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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이트 - 성지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비밀 의식
매트 바글리오 지음, 유영희.김양미 옮김 / 북돋움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더 라이트]
가톨릭 관점에서 본 엑소시즘 A to Z, 동명의 영화 원작
왜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가톨릭의 엑소시즘과 엑소시스트 양성교육이 비밀스럽고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빙의 자체도 방송에나 나오는 먼 얘기처럼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친숙한 것이, 어린 시절엔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미쳤거나 노망났거나 귀신씌였거나 셋 중 하나라고 했고, 후자일 경우 무당 푸닥거리를 하거나 영험한 신부·목사나 승려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본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서이다. 기독교 신자 중엔 귀신=마귀=사탄을 같은 단어로 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역시나 같은 빙의여도 귀신과 악마의 차이여서일까, 악마니 악령이니 엑소시즘이니 하는 것은 지극히 서양적이고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다가오고 오컬트물이나 해외토픽에나 실릴 희귀사례로 느껴진다. (이 책의 본문에도 언급되지만) 기독교 신자라 하더라도 미사(예배) 시간에 악마에 대한 강론(설교)를 듣는다거나 관련 지식을 배우기 쉽지 않고 모든 성직자가 엑소시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라이트>는 무척 특별한 종교서적이었다. 기존의 기독교서적에서 잘 안 다루는 주제고, 책 전체가 가톨릭 교리를 근간으로 하나 빙의나 악마, 엑소시즘이란 주제를 종교 관련으로 봐도 괜찮을지, 인문이나 사회과학으로 봐야하는걸까 하고 책을 읽는 동안 생각에 빠졌다.
3년여의 작업 끝에 2009년 출간된 <더 라이트>는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고 공부했는지가 책 한장 한장마다 담뿍 느껴지는 역작이다. 총 17장으로 구성된 <더 라이트>는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악마에 대해 얘기하는 옛 문헌들을 인용하며 운을 띄우고, 순간 논문집을 읽고 있는 착각을 느낄만큼 엄청난 각주를 달며 독자들이 최대한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330여쪽이지만 한 페이지당 텍스트가 빽빽해 400쪽 같은 300쪽 책이며, 가히 '엑소시즘 A to Z'라 명명해도 손색없을만큼 이 책 한권으로 엑소시즘에 대한 궁금증이 거의 다 해결되는 것 같다.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개념들도 <더 라이트>를 들으며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대사회로 올수록 엑소시즘 요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컬트·영지주의·악마숭배가 비약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었다. 악마 빙의를 스스로 부추기고 그런 사회 풍토(커뮤니티)가 암암리에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놀랐고, 이런 문화들의 배경과 실체에 대해 알았다. 한편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비기독교권 사회에서는 악마의 빙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거나 확률이 극도로 적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한편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바티칸의 사례를 위주로 쓰인 것은 기독교권인 미국 사회에서도 엑소시즘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국민의 83%가 가톨릭 신자이고 세계에서 가장 엑소시즘이 발달되었으며(병원과 엑소시스트의 연계도 매우 자연스럽다) 가톨릭 엑소시스트(구마사제) 양성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 바티칸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더 라이트>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했고 원작이 있고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 때문에 원작과, 영화 내용의 실화 정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많다. 또 평이 엇갈리는 영화라, 영화에 실망해 원작 자체도 폄하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작과 영화는 모티브 정도 수준일 뿐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인생, 에피소드들도 다 다르다. 일례로 <더 라이트>의 주 인터뷰이였던 미국인 신부 게리는 가업 때문에 10대 때부터 장의일을 하고 24살에 장의사자격증을 땄지만 신부가 된 계기도 바티칸에 파견된 나이나 배경도 다 다르며 바티칸에서 엑소시즘 실습을 위해 멘토로 모신 신부와의 일이나 만난 사례자들에 대한 세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실제 엑소시즘 사례와 평사제가 엑소시스트로 거듭나는 교육과정을 읽는 것도 재미 있지만 엑소시즘에 대한 종합보고서로서의 가치도 높아서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한층 고양시켜줄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비기독교권 사회에서는 악마의 빙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거나 확률이 극도로 적은건지 궁금해진다. 관련 영화나 뉴스에 대한 관심에 비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던 엑소시즘에 관한 지식과 사실들, <더 라이트>는 오랜 작업 끝에 완성한 작가의 노력만큼 그동안 양지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엑소시즘과 엑소시스트를 조명함으로서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잡고 많은 궁금증을 해결해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