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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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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꽃잎처럼 흐드러지는 이해인의 글조각들  
  

시간 시간을 더 반갑게, 기쁘게, 소중하게 아껴 써야지. 나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
더 많이 감사하면서, 더 많이 기도하면서 나의 시간들을 길들이는 지혜를 주십사고 기도했다.
-본문 중에서 

 


읽는 내내 역시 해인 수녀다 싶었다. 수녀님은 몇년째 아프시다. 본문의 표현처럼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은 나날들, 수녀님은 계속 글을 쓴다. 작년엔 시집, 올해는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최근 몇년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 했던 글과, 1998년에서 1999년 복음성서 구절을 되새기며 적었던 단상들, 그리고 근래의 노트에 끄적거린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해인 쓰고 황규백 그리다'라고 표지에 적힌 문구처럼 이해인 수녀의 글과 사진, 그리고 황규백 화가의 그림들이 어우러져 마음에 온기를 감돌게 해준다.

일상일기, 우정일기, 수도원일기, 기도일기, 묵상일기, 추모일기 총 여섯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언론에 기고한 글 외에는 대부분 짤막한 편이다. 오늘의 살아있음을 담담하게 고하기도 하고, 친구를 그리기도 하고, 수도원 생활을 추억하기도 한다. 수녀가 직접 쓴 시와 기도도 있고 엄마와 벗들의 얘기가 있기도 한다. 이 책이 출간되면 꼭 글을 써준다 했던 故박완서님이 미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생전에 수녀에게 쓴 편지로 갈음한 서문, 공교롭게도 김수환·법정·박완서·김점선·장영희 등 그녀와 친했던 이들이 몇년 사이에 먼저 떠나버렸다. 누구나 나이들면서 맞는 생기는 삶의 공백이고 그 빈자리를 채우며 현재와 앞으로를 살아간다. 그것을 이해인 수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글로 표현했을까.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책 제목처럼 오늘도 생은 계속 되고,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혹자는 아픔과 상실 속에서 찾은 희망이라 표현했다. 글 하나하나가 맑고 아름답다. 꼭 수녀님의 삶과 똑닮은 것 같아 좋다. 글쓴이는 시종 담담한 어조인데 주책맞게 왜 자꾸 눈이 시큰한지 모르겠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수녀님의 글과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꽃잎처럼 흩날리는 글조각들에 실린 이해인 수녀의 삶의 자락들, 매우 사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 근황이 궁금해 찾아 읽었다가 괜히 가슴만 울렁해졌다, 감사하다. 





p.s.- 책을 시작할 때, "새롭게 피어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 이해인수녀"라는 친필 사인이 인쇄되어 있다. 원래 사인에 메시지와 함께 트레이드마크인 꽃에 사과와 하트가 색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모든 판이 그렇게 출간되는지 알았는데 이처럼 컬러 친필 사인이 인쇄된 것은 한정판에 한하는 것이라고 한다. 몇쇄까지 한정판 처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갖고 싶은 분을은 얼른 서두르시라.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9375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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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이트 - 성지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비밀 의식
매트 바글리오 지음, 유영희.김양미 옮김 / 북돋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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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트]
가톨릭 관점에서 본 엑소시즘 A to Z, 동명의 영화 원작





왜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가톨릭의 엑소시즘과 엑소시스트 양성교육이 비밀스럽고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빙의 자체도 방송에나 나오는 먼 얘기처럼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친숙한 것이, 어린 시절엔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미쳤거나 노망났거나 귀신씌였거나 셋 중 하나라고 했고, 후자일 경우 무당 푸닥거리를 하거나 영험한 신부·목사나 승려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본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서이다. 기독교 신자 중엔 귀신=마귀=사탄을 같은 단어로 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역시나 같은 빙의여도 귀신과 악마의 차이여서일까, 악마니 악령이니 엑소시즘이니 하는 것은 지극히 서양적이고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다가오고 오컬트물이나 해외토픽에나 실릴 희귀사례로 느껴진다. (이 책의 본문에도 언급되지만) 기독교 신자라 하더라도 미사(예배) 시간에 악마에 대한 강론(설교)를 듣는다거나 관련 지식을 배우기 쉽지 않고 모든 성직자가 엑소시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라이트>는 무척 특별한 종교서적이었다. 기존의 기독교서적에서 잘 안 다루는 주제고, 책 전체가 가톨릭 교리를 근간으로 하나 빙의나 악마, 엑소시즘이란 주제를 종교 관련으로 봐도 괜찮을지, 인문이나 사회과학으로 봐야하는걸까 하고 책을 읽는 동안 생각에 빠졌다. 

