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문학 -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
김동훈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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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민음사 블로그)

 

 내가 끌리는,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욕망한다. 나의 그것 가운데 하나가 '애플'이다. 그 단순함. 그 깔끔함. 또, 존재 목적에 정확하게 합치됨. 나는 그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족(蛇足)이 없는 '애플'의 작품들. 나와 닮았고, 혹은 내가 닮으려고 하기에 함께 거닌다. 그렇게 아이폰을 소유하고 있고, 아이패드를 소유했었다. 그리고 계속 욕망한다. 그런데 그 객체는 다르지만, 나처럼 소유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의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 모를 욕망. 즉, 무의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브랜드가 나의 감각에 던지는 눈길인 어떤 파장을, 그리고 나 또한 그 자극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반응하며 눈길을 주는 이유를 범주화해 보았다. '정체성, 감각과 욕망, 주체성, 시간성, 매체성, 일상성'들이었다. 이것으로 브랜드를 이해하고 인간의 신체와 감각에 대해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프롤로그 '지금은 브랜드의 땅' 중에서. (8~9쪽)


 '브랜드 인문학'은 이렇게 6부로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잘 몰랐던 몇몇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부족한 안목도 살짝 넓혀졌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던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된다. (……) 저 브랜드가 내게 다가왔고 내가 그것을 택했다.

 선택을 통해 브랜드와 접속한 우리는 나름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선택이 있기 전 브랜드와의 마주침과 나의 선택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자극은 우리 안에 묻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묻힌 우리의 과거를 들뢰즈는 앙리 베르그송의 이론을 따라 '잠재력'이라 불렀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특정 브랜드와 접속하여 생기게 된 우리의 정체성은 잠재력이 현실화된 것이다.

 (……)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은 감각으로 자극받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 욕망은 저마다의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2부 프롤로그' 중에서. (96~97쪽)


 '창조력은 현실에서 잠재력과 함께 빛을 낸다.

 (……)

 잠재력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변화, 즉 운동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변화를 위해 감각자극을 말했다. 그 자극이 지속될 때 운동은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 잠재력 자체가 사실은 무한한 창조력인 것이다.' -'4부 프롤로그' 중에서. (250쪽)


 이 책 '브랜드 인문학'의 작은 이름은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이다. 그 이름처럼 잠재력을 깨우라고 한다. 감각을 자극해서. 그 감각을 자극하는 열쇠는 브랜드에 있다. 내가 소유하고, 욕망하는 브랜드. 내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나의 잠재력이 현실화된 것이고. 그 정체성. 그 브랜드. 감각 자극으로 잠재력을 깨우자. 그 잠재력은 곧 창조력이니.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과시에 앞서 나다움을.(31쪽)' 잊지 않으며.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현대문학, 1952.

   

 내가 소유하고, 욕망하는 브랜드인 '애플'. 단순함, 깔끔함, 존재 목적에 정확히 합치됨. 그 잠재력이 정체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내 무의식이 그 '애플'과 접속하여 형성된 정체성. 내가 '애플'을 부르고, '애플'이 나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브랜드가 되고. 꽃처럼. 하나의 몸짓이었던 꽃. 이름을 불러주어, 나의 꽃이 된다. 결국,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애플'은 나에게, 나는 '애플'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나의 잠재력은 깨어난다. 창조력으로 이어질.


 '브랜드 인문학'은 서른두 가지의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각 브랜드의 탄생과 정체성을 그린다. 그 사유의 장(場). 그 바다에서 항해했다. 희열을 느끼기도 하며. 파도를 넘어 여정을 함께 했다. 항해하며 들은 수업. 준비된 수업이었다. 수강 신청 잘했다. 

 참고로 '애플'은 이 책에 안 나온다. 프라다, 스타벅스, 샤넬, 구찌, 루이비통 등이 나온다. 나오는 것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민음사'다. 이 책의 출판사. 애서가인 내가 관심 있는 우리나라 출판사. 

 


 

 



 덧붙이는 말.


 저자가 《경향신문》에 「서양고전학자의 브랜드 인문학」으로 연재하다가, 민음사 양희정 부장의 손길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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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29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시고 리뷰 하셨네요 굿👍👍👍

사과나비🍎 2018-11-29 22:24   좋아요 1 | URL
아 카알벨루치님~ 말씀 감사해요~^^*
그런데, 저 지각 서평이었어요...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었고요...^^;
아무튼! 정말 말씀 감사해요~^^*
좋은 밤되세요~^^*

카알벨루치 2018-11-29 22:37   좋아요 1 | URL
지각해도 괜챦습니다 쓰기만 하면 되는거죠 굿밤하소서!

