고 싶다. 그 때는 헤밍웨이, 스트라빈스키, 야나체크, 카프카와 조금 더 친해지고, 또한 쿤데라의 소설도 몇 편 읽은 후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게 보여줄 것 같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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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30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이든
그 책 하나만 읽으려 해서는 제대로 못 읽어요.
그 책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과 삶과 사랑을
고루 살펴야
비로소 책 하나 읽을 수 있어요.
 
[선셋파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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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장을 읽고 한동안 생각했다 - '도대체 이걸 보고 어쩌라는 거지?'

소설은 선셋 파크라 명명된 무허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순차적이란, 시간 순서대로라는 의미가 아니다. 때로는 시간이 뒤섞이기도 하고, 관점이 엇갈리기도 하다. 한 인물이 서술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사건'을 한 줄로 줄이기란 어렵지 않다. '어느 날, 선셋 파크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살던 사람들이 쫓겨났다' --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사건'의 전부이다.

하지만 이건 단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일 뿐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으로 가지고 하나의 장소에 모이며, 또 각자의 이유로 흩어지게 되는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이야기라는 건 참으로 유쾌하지 않다. 솔직히 좀 짜증나기도 한다. 도대체 이 소설에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라고는 별로 없는 것이다. 일단 주인공격인 마일스 헬러부터가 글러먹었다. 낭만이니 그 자신에게는 진실한 사랑이니 포장해도 미성년자와 사귀는 사람 아닌가. 과거에 얽매여 현실을 무시하는 인물이고, 그러면서도 현실에 초연하지 못한다. 빙 네이선은 또 어떻고? 선셋 파크를 만들 만큼 리더쉽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내치지 않을 정도로 사람도 좋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리더쉽' 때문에 결국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게 되는 인물이 아닌가. 그외 등장인물도 다 나름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읽는데 든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그 이유는 바로 등장인물들이 재수없으리만큼 현실적인 바로 그 짜증남에서 나왔다. 당장 바로 내일 거리에서 나와 마주칠 것 같이 재수없는, 호감이라고는 가지 않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에 그렇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나 역시 그렇지 않느냔 말이다. 때론 마일스처럼 과거에 집착해 현실을 놓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의 알량한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생기면 발끈하지 않던가. 때로는 빙처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과 이상주의에 젖어보기도 하고, 앨런처럼 한없는 우울감과 막연히 떠오르는 피해의식에 무기력해본 적도 있지 않던가. 처음엔 영 호감이 가지 않던 주인공이 후반부로 가면서 눈부신 성장을 하는 것에 정신없이 몰입하면서 봤다.(특히 앨런의 변화는 깜짝 놀랄 정도이다. 이후 가장 잘 살아남을 인물로, 나는 주저없이 앨런을 꼽을 것이다.)

아,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내가 정말 폴 오스터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마음을 풀어놓더니 결국 그 주인공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게 되고, 그래서 '각자 자신의 길을 가기로 하고 떠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로 끝내 줄 거라 안심하게 만든 상태에서 그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아, 작가, 이 나쁜 사람같으니라고. 끝나고 정말 이게 결말 맞나 싶어서 몇 번이나 책을 넘겨봤는데, 그게 정말 결말 맞더라.

그는 아버지를 실망시켰고, 필라를 실망시켰고, 모든 사람을 실망시켰다. 차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그는 이스트 강 건너편의 거댛나 선물들을 바라보며 사라진 건물들, 무너지고 불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 사라져가는 건물들과 사라지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지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p.328)

저 부분을 한 열 번은 그 자리에서 읽은 것 같다. 결말의 허함과 의아함을 달래기 위해 그렇게 눈이 마지막 페이지 위를 오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일스가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자'고 다짐한 그 모습이 역설적으로 이 소설 속 어떤 행동보다도 어떤 말보다도 희망적임을.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모든 희망은 공허하다. 과거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희망이 비치지 않는다. 장밋빛 미래만을 바라보는 사람의 희망은 공허하다. 희망은 철저히 현실을 바라보는 자에게만 보이며, 현실을 살아갈 때 희망도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희망을 버리고 드디어 현실에 눈을 돌린 마일스의 모습이 그렇게 가슴아프면서도 대견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괜찮다. 그의 앞에 기다릴 미래는 그가 꿈꾸던 것처럼 만사 잘 풀리는 미래는 아닐지도 모른다. 양어머니와는 끝까지 화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감옥에 가서 몇 년을 또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미래가 암울할 것 같지많은 않다. 마일스 헬러와 메리-리의 모습은 그가 결국 쟁취할 그 미래, 희망처럼 우뚝 서 있지 않던가. 이 소설 속에서 그들의 과거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모리스 헬러나 메리-리의 과거 역시 좌충우돌이었고, 온갖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파산을 눈 앞에 두면서도 모리스는 마일스에게 뿐만 아니라 그 출판사 사람들에게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고 있지 않던가. 배역을 위해 소중히 가꿔 온 몸매를 버린 메리-리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던가. 대개 희망이란 현실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새겨지는 주름과 같은 것,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답지 않을지도 몰라도 절대 비웃지 못할 무게를 가진, 그런 것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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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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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낯선 지명과 이름에 몇 번이나 책의 앞뒤를 왔다갔다해야 했고, 종이에 이름과 간단한 인물소개(?)를 쓸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초반 30장 정도는 한 세 번쯤 읽은 것 같다. 읽고 한동안 손을 놓고 또 다시 읽고 읽고...