 

3년여의 작업 끝에 2009년 출간된 <더 라이트>는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고 공부했는지가 책 한장 한장마다 담뿍 느껴지는 역작이다. 총 17장으로 구성된 <더 라이트>는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악마에 대해 얘기하는 옛 문헌들을 인용하며 운을 띄우고, 순간 논문집을 읽고 있는 착각을 느낄만큼 엄청난 각주를 달며 독자들이 최대한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330여쪽이지만 한 페이지당 텍스트가 빽빽해 400쪽 같은 300쪽 책이며, 가히 '엑소시즘 A to Z'라 명명해도 손색없을만큼 이 책 한권으로 엑소시즘에 대한 궁금증이 거의 다 해결되는 것 같다.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개념들도 <더 라이트>를 들으며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대사회로 올수록 엑소시즘 요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컬트·영지주의·악마숭배가 비약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었다. 악마 빙의를 스스로 부추기고 그런 사회 풍토(커뮤니티)가 암암리에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놀랐고, 이런 문화들의 배경과 실체에 대해 알았다. 한편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비기독교권 사회에서는 악마의 빙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거나 확률이 극도로 적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한편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바티칸의 사례를 위주로 쓰인 것은 기독교권인 미국 사회에서도 엑소시즘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국민의 83%가 가톨릭 신자이고 세계에서 가장 엑소시즘이 발달되었으며(병원과 엑소시스트의 연계도 매우 자연스럽다) 가톨릭 엑소시스트(구마사제) 양성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 바티칸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더 라이트>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고 원작이 있고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 때문에 원작과, 영화 내용의 실화 정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많다. 또 평이 엇갈리는 영화라, 영화에 실망해 원작 자체도 폄하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작과 영화는 모티브 정도 수준일 뿐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인생, 에피소드들도 다 다르다. 일례로 <더 라이트>의 주 인터뷰이였던 미국인 신부 게리는 가업 때문에 10대 때부터 장의일을 하고 24살에 장의사자격증을 땄지만 신부가 된 계기도 바티칸에 파견된 나이나 배경도 다 다르며 바티칸에서 엑소시즘 실습을 위해 멘토로 모신 신부와의 일이나 만난 사례자들에 대한 세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실제 엑소시즘 사례와 평사제가 엑소시스트로 거듭나는 교육과정을 읽는 것도 재미 있지만  엑소시즘에 대한 종합보고서로서의 가치도 높아서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한층 고양시켜줄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비기독교권 사회에서는 악마의 빙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거나 확률이 극도로 적은건지 궁금해진다. 관련 영화나 뉴스에 대한 관심에 비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던 엑소시즘에 관한 지식과 사실들, <더 라이트>는 오랜 작업 끝에 완성한 작가의 노력만큼 그동안 양지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엑소시즘과 엑소시스트를 조명함으로서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잡고 많은 궁금증을 해결해주리라 기대한다.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883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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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중국 - 중국의 토지이용 변화와 사막회, 아연중국연구총서 09
이강원 지음 / 폴리테이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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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중국 : 중국의 토지이용 변화와 사막화 

중국 사막과 항사 이해에 좋은 책 

 

 