사과나비🍎 2018-11-29 22:42   좋아요 1 | URL
^^* 예~ 그런 거겠지요?...^^*
카알벨루치님의 말씀! 정말 감사해요~^^*

카알벨루치 2018-11-29 22:45   좋아요 1 | URL
저도 애플, 문동 그리고 요즘 고전읽으면서 민음사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민음사는 좋아했는데 고전의 활자가 맘에 안 들었는데 요즈음은 내용에 빠지니 민음사도 나름 그 활자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ㅎ

사과나비🍎 2018-11-29 22:51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군요~^^* 민음사의 고전도 많이 읽으시고 계시군요~^^*
그러게요... 읽기가 불편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좋은 내용에 깊이 들어가셔서 그 매력을 아셨나 봐요~^^*
깊은 독서를 하시는 카알벨루치님! 언제나 응원드려요~^^*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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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최선 옮김, 민음사, 1997

 나는 눈물이 많다. 삶이 나를 속였기에. 그래서 슬퍼했거나 노했기에. 여린 나는 눈물을 한없이 머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울한 날들이 여럿이었다. '우울은 얇게 퍼져 있는 분노다'1라고 하던가. 분노가 피웠던 우울의 안개가 차가웠고, 짙었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믿음에 견디고 있다.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것, 그것이 삶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다.'2라고 하던가. 지나가는 것은 훗날 달콤하고, 소중하게 되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와 같이 슬픈 물음표에 따뜻한 쉼표로 말하는 글을 만났다. 가슴으로 만났다.


 '부지런히 가다가

 문득문득

 슬픈 물음표가 마음을 침범합니다.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나,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왜 자꾸 우울한 거니?


 (……)


 더 늦기 전에

 행복해졌으면 해요.

 당신도, 나도,

 우리 같이


 행복해졌으면 해요.' -'프롤로그' 중에서. (11~13쪽)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왜 자꾸 우울한 거니?'의 슬픈 물음표. '당신도,' '나도,'의 따뜻한 쉼표. 그 쉼표로 '행복해졌으면 해요'라는 바람.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


 '위로는 손을 잡고

 그 추운 영혼 위에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그 따뜻한 이불이

 내 영혼도 덮어주는 일.' -'위로 전달법' 중에서. (38쪽)


 겨울을 만난 추운 영혼에게 위로는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위로는 그 영혼도, 내 영혼도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끄덕이게 하는 글이다. 그리고 나도 위로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하게 되면 나에게도 위로가 되겠지. 좋다.


 이번 겨울의 첫눈이 온 날. 따뜻한 쉼표를 남기는 글의 느낌을 남긴다. 슬픈 물음표에 슬며시 다가와 남기는 따뜻한 쉼표. 그리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 소곤소곤 온기를 담은 글들이 온몸에 따뜻하다. 이 땅의 많은 이들이 눈물과 우울에 잠기고 있는 이 때. 온기로 부드럽게 안을 수 있는 책. 또 쓰다듬는 책. 그 가슴 안에서 울고 위로를 받자. 그리고 하루하루 행복해지자. 기쁨의 날이 오리니.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1.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독일의 신학자)
  2.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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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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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작년인 2017년, tvN의 방송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이 있다.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라고. 이렇듯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산다. 산 책을 다 읽지 못할 만큼. 애서가인 나. 나도 책을 모은다. 그저 소소하게 모은다. 그렇게 책을 모으다가 책 수집하는 병에 걸린 나. 난치병인 줄 알았다. 언젠가는 나으려니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랬다. 불치병이라고. 안 낫는다고. 그래도 병이 깊지 않으니 다행이려나. 물론, 이 병이 깊은 사람들도 있으리라. 애서가를 지나 애서광이 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열한 가지 이야기.


 '그때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았지요, 남작 부인. 우리 둘은 몽상에 젖어 완전히 다른 세계,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았지요? 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요? 여하튼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박자에 맞추어 스카롱의 시를 나지막이 웅얼거렸습니다.' -'시인 스카롱의 새해 선물' 중에서. (352쪽)


