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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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삶의 궤적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시가 상상의 산물임에도 작가의 생각과 사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작가의 작품에서 그의 삶을, 그의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때로 좌파로 몰리기도 하고, 때로는 애국자가 되기도 하며, 어떤 이는 매국노로 불리기도 한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시를 자주 읽으려 한다. 시는 소설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으므로. 짧은 시어에서 가슴을 쿵하고 울리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읽게된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이다. 그가 출간한 네 개의 시집을 한데 묶은 귀한 시집. 책 좀 읽는다는 나 조차 세사르 바예호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모른다고 해야겠다. 생소한 시인이지만, 페루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의 날선 감정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를 잘 알지 못한 탓인지 처음 시를 읽을 때는 그저 활자들을 읽어나갔다. 중간 부분부터 작가의 시가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작가가 처한 상황들이 시에서 느껴졌다. 작가의 심연을 들여다 본 느낌이랄까.

 

여름, 나 이제 가련다. 저기, 9월에 심은

내 장미를 네게 부탁하마.

죄악의 나날, 죽어버린 모든 날,

그 나무에 성수(聖水)를 주렴. (42페이지, 「여름」 중에서)

 

 

 

낯선 존재는 끝났다. 밤이

깊도록 너와 도란대던 밖의 존재.

좋든 나쁘든,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줄 사람이 이제는 없다.

(중략)

다정한 말도 끝이 났다. 끝없는 고통 속

나의 성년, 그리고 이유 없이 태어난

우리의 운명을 위해 존재했던 그 말.  (145페이지, 「ⅩⅩⅩⅣ」 중에서)

 

삶이 평탄치 않았던 시인들의 시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만큼 삶이 고통스러웠다는 뜻일 게다. 죽음처럼 깊은 잠, 자신의 장례식을 그려보는 시인을 그려본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장례식을 생각한 걸까. 무릇 한 순간의 재처럼 흩어지고 말 인간의 삶이거늘. 우리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음습한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

공평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

 

(중략)

 

인간의 모든 서류를 살펴볼 때,

아주 조그맣게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안경을 써가며 볼 때...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 (207~209 페이지,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중에서)  

 

한 번을 읽고, 두번 째 읽는 시는 느낌이 달랐다. 시가 더 가슴깊이 와닿았다. 감옥에서 쓰였던 시에서는, 스페인 내전에 상처받은 마음으로 쓰여진 시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의 슬픔과 그리움들이, 그의 고통이, 그의 울분이 전해졌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에 대한 공감이었다.

 

세사르 바예호가 펴낸 여러 시집을 한데 엮은 귀한 시선집이다. 여러 편의 시 속에서 응축된 그의 삶의 궤적을 엿본다. 세사르 바예호를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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