<사막중국>은 전북대 지리교육과 이강원 교수가 1998년부터 연구하고 발표해온 논문들을 단행본 형식으로 재편집한 책이다. 그래서 내용도 학문적이고 구성도 논문집에 가까워 혹자에겐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사막화와 황사에 관심이 많다면, 진득하게 계속 읽으면 익숙해지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2007년 출간, 2009년 대한민국학술원 기초학문육성분야 우수선정도서로 뽑힌 <사진 중국>은 1950년대 이래 중국의 사막화 현상에 대해 다각도로 진단하는 한편 이론적 개념이나 연구 동향들을 잘 정리되어 있어 지식 습득면에서 매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사막화와 황사에 대한 개념 체계를 명확하게 잡은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사막화라고 말하는 것은 UN사막화방지협약에서 얘기하는 황막화, 사막화(황막화의 일종), 사화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엄밀히 말하면 가장 포괄적인 개념인 황막화라고 하는 것이 국제 기준에 적절하다. 또한 황사는 중국에서는 사진일기라고 불리우며 이 역시 강도에 따라 양사, 부진, 사진폭으로 다시 나눌 수 있고 사진폭의 경우 상당한 사망자를 발생시킬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 사막에 대한 연구는 19세기말 서구제국주의 광란 속에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는 1950년대말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체제적 문제가 있기도 했고 사막화 자체를 전지구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그러나 중국의 황사나 사막에 대한 기록 자체는 고대부터 있어왔다. 특히 연별 황사일수 기록을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 놀랐다. 문제는 사막화의 가속도와 황사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사막화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엔 인조사막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사회주의자들 중엔 사회주의의 장점으로 인조사막을 만들지 않는 것을 꼽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학교와 뉴스에서 보고 배운대로 현대 중국 사막화 심화의 이유는 산업화와 광범위한 개간 등에 따른 인재이다. 또 예상치 못한 아이러니한 결과에 교훈을 얻기도 한다.

 
<사막중국>의 내용은 한 논문을 보는 느낌과 분리된 여러 논문을 이어놓은 느낌을 동시에 받는다. 특히 나머지가 이론개설서적 느낌이 강하다면 4, 5, 6장은 각각 독립된 각론 논문으로 봐도 무방해보인다. 서장과 종장에서 다시 정리해주기도 하지만 목차를 참고하며 쭉 읽어보면 독서 후 얻어가는 것이 참 많다. 몇년전 책이라 최신 연구동향이 아쉽긴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과 기본 지식들을 정리하기엔 나쁘지 않다. 사진과 표도 많고, 참고문헌까지 다 포함해서 총 245페이지로 그렇게 두껍지도 않고 문외한의 일반 독자들이 읽는데 전혀 어렵지 않은 책이니 이 주제에 대해 관심 있다면 상식도 쌓을 겸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본다.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7990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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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팻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표창원 감수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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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민간 독립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엿보다
    
가정주부에서 전문민간프로파일러로, 팻 브라운의 프로파일링 이야기

 
 

19세기말과 20세기의 대중들이 아서 코난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탐정추리물에 열광했다면 현재의 대중들은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 법의학, CSI 등의 과학수사물에 열광한다. 옛날엔 악마 혹은 미치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잔혹범죄자들에 대해서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고 수사 기법도 현저하게 발달했다. 그를 소재로 한 각종 영화, 드라마, 소설들이 붐을 일으키고 그를 즐겨보는 사람들 중 더러는 자신의 진로로 꿈꾸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이러한 높아지는 관심에 단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역시 미드다. 실제 범죄와 관련된 학문과 기술면에서도 가장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미국이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범죄 전문가들은 매우 비상하고 신의 수준의 통찰력을 보이며 어려운 사건들을 척척 해결된다. 게다가 이런 전문가가 되는 방법도 매우 어려워 수도 적은지라 환상은 커진다.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작업과 수사 현장은 어떨까, 그래서 팻 브라운의 <프로파일러>는 무척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게다가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자기 동네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바뀌게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먼저 팻 브라운에 대해 소개하면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민간 독립 프로파일러로, 현재 범죄 프로파일링 에이전시의 CEO이자 외래 교수이고 다수의 방송에 활발히 출연하고 있는 유명인이다. 이 책은 크게 팻 브라운이 어떻게 프로파일러가 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동안 프로파일을 작성했던 의문사 사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각 장들이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큰 이야기기도 해, 책을 다 읽고나면 자연스럽게 팻 브라운의 자전적 이야기 민간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알 수 있고 머릿 속에 정리된다. 


