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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팻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표창원 감수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프로파일러>, 민간 독립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엿보다
가정주부에서 전문민간프로파일러로, 팻 브라운의 프로파일링 이야기
19세기말과 20세기의 대중들이 아서 코난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탐정추리물에 열광했다면 현재의 대중들은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 법의학, CSI 등의 과학수사물에 열광한다. 옛날엔 악마 혹은 미치광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잔혹범죄자들에 대해서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고 수사 기법도 현저하게 발달했다. 그를 소재로 한 각종 영화, 드라마, 소설들이 붐을 일으키고 그를 즐겨보는 사람들 중 더러는 자신의 진로로 꿈꾸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이러한 높아지는 관심에 단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역시 미드다. 실제 범죄와 관련된 학문과 기술면에서도 가장 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미국이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범죄 전문가들은 매우 비상하고 신의 수준의 통찰력을 보이며 어려운 사건들을 척척 해결된다. 게다가 이런 전문가가 되는 방법도 매우 어려워 수도 적은지라 환상은 커진다.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작업과 수사 현장은 어떨까, 그래서 팻 브라운의 <프로파일러>는 무척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게다가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자기 동네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인생이 바뀌게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먼저 팻 브라운에 대해 소개하면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민간 독립 프로파일러로, 현재 범죄 프로파일링 에이전시의 CEO이자 외래 교수이고 다수의 방송에 활발히 출연하고 있는 유명인이다. 이 책은 크게 팻 브라운이 어떻게 프로파일러가 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동안 프로파일을 작성했던 의문사 사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각 장들이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큰 이야기기도 해, 책을 다 읽고나면 자연스럽게 팻 브라운의 자전적 이야기 민간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알 수 있고 머릿 속에 정리된다.
팻 브라운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지만 뚜렷한 진로나 전공에 대한 애착이 없어 졸업 후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결혼과 육아를 선택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비로소 자기의 삶과 일을 찾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담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계속함으로써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과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집은 것은 1990년 자신의 동네에서 발생한 앤 켈리 살인사건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앤의 남자친구를 지목했고 남자친구가 자살함으로써 수사가 종결되었다.
그러나 팻 브라운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자신의 집 하숙인을 지목하고 나름 의미 있는 증거들도 확보한다. 그러나 이미 유력한 용의자가 자살해서 덮어진 사건이고, 일개 가정주부의 주장엔 전혀 권위가 실리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교육받을 수 있는 모든 프로파일러 수업을 듣고 수백권의 범죄학 서적을 읽으며 독학하면서 앤 켈리 사건이 수사 재개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 자그마치 20년이 걸렸다. 그래서 팻 브라운에게 앤 켈리 사건은 그녀가 프로파일러로 살아온 인생의 시작이자 오늘이다. 이 책에 담겨진 각종 살인 사건 사례 역시 이 기간 동안 그녀가 관여한 사건들이다.
이 점을 주의 깊게 보면 한 살인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며 상당히 많은 수의 사건이 미제로 남는다는 반증이다. 그 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의 내용은 대중들의 환상을 깨는 충격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도 민간 범죄전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팻 브라운과 <프로파일러>는 좋은 롤모델이자 학습서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미국의 수사 현장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주마다 법도 다르고 땅도 넓고 등 오히려 더 어려운 면도 있어 보인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처음 <프로파일러>를 폈을 때 각 장 하단 여백이 좀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곧 빽빽한 각종 각주들을 만나며 풀린다. 편지가 삽입되기도 하고, 학문적 지식이 곁들여지기도 하면서 팻 브라운은 자신의 이야기와 사건 수사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전개한다. 2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프로파일링 사례들은 각 장마다 사건 개요를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픽션보다 극적인 실제 사건들에 빠져드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겠지만 프로파일링의 과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충실히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점이다.
'정의가 실현되는 걸 보지 못하고 아직도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 문장으로 운을 띄우며 <프로파일러>는 시작된다. 그리고 소개되는 매우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짧게는 몇년, 길게는 20년 넘게 몇 용의자와 대략적인 가설을 세우는데 그칠 뿐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런 서술과 사례를 택함으로써 팻 브라운은 의도적으로 대중들에게 박힌 프로파일러나 각종 범죄 수사에 대한 신화를 깨려 한다. 그리고 이 책 자체로 프로파일러(특히 민간 프로파일러)의 현재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프로파일러 등 범죄전문가의 세계는 점점 발달할 것이고, 수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민간 프로파일러의 개척자나 다름 없는 팻 브라운의 이야기들(그녀 이전에 민간인이 어떤 사건 해결에 참여하는 것은 사설탐정 정도?)-방송도 많이 출연하고 강의도 하면서 나름 영향력 있지만, 특별히 보수도 없고 민간인의 신분이다 보니 수사기록 접근에 제한도 많다. 그리고 어떤 프로파일러든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토대로 프로파일을 구성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오해를 풀어준다. 서평에 언급되지 않은 나머지 팻 브라운의 자세한 프로파일러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살인사건 사례들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