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 - 댄스 스포츠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 
방현희 지음 / 민음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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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춤을 춘 적이 있다.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이 책을 받아들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왜 춤을 잊고 살았을까? .. 하며...  며칠 전 아이들과 대중목욕탕에 갔는데 벽면에 걸린 대형 TV에서 '댄스 위드 미' 라는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한참 방송중이었다. 우연히 본 댄스의 황홀한 동작과 리드미컬한 음악에 매료되어 순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막둥이가 흥에 겨운지 댄서들을 똑같이 따라한다. 아이의 재롱과 화려한 댄스의 세계가 겹쳐지면서 오래 전 춤추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중학교때 우연히 특별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무용'이었다. 그냥 재미로 들어갔는데 의외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 담임선생님과 무용선생님은 무조건 예고를 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가난했던 우리집은 한번 대회에 나갈때마다 당시만 해도 너무 비싼 대회비를 감당 할 수 없었다. 차마 대놓고 말씀은 못하시고 밤마다 고민을 하시는데 밑으로 딸린 동생 둘의 앞길도 구만리인데 차마 하고 싶다고 우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냥 순순히 포기했다. 그게 아마도  내 인생의 첫 갈림길의 순간이었지 싶다. 춤은 그래서인지 가끔 떠오를때마다 가슴 한 쪽이 찌르르 해진다. 마흔이 다 된 지금도 그때 내가 예고를 진학하였으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 가 늘 궁금해지곤 한다.


 

작가는 내게 낯설은 국내작가이다. 처음 대하는 작가의 글은 무척 감미롭다.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남기는 동시에 심금을 울리는 것도 잊지 않고 건드려 읽다가도 가슴 뭉클거리게 만드는 얄미운 작가다. 그냥 춤 이야기만 있었다면 얄밉지만은 않을 텐데 나이가 들면서 느껴졌던 삶의 자양분들을 곳곳에 뿌려놓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 있다면

 

"인생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오는 때가 있다. 그것이 지금이 아니라면 그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나를 거쳐간다. 그게 어릴 때일수도 있고, 한창 때일 수도 있으며 다 늙어서일 수도 있다. 그것을 대비하면서 살아야한다."


이 말이 참 귓가를 맴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습성은 늘 현재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봄날 만 있을 수 없듯이 때론 폭풍우가 치고 때론 비바람이 불어도 긴 생명력을 가진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안주하거나 자만하거나,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똑같이 어려움이란 것이 존재하기에 그것이 언제 찾아오든지 대비할 수 있으면 된다. 인생에 이런 어려움(아픔, 고통 , 슬픔) 등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누구에게는 책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음악이 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춤으로 그 슬픔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가 수년간 댄스 스포츠를 배우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룸바, 차차차, 왈츠, 자이브, 삼바, 탱고, 파소 도블레, 폭스 트롯 등 다양한 종목의 댄스 스포츠와 접목하여 한 편의 삶과 춤의 에세이집이 완성되었다. 이들이 춤을 배우게 된 이유와 춤이 이들에게 어떤 존재인지,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 우리의 삶에 춤이 강한 위로가 되기도 하며 온전히 나를 표현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만 같다.  

 

영혼마저 구속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 나를 얽어맨 모든 현실 , 삶 자체의 무거움이 있다.

 

요즘도 가끔 아이들이랑 춤을 춘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이 책이 내 버킷 리스트에 '춤' 을 추가하게 만든다. 오래된 기억, 열정이란 이름도 몰랐을 시절에 추었던 그 춤사위들이 그나마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이루고 싶은 그 무엇을 떠올려 주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감각적이고 밀도 높지만,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온 작가가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가 너무도 살뜰히 다가와 고요했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켜 놓았다.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 - 1차 세계대전부터 월스트리트 점령까지 
전상봉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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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악마의 세기였고 20세기가 물려준 세상은 말 그대로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의 세계다. 폐허의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빈곤층은 그 비참함에 질식하고 모든 것이 넘쳐나는 부유층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호화로움에 숨이 막힌다." -《21세기 사전》자크 아탈리 -

 

20세기는 전세계적으로 불행한 세기이다.  미국이 주도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휩쓸려 전 세계가 불황과 전쟁에 시달려야 했고, 반세기 가까이 냉전의 세기였으며,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싸이며 탐욕에 물든 세기이다. 저자는 21세기는 이런 냉전과 탐욕이 끝난 순간 시작되었다고 한다.