팻 브라운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지만 뚜렷한 진로나 전공에 대한 애착이 없어 졸업 후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결혼과 육아를 선택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비로소 자기의 삶과 일을 찾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담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계속함으로써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과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집은 것은 1990년 자신의 동네에서 발생한 앤 켈리 살인사건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앤의 남자친구를 지목했고 남자친구가 자살함으로써 수사가 종결되었다. 
 

그러나 팻 브라운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자신의 집 하숙인을 지목하고 나름 의미 있는 증거들도 확보한다. 그러나 이미 유력한 용의자가 자살해서 덮어진 사건이고, 일개 가정주부의 주장엔 전혀 권위가 실리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교육받을 수 있는 모든 프로파일러 수업을 듣고 수백권의 범죄학 서적을 읽으며 독학하면서 앤 켈리 사건이 수사 재개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 자그마치 20년이 걸렸다. 그래서 팻 브라운에게 앤 켈리 사건은 그녀가 프로파일러로 살아온 인생의 시작이자 오늘이다. 이 책에 담겨진 각종 살인 사건 사례 역시 이 기간 동안 그녀가 관여한 사건들이다. 

 

이 점을 주의 깊게 보면 한 살인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며 상당히 많은 수의 사건이 미제로 남는다는 반증이다. 그 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의 내용은 대중들의 환상을 깨는 충격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도 민간 범죄전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팻 브라운과 <프로파일러>는 좋은 롤모델이자 학습서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미국의 수사 현장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주마다 법도 다르고 땅도 넓고 등 오히려 더 어려운 면도 있어 보인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처음 <프로파일러>를 폈을 때 각 장 하단 여백이 좀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곧 빽빽한 각종 각주들을 만나며 풀린다. 편지가 삽입되기도 하고, 학문적 지식이 곁들여지기도 하면서 팻 브라운은 자신의 이야기와 사건 수사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전개한다. 2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프로파일링 사례들은 각 장마다 사건 개요를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픽션보다 극적인 실제 사건들에 빠져드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겠지만 프로파일링의 과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충실히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점이다.
 

'정의가 실현되는 걸 보지 못하고 아직도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 문장으로 운을 띄우며 <프로파일러>는 시작된다. 그리고 소개되는 매우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짧게는 몇년, 길게는 20년 넘게 몇 용의자와 대략적인 가설을 세우는데 그칠 뿐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런 서술과 사례를 택함으로써 팻 브라운은 의도적으로 대중들에게 박힌 프로파일러나 각종 범죄 수사에 대한 신화를 깨려 한다. 그리고 이 책 자체로 프로파일러(특히 민간 프로파일러)의 현재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프로파일러 등 범죄전문가의 세계는 점점 발달할 것이고, 수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민간 프로파일러의 개척자나 다름 없는 팻 브라운의 이야기들(그녀 이전에 민간인이 어떤 사건 해결에 참여하는 것은 사설탐정 정도?)-방송도 많이 출연하고 강의도 하면서 나름 영향력 있지만, 특별히 보수도 없고 민간인의 신분이다 보니 수사기록 접근에 제한도 많다. 그리고 어떤 프로파일러든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토대로 프로파일을 구성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오해를 풀어준다. 서평에 언급되지 않은 나머지 팻 브라운의 자세한 프로파일러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살인사건 사례들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726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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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1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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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속삭이는 자> : 전문지식과 독특한 작법이 돋보이는,
이탈리아서 건너 온 낯설지만 매력 넘치는 장르문학
    


신이 침묵할 때 악마는 속삭인다? Subliminal Killer를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
실제 범죄전문가였던 작가의 방대한 사례수집양과 지식, 특이한 구성과 전개가 인상적인
예측불허의 스토리, 무엇을 상상하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짜릿한 씁쓸감이 엄습한다

