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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평점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꽃잎처럼 흐드러지는 이해인의 글조각들
시간 시간을 더 반갑게, 기쁘게, 소중하게 아껴 써야지. 나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
더 많이 감사하면서, 더 많이 기도하면서 나의 시간들을 길들이는 지혜를 주십사고 기도했다.
-본문 중에서
읽는 내내 역시 해인 수녀다 싶었다. 수녀님은 몇년째 아프시다. 본문의 표현처럼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은 나날들, 수녀님은 계속 글을 쓴다. 작년엔 시집, 올해는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최근 몇년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 했던 글과, 1998년에서 1999년 복음성서 구절을 되새기며 적었던 단상들, 그리고 근래의 노트에 끄적거린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해인 쓰고 황규백 그리다'라고 표지에 적힌 문구처럼 이해인 수녀의 글과 사진, 그리고 황규백 화가의 그림들이 어우러져 마음에 온기를 감돌게 해준다.
일상일기, 우정일기, 수도원일기, 기도일기, 묵상일기, 추모일기 총 여섯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언론에 기고한 글 외에는 대부분 짤막한 편이다. 오늘의 살아있음을 담담하게 고하기도 하고, 친구를 그리기도 하고, 수도원 생활을 추억하기도 한다. 수녀가 직접 쓴 시와 기도도 있고 엄마와 벗들의 얘기가 있기도 한다. 이 책이 출간되면 꼭 글을 써준다 했던 故박완서님이 미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생전에 수녀에게 쓴 편지로 갈음한 서문, 공교롭게도 김수환·법정·박완서·김점선·장영희 등 그녀와 친했던 이들이 몇년 사이에 먼저 떠나버렸다. 누구나 나이들면서 맞는 생기는 삶의 공백이고 그 빈자리를 채우며 현재와 앞으로를 살아간다. 그것을 이해인 수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글로 표현했을까.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책 제목처럼 오늘도 생은 계속 되고,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혹자는 아픔과 상실 속에서 찾은 희망이라 표현했다. 글 하나하나가 맑고 아름답다. 꼭 수녀님의 삶과 똑닮은 것 같아 좋다. 글쓴이는 시종 담담한 어조인데 주책맞게 왜 자꾸 눈이 시큰한지 모르겠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수녀님의 글과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꽃잎처럼 흩날리는 글조각들에 실린 이해인 수녀의 삶의 자락들, 매우 사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 근황이 궁금해 찾아 읽었다가 괜히 가슴만 울렁해졌다, 감사하다.
p.s.- 책을 시작할 때, "새롭게 피어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 이해인수녀"라는 친필 사인이 인쇄되어 있다. 원래 사인에 메시지와 함께 트레이드마크인 꽃에 사과와 하트가 색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모든 판이 그렇게 출간되는지 알았는데 이처럼 컬러 친필 사인이 인쇄된 것은 한정판에 한하는 것이라고 한다. 몇쇄까지 한정판 처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갖고 싶은 분을은 얼른 서두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