 

1차세계대전전까지 '해가 지지 않던 나라' 영국의 파운드가, 1차세계대전 이후로 가치가 하락하고, 반대로 달러가 급상승하게 된다. 달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급부상하게 된 것은  달러가 금에 확고하게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전쟁중에 종이뭉치에 불과한 유럽의 각종 지폐다발은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결과론적으로는 금 대비 영국의 파운드의 가치가 심하게 요동치게 되는 사태를 낳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파운드의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게 되면서 금과 연동되어 있던 달러는 세계금융시장에서 급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유럽은 전쟁중에 종이다발인 유럽의 화폐대신 금을 미국에 넘겨주고 무기를 사게 되면서 미국의 경제는 세계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두번의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의 금 70%를 보유하는 나라를 만들어주었고 반대로 경쟁관계에 있던 영국은 파운드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위기는 곧 경제위기로 이어졌다.결국 미국은 20세기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 자극보다 물질적 보상을 바라고, 사회와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전제한다. 그것이 '인간적 자연'이고 따라서 불변의 도덕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의 싸움은 도덕성의 싸움이 아니라 현실성의 싸움이었다.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것은 그것이 더 도덕적이고 더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덜 도덕적이고 덜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준호 《경제사》-

 

 미국의 흥망사는 곧 자본주의 흥망사다. 20세기의 패권주자인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는 현재 몰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패권국가로 우뚝 서게 되면서 미국에 의해 쥐락펴락 당하는 우리나라는 특히나 미국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파란만장한 20세기를 보낸 한국은 더군다나 미국을 빼고서는 현대사를 말할 수 없는 지경아닌가. 이 책은 미국이 패권국가로 등극하면서부터 21세기의 미국의 향후 전망을 다룬다. 21세기 들어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이 중국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부상하고 마침내는 2008년 9월 월가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도화선이 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까지 미국의 1세기를 살펴본다. 이 1세기를 나누어 패권이 교체되는데 30년, 팍스 브리태니카의 세기가 팍스 아메리카 세기로 바뀌는데 30년, 그리고 신자유주의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의 역사이다.

 

  저자는 '팍스 아메리카'를 대신하여 '팍스 시니카'의 세기가 되려면 무엇보다 경제위기를 타개할 대안 담론을 제시하고 성장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1930년대 대공황에는 케인스주의가 제시되어 자본주의의 나침반 역할을 했고, 미국은 조타수 역할을 했다.(P412) 1970년대 불황일 때에는 하이에크를 위시한 일군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P413) 그러나 지금은 경제위기를 타개할만한 어떤 대안 담론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경제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며, 장기 불황이라는 긴 터널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한다. 과거의 대공황시에는 전시경제체제를 통해 불황이라는 긴 터널을 벗어났지만, 현 경제위기는 딱히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한다. 결국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 역사이자 우리의 경제역사의 재정립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경제 성장이라는 프레임속에서 사회생활을 했고 경제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지 못한 채 20세기의 한국을 견디었던 지금의 나에게  많은 위기의식을 전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위기의식과 더불어 향후 전망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흥미진진하게 풀어주고 있어 무척 유익한 역사책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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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서를 이루고 있는 바탕은 단독성이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도 <김수영을 위하여>에서도 강신주의 철학의 사유체계는 우리의 삶에서 단독성을 가지라고 설파한다. 우리의 삶에 단독성을 꺼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권력과 종교와 자본이다. 권력은 모든 인간이 명령하는 대로 살길 원하고 종교는 신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삶의 방식임을 수용해야만 한다. 나아가 자본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단독성을 망각하고 자신이 자본에 종속되는 상품에 불과하다고 인정하기를 원한다. 진정한 자유는 종교, 국가, 자본 등 초월적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완강히 거부하고, 우리의 삶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신의 삶을 불완전하고 부정적인 것으로서 폄하해 왔다면, 우리가 부정했던 모든 것을 정면으로 부딪혀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강신주 철학의 힘이다. 그리고 다음은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삶의 단독성을 깨닫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기준과 가치로만 살아오던 사람이 타자와의 만남에서야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깰 수 있듯이 <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모험>에서 보여주는 인문정신은 바로 소통의 중요성이다. 타자와 소통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삶의 규칙이 지닌 문제들은 오직 새로운 삶의 규칙을 통해서만 대상화되고 해소될 수 있는 이유이다. 저자는 로빈슨이 무인도 스페란차에서 방드르디라는 타자의 등장으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예로 들고 있다. 로빈슨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초월적이지 않고 내재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며 자신을 비추고 있는 태양을 가리켰던 이유가 마침내 일체의 초월적인 가치에 현혹되지 않는 삶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며 , 삶 그 자체를 긍정할 수 있는 단독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빈슨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깨닫기까지는 근 28년이 걸린 것을 잊으면 안된다.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로 장자는 노자철학에 대한 훌륭한 주석가이자 해설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도가사상을 흔히 노장사상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자와 장자는 무위자연의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나는 국가를 가진 자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벼슬살이를 하지 않고 나의 뜻을 유쾌하게 할 것이다.” - 사마천 사기』「노장신한열전에서