 그 이야기 가운데 하나. '시인 스카롱의 새해 선물'이 있다. 연애편지다. 소싯적 사랑의 열병에 많은 이들이 써 본 그 연애편지. 나도 썼었고, 이 애서광도 썼다. 난 연애편지 초보였지만, 이 애서광은 그것마저도 달인이다. 나의 연애 세포는 비활성화되어 혼자가 되었지만, 이 애서광은 연애 세포가 활성화되어 둘이 되었을 듯. 손에 손잡고. 시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알려지지 않은 낭만주의 작품들'이 있다. 전 늑대사냥 대장, 고(故) 레옹 베르나르 디뉘의 장서가 경매된 이야기다. 내가 하늘로 간다면, 서재의 책들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아 소중한 책들. 중학교 다닐 때, 읽고 또 읽어 나를 키웠던 김용 할아버지의 무협 소설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국 할머니인 애거서 크리스티 할머니의 추리 소설들. 그밖에 수없이 많은 내가 사랑하는 책들. 내가 이 책들과 이별했을 때, 새로이 만나는 이는 여전히 사랑해줄까? 난 누군가를 떠나 내게 온 책들도 사랑해주고 있다. 중고 도서로 그 책들. 누군가의 날인. 누군가의 서명. 어떤 책은 사연이 있으리라. 부디 내가 없더라도 슬픈 운명을 만나지 않기를. 그나저나 소설로 돌아가서, 경매에 참석한 그는 어떻게 됐을까? '30권'을 낙찰받는다. '전대미문의 가치를 지닌' 책들을. '빵 한 조각 값'으로.


 책의 앞날을 다룬 이야기도 있다. '책의 종말'이라는 이야기다. 1895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에서.


 '인쇄술이 이미 최고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 종손들은 인쇄로 책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쯤이면 인쇄술이 시대에 뒤진 방법이 될 것이고,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사진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의 종말' 중에서. (243쪽)


 '행복한 청자는 집에서나 주변을 산책하면서, 혹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유적지를 둘러보며 학습하는 동시에 건강을 관리하는 즐거움, 달리 말하면 지적인 양식을 섭취하는 동시에 근육을 단련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주머니에도 들어가는 작은 녹음 장치가 발명되어, 알프스 산맥과 콜로라도 캐니언을 등반하는 동안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의 종말' 중에서. (253쪽)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말하는 것이리라. 옛 애서광들은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예언했었다. 대단하다. 이제 책의 앞날은 또 어떻게 그려질까? 그런데, 난 아직까지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한다. 책장의 넘길 때의 그 감촉과 소리. 그 애정을 놓을 수 없다. 너무 구식인가. 어쩔 수 없다. 그게 나인걸. 서재나 더 넓었으면 하는 바람만 있을 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책의 진화는 살짝 궁금하기는 하다.


 이 세 이야기에 여덟 이야기가 더 있다. 읽어보시라. 현실과 허구. 과거와 미래. 이들이 버무린 이야기. 환상을 품은 이야기다. 애서가들에게 꽃을 바치는 이야기다. 좋다. 알베르 로비다(1848~1926)의 그림도 좋다. 이 이야기의 지은이 옥타브 위잔(1851~1931)은 프랑스의 작가 겸 애서가라 한다. 그도 책을 모으는 병을 갖고 있었으리라. 역시, 나와 동병상련이다. 그나저나 일본의 '츤도쿠(積ん読)'1처럼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읽어야 하리라.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를 읽어야 하고, 이어서 나를 일깨울 수 있어야겠다. 그러면 글자 없는 책이지만, 언제나 빛나는 책도 읽을 수 있으리라. 책 안에 길이 있다.   



 

  1.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쌓아 두고 결코 읽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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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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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꺾인 상병, 꺾인 병장이라는 말이 있다. 군대 은어다. 군 장병들이 통상 특정 계급 복무기간의 절반을 넘겼을 때 꺾인다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인생에서 꺾이는 때는 언제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80세 남짓이니, 마흔을 그때로 볼 수 있으리라. 중년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마흔. 공자께서 불혹이라 하신 마흔. 그 마흔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이가 있다. 그는 기시미 이치로다.


 '젊었을 때와 달리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말합니다.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8쪽)


 '일본의 철학자인 미키 기요시는 『인생론 노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은 존재와 관련되어 있지만 성공은 과정과 관련돼 있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7쪽)


 '"자신에 대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좋아한다." -'8장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 중에서. (190쪽)  


 십이 년 전 새벽 네 시경, 기시미 이치로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고 한다. 당시 그는 오십이었다고. 심근경색. 열 명에 두 명은 죽게 되는 병이라고 들었던 그. 큰 수술과 재활로 건강을 되찾은 그. 이제, 다시 살아갈 용기를 말한다. 이어서, 어머니를 간병하며, 아버지를 간병하며,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은 한국어 공부와 여러 책을 낸 그. 병상에서 독일어를 공부하시고 싶다던 어머니. 인지증을 앓으신 아버지. 자신과 부모님 두 분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를 배운 그.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춤이라 말하는 그. 이제,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는 그.

