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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1 ㅣ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속삭이는 자> : 전문지식과 독특한 작법이 돋보이는,
이탈리아서 건너 온 낯설지만 매력 넘치는 장르문학
신이 침묵할 때 악마는 속삭인다? Subliminal Killer를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
실제 범죄전문가였던 작가의 방대한 사례수집양과 지식, 특이한 구성과 전개가 인상적인
예측불허의 스토리, 무엇을 상상하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짜릿한 씁쓸감이 엄습한다
소설은 검사에게 교도소장이 보내는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다. 매우 기이한 수감자에 대한 내용, 중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측되나 절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자신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어떤 생체정보도 유출하지 않아 조사가 힘들다. 그래서 빨리 죄를 규명하지 않으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니 법권력을 이용해 DNA테스트 강제집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소설, 부유층 자제만 다니는 고급 사립 중학교 학생들의 잇단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은 실종 아이들의 한쪽 팔을 잘라 버린 채 도망가는 엽기적인 범죄를 자행한다. 실종사실이 확인된 아이는 다섯 명, 발견된 팔은 여섯 개, 아이들의 실종 및 팔 발견 시기를 추적하던 수사팀은 여섯 번째 아이는 잘하면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하고 희생되기 전에 범인을 잡으려 촉각을 다투게 된다.
도나토 카리시의 2009년작 <속삭이는 자>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2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고 자국에서 4개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전세계 18개국에 판권이 팔린 화제의 소설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이고, 이탈리아의 장르 문학 자체가 많이 소개되지 않아 국내 독자에겐 낯설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충격감을 더하는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인 도나토 카리시가 오랫동안 범죄학과 행동과학 전문가로 활동했다는 독특한 이력과 소설 안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 때문이다. 작가는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잔인한 방법으로 여자아이들을 살해한 이탈리아의 연쇄살인범 ‘루이지 키아티’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던 중, 관련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고 그를 중심으로 자신이 아는 전문지식들과 사례들을 십분 활용해 한 권의 소설로 만들었다. 그러나 모티브를 딴 실화가 있을 뿐 어디까지나 허구고, 민감한 사안이므로 의도적으로 인물이나 국가, 지명을 모호하게 처리해 놓았다.
제목이 <속삭이는 자>에 소재가 '잠재의식 속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책 정보, 그리고 책초반에 나오는 이름 없는 죄수의 존재 등 때문에 어떤 독자는 읽기도 전에 너무 스포일러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라는 불만의 목소리를 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소설은 크게 이름 없는 죄수와 연쇄 아동 실종(살인) 사건, 실종 사건의 범인 앨버트(가명)을 추적하는 수사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이렇게 세 가지 축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움직인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범인을 추리하며 읽게 되지만 시간과 장소가 교차되고, 인물의 심리나 사연이 교차되는 등 종횡무진의 전개에 잠시 당황하지만 첫장부터 엄청나게 높은 몰입감으로 궁금증에 계속 책을 읽게 된다. 사건 자체를 추리하는 것도 재밌지만 사회 단면의 부조리나 현행법의 한계, 인간이 가진 너무나 다양한 얼굴들 소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생각보다 깊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과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다. 한편 단순히 취재해서 글을 쓰는 것으론 절대 불가능한, 실제 전문가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전문 용어나 디테일의 설정 등이 매우 흥미롭고 인상 깊다. 도나토 카리시는 1999년부터 시나리오 작성 등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했고 <속삭이는 자>가 첫 장편소설이다.
<속삭이는 자>가 한국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고 매력 있는 책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국민성이나 사회 분위기가 비슷해서인 점도 있는 것 같다. 먼 유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왠지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내에 소개된 이탈리아 장르문학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알았을 때 낯설게 느껴졌고, 다 읽고나선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한편 이탈리아 문학 전문 번역가도 많지 않다. <속삭이는 자>도 이탈리아 원서를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판 번역본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2권으로 나눈 7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도나토 카리시 식의 스토리 전개와 구성이 워낙 특이해서 그렇지, 몇몇 직역투의 어색한 문장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가독성도 좋고 내용 자체도 재미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지나치기 쉬운 정보들이 치밀하게 짜인 복선이 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속삭이는 자>, 무엇을 상상하든, 결말에서 짜릿한 씁쓸함을 느끼게 되리라. 연쇄살인·범죄심리에 관련된 관심 많은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신간, 3월 30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