 

그러나 장자는 노자와는 달리 분명한 아나키즘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귀하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중시하는 어떤 가치보다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하며 국가가 제공하는 일체의 안락보다는 개체의 고유한 삶이 주는 경쾌함을 장자는 선택한다. 이 점에서 장자가 자연과의 황홀한 합일을 도모했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 국가주의에 의해 포획되는 삶을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통상적인 견해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국가의 가치를 부정하고 개인의 삶이 지닌 유쾌함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장자는 나는 국가를 가진 자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더러운 도랑 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면서 놀겠다.” 라고 한 것이다.

 

장자는 삶을 부정하는 초월적 이념을 표방하는 모든 태도를 이라고 비유하면서, 반드시 이 꿈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위에 말한 단독성과 연관이 있다.

  삶의 철학은 삶 자체를 긍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장자의 이런 성심은 들뢰즈에 따르면 배치와 결합이라고도 규정될 수 있고 배치와 결합을 낳는 마주침(rencontre)” 도 중요하다. 타자와의 예기치 못한 마주침에서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배치와 결합을 구성하게 될 때에만, 우리는 사후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회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치를 의미하는 아장스망의 개념이다. 장자의 성심은 아비투스라 불릴 수도 있고 혹은 아장스망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생길 수밖에 없는 일종의 주름이라는 것이다.

 

장자가 꿈에서 깨어나서 의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타자란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타자와 마주치는 순간 지금껏 꿈속에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데려다가 키우지만 바닷새가 며칠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이야기처럼 자신의 기준으로 타자를 대하면 안된다. 여기서 저자는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긍정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타자와의 연대가 불가피한 일이다. 장자가 권하고 있는 소통의 진리는 우리에게 개인적인 즐거움과 동시에 연대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타자와의 연대가 중요한 만큼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망각과 비움이다. 피리 속을 비워야 바람과 마주쳐 아름다움 소리를 만들 수 있듯이 마음이 비워져야 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비워짐은 열림과 동의어이다. 비워질 때만 마주치는 타자를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 초월적인 이념(국가, 종교, 권력)을 절대적인 목적과 가치로 숭배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 결국 우리내면의 소음들이 진정한 기원은 우리 자신의 삶 자체라기보다는 이런 초월적 이념이었던 셈이다. 초월적 이념은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종교, 자본에게 봉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사유는 초월주의나 허무주의와 전혀 무관하며, 오히려 잊어라 ! 그리고 연결하라 ! 는 장자의 외침은 초월주의에 의해 빼앗겨서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긍정성을 되찾으려고 하는 의지를 되찾는 것이 장자의 사유의 진정성이다.

 

 


 



 
 
 
마약의 역사 
조성권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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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휴트니 휴스턴의 자택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대중스타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은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면 할수록 인기의 척도가 가늠되곤 한다. 그 사진에 경악하였던 것은 마약중독의 심각성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약중독을 다룬 영화에 익숙해서인지 몰라도 한국은 그래도 청정지역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마약중독으로 인한 연예인들의 구속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하지만 반면에 모르핀은 환자들에게 진통제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마약의 선악은 복용비율에 따라 선약도 될 수 있고 독약도 될 수 있다고 경고한 히포크라테스의 격언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마약의 역사의 서문에 저자는 마약에 대한 역사가 심도 있게 다루야 하는 이유는 인류역사의 객체로서 엄연히 상호관계가 적용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걸어왔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마약학을 사회과학 혹은 자연과학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 분야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마약의 역사를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마약의 역사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연유로 기존에 다루지 않은 마약도 역사의 한 객체로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임을 밝힌다.

 

서론에서 마약이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 주장을 소개하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환각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철학자 테렌스 매케나는 식물 속 환각성분의 효능을 발견한 마약 원숭이들이 이를 섭취해 뇌를 자극함으로써 인류로 진화를 이뤘다는 놀라운 가설을 말한다.