 

 얼마 전에 남자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혹시 전쟁이 나서 우리가 만나지도 못한 채로 살아야 한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나 역시 절대 죽지 않고 악착같이, 무슨 짓을 해서든 살아남을테니. 살아야 우리가 만날 희망이라고 가질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 이 때의 대화가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사실 이 책은 이 '이름'만 넘어가면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개인이 어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개인들의 투쟁기로 봐도 상관 없으리라. '밀수'라는 불법적인 일을 하지만 그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밀수품은 이 배를 탄 이들에게 희망이라고 해도 좋고, 자신이 가진 꿈을 실현시켜줄 그 무언가를 상징한다. 이 물건만 넘기면, 제대로만 된다면 꿈꾸던 일이 실현될 것이다!, 라는 희망. 힘들 때면 이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밀수품을 넘긴 이후의 미래를 꿈꾼다. 이들에게 현재는 그만큼 각박한 것이며, 파도처럼 차가운 것이다.

 

 내일은.....(선장은 생각했다) 좋은 날이 될 거야.

 

 그래서 선장의 이 말은 깊은 울림을 지닌다. 두려움을 터뜨리고, 절망하고, 만신창이가 될 지언정,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모습은 -때로는 비참할지라도-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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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2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있든 모두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걸요.
떨어지는 법은 없다고 느껴요..
 
[눈의 아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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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책의 이야기들 속에는 조금씩 초현실적인 면이 섞여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현대판 유령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어린시절의 추억을 보여주는 인형탈이라거나(지요코), 어린 시절 소꿉친구의 유령이 나타나는 이야기(눈의 아이), 살해당한 여인의 유령소동(돌베개), 죽은 소년이 자신처럼 약하고 힘 없는 이들의 원한을 갚아준다는 이야기(성흔)가 이 책에 실려있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초현실적인 유령 이야기를 읽는데도 이 이야기들이 이다지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책에 나타나는 사건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초등학교 때의 동창들이 모이던 날 밤의 이야기(눈의 아이)가 있고 전단지를 배포하는 아르바이트 이야기(지요코)이며, 정의감에 뜬 소문의 근거를 파헤쳐보려고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돌배게), 어린 아이들의 뜬소문(장난감), 인터넷 사이트 상의 괴소문이야기(성흔)는 우리 주변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책 속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동기도 그리 거창하지 않다. 여기에는 억대의 돈이 움직이지도 않고, 부모님의 원수같은 것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으며, 연쇄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살인이 나올 때도 그 살인이 기기묘묘해서 신문에 대서특필될 사건은 아니다. 기껏해야 신문 귀퉁이 정도에 실릴 정도의 일인 것이다.(성흔의 소년 A 사건은 좀 예외적이지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그렇게 멀리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말이다. 그래서 성흔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이 이야기들이 유령 이야기라는 것을 잠시 망각하기까지 했더랬다. 어쩐지 당장 내일이라도 직장의 누군가가 '있잖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지...'라는 말로 썰을 풀어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단편이 '성흔'임에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눈의 아이'와 '돌배게'였다. 이 두 단편은 '열등감'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 열등감이야말로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찾아드는 살의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이 어니 하나 뿐이랴.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비교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현대에서 열등감을 부채질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있다. 열등감을 극복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추기게 하는 것이 훨씬 많은 듯하다. TV를 틀면 쭉쭉빵빵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보는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나아져 보겠다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그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열등감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열등감이 깊어지면 어떻게든 그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고 싶어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흠집을 내는 것을 넘어 상대방 자체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 한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문제는 그 언니가 그런 여자였다고 꾸며낸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는 거야."
"왜?"
"그런 여자애라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말해야만 자기들이 안심할 수 있어서야. (중략)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들 그렇게 믿고 싶은 거야. (중략) 그래서 그 언니를 깔애뭉개고 싶어 해. 그런 짓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로 만들고 싶어 해." (<돌배게> 중)


나는 유키코가 미웠다.

나처럼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나처럼 착한 아이도 아니명서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는 유키코가 미웠다. (중략) 유키코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나에겐 증오의 대상이었다. 노력 없이 얻은 것들을 유키코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즐겼다. 그게 미웠다. 유키코가 좀 더 자기를 내세우는 아이였다면, 나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했다면, 나를 미워해 주었다면, 나는 유키코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눈의 아이> 중에서


  읽으면서 어쩐지 아아, 하고 이해해 버려서.
  내 안에도 그런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는 유령을 만들고, 유령은 다시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또 다른 유령을 만든다. 인공적인 빛이 어둠을 몰아낸 현대에 살지만, 유령은 우리 옆에서 여전히 떠돌고 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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