 



소설은 검사에게 교도소장이 보내는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다. 매우 기이한 수감자에 대한 내용, 중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측되나 절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자신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어떤 생체정보도 유출하지 않아 조사가 힘들다. 그래서 빨리 죄를 규명하지 않으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니 법권력을 이용해 DNA테스트 강제집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소설, 부유층 자제만 다니는 고급 사립 중학교 학생들의 잇단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은 실종 아이들의 한쪽 팔을 잘라 버린 채 도망가는 엽기적인 범죄를 자행한다. 실종사실이 확인된 아이는 다섯 명, 발견된 팔은 여섯 개, 아이들의 실종 및 팔 발견 시기를 추적하던 수사팀은 여섯 번째 아이는 잘하면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하고 희생되기 전에 범인을 잡으려 촉각을 다투게 된다. 
 

도나토 카리시의 2009년작 <속삭이는 자>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2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고 자국에서 4개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전세계 18개국에 판권이 팔린 화제의 소설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이고, 이탈리아의 장르 문학 자체가 많이 소개되지 않아 국내 독자에겐 낯설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충격감을 더하는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인 도나토 카리시가 오랫동안 범죄학과 행동과학 전문가로 활동했다는 독특한 이력과 소설 안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 때문이다. 작가는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잔인한 방법으로 여자아이들을 살해한 이탈리아의 연쇄살인범 ‘루이지 키아티’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던 중, 관련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고 그를 중심으로 자신이 아는 전문지식들과 사례들을 십분 활용해 한 권의 소설로 만들었다. 그러나 모티브를 딴 실화가 있을 뿐 어디까지나 허구고, 민감한 사안이므로 의도적으로 인물이나 국가, 지명을 모호하게 처리해 놓았다. 
 

제목이 <속삭이는 자>에 소재가 '잠재의식 속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책 정보, 그리고 책초반에 나오는 이름 없는 죄수의 존재 등 때문에 어떤 독자는 읽기도 전에 너무 스포일러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라는 불만의 목소리를 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소설은 크게 이름 없는 죄수와 연쇄 아동 실종(살인) 사건, 실종 사건의 범인 앨버트(가명)을 추적하는 수사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이렇게 세 가지 축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움직인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범인을 추리하며 읽게 되지만 시간과 장소가 교차되고, 인물의 심리나 사연이 교차되는 등 종횡무진의 전개에 잠시 당황하지만 첫장부터 엄청나게 높은 몰입감으로 궁금증에 계속 책을 읽게 된다. 사건 자체를 추리하는 것도 재밌지만 사회 단면의 부조리나 현행법의 한계, 인간이 가진 너무나 다양한 얼굴들 소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생각보다 깊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과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다. 한편 단순히 취재해서 글을 쓰는 것으론 절대 불가능한, 실제 전문가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전문 용어나 디테일의 설정 등이 매우 흥미롭고 인상 깊다. 도나토 카리시는 1999년부터 시나리오 작성 등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했고 <속삭이는 자>가 첫 장편소설이다. 
 

<속삭이는 자>가 한국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고 매력 있는 책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국민성이나 사회 분위기가 비슷해서인 점도 있는 것 같다. 먼 유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왠지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내에 소개된 이탈리아 장르문학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알았을 때 낯설게 느껴졌고, 다 읽고나선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한편 이탈리아 문학 전문 번역가도 많지 않다. <속삭이는 자>도 이탈리아 원서를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판 번역본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2권으로 나눈 7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도나토 카리시 식의 스토리 전개와 구성이 워낙 특이해서 그렇지, 몇몇 직역투의 어색한 문장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가독성도 좋고 내용 자체도 재미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지나치기 쉬운 정보들이 치밀하게 짜인 복선이 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속삭이는 자>, 무엇을 상상하든, 결말에서 짜릿한 씁쓸함을 느끼게 되리라. 연쇄살인·범죄심리에 관련된 관심 많은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신간, 3월 30일 출간. 
 
 


속삭이는 자 1 - 10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속삭이는 자 2 - 10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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