 더 흥미 있는 사실은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원시 시대 샤만은 마약식물을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초월적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만든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신과 인간의 가교 역할을 유도하는 정신적 도구인 셈이다. ( 흔히 인디언들이 주술에 사용하였던 아편을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고대 시대 - 그리스에선 마약이 생필품이나 다름없었으며 로마에서는 마약이 오락용으로 상용되었다.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는 곡식과 양귀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히포크라테스는 아편을 고통의 구원자로 표현했다. 고대시대까지 마약은 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중세시대부터 마약의 의미는 변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이 뒷받침 될 때만큼 신이 나서 철저하게 악을 행했다.”

파스칼 팡세의 이 말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종교적 신념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악한 행위를 한 경우를  역사에서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

현재에도 심심치 않게 인터넷상에서 집단 공격을 하는 경우를 마녀 사냥이라 지칭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마녀사냥이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 마녀사냥이라는 단어속에 인류의 집단적 광기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이든 특정행위자에 대한 무차별한 박해 혹은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녀 사냥의 원조는 중세 말 가톨릭교회라는 지배 세력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과 같은 피지배세력에 대한 탄압에서 유래한다(p80).

 

결국 마녀 사냥의 원인은 종교·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다양한 측면이 존재함을 거시적으로 다룬다. 이 책에는 그 원인으로 근세로 넘어가는 역사적 변화과정에서 종교개혁 및 종교전쟁과 같은 종교적 요인을 특히 강조했다. 지배 엘리트들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약 200년 동안 지속된 정치경제적 혼란에 따른 사회적 불안감의 탈출구로서 하층 계급에 대한 사회통제의 필요성을 나타냈다. 특히 그들은 대다수 피해자인 하층 여성에 대한 사회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그러한 사회통제의 필요성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회적인 해악과 악마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마약사용과 섹스를 연계시키면서 강제적으로 악마숭배와 마녀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마약 하면 우리같은 일반인든 바로 중독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이 중독이라는 개념 또한 17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마약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변화를 주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바꾸고 파괴할 수 있는 물질이라고 인식하게 되자 환각제, 진정제, 흥분제, 알코올과 같은 약물에 인간의 점진적 의존과 영향력은 인간의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중독의 의미는 처음에는 중립적인 용어에서 개인의 불건전한 습관에서 개인이 스스로 창조한 죄악으로 , 이어 자기 통제를 할 수 없는 개인의 범죄처럼 부정적인 용어로 변화해 간 것이다.

 

한편 중독의 원인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로 영국 의사인 앤스티는 논문에서 마약사용자를 두 부류로 구별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편을 사용하는 조심성이 없는 부류와 다른 하나는 감각적 즐거움이라는 환상을 추구하여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부류이다.

 

마역사에서 신종마약의 등장과 국제마약밀매의 확산 시기는 바로 1990년대(20세기 후반)이다. 그 이유는

첫째 세계화,

둘째 인터넷 사용의 확산

 

셋째 테러와 마약의 연계

넷째 마리화나 합법 논쟁( 19세기말 아스피린이 발명될 때까지 서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다섯째 ,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마약정책. ( 미국의 집중단속으로 콜롬비아 양대 코메인 카르텔이 거의 붕괴되고 이것은 멕시코 3때 카르텔의 급부상을 초래함, 현재 멕시코 카르텔은 미국 내 코케인은 물론 헤로인, 마리화나, 메스아페타민 등 다양한 마약의 분배망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됨)

 

 

결론적으로 20세기 후반기 마약의 역사는 20세기보다 더 강화된 마약사용자에 대한 처벌의 강화이다. 저자는 이 처벌의 강화가 마약의 중독성과 오남용의 문제로 강화가 아닌 정치적 이유이며 마약사용자에 대한 강화는 정치적 희생물의 결과라고 한다. 결국 이런 마약정책의 강화는 글로벌 차원의 조직범죄의 급성장과 마약 관련 부패 및 폭력적 투쟁은 너무도 값비싼 댓가 라고 한다. 이렇게 급성장한 마약밀매의 심각한 문제는 거치는 단계들이 모두 고정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역동성을 지녔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각 단계의 지속적인 변화로 어려움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마약 단속이 강화되면 될수록 부작용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단속을 중단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저자는 마약의 완전박멸이 불가한 상황에서 적어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반마약정책을 제안한다. 문득 과거 한때 논란이 되었던 사창가를 모두 없애면 성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이 떠올랐다. 미국 심리학자인 로널드 시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마약은 기아· 갈증· 섹스 다음으로 인간의 네 번째 본능적 욕구라고 했듯이 금지된 것에 더 강한 욕구가 생기듯 마약을 하나의 인간의 욕구로 인정하고 저자는 마약 완전 박멸은 유토피아에 불가하다고 한다. 마약뿐만 아니라 역사는 유기적이다. 마약의 역사를 읽으면서 놀라운 점은 결코 역사는 분리될 수 없으며 고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녀 사냥을 종교라는 고정적 관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역사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인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는 거시적이고도 역동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딜러리엄 
로렌 올리버 지음, 조우형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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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위대함은 생명 生命 의 소중함인지도 모른다. 제한 된 죽음한정된 생이기 때문에  현재를 더욱 가치있게 살려는 노력이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더욱 강렬하기에 우리에게 제한되거나 금지된 이유로 더욱 강하게 욕망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우리가 삶에서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유가 억압되면 우린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면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는 모든 금지된 것에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좌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 미래에 자유도 평화도 아닌 사랑이 금지되었다.