 

 해인사 법보전.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해인사 장경각의 법보전에는 이런 주련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원각도량하처, 원각도량이 어느 곳인가, 원만하게 깨달은 부처님이 계신 도량이 어딘가 하는 물음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현금생사즉시,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있는 오늘 이 자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떠오른다. 이 현금생사즉시는 기시미 이치로가 말하는 '지금, 여기'와 일맥상통이다. '있는 그대로'는 '본래성불(本來成佛)'과 일맥상통이고. 밖의 크고 작음, 많고 적음, 길고 짧음, 높고 낮음에서 벗어나 안의 '있는 그대로'를 밝게 보아야 한다. 또, '본래성불'이지만, '있는 그대로'이지만 가려진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지금, 여기'를 힘차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면서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온전히 새로워지며 빛을 내게 되고.


 '이 책이 젊은 사람에게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기대를, 지금 노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젊을 때와는 다른 기쁨을 느끼며 사는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작가 후기'중에서. (254쪽)


 이 책의 작은 이름은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다. 노년의 바로 아래, 중년. 중년의 위기라는 위기가 찾아오기 쉬운 때다. 게다가 노년에 대한 두려움. 가장 크리라. 그런데, 이 책은 그 두려움을 멀리하게 하고, 기대를 준다. 거기에 더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다. 저자는 이 책이 '젊은 사람에게 기대를', '노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줄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중년에게는 기대와 용기를 함께 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인생에서 꺾이는 때인 마흔. 중년의 시작. 그 마흔에게 알맞은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준다.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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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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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가 함께 부른 노래. 나는 그런 노래가 좋다. 더욱이 사랑 노래라면 더 좋다. 애절한 사랑의 어울림. 들을수록 좋다. 그래서 이야기도 남녀가 함께 나오면 좋다. 단짝으로, 또는 연인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니, 좋다. 이런 이야기도 들을수록 좋다. 그런 좋은 이야기. 있다.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다. 그 첫 이야기를 들어 본다.


 사립 탐정 패트릭 켄지. 한 사건 의뢰를 받는다. 유력 정치인 민주당 상원 의원 멀킨에게서. 그의 청소부가 중요한 사진과 서류를 갖고 사라진 것. 그 청소부는 흑인 여성 제나. 어렵게 그 여성을 만났지만, 의문의 그녀. 범죄 조직과 이어진 이 사건. 켄지와 그의 단짝 제나로는 위험 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들이 인종문제를 들먹이면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 '민주주의'를 거론하면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고개도 끄덕여준다. 우리는 소시아(조폭)를 비난하고 때때로 폴슨(의원)을 조롱하지만 스털링 멀컨(의원수장) 같은 사람들을 뽑아준다. 그러다가 이따금 반쯤 정신이 들 때면 왜 이 세상의 멀컨들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유린당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우리를 강간한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끌어안고 키스를 해주는 한, 우리 귀에 대고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단다. 아버지가 너를 돌봐주마."라고 속삭이는 한, 우리는 편안히 두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며, 허울 좋은 '문명'과 '보호'의 명분 아래 우리의 몸과 영혼을 물물교환한다. 20세기의 악몽이 빚어낸 거짓 우상들과 말이다.' -340쪽.

 

멀리 있어서

그리운 사람

잊혀졌기에

새로운 사람

 

하늘엔 작은 별이

빛나고

가슴속엔 조그만 사랑이

반짝이누나

-나태주, '사람이 그리운 밤' 중에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행복이다. 그녀는 최초의 따스한 봄바람이다. 어린 시절의 토요일 오후이며, 시원한 파도가 모래 위를 뛰어다니는 이른 여름의 해변 산책이다. 그녀의 포옹은 힘이 있고, 그녀의 몸은 풍만하고 부드러우며, 헐벗은 내 가슴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맥박은 빠르고 거칠었다. 그녀의 샴푸 냄새 그리고 내 턱에 닿은 채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목덜미.' -121~122쪽. 

 

 인종 차별, 아동 학대, 청소년 범죄, 가정 폭력, 정치인과 범죄 조직의 연루, 범죄 조직의 상호 다툼 등. 이 이야기는 이런 미국의 어둠을 그리고 있다. 예리하다. 그리고 이 그림의 여백을 패트릭 켄지가 안젤라 제나로를 향한 사랑으로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유부녀. 비록 폭력적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지만. 안타까움에서 시작된 사랑이었는지 아닌지. 어쨌든 켄지는 순정적이다. 마초인 그가.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어서 그리운 사람. 알고 있지만 잊혀진 사람. 그의 가슴속엔 조그만 사랑이 반짝이고 있다.  


 'X-File'의 폭스 멀더와 다나 스컬리, '링컨 라임 이야기'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도 남녀 단짝. 이 이야기도 그런 단짝. 좋았다. 남녀의 화음이 좋았다. 그리고 여러 인물의 개성. 짜임새 있는 이야기. 사회 문제를 향한 날카로운 눈길. 마음에 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켄지의 사랑! 응원하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 계속 듣고 싶다. 들을수록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말.


 하나. 데니스 루헤인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둘. 셰이머스 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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