 

"모두들 말했다. 우리 엄마가 병 때문에 미쳤고, 그래서 죽어버렸다고.
같은 병균이 내 혈관 속에서도 몸부림치고 있다고.
병명은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 극심한 혼돈과 식욕부진,
불면증을 동반하며 사람을 멍청하고 충동적으로 만드는 그 병을
옛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전쟁과 폭격으로 페허가 된 도시, 새 정부는 사랑을 질병으로 규정하여 18세가 되면 치료라는 명목으로 감정을 제거한다. 감정을 제거한 후에 국가가 정해주는 배우자와 결혼하고 철저히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후 , 정해진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 한마디로 철저한 통제국가이다. 그럼 왜 많은 문학작가들이 먼 미래를 디스토피아이며, 강력한 통제국가를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그린 소설은 영화화 한 소설도 많지만 가장 최근의 작품 중 <헝거게임><퓨어>를 꼽고 싶다. 바로 이러한 소설들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갖고 싶은가? 를 묻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아직도 평등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 한번쯤은 우리 사회에 강한 의문을 던져보라.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권력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불평등사회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극단적인 미래를 그린 '헝거 게임'에서의 미래는 우리의 현실사회가 모티브다. 조금 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미래 '퓨어'의 미래는 가진 자들의 아방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딜러리엄>에서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미래 또한 우리의 현실이 모티브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 누군가 물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랑은 존재한다고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극한의 상상으로 금지된 것을 소망할 때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주인공 레나의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질병에 의해 감염된 병자로 자살로 죽었다. 어머니의 트라우마는 레나가 18세가 되면서 더욱 강렬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속에 어머니의 질병이 감염 되어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상상과 더불어 치료의 날이 다가올수록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이 진짜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 아니 영화같은 장면들이 이어졌다. 이건 영화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같았다. (237)

 

 

그렇다. 레나는 국가에서 금지된 감정을 갖고 있다. 달리기 하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우연히 만난 한 남자 알렉스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엄마를 떠올리면 비록 국가에서 금지된 행위이지만 노래를 불러주며 안아주는, 신체접촉으로 인해 느껴지던 따스함이 떠오르는 레나는, 그래서 괴롭다. 왜 사랑하면 안 될까?

 

그래도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 국경선을 지나 평지라 하는 곳에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의 한 청년 알렉스를 만난 순간 레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전까지 평지에는 병자들만 사는 곳인 줄 알고 있었기에 레나는 알렉스를 멀리하지만,

 

작가는 주인공 레나를 통해 사회에 대한 혼란을 그대로 느끼고 보여준다. 자신이 보았던 세계가 알렉스를 본 순간 레나 안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태풍처럼 ,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고 그 단어가 마침내 내 안에 가득 차올라 혀를 차고 입 밖으로 탈출하려 하는 순간 그것이 단 한번 도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않은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이라는 단어라는 것을......그리고 그 사랑은 질병이란 두려움에서 그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레나의 갈등을 통해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만약에 사랑이 없다면 ? 솔직히 나는 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 것인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왜 위대한지를 깨닫게 해주며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끔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로렌 올리버의 작가의 전작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다면 딜러리엄은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깨우치게 해준다. 우리의 삶에 잔잔한 파문을 던져주는 매력의 작가이다.

   

 

    사랑, 치명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 사랑은 당신이 사랑을 소유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당신을 죽게 한다    하지만 엄밀히 그건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랑은 형을 선고하는 자인 동시에 형을 선고 받는 자였다. 사형집행인. 칼날. 마지막 순간의 구원. 헐떡이는 호흡과 머리 위를 빙빙 돌아가는 하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기도.

    사랑, 그것은 당신을 죽게 하고 또 동시에 살게 한다.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